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65) - 능하신 주의 손 (성가)

carmina 2016. 1. 14. 17:32

 

 

능하신 주의 손 (김연준 작곡) 

 

우리 주님의 손길 닿는 곳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듯
죄로 죽게된 영혼 건져내사
다시 살리신 내 주의 손

능력의 보혈 흐르는 손
죄로 죽게된 우리 영생 얻네
병든자 주께 찾아 오면 깨끗함을 얻네
뭇 생명 살린 능하신 주의 손
영광 중에 계신 주여

우리 주님의 손길 닿는 곳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듯
죄로 병든 내 영혼 건져내사
구원해 주신 내 주의 손

구원의 능력 힘과 소망
죄로 병든 내 영혼 구원 얻네
병든 자 주께 찾아 오면 깨끗함을 얻네
뭇 생명 살린 능하신 주의 손
나의 맘에 평안 주네

 

아래 이야기는 4년전 이맘때 제가 암 수술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도 올렸던 것 같은데..

암 수술하고 2개월 뒤에 교회에서 이 찬양을 특송으로 부를려고

연습하다가 결국 매번 부를 때마다 목이 메어 포기하고

다른 곡으로 연습해서 불렀습니다.

 

 

2011년 11월

 

년초부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81년 직장 생활 시작하자마자 큰 병을 앓은 이래  

내가 지난 30년동안 병원에 입원한 번 해 보지 않고 건강하게 지냈구나.

늘 식탐도 많고, 마실 것도 가리지 않으며, 가능한 잠을 적게 자고 많이

활동하려는 욕심때문에

나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2011년 건강진단은 회사에서 매년 하는 건강진단과 조금 다르게

 

만 55세에 해당되는 직원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전신암 검사인 PET CT를 해 준다기에

일부러 삼성종합검진센타에서 신청하고 처음으로 내 몸이

마치 MRI 촬영이나 방사선치료할 때 처럼

큰 통속에 들어가 몇 번 움직이기도 했다.

 

한 20일 뒤에 검진결과가 나온다기에 그리 알고 있었는데

며칠 후 검진센타에서 전화가 와서는 결과를 직접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기에

출근 길에 잠시 들러 검진의와 마주 앉았는데

조금 이상한 얘기를 한다.

 

내 콩팥에 종양이 3.3센티정도 자라고 있다는 청천벽력.

종양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확실치는 않지만 암 일 가능성이 많으니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바라보는게 좋겠다고...

 

 

검진센타에서 강북삼성병원에 특진 예약을 12월 16일 해주고

회사로 들어와서는 갑자기 없던 호기심이 생겼다.

콩팥이 신장인 것 조차 확실하게 모르던 상식에

왜 내가 이런 병이 걸렸으며, 이럴 경우 어찌 해야 하는지

종일 인터넷 검색에 빠져 버렸다.

 

이제껏 살면도 담배 한 번 안 피워 본 나인데

오랜동안 복용해 왔던 고혈압약이 문제였던가?

검색할 때 마다 고혈압이라는 단어가 유독 빨간 폰트로 보여진다.

 

이 때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가족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나?

어떤 치료절차가 이루어 지나?

내 앞 일은 어찌 될려나?

계속 직장은 다닐 수 있는건가?

 

또 한 편 혹시 잘 못되어 인생의 나머지를 

보통의 암환자처럼 병원에서 고생하다가 끝내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갑자기 가족에 대해 관심을 더 갖게 되고

형제들과 즐거운 시간도 미리 가져두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칠 때 쯤 안수기도를 받는 사람들은

통로에 나와 서 있으면 목사님이 모두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 주는데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나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 번은 안수기도를 받아야 했기에

가족들 몰래 슬쩍 안수기도도 받았다.

매주일 내는 헌금 봉투에 내 간절한 희망을 적어 두었고

아내 이름으로 내는 봉투에는 '하나님 남편을 도와주세요'라고

적어서 내기도 했다.

  

주일 예배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마다 왜 그리 눈물이 흐르는지..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꼭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아 내 눈물샘을 자꾸 자극했다.

 

물론 이런 내용은 가족은 전혀 모를 것이다.

누구하나 한 번도 신경쓴 적이 없으니..

 처남이 목사님이라 만약 나와 아내의 헌금봉투를 봤으면

무슨 일이 있구나 짐작했을텐데 아마 모두 봉투에서 

헌금만 빼고 내용을 읽어보지 않는 것 같았다.

 

가족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기 위해 얼른 얼른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다.

 

 

2011년 12월 초

 

 

12월 들어서니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업무부터 마무리 지어 놓아야했다.

같이 일하던 외국 직원이 12월 중순부터 1월 초순까지 휴가라

미리 할 일을 정해 놓아야했고

아이들의 기말 시험일정도 확인해 보아야했다.

혹시나 내가 미리 알렸다가 아이들의 공부에 문제가 생기면 안되니까..

 

12월 들어서니 송년회가 줄줄이 통보된다.

뭐 이제껏 부담없이 회식을 다녔으니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미 자라기 시작한 종양에 과도한 음주나 피로때문에 자라는 속도가 커질까봐

가능한 송년회 참석은 꼭 참석해야 할 것 한 두 개로 축소했다.

 

당연히 참가해야 할 대학송년회도 불참통보

지난 2년간 즐거웠던 와인모임 송년회도 불참통보

전 직장의 영업팀의 OB 발기모임은 참석안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마침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건강을 위해

매주 토요일 강화 나들길을 걷는 모임은 빠지지 않았고

내가 모임을 주관해야 하는 클래식 음악 감상회 모임은

음악만 듣고 식사시간에 다른 일로 빠졌다.

