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58) - 정든 그 노래

carmina 2015. 12. 23. 08:55

 

정든 그 노래 (전석환 작사 곡)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면


어둡던 내 마음 멀리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노래 불러봐요


산골짜기마다 들려오는 소리
언제 들어봐도 정답고 즐거운 노래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면


어둡던 내 마음 멀리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노래 불러봐요

 

등학교시절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우리 집 흑백TV앞에

기타를 들고 앉아 전석환씨가 진행하는

'정든 그노래'라는 프로그램을 기다렸다가

전석환씨와 같이 기타를 치며

TV에서 방송되는 노래들을 같이 따라 불렀다.

 

막 기타를 배우고, 인천 Sing Along Y에서 포크송을 배우던 시절

내게 노래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어린 시절 만화나 동화책 보기가 취미인 이후 인생 처음으로

스스로 노력해서 가진 취미이고 내가 남들보다 조금 잘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후 노래는 내 인생의 제일 큰 벗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나보고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불러보라했다. 물론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불렀다.

그 때 처음 부른 노래가 동요

시냇가에 제비꽃 간들 간들 제비꽃~~

이렇게 나가는 노래였는데 선생님이 잘 한다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이웃집 형의 손에 이끌려 처음 찾아 간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내가 있을 곳이 여기구나 하는 것을 알고

그 이후 교회는 목숨을 걸고 다녔다.

 

그리고 중3시절 교회에서 만난 친구가 권해 찾아 간

인천 Sing Along Y. 지금은 숭실대 교수로 있는 유수현씨가 노래를

가르쳤는데 처음 간 그 곳에서도 나의 노래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아

가끔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가 악보를 보고 다른 사람처럼

더듬거리지 않고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그 곳에서 처음 알았다. 그 전만 해도 주로 교회에서 가사만 적힌 노래를 보고

반복해서 불러 배웠으니까...

 

그러나 인천에서는 Sing Along Y의 창설자인 전석환씨에게

노래를 직접 배워보지 못했다.

그 때는 아마 그 분은 무대를 서울로 옮겼기에 고향인 인천에서는 더 이상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TV에서 전석환씨가 나올 때마다

그 분이 우리 옆 동네 방앗간집 아들이라고 얘기했었다.

 

인천 Sing Along Y를 오래 다니니 내가 군대가기 전 쯤 가르칠 사람이 없어

내가 잠시 맡아 보기도 했지만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그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나도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포크송이 아닌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어

한참 잊고 살았지만 그래도 늘 어느 모임에서나 기타치고 노래를 리드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2014년 우연히 가입한 인터넷 포크송 모임에서 전석환씨의 소식을 들었다.

남이섬에 있는 노래박물관 개관기념으로 통기타 50년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전석환씨를 초대해 Sing Along 을 한다고 하여 나도 신청하여 따라갔다.

우리가 탄 버스와는 별도로 다른 차로 오신 분을 휴게소에서 처음 만났을때

얼마나 두근거렸던지...

머리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형 머리에다가

기골이 장대하고 나이도 많은데 얼굴이 상당히 밝았다.

 

내가 어릴 때 부터 모은 두터운 Sing Along Y 악보 모음집을 가지고 가서

올해 연세가 80세인 그 분에게 보여 주니 정말 반가와 하시며 사인도 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나랑 20년차이나는 내 우상이다.

 

같이 따라간 회원의 권유로 예정에도 없던 Sing Along 프로그램을

내가 모두 아는 노래라 그 분과 같이 진행했다.

하긴 전석환씨 곡중에 내가 모르는 노래가 있던가?

그 분은 신디를 치며 리드하고 나는 노래를 했다.

내가 멜로디를 부르고 그 분이 화음을 넣었다.

약간 리듬을 달리하는 노래도 무난히 내가 따라 했고,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기타치며 불러 오던 노래들을 같이 불렀다. 

 

할 수 만 있다면 평생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거창한 사명은 없어도

그저 내가 리드하여 사람들이 건전한 즐거움을 즐길 수 만 있다면

편안하고 안이하게 살려는 삶은 포기해도 좋을 것 같다

 

며칠 전 전석환선생님의 80세 생신에 초대를 받았다.

왜 내가 초대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선생님의 제자라는 분이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기에

그 때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어쩌면 평소 노래하는 모임에 나를 초대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 초대하는데 나도 그 중 하나로 택해졌을 수도 있다.

선생님께 무슨 선물을 해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다.

오래전 부터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드리고 싶었다.

Sing Along 악보 중 선생님이 가르친 노래 악보.

내가 처음 Sing Along 을 찾아 갔을 때는 선생님의 뒤를 이어

다른 분이 할 때 찾아갔으니 후에 내가 선생님이 가르칠 때의

악보를 특별히 구하여 소장하고 있었다.

1968년도 손으로 직접 그린 악보. 내가 중 1 학년 시절이다.

악보를 액자에 넣어 준비했다.

 

조촐하게 차려진 선생님의 작업실이자 노래를 가르치는 공간에

들어가 내심 놀랐다.

오늘 노래를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줄 알았는데

생신 모임은 불과 몇 명 자리밖에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오늘 외부 초대손님은 나 뿐인 것을 알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아직 사람들이 다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선생님을 키보드위에 악보를 펼치고 노래를 시작하신다.

이런 모습이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노래는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

굳이 격식을 차려 부르지 않아도 된다.

아직도 악보를 직접 그리신다는 선생님은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모아 만든 책을 펼치니 그 곳에 내가 학창시절부터

불렀던 노래들이 주르룩 펼쳐졌다.

내가 얼마나 이 노래들을 혼자 흥얼거리며 지내는지 아실까?

남들 잘 모르는 노래들. 

아침에 부르는 오솔길, 고요하게 밝아 오는 아침 호숫가에서...

저녁에 부르는  밤노래, 뭇별이 반짝이는 조용한 밤이 오면...

하이 히 하이 히 넘치는 정열의 노래가..

아..참...너무 좋다.

이런 노래들을 늘 혼자만 불렀는데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이랑

같이 부를 수 있다는 기쁨에 혼자 속으로 무척 감개무량했다.

 

작업실에 여기 저기 보이는 강화의 물건들

식탁에 차려 놓은 강화도 순무.

궁금해 여쭤보니 강화의 볼음도에 펜션을 가지고 계시단다.

내가 나들길을 걸으며 강화 전도사로 칭하고

강화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 하니 그 것 또한 무척 기뻐하셨다.

 

누군가 늦게 오고 있다며 식사를 시작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교회 주일학교의 여선생님이자

내가 닮고 싶었던 수채화가이자 아동동화작가이신 박정희 장로님의 딸.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선생님이 강화에서 직접 가지고 오셨다는 회와 굴과

나이 든 회원들이 준비해 준 동지팥죽과 떡과 와인...등등..

다 같이 맛있게 식사하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

다시 노래 부르는 자리로 돌아와 악보를 들쳐가며

보이는 대로 노래를 부른다.

내 기분이 하늘을 날고 있다.

 

늦은 밤 혼자 돌아오는 밤거리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올해 내게 가장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