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인월 - 금계간)

carmina 2015. 11. 2. 09:06

 

 

2015. 10. 29

 

중군마을로 가는 하천의 긴 둑길.

하천에서 고기를 기다리는 낚싯군 아저씨는 낚시보다 스마트폰에 더 열중이다. 

하천 내 수풀속에서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점심을 먹고 있다.

그 낚싯군처럼 황소처럼 이 넓고 긴 길을 걸어가는 이가 나 혼자 밖에 없다.

적어도 지리산둘레길 3코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인데

이 곳보다는 중간지점인 매동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인월에서 금계까지는 거리가 거의 20km 정도라 일반인이 하루에 걷기에는

조금 멀고 힘든 거리다. 평지라면 가능하겠지만 3코스는 유난히

산길이 몇 개가 줄지어 있다.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서 출발하는 거의 모든 팩키지 관광은 관광버스를 타고

매동마을에 손님들을 내려놓고 금계마을에 가서 기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지 그 곳만 보고 모두 3코스가 좋다고 한다.

물론 3코스 등구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마을은 참 아름답다.

마을의 긴 도로도 보기 좋고 적당한 숲길과 편한 길이 계속된다.

 

하늘을 보니 멀리 산 넘어로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다.

이제 기상 예보대로 오후에 비가 올까?

하늘을 계속 보는데 먹구름이 한차례 지나가더니 다시 흰구름이 몰려온다.

 

밋밋한 길이 끝나는 곳 길 옆 밭에 김장을 기다리는 소담한 배추들과 파란 무우들이

마구 흙속을 비집고 나오고 있다.

몰지각한 어느 농부는 감껍질 벗기고 난 껍질을 모두 길가에 버려 버렸다.

 

벽화가 그려져 있어 한눈에 알아보는 중군마을을 지날 때 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기에 인사를 드리니  곱게 웃으시며 잘 걸으라고 하시기에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아 걱정이라 했더니 비 절대 안온다고 호언하신다.

그 순간  노인네들은 신경통 때문에 어느 기상예보다 정확한

기후변화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 오후에 비 안 온다.

 

마을의 감나무는 갈으면 감이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그냥 손으로 따 먹어도 되겠지만 여기 감은 지금 그냥 먹으면 떫어서 먹지 못하고

거의 곳감으로 사용하거나 숙성시켜 먹어야 한다.

그러다 문득 대봉감을 발견했다. 대봉감은 익으면 그냥 나무에서 따 먹어도 되지만

그냥 지나친다. 그건 내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저 나무에서 길가로 떨어진 감은 내가 먹을 수도 있다. 하늘이 허락한거니까..

 

수성대로 올라가는 길 옆에 멋진 너와집 몇 채가 있어 주위를 둘러 보니 펜션이었다.

마침 내 뒤를 따라 온 경상도 사투리가 진한 어느 부부와 같이

너와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같이 길동무를 했다. 울산에서 왔단다.

 

수성대로 올라가는 길에 삼신암이 있다.

절 앞에 큰 돌탑이 잘 만들어져 있고 지하여장군의 목상이 돌담옆에 우뚝 서있다.

한참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내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쯤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하나는 임도길 하나는 산길인데

그 표시가 없어졌고 포장되지 않은 임도길이었는데 이젠 포장이 잘 되어 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길가 옆 계곡의 작은 공간이 눈에 뜨였고

이 전에 잠시 발담그고 쉬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 곳에 길 옆에 백련사라는 절이 있었다.

올라올 때 이 길이 백련사 가는 길이라는 표시도 보았다.

그런데 절이 없어졌다.

단지 그 곳에 넓은 건축물이 들어갈 만한 빈 터만 남아 있고

감나무가 그 공간에 우뚝 한 그루 서 있을 뿐이다.

비구니가 있던 백련사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나?

 

길 옆에 감을 깍아 말려놓은 곳에 다래로 보이는 열매가 있어

지난 달 강화나들길에서 먹은 달콤함이 생각나

혹시나하고  하나를 껍질을 벗겨 먹어보고는 그만 너무 떫어 입 안을

물로 헹궈야만 했다.

 

길 옆에 계곡물이 흐르는 작은 공간에 무인 막걸리 파는 곳이 있다.

울산부부와 의기투합해 한 잔 마시자하고 내려가

한 사발에 2000원이라기에 내것까지 6000원을 울산남자가 대신

옆에 별로 돈이 없는 플라스틱 돈통에 집어 넣고

냇물에 담겨져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서 막걸리 3잔을 따라

옆에 있는 풋고추와 된장을 안주 삼아 한 잔 마시고

잔을 냇물에 씻어 제자리에 놓고 평상을 행주로 닦아 놓았다.

이런 것도 길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렇게 즐기는 사이 길걷는 사람들이 단체로 올라왔다.

 

조금 올라가보니 백련사 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백련사가 가능한 사람들 별로 안 다니는 더 높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세멘트 길이 끝나고 계속을 넘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이 하나가 계곡물에 빠진 듯 한 발을 비닐로 감싸고 운동화를 신고 있다.

그 아이의 형과 엄마와 할머니가 같이 지리산둘레길을 걷고 있다.

쉽지 않은 동행의 조합이다.

형이 조금 앞서 가기에 내가 가족들과 같이 올라오라고 얘기했다.

 

산길로 조금 올라가니 그 때부터 아래로는 가파란 산비탈

뒤로는 나무들이 울창한 평탄한 능선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그 산에 우람한 나무들에 감탄하며 길을 걷는다.

