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사우디 근무 중 교통사고

carmina 2015. 6. 3. 11:43

 

 

 
 

사우디에서 교통사고

 

현장에서 있었던 상해사건으로 피해자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죄수들이 먹는 음식을 도저히 못 먹겠으니 김밥과 모포를 보내 달라는 요청에 낮에 교회가는 길에 가져다 주기로 하고 일제 승용차인 도요다 크레시다를 운전하여 한산한 휴일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날이 마침 크리스마스라 교회에서 낮에 음악 발표가 있었기에 그간 틈틈이 연습해 두었던 노래들이 입가에서 흥얼거려졌다. 사우디는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인지라 도로의 중간 분리대는 대개 폭 2 미터 정도의 큰 나무들로 가득차 있어 마주 오는 차선의 차들이 잘 안 보인다.

 

사우디의 도로는 길의 맨 오른쪽 일차선은 서비스도로라 해서 반드시 우회전 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고 옆의 차선과도 조그만 분리대가 되어 있어 함부로 직진차선으로 못가게 되어 있는게 보통이다. 신호 시스템도 잘 되어있어 곧게 뻗은 길에서 직진 신호를 한 번 받으면 거의 몇 단계의 사거리를 그냥 지나칠수 있다.

 

마침 그 날도 내가 가는 길의 신호가 계속 직진을 받게 되어 있어 별 생각없이 잘 뚫린 길을 시속 100키로 정도 놓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직진신호의 사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반대편 차선에 있던 하얀 차가 무리하게 좌회전하다가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였다.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 난 그만 내가 달리던 속도를 멈출 사이도 없이 그대로 상대방 차의 옆구리에 충돌하고 말았다.

 

여기서 내 생애를 마치고 이대로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같이 정신이 아득해 지고 내 차가 휙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차 앞에서 뿌연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시야가 흐릿하다. 아 내가 살았던가? 늘 습관대로 안전벨트를 매고 다녔기에 내 몸이 창 밖으로 날아 가지 않았다. 순간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고 기도부터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절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눈가를 어루만져 보니 내가 살아있는게 확실하지만 안경이 없어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찾아 쓰고 보니 차의 라디에이터가 터져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조심스레 나오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게 보인다. 그리고 상대방차도 완전히 찌그러져 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방 차에 어린이가 타고 있었는지 하얀 옷을 입은 어린이 한 명이 보도위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고 상대방차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보니 기골이 장대하고 어부인듯이 두터운 금속 허리띠와 칼을 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전통적으로 입는 하얀 옷은 머리에서 흘러 내린 피로 새빨갛게 얼룩져 있다. 내 몸은 윗몸이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뻐근함을 느꼈다. 아마 안전벨트의 충격때문이리라 생각했으나 다른 곳에는 별 상처가 없고 무릎이 조금 피가 나있다.

 

순간 나는 내 몸이야 어쨌건 간에 내 잘못이 아닌것 부터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고 ‘위트니스’ ‘위트니스’ 라고 고함치면서 주위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다. 사람들은 더욱 모여 들고 조금 뒤 경찰차가 경적을 울리며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경찰은 주위 사람들에게 사고 상황을 묻는다. 주위 사람들은 경찰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상황을 얘기하는데 사우디인의 차가 반대편 차선의 서비스도로에서 무단 좌회전을 하다가 한국인의 차와 부딪혔다고 제대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보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만약 내 잘못이었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나의 미래가 금방 머리에 스쳤다.

 

순간 누구에겐가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침 주위에 몰려든 사람중에 한국인의 얼굴을 발견하고 급히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교민의 한 명의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연락을 부탁했다. 경찰은 상황을 모두 파악했는지 나를 경찰차의 뒷 좌석에 태웠다. 경찰차의 뒷 좌석은 앞 좌석과의 사이에 투명한 분리대가 있고 안에서 문을 못 열도록 되어 있다. 안에 있으니 부서진 차에 있던 나의 손 지갑이 생각났다. 그 안에 몇 백만원정도에 상당하는 현지화폐가 있는데 하면서 창문을 두드리니 경찰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내 지갑이 차에 있다고 소리치는데 마침 부서진 차를 끌고가기 위한 견인차의 운전수가 지갑을 나에게 건네준다. 돈이 모두 제 자리에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상황이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르고 경찰차는 눈에 익지않는 어느 거리의 경찰서로 날 데려가더니 경찰서내 유치장에 넣으려다가 상처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무릎을 보여주니 응급치료를 해주고는 유치장에 집어 넣으려기에 전화 좀 사용하자하고 우리 현지인에게 연락해 보니 그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 전화를 경찰에게 건네줘 위치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전화를 끝내니 날 유치장에 집어 넣는다.

