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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4코스 (금계 - 동강 간)

carmina 2015. 11. 2. 09:13

 

 

2015. 10. 31

 

지리산 둘레길 4코스 (금계 - 동강 간)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중 후반부인 매동마을에서 금계까지는

이전에 한 번 걸었고 지난 해 가을 친구들 부부들과 같이 걸었기에

생략하고 금계에서 4코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매동마을에서 금계까지는 가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바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5번 정도 있고 택시는 만원정도 나온다기에

민박집을 떠나기 전에 마을 앞 매점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어슬렁거리는데

어제 매동마을에 올 때 같은 코스를 걸었던 무리 중 한 분이

자기 차를 금계마을에 가져다 놓고 다시 이 곳으로 와서

3코스를 걸을려 한다며 나를 그 곳까지 바래다 주겠단다.

 

얼른 짐을 꾸렸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가면서 먹으라고 찐 고구마를 많이 싸주시기에

내가 먹을 것만 몇 개 남기고 나를 금계까지 바래다 줄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

 

금계에 도착하니 이전에 학교건물이 지리산둘레길 함양안내센터로 변해 버렸다.

학교 운동장은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바뀌고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만들어 놓았다.

출발하기 전에 아직은 조용한 주차장 벤치에서 캔 커피 한 잔과 고구마로

아침을 때우고 다리를 건너 출발. 

하늘을 보니 오늘도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날씨가 많이 도와 준다.

 

의중마을로 가기위해서는 도로 옆의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놓치면 좋은 풍경을 놓칠 수 있다.

나도 4년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무계단이 있는 급한 경사를 올라가니 마을 뒤에 대나무 밭을 지나고

낙엽이 가득한 샛길로 지나가다 보면  

아주 특이한 모습의 느티나무가 반갑다.

마을 앞에서 보면 가지만 굵은 나무로 보이는데

옆에서 보면 마치 뿔을 몇 개 가진 커다란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용일까 이무기일까?

 

4코스로 오기 위해 건넌 다리의 맞은 편 산에 거대한 불상이 보인다.

산을 깍아 채석을 하고 남은 그 자리에 남은 암벽을 이용하여

거대한 부처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그 돌이라도 더 캐내어 판다면 더 많은 돌을 벌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불상을 조각해 놓아 아무도 그 채석하는 회사를 자연훼손이라며

탓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우리 나라의 제일 큰 티슈를 만드는 종이회사가 상품광고보다

나무를 심기 위해 투자하는 기업이라는 광고를 많이 하여 자연훼손보다

자연사랑하는 친환경기업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마을 청년이 담벼락 옆에서 낙엽을 모아 태우고 있다.

조금씩 타 들어가는 낙엽더미의 그윽한 향의 낙엽타는 냄새가

나를 아스라한 추억으로 이끌어 준다.

고등학생 시절 인천의 자유공원에 일요일 아침마다 올라가서

공원을 청소하는 봉사를 할 때 가을이면 낙엽을 모아 태우고 집에 오면

몸에서 그 냄새가 배어 종일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다. 

 

커다란 마을 당산나무 옆의 나무평상을 도색하는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인사하고

길을 가면서 느끼는 것이 하천 저편에는 밀려드는 3코스 관광객으로 자연미가 많이

사라졌는데 하천 이쪽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

오래 전의 마을 모습이 변하지 않고 있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옆에 우송대(友松臺)라는 커다란 바위에 뿌리 박고 자라는 거대한 나무들과 인근의

송모제(松慕齊)라고 이름붙인 고택을 보면서 의중마을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마주 오는 사람을 보니 그제 1코스에서 잠시 같이 걸었던

수원에서 왔다는 둘레꾼이다.

어제 3코스를 걷고 4코스를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방향 표시를 잃어 헤매고 있다한다.

덕분에 같이 걷기 시작했다.

 

둘레길 4코스는 벽송사를 통해 가는 조금 힘든 코스와 숲과 도로를 따라 가는 코스가 있다.

길의 갈림길에서 나는 이전에 벽송사 다녀왔기에 왼편길로 가겠다고 했더니

수원 길벗도 나와 같이 가겠다며 동행했다.

 

숲길로 접어 들었다.

그러나 편한 길은 아니다. 비록 언덕으로 올라가지는 않지만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지나가야 하고 방향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잘 모르는 이들은 길을 헤맬 것만 같다.

 

그러나 숲길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바위들의 아름다움 또한 즐길 수 있다.

정말 집채만한 거대한 바위들이 숲길 곳곳에 수천만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바위가 저렇게 생길 수 있지 하는 호기심과

그 커다란 바위에 작은 틈에 있는 작은 양의 흙에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생명의 경외함과

많은 바위들에 이끼가 끼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소나무들 또한 어찌 그리 무성한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자연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어야만 할 것 같다.

 

낙엽이 많이 쌓였으나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에 발에 밟히며 들리는 와삭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풍성한 자연의 흔적들과 같이 있음이 한없이 즐거웠다.

가끔 꺽어지는 고개에서 바라보이는 하늘은 얼마나 맑은지..