 

어쨋든 남아 있는 업무를 빨리 완결 짓는게 중요한데

어쩌다 보니 팀내 사정상 업무하나가 더 늘어나게 생겼지만

내 몸상태가 이러니 못맡겠다고 할 입장이 못되었다.

 

병원에 진찰받기로 한 날에 하루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아 휴가계를 올렸더니

담당임원이 지난 번 건강검진 받은 줄 아는데

무슨 휴가를 또 내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한다.

뭐..그런 일이 있다고 얼버무리고..

 

형제들과 특히 누님과 추억에 남을만한 모임을 가지고파서

평소 가던 강화도에 민박집을 하나 얻어 놓고 금요일 저녁에 형제들을 초청했다.

혹시라도 이상한 내색을 품지 않게 할려고 조금 탐탁치 않은 생각하는 아내의 시선도 피했다.

 

형제들과 시골 민박집에서 밤늦게까지 놀면서 감정이 복받치면 일부러

마당에 별 보러 나간다고 홀로 나가서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어두운 벌판을 보니 인근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이가 보이기에

마음속으로 내 기도도 부탁드리고 싶었다.

 

내가 평생 좋아하는 우리 누님과 하루를 보내면서 너무 좋았다.

만약 누님이 내가 이런 병에 걸린걸 아시면 얼마나 충격이 크실까?

 

이 때부터는 직장에 출근해서나, 혼자 있을 때마다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왔다.

 

가족에게 언제 알려야 하느냐..

 

의사의 확정 진단을 받고 알리자.

혹시라도 건강검진의가 잘 못 알았을 수도 있으니까..


  

12월 16일 금요일.

 

강북삼성병원에 외래를 신청한 날

 

아내에게는 오늘 외부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출근을 늦게 해도 된다고 했다.

병원 수속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런 절차도 잊어버린지 한참 오래다.

 

 

병원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병원모습을 보니 착잡하다.

저기서 내 운명이 잘 못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두려움.

도무지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왜 그리 걱정이 앞서는지..

병이 들면 누구나 이렇게 나약해 지는건가..

 

비뇨기과.

비뇨기과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그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조금 무안하다.

 

의사와의 면담.

이미 강북삼성병원으로부터 보내온 내 자료를 보고 계셨다.

컴퓨터 모니터를 이리 저리 마우스로 돌려가면서 내 속을 보여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암이 틀림없을거라고..

 

나보고 묻는다.

"흡연하세요?"  

"아뇨 피워 본적 없습니다."

"혹시 염색하세요?"

"네 합니다. 그게 원인이 되나요?"

"혹시 석유화학업체에서 근무하세요?"

"석유화학업종이긴 하지만 직접 현장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암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로 스트레스나 수만가지 요인이 있어

꼭 어느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종양이 비록 작지만 일부만 잘라내지 못할 부위에 있어

신장 한쪽을 전체 잘라내야 합니다"

"잘라내도 건강엔 문제 없으니 안심하세요"

 

가족 내력을 묻기에 답변하고...

그러면서 수술을 위한 검사를 미리 해 두어야 하니

월요일 오전에 와서 검사를 하란다..

 

병원을 나오면서, 하늘을 보니 무척 낯설어 보인다.

저 하늘 밑에서 55년을 살았는데 이젠 새로운 하늘이 내게 다가오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비록 간단한 수술이라긴 해도...

명색이 암이 확실치 않은가?

 

가족에게 당분간은 비밀로 해두자.

그리 어렵지 않은 수술인데 너무 큰 요동이 예상된다.

 

다음 주 월요일, 금식을 해야 하기에

월요일 아침이면 새벽예배를 가는 아내에게

회사에서 아침 밥을 먹을테니 아침은 준비하지 말라 했다.


  

2011년 12월 19일

 

아침부터 강북삼성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니 전철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늘 이른 새벽에 회사를 가는 나에게 이런 풍경은 참 오랜만이다.

채혈하고, 채뇨하고, X레이도 찍고, 신장 CT 촬영을 위해

특수한 주사를 맞는데 이상하게 몸 전체에 열이 가득 오른다.

주사 한 방에 이렇게 급작스럽게 몸이 변하니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마약을 맞는 것 같다.

 

다시  PET-CT를 찍을 때 처럼 누워서 통속을 오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환자모드로 들어가는 것 같다.

 

오늘 검사는 수술이 가능한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검사다.

만약 오늘 검사에 이상이 있으면 기존 수술하고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며 겁을 주었었다.

그러나 이제껏 특별히 주목할 만한 몸의 변화가 없었으니 이상 없으리라..

검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회사에서도 요즘의 내 행동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직원들이 자꾸 묻는다.

 

아직은 얘기하지 말자..

남에게 이상한 관심을 줄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깊게 생각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빨리 내가 맡은 업무를 일단락 짓는 것이다.

 

아무 일 없는 양 열심히 회의도 참석하고,

서류도 보고 1월 중순까지의 모든 중요한 일정들을

그대로 맡기로 하자.

 

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하여 저녁에 아들과 딸에게 물었다.

 

시험 다 끝났느냐며....

서둘러 그렇다고 답변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에게

모두 거실로 오라 하니 궁금해 한다.

 

이제는 가족에게 알려야겠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고,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으면

좀 늦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계획이 없어

이제는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에게 뜸을 들여 얘기할려는데 벌써 눈물부터 쏟아진다.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빠가 이제까지 건강하게 살아왔는데...(울먹)..."

갑자기 아내와 딸이 놀라서 내 손을 잡는다. 무슨 일이냐고..

"아빠 몸 속에 이상한게 자라고 있어. 암인것 같아"

암이라는 단어에 아내와 딸이 통곡하며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다그친다.

평소 매사에 무덤덤한 아들도 오늘은 눈빛이 변한다.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했다.

가족들은 염려 말라고 나에게 당부한다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기도하겠다고..

수술날짜 잡히면 알려달란다.

