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궁평리 마술피리

carmina 2015. 8. 25. 13:23

 

 

1988년도 여름에 써 놓은 글..

 

올해는 휴가도 없느냐며 사정없이 불평 불만을 일삼는 애들의 원성을 듣기

싫었고 또한 하던 업무도 약 1.5개월정도 연기되어 시간이 조금 나기에

미루어 왔던 휴가를 3일만 내고 부서원들에게 미안한 뒤통수로 퇴근...

 

한참 비가 억수로 쏟아져 어디에도 갈 수 없던 날 아내의 휴가는 까먹어 버려

애들 둘만 데리고 어디로 갈까 무척 망설이다가 친구가족이 제부도 간다고 하기에

슬쩍 묻어서 같이 가기로 하고는 월요일 퇴근 하자 마자 부지런히 짐을 평소대로

꾸리고 먹을 것 챙기고...

 

당초 제부도에서 2박3일 지내려는 계획이었으나 같이 간 친구가 궁평리가 좋다는

꼬심에 넘어가 그곳으로 가서 남은 하루를 지내자고...

마침 그 곳에 '마술피리'가 있어 나도 가보고 싶던 차에 옳다구나 하고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차량의 행렬을 따라 제부도를 탈출하고 궁평리로 가는 시원한

길을 가니 여기저기 '마술피리'의 소리가 보인다.

 

차가 없는 사람이거나 궁평리로 가는 젊은 커플 아니면 아무도 올 것 같지 않는

길거리에 호젓이 자리 잡은 그림과 같은 집.

 

차가 서너대 족히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고,  입구에는 클라식한 등이 죽 도열하여

우리를 반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러가지 '마술피리'의 구호들이 대자보처럼

여기 저기 붙여 있다. 입구에 서 있는 흉상은 모자르트가 아닌 베토벤이었던가?

 

삐꺽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카페에 바이올린협주곡 같은 음악이

홀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첫 눈에 보기에도 넉넉한 인상을 주는 아가씨가 덤덤하게 우릴 반기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주위부터 둘러 본다.

 

우리 애들도 아름드리를 익히 알기에 이 곳에도 아름드리가 있느냐며  무척 반긴다.

 

메뉴판을 내밀며 조급하게 주문을 받지 않는 아가씨는 사람이 그리워 일찍 손님을

보내기 싫은 마음에서 일까?

 

오디오, 커다란 티브이,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는 음악 악세사리들. 농기구들,

칠판에 오늘의 음악, 그것도 딱 세곡만이 적혀 있고, 어슬렁거리며 아가씨에게

 

쥐-----인 (준) 아저씨 있어요?  물으니 이제 막 나갔단다. 아마 오늘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랬구나.  저녁에 오지 말라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5시경이었으니....

 

무심코 바라본 벽시계가 눈길을 끈다.  거꾸로 가는 시계. 초침이 CCW로 돌며

숫자가 고돌이 패로 새겨져 있다.

 

인천 교대의 누군가가 그려준 '마술피리'의 전경이 깔끔해 보이고 툭 치면

바스라 질 것같은 이미 멈추어 버린 할아버지 벽시계가 이 곳의 시간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옆에 마리아 칼라스가 정지된 채 숨어 있다.

 

음악회 포스터들,  하나하나 써 있는 글들이 그냥 지나치며 읽기에는 솔찮은

글들이다.  화장실에 눈에 익은 고등학교의 뱃지가 그려져 있어 이집 아저씨의

출신학교를 알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인천교대의 누군가가 그린 그림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

 

혹 내가 아는 얼굴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며 어둠속에 있는 쥔의 사진을 보니

기억이 안난다.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한지 무려 4반세기가 지나니 너무 오랜 세월이

얼굴모습을 변해 버렸는지도...

 

밖에 곰과 사슴을 보러가는 아이들에게 절대 가까이 가지말라고 신신당부하였더니

다녀 와서는 곰이 불쌍하다고 한다. 몇 일 굶긴것 같이 무척 사납더라고....

 

피아노와 풍금과 첼로, 기타 팬프륫이 있는 실내.

취향이 무척 다양하다.

손님들이 뜻만 맞으면 인사동의 여느 카페들처럼 한 바탕의 음악회가

벌어질 것만 같다.

 

작년 우리집에서 조촐히 가졌던 아름드리 작은 음악회의

제 2회 연주회가 곧 이곳에서 열릴 것같은 느낌이 든다.

한섭님의 기타,  Fugue님의 피아노, gottlieb의 구수한 입담. 등등..

 

가능하다면 아름드리 식구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며

얘기와 음악과 술로 도원경의 하루를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룻밤이 지난 후 '마술피리'의 고개를 넘으면 내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어 버릴 듯한 꿈의 공간을....

 

 

직접 내렸다는 대추차의 맛에 취해 거나하게 흔들거리며 문을 나서려다

문득 눈에 익은 그림이 보인다.  유럽의 고성. 하이델베르그....

또 한 번 올 것 같은 심상찮은 조짐이 보인다.

유럽배낭여행시  하이델베르그를 보고 다시 올 것만 같은 느낌을 들었던것 처럼...

 

내 다시 오리라.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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