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영화속 내생각

사도(思悼)

carmina 2015. 10. 4. 21:56

 

 

2015. 10

 

이 땅의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고

이 땅의 모든 아들의 이야기인 영화 사도

 

그런데 단지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조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고

사도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못배운것이 한이 된 우리 아버지

아들들은 어떻게든 공부를 시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아들이 많다.

그러니 공부를 하고자 하는 자식은 끝까지 시키고

공부에 게을리 하고 대학가지 못하는 자식은

억지로 공부시키기 보다는 산업전선에 나가게 했다.

가난하고 여력이 없던 시절에 가장으로서 당연한 논리였다.

 

내게는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부류였지만

부모님의 지엄하신 명령으로 적성에도 없는 공과대학을 지망하여

졸업은 했고 그에 맞는 직장을 평생 다녔지만

내겐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예술이 있어 내 일생이 행복하다.

아버지는 내게 물고기잡는 법을 강제로 가르친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 어떻게 맛있게 요리해 먹거나 물고기를 팔아서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아들에게 맡긴 격이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들이 자라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길 바라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단지 아들들이 잘 되길 바랐을 뿐...

 

장손인 큰 형님은 가난한 시절에 본인이 가게 점원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낮에는 직장다닐 수 있는 야간대학을 택했다.

나는 초기에는 아버님이 학비를 댔지만

나중에는 큰 형님이 학비를 댔다.

내 막내 동생 다닐 때는 그럭 저럭 집이 살만 했었다.

 

아버지의 역할은 아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는 극단의 경우를 택할 수도 있다.

아들을 내 쫒거나, 때로는 험한 말로

'호적을 파가라'라고 말씀하기도 한다.

요즘은 사회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여

심심치 않게 신문의 가십거리가 생기고 뉴스화가 된다.

 

첩의 자식으로 왕이 된 영조는 그 치열했던 왕권을 이어가기 위해

첫째 아들이 죽고 난 뒤 둘째 아들을 진즉부터 세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도록 열심히 공부를 가르쳤다.

어릴 때는 암기식 공부를 하니 부모마음에 흡족하나 했는데

자랄수록 공부가 체질이 아닌 세자는 점점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왕가의 체통을 버리는 다른 길로 나가고 있다.

 

그래도 세자이니 체통을 세우기 위해 한 때 왕의 대리인으로 내세웠지만

그 자리는 오랜 경험과 자질이 없는 한 누구도 쉽지 않은 법.

자꾸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하고 면전에서 혼내며 점점 아들이 미워진다.

 

그렇게 뒷통수로 느끼는 아버지의 호된 꾸중으로 점점 세자는 삐뚤어져 가고

화살의 만점자리 표적보다는 자유로운 먼 허공을 그리워 하게 된다.

결국은 서서히 정신이 황폐해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세자로서의

임무는 물론이고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못된 아들로

할머니 무덤 옆에 토굴을 만들고 산발 한 채 광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영조에게는 자신의 대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만약 세자를 왕가에서 내 쫒으면

총명해 보이는 세손까지 같이 내 보내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광인으로 몰아 살해하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며 자신의 합리화에 성공한다.

 

조선의 왕들 중 43년동안 비교적 오래 통치하고 장수한 영조는

비록 아들을 모반죄와 미쳤다는 것을 빌미로 그렇게 뒤주에 넣어 죽였지만

대의를 내세워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 하에  

그 아들의 아들 즉 세손에게 왕위를 이어 준다.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역사의 큰 인물 정조이다.

 

현 시대의 책이나 드라마는 역사는 이런 가십거리의 이야기를

너도 나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들고 드라마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영조가 후에 왕의 일기라 할 수 있는 승정원일기에서

사도세자에 관한 내용을 파기시켜 버려

이 사라진 역사는 추측으로만 이어왔기에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다행하게도 사도의 이야기는 사도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아들을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손자가 왕위를 이어받게 한 후

나이들어 남긴 기록인 한중록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이 것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학설이 있어 모든 것이 유추일 따름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옛말이 아니고 지금도 우리는 역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에피소드로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이 역사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 마루에 있던 커다란 뒤주에 눈을 자주 주어야만 했다.

저 안에서 사람이 죽을 수 도 있구나 하고..

 

엄숙하고 진지한 장르도 코미디같이 만들어 내는 한국영화를 거의 안 보는 편이지만

또 한 번 속아보기로 하고 '사도'를 보니

생전 처음 이렇게 진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는 한국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외국영화처럼 몰입하며 본 최초의 한국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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