 

나는 가능한 수술날짜 잡히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 했다.

 

아내는 아무래도 처남인 교회 목사님에게는 기도부탁드린다고

얘기해야한다고 하기에 그러마 했다.

 

그 뒤부터 주일 예배시간의 기도에

암을 치료해 달라는 목사님의 언급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리라...

그냥 늘 의례히 하는 기도로 알겠지.

 

아내와 딸이 예배시간에 눈물흘리는 것을 자주 본다.

이제까지는 나 혼자 흘리는 눈물을 아내와 딸이 같이 흘리고 있다.

 

2011년 12월 말

 

우울한 크리스마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집에서는 밝게 웃을려고 작정했다.

나 때문에 어두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거실 창가에 만들어 놓았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안 보이기에

아내를 다그쳐 트리를 만들게 했다.

 

일부러 아이들 좋아하는 부페식당에 가서 크리스마스 외식을 하고

매년 하는 것이지만 크리스마스카드도 만들어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곳에 비치해 놓았다.

 

크리스마스 이후에 회사에서 근무중에 느닷없이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가족끼리 년말에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아이들과 2년전에 홍콩을 같이 다녀온 뒤로 아이들이 선언했었다.

이젠 엄마 아빠랑 같이 불편해서 여행 안다니겠다고..

 

그런 아이들에게 엄마가 부탁을 했나 보다.

아빠를 위해서 수술 전에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고..

 

서둘러 콘도에 물어보니 마침 평소 가고 싶었던 남이섬 인근에 펜션하나를 구했다.

 

1박 2일 여행에 가능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 애를 썼다.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을 위해 게임 계획도 하고...

 

가족 모두가 비록 마음에 슬픔은 가득했겠지만 모두 내색은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술을 1월 초에 하려한다기에 업무때문에 그러니 1월 중순으로 연기해 달라 했다.

 병원에서는 1월 중순이후에 하게되면

지난 번 수술 사전 검사한 것을 모두 다시 해야 하니

가능한 빨리 하자고 했지만 내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1월 15일에 입원하고 17일에 수술하잔다.

수술후 집에서 1주일 이상은 요양하여야 한단다.

 


 

2012년 1월 초

 

 

새해 첫날부터 매일 야근을 시작했다.

 

어찌되었던 1월 중순까지는 넘길 것은 넘겨야 하지만

내가 주관하여 맡은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가족은 안쓰러운지 자꾸 나에게 수술 날짜가 언제 잡혔느냐며 묻는다.

우선은 일이 먼저다.

 

1월 첫주가 지나갈 때 쯤 회사의 팀원들과 임원들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휴가와 병가 계획을 알렸다.

 

내 업무를 인수받을 사람을 지정하고,

현재의 진행상황과 미진된 업무까지 미리 얘기해 주었다.

모두 일이 급한건 알지만 몸이 더 중하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하란다.

 

아내의 형제들에게 내 상태를 알리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내가 속한 교회나 단체의 모든 지인들이나

가능한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비밀로 해달라 부탁해 놓았다.

 

1월 초 5년전 돌아가신 큰 형님의 추도예배를 위해

큰 형수님댁에서 모인 자리에

내가 예배인도를 마친 후 내 병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누님이 너무 쇼크를 받을까봐 일부러 농담 섞인 말로 내 병을 알렸다.

처음에는 정말 농담인 줄 알다가 아내가 진짜라고 얘기하니

잠시 소란은 있었지만 내가 암초기라 어려움 없다고 얘기하고

안심시켜 주니 금방 다시 분위기 좋은 상태로 돌아갔다.

 

아직 환자가 아닌데도 아내가 준비하는 식단의 음식이 달라졌다.

즐겨먹던 오리고기가 사라지고, 굽는 생선요리가 사라졌다.

고기가 들어가는 메뉴, 하다못해 사골국물로 먹어야 하는 떡국도 사라졌다.

아내는 이제까지의 식단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고

이제껏 대충 빵이나 떡으로 때우던 아침식사도 특별히 신경을 기울여 가능한 따뜻한 밥으로 준비했다. 가족 외식도 가능한 고기는 사라졌다.

 

1월말까지는 어디 다닐 입장이 못될 것 같아

월말 카드 결제금액을 확인해 미리 입금해 두고 은행에서 여유자금까지 챙겨놓았다.

병원에 있을 동안 설날 명절이 있을 것 같아 아이들 세뱃돈도 준비해 놓고..

 

당분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테니 미리 서점을 방문해

읽을 책 들을 몇 권 구매해 놓았다.

많은 책들 중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아름답게 보낼지에 대한 제목에

자꾸 눈이 간다.

 

마지막 근무일에 책상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 자리로 다시 못돌아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깊어졌다.

 

혹시나 못 돌아올 경우나 혹은 병원에 있을 동안

내 노트북에 있는 업무서류들을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비밀 번호도 적어놓았다.

 

암은 이래서 좋은 병에 속하나 보다

남은 인생을 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까..


 

입원 1일차 (2012. 1. 15)

 

 

입원하는 날 일요일 오후.

 

의사는 월요일 아침부터 검사가 진행되는데

월요일 아침은 입원절차가 복잡하니 하루 먼저 입원하되

병원에 늦게 와도 된다고 허락했다.

 

채혈하고, 채뇨하고, 입원실 확인하고,

의사의 허락을 얻어 8시까지 병원에 들어오기로 했다.

 

내일이야 어찌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아니니 산책하자.

무척 쌀쌀한 날씨에 교보문고에 들어가 사람들의 무리 속에 파묻혔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늦게 시내로 나온 아내를 만나 천천히 인사동을 산책했다.

언제나 좋은 인사동. 난 이 곳에 오면 늘 마음이 푸근해 진다.

