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42)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carmina 2015. 6. 19. 10:35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 노래)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총각이 부르는 이 노래에 반해 결혼한 여자가 있다.

내 제수씨 이야기다.

 

내겐 2명의 남동생 중 6살 차이의 막내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웃집 형님이 우리 형제 중

나와 내 동생 2명을 데리고 교회를 갔는데

그 후 나만 계속 교회를 계속 다니고 동생들은 다니지 않았었다.

 

내가 군복무할 때 주일 날 면회 온 동생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 있기에 반가움에 물어보니

내가 다니는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고..

그래서 우리 집안에 내 교회 응원군이 한 명 생겼다.

 

어느 날 내가 휴가를 받아 집에 가니 동생이 기타치며

노래하기를 무척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고교 2학년 동생의 성적표를 보니

도무지 대학진학이 걱정 될 정도로 형편없기에

동생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것 다 포기하고 공부만 하라고

내 나름대로 가장 센 자극을 주느라

군화발로 동생이 사용하는 내 기타를 부수어 버렸다.

내가 휴가 복귀해야 하니 동생을 통제하지 못하기에..

 

그 뒤로 동생은 무사히 대학에 들어가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고

나도 졸업 후 직장생활하며 동생에게 기타를 사주었다.

때론 동생은 카페에서 노래로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할 정도로

노래실력이 뛰어 났다

 

내가 직장을 10년 정도 다니는 동안 동생도 졸업 후

당시 어니언스의 이수영씨가 임원으로 있던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마땅한 배필을 찾지 못해 걱정 하던 중

마침 내가 다니던 직장의 직속상관이던 전무님의 비서가

믿음도 좋고 늘 웃는 얼굴로 성격도 좋아 보이고

내가 전무님께 결재받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늘 클래식을 듣기에 

맞선보기 싫다는 동생을 마지막이라고 윽박질러 소개를 시켜 주었더니

불과 3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전무님의 비서를 내 동생에게 소개시켜 준 것을 아무도 몰랐고

제수씨는 결혼 후에도 계속 비서를 하기로 했는데

중요한 문서의 결재 순서나 여러가지로 전무님의 결정에 

비서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있을 것 같아

제수씨와 합의하에 모든 직원에게 가족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했다.

  

해외 사업의 모든 결정을 내리는 직위에 있는 전무님이

내가 만약 자기 비서의 시아주버님이란 것을 알게 되면

내게 인사상의 편의를 봐 줄 것 같았고,   

우리 부서 직원들이 내게 급한 문서의 결재 순서 등 부탁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그런 예견되는 문제들이 내겐 참 부담이 되었다.

혹시나 내가 일을 잘 못해 제수씨 보기에 민망할 수도 있었고..

 

이 후 때론 내 주위의 직원들이 그 비서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해도

나는 모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당시엔 그게 서로를 위해 맞는 처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수씨가 임신 후 입덧이 너무 심해 직장을 포기하고 예쁜 딸을 낳은 후

부사장님으로 승진한 분에게 애기를 안고 같이 찾아가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얼마나 깜짝 놀라시던지..

MIT 출신의 그 분은 나중에 그 회사 사장님까지 되신 후 물러 나셨다.

 

후에 제수씨에게 들으니 동생이 기타치며 부르는 해바라기의 이 노래에 반했다 한다.

 

동생부부는 그 후 내가 하던 부부합창단에 입단해

이제껏 두 형제 부부가 같이 노래부르고 있다.

동생과 나의 얼굴이 많이 비슷해 같이 무대를 서면

공연 초대를 받아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해 나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만들어 진다.

 

내 자녀들이 모두 음악을 전공했듯이

동생부부의 두 딸도 음악을 전공하여 서로 환경이 많이 비슷해지니

얼굴도 비슷해 지는 것 같다.

 

노래 잘하면 먹거리도 생기고

노래 잘하면 용돈도 생기고

노래 잘하면 직장도 생기고

노래 잘하면 평생 배필도 생긴다.

노래는 내게 큰 행복을 주는 인생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