한참을 가다가  배넘이재에 올라가  

뒤 따라 오고 있는 울산부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의 형이 금방 따라왔다. 가족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왔다기에

네가 지켜줘야 하니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렸다가 같이 오라 했다.

 

나무들도 가끔 기형수가 있는 것일까?

어떤 나무들은 마치 나무가 어릴 때부터 기형으로 자라나서

밑둥이에 이상한 혹을 달고 자라는 나무도 있다.

바위들도 역시 어울리지 않는 부위가 일부러 심어 놓은 것도 아닌데

바위 틈 사이에 또 다른 성질과 색깔을 가진 것도 있고..

산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다.

 

숲길에 탐스런 빨간 오미자가 가득 열려 있어

아마도 관광버스로 온 아줌마들이 이 곳을 지나치면

손을 댈 것 만 같을 정도로 탐심을 자극한다.

 

한 참을 내려오니 멀리 일성콘도와 마을이 보인다.

아마 장항마을일 것이다.

이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수령이 몇 백년정도 되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어

둘레를 쳐놓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마침 지나가는 일행이 내 사진기로 나를 찍어 주어 제대로 된 사진하나 건졌다.

대개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여지없이 대나무밭이 있는데

이런 모습을 전국의 여러 길을 걸을 때 자주 보아 무슨 특이한 이유가 있는듯 하나

추측을 할 수가 없다.

 

장항마을에 내려오니 바래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봄이면 철쭉이 유명한 바래봉. 오래 전에 그곳을 봄에 갔다가

비가 오고 안개가 많이 끼어 철쭉은 보지도 못하고 올라온 적이 있다.

이제 숙소를 잡기 위해 매동마을 찾아 가야 한다.

 

장항마을을 지나 매동마을로 가는 언덕에 예쁜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

언덕위에 있어 멀리 산이 잘 보여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 경치가 좋을 것 같다.

마침 젊은 주인이 마당에 나와 있어 한참을 서서 이야기했다.

 

손님들이 기대했던 것 만큼 많지 않아 이 것만 가지고는 생활이 되지 않는단다.

시즌에는 사람이 가득 차 청소하기가 벅찰 정도이지만

요즘같은 비수기에는 겨우 하루에 서너명이 투숙하니 적자란다.

다른 민박집이야 살던 곳에 하던 농사 지으며 빈 방에 손님 들어오니

부수입이지만 이렇게 번듯하게 만들어 놓은 숙소는 투자비가 많아

어떤 계기가 없는 한 아마 힘들 것만 같다.

 

언덕에 길게 실을 꿰어 감을 말리고 있는 양옥집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맑은 풍경 소리가 들려 발을 멈춘다.

비록 절은 아니지만 집에서도 그렇게 풍경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

매동마을에 가까이 가니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모습으로 긴 장대를 들고  감을 따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동네 할머니 한 분도 그렇게 고개를 불편하게 쳐 들고 감을 따고 있는 것을 보며

감따다가 혈압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다.

어떻게 쉽게 따는 방법 없을까?

지리산을 다니다 보면 수없이 널려 있는 감들이 그냥 달린 채 까치밥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겨우살이를 따는 사람들은 긴 장대 끝에 낫을 달아 따는데

감은 떨어지면 상품가치가 없어지니 그것도 힘들것 같다.

나무 밑이 그물망을 치면 되지 않을까?

 

매동마을에 도착했다.

어느 집에 묵을까 하고 마을입구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민박집이름들을 보며

이리 저리 헤매다가 그만 내가 이전에 묵었던 이층집 앞을 지나다가

아줌마와 눈이 마주 쳤다. 그 순간 그냥 이 집에서 옛추억을 되살려 보자 하고

예약없이 하루 잘 수 있느냐고 했더니 가능하다기에 5년전 이 곳에서 하루

묵었다고 했더니 반갑다며 이전에 묵었던 방을 주었다.

그러나 주인아저씨는 지난 해 돌아가셨다기에 안타까웠다.

 

배낭을 놓고 천천히 매동마을을 산책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이 이렇게 많은 민박집이 필요한 것이겠지?

새로 지은 집이 몇 개 보인다. 시골마을에 와서 일반 휴양지의 펜션같은 곳에서

잔다는 것은 둘레길 탐방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하는 것일 것이다.
미리 지리산둘레길 웹사이트의 정보를 검색해 보니 3코스에 민박집이

무려 150개가 넘는다. 

 

매동마을의 우물은 여전히 그자리였으며 우물의 나무 지붕위 잡초 또한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자라고 있었다. 

TV 프로그램 1박2일에 지리산 둘레길이 방영된 후 탤런트 와 개그맨들이 묵었던

마을 입구의 공할머니 감나무집의 허술한 대문과 밖에서 보이는 안마당의 모습은 그대로지만

방송여파로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마을 앞 공터에 흰색 2층 빌딩을 지어

민박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곳에 작은 매점이 생겼고

둘레길 민박집을 알선해 주는 안내센터도 새로 생겼다.

이젠 이 곳도 시골의 정감이 사라지고 있다. 

 

미리 예약하지 못해 특별한 반찬을 준비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반찬이 10가지가 넘었다. 이런 것이 시골반찬의 진수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 방이 따뜻하니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별이 보고싶어 밖으로 나갔으나 검은 하늘에 보름달 휘영청.

그 보름달의 환한 빛에 별들이 빛을 잃었다.

아무리 내가 아는 별을 찾으려 해도 별이 희미하여 찾을 수 없어

다시 방으로 들어갔으나 이미 한숨 잔 뒤라

잠이 안 와 새벽 2시까지 긴 긴 밤을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