 

길거리에서 따뜻한 꿀차도 마시고, 호떡도 사먹고

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인사동 골목의 사동면옥에서 만두도 먹었다.

 

사동면옥에서 어떤 이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기에

평소에 없던 용기가 생겨,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강북삼성병원 본관 7층.

늦게 병원으로 돌아와 환자복으로 갈아 입으니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해진다.

아직은 몸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아니니

아내보고 집에 가서 자라 해도 옆에 있겠단다.

 

한 밤 중에 담당의사가 우리 부부를 호출하기에 간호사실로 갔더니

내 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수술 준비 절차와 절개 하는 방법과 향후 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안내해 주며

수술 중 있을지도 출혈시 수혈을 해야 할 경우에 수혈 동의서를 받고

아울러 각종 동의서를 받는다.

 

마치 회사 입사를 위한 오리엔테이션 후 고용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같다.

안내 중에 혹시 라는 가정하에 설명을 해주는 사항들을 들으면서

이번 수술로 내 인생이 혹시 라는 가정하에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생긴다.

 

평소 12시 전쯤에 취침하는데 병실이라 그런지 10시경에 불이 꺼진다.

이런 이른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게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혹은 걱정때문인지 잠을 설쳤다.


 

입원 2일차

 

 

아침 잠결에 누군가 슬그머니 들어오는데 간호사.  체온을 재고 혈압을 잰다.

그리고 1층에 내려가서 X-Ray를 찍으란다.

 

자다가 부시시하지만 환자같지 않은 모습으로 X-Ray를 찍고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내에게 맛있는 아침을 주기 위해

환자복에 점퍼를 하나 걸친 채로

병원 길 건너편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셋트를 사기 위해

병원을 주차장을 나서는데 경비가 막는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나갈 수 없단다.

나갈려면 의사의 외출증을 받아 오란다.

옆의 적십자병원 앞에서는 환자들이 환자복을 입고

거리를 다니기에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 곳은 확실히 이름있는 큰  병원이라 이런 관리가 잘 이루어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들어와 로비에 있는 카페 파스쿠치에서

커피와 머핀 하나를 사들고

병실로 들어가니 아내가 어디 다녀오느냐며 의아해 하다가

아침을 보니 기가 차다는듯 미소짓는다.

 

오전 내내 따스한 병실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아들과 딸이 밖이 추운지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밝은 얼굴로 들어온다.

하긴 아직은 내 모습이 그리 추하진 않다. 링거도 없고..

 

낮에 희멀건 미음이 나왔다. 이걸 먹어야 하나?

후루륵 들이 마시니 점심 끝.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니 병원 건물 내만 왔다 갔다 해 본다.

수 많은 환자들이 복대를 차고 링거거치대를 끌고 다니며,

소변주머니와 무슨 액이 담겨있는 비닐용기를 몸에 달고 다닌다.

저 모습이 내일 이후의 내 모습이리라.

병원에는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은지...

 

오후부터 본격적인 수술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또 다른 의사가 오더니 어제 밤에 의사가

나에게 설명해 주었던 수술 설명을 다시 해주며

또 다른 동의서를 받아간다.

그리고는 내 등에 수술자리를 표시해 놓는다며

매직펜으로 등에 무언가 쓰는것 같다.

 

수술을 위해 절대 해야 될 것들

 

관장과 몸의 털제거.

 

오후 늦게부터 약을 먹으면서 시작된 관장이 너무 힘들다.

화장실에 급히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횟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하고

도무지 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아파서, 변기에 앉기도 힘들다.

 

얼마나 많은 물똥을 싸댔는지 도무지 나올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수없이 화장실을 드나든다.

간호사 말이 창자 속의 찌꺼기까지 모두 나와야 한단다.

 

몇 년 전 대장 내시경을 위해 집에서 무언가 느낌이 않좋은 액을 먹어가면서

밤새 관장을 해 보기는 했어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약을 먹고 하는 관장도 모자라 급기야는 항문에 호스를 넣고 또 관장을 한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지만 고통이 이만 저만 아니다.

 

그리고 털제거..

수술부위뿐만 아니라 주변의 체모까지 모두 없애야 한다며

음모까지 삭삭 거리며 밀어낸다.

아!  나는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인격체가 되었구나.

관장이 힘들어 몸이 녹초가 된 상태 이외에는 아직 내 몸과 정신은 쌩쌩하다.

 

저녁밥을 날라주는 아줌마가 식판을 들고 들어와 환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내 이름은 불러지지 않고 끝내 차가 복도를 지나갔지만 내 밥은 미음조차 없었다.

 

처가쪽 식구들이 와서 기도를 해주고 가셨다.

아직은 환자같지 않으니까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밤이 길었다.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고 쓰러져 잤다.

 

 

입원 3일차

 

드디어 수술하는 날.

 

새벽에 어둠속에 누군가 후레시를 들고 내 옆으로 오는데 마치 천사같다.

꿈인가?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재고 귀에 넣는 체온계로 체온을 확인하고 맥박을 확인한다.

이런 의례적인 절차는 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에도 예닐곱번씩 거쳐야 한다.

 

간호사가 수술복을 전해 주고 입고 있으라 한다.

하얀 광목으로 된 옷. 긴 스타킹도 있고, 머리에 쓰는 두건도 있다.

TV에서 의사들이 수술할 때 입는 옷같다.

 

어제의 힘들었던 관장도 아침이 되니 고통이 사라지는 듯 했는데

오전에 다시 한 번 그 과정을 거쳤다.

거의 내 몸이 탈진 상태다.

 

병원 복도에 있는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니 2키로가 빠졌다.

아...하루 안 먹고 속을 완전히 비우면 2키로가 빠지는구나.

 

수술 시간이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어 오전은 한가했다.

