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13코스 - 볼음도

carmina 2016. 1. 11. 13:43

 

 

2016. 1. 10

 

아침에 첫 배가 7시 10분에 떠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 하니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러나 밤에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뒤척이느라 잠을 못잤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이 웃는다. 코를 제일 크게 골면서 잘 자더라고..

 

어제 저녁에 먹은 식사보다 더 먹음직한 아침상을 받았다.

묵과 두부찜과 조개탕과 명란젓 등등 시골 냄새가 가득한 아침을 배불리 먹고

다시 1톤 트럭 뒤에 타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아침 바람이라 어제 이 트럭을 타고 올 때보다 더 춥다.

바람이 없는 날도 이렇게 추운데 바람이라도 거세게 부는 날이면

얼마나 더 추웠을까? 

 

마을 주민을 포함하여 소수의 인원만이 배를 타고

바로 옆 아차도를 거쳐서 볼음도에 내렸다.

 

어차피 다 걷고 배를 타러 다시 이 곳으로 와야 하닌

일행들은 배낭과 주문도에서 산 소라 그리고 굴을 모두 매표소에 보관하고

가뿐하게 길을 떠났다. 나는 등에 허전함을 느껴 산 굴만 놓고

배낭은 그대고 지고 갔다.

 

이 쪽 바다는 조금 갯벌의 모습이 다르다.

주문도는 갯골이 거의 없이 평탄했는데 여긴 깊은 갯골이 많다.

어릴 적 집 앞 바다의 갯벌에서 놀 때 저 갯골이 제일 무서웠다.

자칫 잘 못하면 그대로 수면만 보고 놀다가

깊은 갯골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을 수 있다.

 

썰렁한 바다.

백사장은 어제의 주문도 백사장과 사뭇 다름을 금방 느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주문도는 파도가 치는 곳이 많아

모래가 가는 반면 바다 건너편에 다른 섬들이 바다를 막고 있으니

파도가 없어 모래가 굵은 것 같다.

해변의 바위들도 거의 파도에 부딪히지 않으니 무척 날카로운 편이다.

 

서시히 아침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른다.

그러나 곧 구름 사이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오랜 세월 정비를 하지 않은 듯 축대의 돌이 무너지고

산기슭의 무너져 나무들이 쓰러져 내려가고 있으며

백사장엔 스티로품으로 만든 어구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백사장 끝까지 쓸려 내려온 큰 바위들의 지층이 수직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백년 전에 이 곳에 땅이 요동친 적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개골 해변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등에 짐을 지고

바닷가에서 굴을 채취하는데 여념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 인사들 드렸다. 할머니는 말로는 인사를 받아도 손은

여전히 바위를 들추어 돌덩어리가 생긴 굴을 찾고 계셨다.

아마 이런 곳에서는 바위에 붙은 굴을 캐는 것이 아니고

따로 떨어진 굴덩이를 줍는 것 같다.

 

이 곳은 거의 모든 바위에 징그러울 정도로 굴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굴 한 사발 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 같다.

 

나들길 코스가 아니라 돌들이 고르지 않아 발을 딛는데 불편하다

어느 순간 발을 헛디뎌 조금 삔 듯 했으나 곧 괜찮아 졌지만

하마터면 넘어지면서 카메라를 바위에 부딪힐 뻔 했기에

그 뒤로 상당히 조심하면서 걸었다.

 

오랜 세월 바다쪽으로 무너진 돌 중의 하나가 사람의 얼굴 비슷한

돌로 남아 남아메리카 칠레의 이스터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같이 보였다.

 

그 바위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가니 환상적인 해변이 짠~ 하고 나타났다.

이렇게 고운 모래가 가득한 백사장을 이 전에 보지 못한 것 같다.

끝이 안 보이는 해변에 발을 딛는 순간, 이 곳이 명사십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환상적인 곳에 우리 일행의 발자국 밖에 없다.

 

순간 리더가 '고라니' 하면서 소리친다.

아마 해변을 산책나온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우리의 인기척을 느껴

숲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멀리 갯벌로 껑충거리며 도망가고 있다.

지난 번 아내와 이 곳 볼음도를 걸을 때도 이런 모습을 보았는데

오늘 또 다시 보는 진기함을 즐겨 본다.

 

카메라로 고라니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는데 문득 고라니가 불쌍해 보였다.

고라니가 도망가는 쪽에 커다란 갯골이 있는데 만약 그 곳으로 빠지면

어떡하나 하며 까마득하게 보이는 그 곳을 바라보았는데 그 곳 앞에서

고라니의 모습을 놓쳤다. 본능적으로 갯골을 피해서 숲으로 잘 돌아갔겠지 하며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후에 내게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을 때 이 해변에 나와 종일

천천히 산책하고 나무 숲 사이에서 책이나 읽고 싶다.

 

은빛 모래밭을 한 참 걷다가 해송숲이 시작되는 영뜰해변에 가서야

우리가 걸어 온 고운 백사장 길이 나들길의 정식코스가 아님을 알았다.

이 곳을 잘 아는 자만이 아는 멋진 코스를 보았다는 느낌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길게 이어진 해송 숲사이로 들어가니 곧 눈쌀이 찌푸려 졌다.

그 아름다운 숲길 사이로 수없이 많은 스티로폼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바람에 날려온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 버린 것인지 모르지만

솔낙엽사이에 뿌려진 듯 보이는 많은 쓰레기들이

도무지 청소가 안 될 정도로 멀리 퍼져 있다.