 

생전 유치장이란 곳을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이국에 와서 이런 철창 신세를 져야 하니 참 어이가 없었다. 유치장 바닥은 지저분했고 안에는 수단인 인것 같은 두 사람이 미리 들어와 있다가 눈 인사를 한다. 말도 건네기 싫어 한 참을 쇠창살로 가려진 창문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창문밖으로 천천히 어둠이 오기에 이 밤을 여기서 보내야 하는구나 하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창살 밖으로 보인다. 우리 현지인과 함께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거래처의 인사 한명과 마침 우리 현장에 출장나와 있던 한국인 두명이 밝은 얼굴로 날 놀린다. 그 안에 있는 모습이 어울린다고... 나도 그 농담이 무척 좋아 맞장구치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하니 곧 풀려 날 거라 한다.

 

그렇게 창살 밖과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경찰이 문을 열어 주며 나오라 한다. 풀려 나는가 했더니 날 어느 방으로 데려간다. 아마 야간 당직실인가 보다. 조금 높아 보이는 경찰 한 명이 책상앞의 의자에 앉아 있고 방 안에는 나에게 차를 받힌 사람이 머리와 얼굴에 한눈을 가릴 정도의 두터운 붕대를 감고 옷에는 아직 새빨간 피의 흔적이 가득한 옷을 그대로 입고 나를 쳐다 보고 있다. 순간 사고 현장에서 숨을 할딱거리던 어린이가 생각나 애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인샬라, 생명에는 지장없다’고 한다. 나도 ‘인샬라’로 응답하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나로 인하여 한 생명이 꺼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경찰은 두 사람을 앞에 세워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상대방 운전수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니 잘못을 인정하는가 보다.

 

그러면서 사우디인의 잘못이 많지만 한국인인 나도 잘 못이 있다 하여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긴장했다. 아니 내 잘못도 있으면 일정 기간동안 유치장에 갇혀야 하는가?

 

경찰은 말을 이어나간다.

“신호들이 직진신호라도 사거리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당신은 그 잘못이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주위의 우리 현지인과 동행한 사우디 친구의 얼굴을 보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정도 얘기가 되어 있다는 말인줄 직감하고 답변했다.

“인정합니다.”

“당신의 잘못은 없지만 몸에 별로 상처도 없고 다친데도 없는 반면 상대방은 비록 전적인 잘못이 인정되지만 온 가족이 크게 다쳤으니 판결은 쌍방과실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승락하시겠습니까?”

또 한 번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 빙그레 웃는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판결은 50:50 입니다.”

 

50 대 50 이면 서로의 부상은 자기 비용으로 치료하고 차량 손해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니 상대방으로 피해 보상을 요청하지 말라는 얘기다. 조금 억울하였지만 이 곳의 모든 법이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니 승복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점심부터 먹지 못했으니 시장기를 느껴 우리 직원들끼리 중국집을 찾았다. 우동가락을젓가락에 힘을 주어 두 동강을 내면서 내 인생도 이곳에서 이렇게 쉽게 끊어질 뻔하였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의 일이 아득한 옛날 일같이 느껴지고 새 인생을 또 시작하는구나 하니 감회가 깊어졌다.

 

나중에 차량의 보험처리를 위해 부서진 차량들을 모아 놓은 곳에 가보니 먼지가 가득한 차 안에 김밥이 꼬득 꼬득 말라 붙어 있고 모포에 제 색갈을 잃고 모래색갈을 한 채 뒤좌석에서 쳐 박혀 있었다. 고칠수도 없을 정도로 전손된 차량을 배경으로 보험처리도 할 겸해서 사진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