아이들이 오고, 아내가 힘들어 할까봐 처제가 와 주었다.

 

1시가 지났는데도 호출을 하지 않는다.

나는 마치 금방이라도 마라톤 경주에 나갈 육상선수처럼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간호사말이 먼저 수술하는 환자의 수술이 늦어지는 것 같단다.

그 말이 겁난다.

 

앞에 환자가 예정된 수술시간보다 늦어진다는 얘기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나도 그럴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늦은 저녁 땅거미처럼 스며든다.

의사도 어제 그런 만약의 경우에 대한 경고를 많이 해주었고

나와 아내도 서약서에 사인을 해 놓았기에 수술이 잘 못되어도 어쩔 수 없다.

제일 겁이 나는 것은 전신마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전신마취를 해 보지 않았기에

혹시나 내가 마취상태에서 제대로 깨어 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때문에

이제껏 한쪽 귀로 흘려 들었던 온갖 매스콤의 마취 부작용 사건들을 생각나게 한다.

 

혹시나 내가 마취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상황을 고려해서

아내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여보 무슨 일 생기면 내게 수의 입히지 말고 합창단복 입혀줘"

 

수술환자용 스타킹을 신고 두건을 쓰고, 링거를 팔에 꽂고...

드디어...시간이 오고 결국 저승사자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와

나를 다른 침대로 눕혔다.

 

천정의 밝은 형광등들이 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간다.

난 엘리베이터로 운송되고, 평소 눈여겨 보지 않았던 천정의 모습들이

너무 선명해 보인다.

문을 몇 개 지났던가..

어느 문을 들어서니 침대에 누운 내 눈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수술용 조명등들.

영화에서나 보았던 물건들이 내 앞에서 밝게 빛나고 있고

내 주위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가득하다.

 

순간적으로 기도가 내 입에서 나온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세요.

 

모두 내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잡고 어떤 이는 주사를 놓고

어떤이는 다리를 고정시키고 어떤 이는 내 손가락에 집게같은 것을 물리고 있다.

순간, 청색의 긴 관을 가진 하얀색의 플라스틱 마스크가 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더니

난....정신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복부에 통증이 느껴지고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여기가 어딘가? 혹시 내가 죽은건 아닌가?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여기 어디야"

아내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수고 많았어, 병실이야"

눈을 뜨니 제일 먼저 시야에 희미하게 처형의 얼굴이 보인다. 살았구나.

말도 못하고 처형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가 연신 수술이 잘 되었다고 얘기해 준다.

 

그제서야 가족들 얼굴이 보인다.

아내와 아들과 딸의 얼굴이 보이고...

다시 세상으로 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갖기도 전에 내 몸의 복부에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배 아파. 배 아파..

내 몸에 주렁 주렁 무엇인가 달려 있다.

옆구리에도, 사타구니에도, 목에도, 팔에도...

자꾸 나보고 숨을 크게 쉬고 기침을 하라 한다.

 

숨쉬는 것도 힘들다. 기침은 더욱 힘들다.

자고 싶은데 자면 안된단다. 식구들이 교대로 나에게 숨을 쉬게 한다.

배아파...배아파...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 소리 밖에 없다.

내 입에서 이렇게 많이 아프다는 소리를 해 본적이 있던가.

 

평소에도 좀처럼 '아프다'나 '힘들다'라는 소리를 안하는 나이기에

내 입에서 '아프다' 라는 말이 나오면 정말 못 견딜 정도로 아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입만 열면 '배아파' 소리가 나온다.

 

입 안과 입술이 바작 바작 탄다.

잠을 자고 싶은데 얼핏 의사가 10시까지 자면 안된다고

식구들에게 얘기하는 것 같다.

 

지금 몇시냐고 물어보니 8시란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내가 잠이 든 것처럼 보일 때마다 내 손을 꼭 잡는다. 자지 말라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식구들이 나에게 숨 쉬라고 다그친다.

너무 갈증이 나고 입이 타는 듯해 답답해 하니

아내가 연신 내 입술과 혀를 물 휴지로 닦아내고 있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이래서 전쟁터에서 총 맞으면 옆의 전우가 자지 말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건가?

자면 죽는 것인가?

 

깜빡 깜빡 정신을 잃을 때마다  다시 식구들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아..죽더라도 자고 싶다.

 

식구들에게 '나 자면 안돼?'라고 간청해 보지만 절대 안된단다.

그렇게 통증과 갈증이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긴 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10시가 안된 것 같은데 의사가 재워도 좋다고 허락하는 듯 했다.

 

그 말이 귀에 들리기가 무섭게 난 긴 어둠의 통로로 빨려 들어갔다.


 

 

 

 

입원 4일차

 

 

수술하고 하루 지난 날 새벽

 

그토록 심했던 통증이 새벽녘에 잠시 눈을 떴는데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 무통주사를 연결해 놓으면서 만약 자다가 정 아프면 주사에 연결된 버튼을 누르면

주사액이 조금 더 많이 나와 통증이 덜 할 수 있다 했는데

자다가 한번도 누르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내가 푹 자면서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는지..

옆의 보조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는 밤을 새우다 새벽에 잠이 들었는지

내가 조금 몸을 움직여도 일어날 줄 모른다.

 

간호사가 자주 왔다갈 때마다 잠시 잠시 눈을 떴는데

내 몸을 흔들며 내려가서 엑스레이 찍고 오란다.

그래서 내가 일어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기에 윗몸을 조금 일으키니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그제서야 내 몸에 연결된 각종 호스들을 본다.

어제 보았던 다른 환자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내 목에 커다란 주사바늘로 꽂혀 있는 것 같다.

대개 링거가 팔에 주사를 놓아 공급되는데 이 링거는 내 목에 있는 주사로

공급되는 것 같다.