 

그래도 그 사이에 휴식처라고 일부러 돈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새 벤치들과 나무 탁자들이 가치를 잃어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와서 즐기는지는 모르지만

벤치들이 너무 많아 전시행정을 보는 듯 했다.

어떤 나무 탁자는 포장 비닐도 벗기지 않은 것들이 있을 정도였다.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는 곳에 큰 무료 망원경을 세워 놓아 멀리 바다까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설명에 의하면 여름엔 이 곳 주민들이

갯벌 체험을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기에

아무나 이 곳에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켠에 커다란 노란 비닐더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에 이 곳에 간이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것 같다.

아마 갯벌 물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으니 어린이들을 위해

간이 수영장을 만드는 것 같다.

 

영뜰해변의 끝에서 요옥산으로 가는 숲길로 접어 들었다.

나들길 말뚝 이정표에 아직 화살표가 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새로 길을 만드는 것 같다.

밧줄 따라 산으로 이어진 언덕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니

그 곳에 정자가 있고 망원경도 있어 멀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정자에서 바다 반대편을 보니 볼음도의 명물인 800년산 은행나무가 보였다.

나들길 리본은 정자를 넘어 산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나는

길벗들과 따로 걷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를 못가는 대신 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해 놓았기에 볼음교회의 11시 예배에 참석할려면

부지런히 길을 걸어야 했기에 나만 따로 은행나무로 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급히 내려왔다.

 

복지회관이 마을길 옆 논에 수없이 많은 오리떼들이 놀고 있어

혹시 한꺼번에 날라가는 장관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소리를

크게 질러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모든 오리떼들이 거의 같은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누구는 뒤쳐져서 따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그렇게 무리지어 똑같이 천천히 움직이는지 동물의 본능은

참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그 중 한 마리가 퍼득대며 날으면

무리가 동시에 하늘을 박차고 나르는데 그렇게 날라가다가도 이탈되는

오리가 없이 모두 동시에 같은 곳에 앉는다.

 

수령 800년 묵은 은행나무의 둘레는 거의 10m이고 높이가 약 25 m 로 실로 거대하다.

그 뒷편에 새로운 정자를 만들어 놓아 올라가 보니 이쪽 방향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인 말도를 망원경으로 보니 꼭대기에 높이 세운 초소도 볼 수 있다.

아마 날이 좋은 날이면 북한도 자세히 보일 것 같다.

 

서둘러 내려 길고 긴 방조제를 걸었다.

날씨가 조금 풀어진 것 같아 장갑을 벗고 걷다가 그만 아카시아 나무에 걸려

손등에 가시가 박혔다. 잠시 방심한 사이 피를 본 셈이다.

 

방조제 끝에서 나들길 코스는 봉화산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지만

나는 마을쪽으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 한참 걸었다.

이정표도 없지만 대충 감을 잡고 걷는 길이 워낙 멀어 조금 힘들었지만

뛰듯이 걸어 가까스로 11시에 교회에 도착하여 막 입례송을 시작하는 교회 본당 뒤에

땀에 젖은 모자를 벗고 가만히 앉으니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듯 나를 바라본다.

 

관심있는 찬양대의 인원은 약 열 댓명. 찬양대가 특송을 지휘자가 앞에 나와 하는데

반주는 MR로 하는 것이 무척 이상했다. 분명히 그랜드 피아노도 있고 찬송 반주 하는

이도 있던데 이런 찬양대는 생전 처음 보는 것 같다.

 

뒷 편에 군인들이 몇 명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점에 군부대가 있고 교회는 여기 한 군데 뿐일테니 주일이면

군인들이 많아야 할 텐데 불과 몇 명인 것을 보고 어쩌면 최근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비상이 걸려 못 나왔겠구나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나 또한 군시절에 중대 군종을 하였기에 주일이면 어떻게든 전우들을

교회나 절에 많이 보내야 하는 것이 큰 임무라고 생각해서 무척 노력했었다.

 

예배를 마치자 마자 바로 길벗들 점심먹는 장소로 뛰어 갔다.

동절기면 강화 외포리로 돌아가는 뱃시간이 1시간 당겨지기에 서둘러야 했다.

급히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아 여유있게 선착장으로 나섰다.

 

원래 볼음도에 살고 있는 내 젊은 시절의 우상인 전석환 선생님을 뵙고

같이 노래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안되어 그냥 전화로만 인사드리고

떠나옴이 아쉬웠다.

 

선착장으로 가는데 다른 일행 몇 명이 트레킹하러 왔다가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

나들길 만들어 놓고 왜 뱃시간을 이렇게 빠듯하게 해서 아침에 도착한 사람들이

한 코스도 다 걷지 못하게 하느냐는 투정을 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다.

과연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밀물 썰물 때와 상관없이

운항횟수를 늘리고 뱃시간을 조정할 만큼 강화에 큰 이익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걷는 사람보다 차를 가지고 관광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강화를 위해 쓰고 갈 것이다.

 

외지인으로 나들길을 참 많이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길을 만들어 준 강화군청이 고맙기만 하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늘 길을 정비하고 이정표를 세우고

길을 잘 걷는다고 때로는 완주자에게 기념으로 강화쌀과

각종 선물을 같이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와 해야 하지 않을까? 

 

길이 즐겁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더 즐겁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