오늘 하늘 상공에는 바람한 점 불지 않는 듯 구름의 움직임이

한 시간 전과 변함이 없다. 오늘은 만사가 다 좋은 날이다.

 

긴 긴 숲을 빠져 나와 도로로 나왔다.

이젠 도로를 따라 먼 길을 가야 한다.

비록 밋밋한 아스팔트 도로를 걷지만 엄천강 건너편 풍경이 너무 좋아 지루함을 잊는다.

차가 다니는 도로라 해도 그다지 차의 통행이 많지 않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어찌 글로 다 풀어 쓰랴.

그냥 눈으로 보고 입으로 감탄하고 마음으로 느끼면 그 뿐이다.

 

문득 길가의 펜션에 전화의 지역번호를 보며 어제는 전라도였고 여기는 경상도임을 알았다.

날씨 맑은 날, 이불을 난간에 널어 말리고 있는 펜션들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온 강한 바람에 담벼락 밑에서 자란 수확을 앞둔 누런 벼들이

무리지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하고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의 차선 하나에 탈곡한 벼를 가지런하게 널어

가지런하게 펼쳐 놓고 있다. 농부의 일은 겨울이면 끝날려나.

 

안내판에는 세동마을을 거쳐 가게 되어 있는데

길을 가다 보니 세동마을 방향 표시가 있으나 둘레길 이정표가 아니다.

이 방향 표시는 아무리봐도 짝퉁 이정표같다. 전화로 안내센터에 물었더니

그 이정표를 따르지 말고 곧장 가라한다. 그럼 그렇지.

4년전 실수는 절대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세동마을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조금 섭섭하지만

계곡으로 한 참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 참을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지리산 청정낙원 펜션이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섰다. 이 펜션 앞의 엄천강은 휘돌아가는 지대가 낮아 가족들과 여름에 휴가 오기

좋은 곳이다. 바로 앞에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곳이다.

 

언덕을 올라 운서마을의 쉼터에 잠시 쉬며 수원길벗이랑 얘기하는데

자신이 오늘 환갑생일이란다. 아침에 아내에게 축하전화가 왔다고..

내가 놀랐더니, 자신도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다 한다. 그래서 무작정 나왔단다.

얼마나 더 걸어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걸어 보겠단다.

문득 이 길벗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다.

쉼터에 걸려 있는 여러가지 리본을 보다가 급조한 듯한 작은 리본에 시선이 꽂혔다.

헝겊 하나를 찢어 세명의 이름을 볼펜으로 적었다. 

두 명의 이름이 돌림인 것을 보니 형제들같기도 하다.

형제들이 길을 걷다가 이렇게 서로의 이름을 적어 놓으,ㄹ 정도로

우애 좋은 형제들이 상상되어 참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길 건너편 산에 희미하게 도로가 산꼭대기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그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 추측해 보니 아마 그 곳도 산에 바위를 캐느라

임시로 만든 도로인 것 같다. 그 채석장소엔 다시 풀들이 돋아 멀리서 보기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길가에 작은 밭에 쳐있는 울타리에 이상한 방향제 케이스같이 것이 달려있다.

시골일에 잘 아는 길벗이 아마 야생동물들 들어 오지 못하게 달아 놓은 것이라고 알려준다.

밭에 들어와 애써 기르고 있는 채소농사를 망치는 고라니를 막기 위해선 밭에

들깨를 키우라 한다. 고라니가 들깨 냄새 싫어하니까..

 

운서마을을 지나 구시락재를 넘으면 동강마을이다.

동강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예쁜 집들이 이어져 있다.

경치가 좋다 보니 도시인들이 짜투리 땅을 사서 개인 별장을 지은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언제든 나도 욕심많은 도시인이 되고 만다.

 

동강마을에 도착하니 예쁜 모양의 화장실이 있고 내부도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점심먹을 장소를 안내센터에 물으니 36번 이정표 옆에 식당이 하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둘레길의 데이터 베이스도 이제 체계를 잡아가는 것 같다.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정표 번호만 알려주면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수월길벗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아침에 주먹밥을 싸 가지고 왔다며

첫째날 처럼 혼자 계속 걸어갔다.

 

동강횟집에 들어가니 좁은 식당안에 동네 아주머니들 아저씨들이 가득하다.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식탁앞에 앉으니 작은 꼬마가 엄마에게 안겨 놀고 있기에

주머니에서 사탕 2개를 꺼내 주었더니 내가 음식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각종 반찬이 가득한 커다란 쟁반에 밥 두 그릇과 함께 감자탕을 가져다 주었다.

밥 2개 주문하지 않았다 했더니 배고플텐데 더 드시라 하는데 가져다 준 사람이

아까 그 아이의 엄마였다.

 

실은 감자탕보다 동네아주머니들이 먹고 있는 돼지갈비나

동네 아저씨들이 주문한 송어회가 먹고 싶었었다.

송어회를 먹고 있는 아저씨들이 내게 말을 걸기에 혹시

그 송어회 몇 점 먹을 수 있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을 무수히 참고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