 

천천히 링거거치대를 끌고 조용히 혼자 엑스레이를 찍었다.

찍을 때 깊은 숨을 쉬라는데 숨을 쉴 수가 없다.

병원 로비를 통해 들어오는 환한 기운을 보며 내가 살아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조심 조심 다시 병실로 오니 아내가 일어나 있다.

의사는 나보고 자주 걸어다녀야 하고, 자주 크게 심호흡을 하고 기침을 자주 하란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이젠 내게 무척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어제 수술 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2시간 반 정도 되었을 때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께서 떼어낸 내 신장을 들고 나와

가족에서 상태를 설명해 주었단다.

 

무척이나 크고 뻘건 핏덩어리를 들고 나와 종양부분을 보여주고

만약 종양이 신장을 싸고 있는 막을 뚫고 나왔다면 위험한 상태인데

현재 육안으로 보아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안심시켜 준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외부기관에 보내어 정밀 검사를 해 보아야 한단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수술 중 출혈도 전혀 없어 안심되었지만

수술 후 한 동안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아 무척 걱정했단다.

 

아마 수술 후라도 일정시간 수술실에서 다른 수술관련 보조자들이

수술 뒷처리를 위해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2시경 들어갔는데 거의 7시가 넘어 나왔단다.

그 사이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술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수술일테니

밖에서 보기에도 내가 무척 안스러웠나보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배에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물 한 모금도 마셔서는 안된다 한다.

아내가 연신 건조해진 내 입을 물휴지로 씻어내고 있다.

 

천천히 복도를 걷는다.

그토록 쌩쌩하던 내 걸음은 마치 100살 먹는 노인네처럼 힘이 없다.

복도에는 나같이 천천히 운동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

 

복대를 풀어 내 몸을 본다.

큰 반창고가 배꼽부근에 하나 붙어 있고

조금 적은 반창고가 옆구리에 세 개가 붙어 있다.

배꼽부근에 큰 상처로 손을 집어 넣어 신장을 통째로 꺼냈단다.

내 뱃속에 사람 손이 들어 갔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내 밑에 달린 오줌 주머니에선 끊임없이 노란 소변이 채워지고 있다.

그거 편하네.

화장실 가지 않아도 저절로 소변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풀기네.

옆구리에 꽂혀 있는 관의 끝에는 하얗고 얇은 통이 걸려있다.

이게 무엇일까? 체액을 담아내는 걸까?

무언가 갈색의 걸쭉한 것이 담겨 있다.

 

소변도 매 시간 어느 정도 채워지는지 기록해야 하고

옆구리에서 나온 것도 통에 담아 양을 체크하고 있다.

 

무통주사도 점점 양이 줄어들고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링거액은

다 떨어지면 또 채워지고 또한 항생제도 지속적으로 갈아 끼우고 있다.

세상이 좋아져 이렇게 여러가지 액을 주사해도 십자형의 밸브를 이용해

주사 바늘 하나로 모두 공급된다.

 

점심도 저녁도 금식이다.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금식이다.

링거수액이 계속 들어가니 배는 고프지 않지만 제일 힘든게 갈증이다.

차라리 식사라도 나오면 아내라도 먹게 할텐데...

 

늘 형제들을 확실히 챙기는 처형이 아내 먹을 것을 준비해 왔다.

우리 집 아이들도 다시 와서는 내 밝은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유난히 애정이 많은 딸은 최근들어 아빠에게 더 잘할려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조금 쉬고 싶은데 면회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자주 운동을 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밀려드는 면회객때문에 누워 있어야 한다.

차라리 수술 후 하루 정도는 면회금지가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오는 이들을 어찌 막으랴..

 

간호사들이 수시로 와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가끔 열이 난다며 해열제와 어깨 사이로 얼음찜질을 해야 했다.

 

밤에 약기운으로 낮에 잠시 떨어졌던 열은 밤이 되면 다시 올랐다.

간호사들이 이유를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기에

"알아서 하세요 그저 맡깁니다" 라고 했다.

 

오후에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께서 회진을 와서는

수술이 잘 되었고, 경과도 좋은 것 같으니 안심하란다.

그래도 수술 후 1주일 뒤에 퇴원해야 하니 마음 푹 놓고 쉬고 있으란다.

 

배의 통증은 이제 거의 사라졌는데

의사가 수술 부위를 소독한다며 붕대를 풀었는데 보니

배꼽에서 윗 부분으로 한 10센티가량 절개하고

호치키스(?) 같은 것으로 봉합해 놓았다.

배의 옆에 관을 꽂았던 구멍이 3개 있고,

그 중 한 구멍에는 긴 투명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다.

 

살면서 맹장수술도 안해 보아, 이제까지 배에 칼 자국을 낸 적이 없었는데

이 자국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나무의 옹이 같은 상처를 보면서 두고 두고 기억을 해야겠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가끔 걷고, 헛기침을 하고, 그저 누워 자는 것 뿐.

 

잠이 쏟아진다.

평소 낮잠도 즐겨하지 않고, 밤잠도 오래 안하던 나 였는데

이젠 누우면 잠이 온다. 약기운일까?

아니면 무료해서일까?


 

 

 

 

입원 5일차

 

 

간 밤에도 어렴풋이 간호사들이 어둠속에서

내 체온을 재고, 혈압을 재고, 맥박을 측정했다.

해열제를 더 주는 것 같다.

 

4인실의 병실은 모두 각자 커텐을 쳐 놓아 개인 사생활이 보장된다.

간 밤에 무척 힘들어하던 옆에 침대의 환자는 아침이 되니 조용해 졌다.

그 와중에도 그 환자는 열심히 여기 저기 전화로 업무를 보고 있다.

 

새벽에 다시 내려가 엑스레이를 찍고 올라 오는 길에

나는 금식이지만 아내의 아침을 위해 아메리카노 커피와 베이글을 따뜻하게 데워

가지고 올라왔더니 빙긋이 웃는다.

차라리 환자가 금식이라도 일반음식을 주면 보호자라도 먹을 수 있을텐데

이 곳은 그렇게 안하나 보다.

 

오늘은 아이들도 각자의 일 때문에 오지 말라 했다.

형제들이 면회를 왔다.

누님을 보니 내 눈물이 글썽해 진다.

왜 그렇게 누님만 보면 눈물이 날까? 울지 말자.

내 수술이 잘 된 것 같아 나 없이 명절에 모여서 즐겁게 놀겠다고

의견을 모으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평소 사이가 안좋아 별로 왕래가 없던 둘째형의 위암소식. 모두 우울해 졌다.

형제들이 이제 모두 나이들이 들었으니 이런 소식이 들릴만도 하지.

 

예전에는 그냥 배가 아파 죽었다 했을텐데

이젠 정확히 무슨 병인지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 웬만한 병이면

모두 암으로 연결된다.

 

아침에 의사가 아직 내 배를 손으로 두들겨 보고 진찰하더니

아직 가스는 안나왔지만 물을 30분에 반컵씩만 마셔도 되겠다며 허락해 준다.

얼마나 다행인지.

물 한 모금이 이렇게 귀할 줄이야.

모든 갈증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 같다.

 

지난 해 지리산 둘레길을 홀로 가다가 배낭 옆의 물병을 잃어버린 채로

산을 올라가는데 너무 갈증때문에 힘들어 거의 까무라칠 지경에

지나가던 등산객이 물 한 모금을 나누어 주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점심에 식사로 미음이 나왔는데 반만 먹었다.

그냥 후루룩 들이마시면 간단할텐데 오랜시간 입에 들어간 음식이 없어

일부러 자제했다.

 

병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지내는 생활.

몇 십년뒤에 다시 이런 생활이 오겠지?

아니, 그렇게 길지 않을지 모른다.

모두다 하나님 뜻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또 면회객이 많아진다.

직장에서도 오고, 처가쪽 식구들과 내 조카들도 왔다 간다.

상태는 더 좋아지고 있다.

이제는 걷는 시간도 조금 늘리고,

꾸부정하게 걷는 걸음도 허리를 피고 걸을 수 있다.

 

합창단에 내 수술을 알리지 않았지만, 한 친구에게는 알리고 싶었다

오늘 면회를 왔기에 부탁했다.

내가 퇴원하거든 우리 여기 저기 노래하러 다니자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남은 평생 살고 싶은 마음에..

 

먹은 것도 없지만 혹시 대변이라도 볼까하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있다 나오지만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허망하게 나오기를 몇 차례

오후 4시에 즐겨듣는 FM의 '노래의 날개위에'를 듣는데

뱃속이 꾸룩꾸룩하다. 가스가 나올 징조가 보인다.

 

4시 22분경, 소프라노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헌정'을 들을 때쯤

가스가 터진다. 이렇게 좋을수가..

그리고 연이어 바바라 보니의 정겨운 노래소리가 들릴 때 쯤엔

가스 소리도 커졌다.

 

세상에...

살면서 방귀 자주 뀐다고 늘 구박먹었는데

오늘은 방귀 한 번 뀌었다고 '잘했다'라는 얘기를 듣네..

 

지극히 단순한 것도 이렇게 귀한 것인 줄 왜 예전엔 미처 몰랐을까?

그토록 쉬운 눈을 깜빡이지 못하는 질병때문에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이도 있고

눈섭이 눈을 파고 들어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저녁에 병원빌딩 옆에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기에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떤 이는 외국인줄 알고 덧글을 달았었는데

그만 이 병원에 근무하는 아는 간호사가 사진 밑에 '우리 병원이네'하며 나보고

쾌유를 빈다고 써 놓았기에 얼른 양해를 구하고 삭제해 버렸다.

모두다 내가 회사일로 몇 주간 자리 비운 것으로 알고있는데...

 

이젠 평안하다.

저녁에 죽으로 식사가 나왔지만 그도 별로 입맛이 없어 반만 먹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일반 식사가 나온다니 참자.

 

그리 심하진 않지만 밤마다 몸에 열이 오른다.


 

 

입원 6일차

 

 

어느 덧 환자복을 입은지 6일이 되었다.

나도 이젠 베테랑이네.

가끔 복도에서 나같이 링거거치대를 끌고 다니던 환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진다.

주말이 되어서 그런지 병실도 조금씩 비어간다.

 

아침에 드디어 식사가 나왔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밥인가?

월요일 아침에 먹어보고는 무려 11끼만에 먹어보는 밥.

 

의사는 짜고 매운 것을 먹지 말라 했는데

병원에서 나오는 반찬이 짜고 맵다.

아직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짜고 매운 것을 먹지 못하겠기에

밥을 반만 먹었다. 아직도 입이 깔깔하다.

 

창밖이 추워보인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고 싶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 보인다.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도로가 무척 막힌단다.

하긴 이 시절에 선물돌리느라고 무척 바쁠 때다.

내 방에도 물건들이 쌓인다.

과일, 병 음료, 책, 더우기 머플러까지.

과일이나 병음료보다, 책이나 머플러가 낫다.

 

종일 빈둥 빈둥.

 

오늘은 금요 심야예배에 갈 아내대신 아들이 병실에서 잠을 잘 것이다.

아내를 집으로 보내고 아들과 오랜만에 병원내이지만 천천히 산책하는 것도 좋다

커피를 같이 하고, 학교 생활, 친구들 이야기를 나눈다.

아프기 전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대화다.

 

아들은 병원 건너편에 맥도날드 햄버거에 폭 빠져 있다.

키도 크고 나이도 있지만 내 눈에 아직 어려보이는건 부자지간이라 그런건가?

 

딸이 보고 싶기에 오늘 안오냐고 카톡했더니

'왜 나 보고 싶어?' 하고 답이 온다.

그렇다 했더니 내일 오겠단다.

그래..네 일이 먼저다..

 

오랜만에 머리도 감았다.

평소에 하루라도 머리를 안 감으면 기름기때문에 보기 흉하던 내머리였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때는 머리를 안 감아도 머리에 기름하나 흐르지 않더니

무엇을 먹으니 조금 기름끼가 흐른다. 참으로 신비한 인체구조네.

 

이제까지 먹는 약은 내 혈압약밖에 없었는데 식사 때마다

소화제와 해열제를 챙겨준다.

 

아울러 늘 귀찮던 소변 주머니도 오늘은 제거해 준단다.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배설때문에 늘 불편했던 것도 오늘로 끝이다.

소변 주머니 제거 후 첫 번 소변을 통에 받아 보고 즉시 간호실에 알려달란다.

소변 후 한 20분 지났던가..

의사가 특수한 장비를 들고 와서는 마치 복부초음파 검사하듯이

내 방광 부근에 미끈한 액을 바르고 측정기를 배위에 굴리고 난뒤

소변이 아직 141 ml 정도 남았는데 이상하다며 다시 한 번 소변을 보란다.

신기해라. 어떻게 남은 소변 측정하는 것도 신기한데 1ml 까지 측정이 가능할까.

다시 소변을 보고 측정하니 약 50ml 정도 남았는데 이 정도면 문제 없는것이란다.

 

이제 서서히 정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뱃속의 장기 기능도, 배설의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단지 아직 몸에 힘이 없고, 큰 기침을 못하며, 배 옆에 꽂혀 있는 관이 불편하고..

 

어제부터 죽을 먹었으니 대변이 나올 법도 한데 도무지 힘을 써도 안된다.

음식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찌꺼기 나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했다.

 

늘 하루 6시간 이상을 자지 않던 나인데

병원에 와서 잠만 늘었다.

눕기만 하면 잠을 자고 저녁에 10시에 자도 아침 7시 일어났다가

아침을 먹고 또 자게 된다.

완전히 잠보가 되어버렸다.

 

몸의 열은 자꾸 낮에는 별일 없다가 저녁만 되면 오른다.

혹시 이게 수술이 잘못된건 아닐까?

봉합된 상처가 잘못된건 아닐까?

나름대로 태연한 척 해보였지만 속으로는 긴장이 된다.

열이 자꾸 오르면 쇼크도 일어날텐데,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간호사는 나보고 열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꾸 운동하라는데

내가 말야 걷는 운동 무척 좋아하걸랑...

근데 여긴 걸을데가 없잖아..

난 벌판을 걷고 싶단 말야. 푸른 숲이 있고, 넓은 벌판이 있는 곳을..

속으로 투덜 투덜.

 

절대 일찍 자지 않는 아들인데 10시만 되면 병실에 불이 꺼지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곳에서 잠을 청한다.


 

 

 

 

토요일.

 

TV에선 어제 뉴스부터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행렬을 보여준다

 

벌써 병원 밖의 세상은 명절 기분으로 가득 찼다.

 

간호사실에도 무언가 선물박스가 가득 찼기에

혹시 환자들용이냐 했더니 직원들 줄 것이라 한다.

 

아침부터 복도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더니

잠시 후 어느 병실에서 시신인듯 커다란 포를 씌운 침대를 직원들이

가지고 나온다.

대개 임종은 응급실이나, 임종이 다가 올때 쯤엔 별도로

마련된 방으로 옮기는 법인데

아마 자다가 돌아가신 것 같다.

 

검은 옷을 입은 가족들이 조용히 따라간다.

 

재작년에 호스피스 병원에서 봉사할 때 가끔 환자의 임종을 보고

수의를 입히는데 도와 주기도 했었다.

 

가만히 보니 내가 있는 병동은 암병동인 것 같다.

대개 환자들이 나이가 많고,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나처럼 환자들이 매일 매일 상태가 좋아진다.

이것 저것 달고 다니던 환자들도 매일 볼 때마다 하나씩 줄어들고 있고

코에 매달고 다니던 관도 어느 날 보면 안달고 다닌다.

 

토요일쯤 되니 환자들이 급히 퇴원하고 있다.

명절을 집에서 보내려는 의도인가?

어떤 이는 의사가 자기 뜻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즉시 퇴원해 버리기도 한다.

 

가만히 보니 내 방에 있던 환자들이 다른 5인실로 옮기는 것 같다.

 

4인실의 하루 입원비는 5인실 입원비보다 약 5~6만원 정도 비싸니

일부러 의사들도 근무하지 않는 주말 명절에 4인실에 있을 필요를 못 느꼈는지

오후가 되니 내 병실에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나는 어제 오후에 회진을 온 의사께서 보통 수술하면 일주일 뒤에

실밥을 풀고 퇴원하는데 수술 경과가 좋아 굳이 일주일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우선 일요일 퇴원했다가 집에서 정기적으로 소독만 하고 일주일 뒤에 금요일 쯤

조직검사 결과 나올 때 쯤 외래로 방문해 실밥을 뽑자 해도 된다기에

아내와 상의해서 하겠다 했다.

 

그런데 아내도 당초는 병원에 계속 있자고 주장하다가 병실에 아무도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던지 일요일 퇴원하자고 결정했다.

 

내일 퇴원이다. 드디어 퇴원이다.

 

입원 7일차

 

 

아직 걸을 때 힘이 없고, 복부에 통증은 있지만 이 정도는 집에서도 견딜만 하다

열이 가끔 오르긴 하지만 이것도 먹는 해열제로 조절이 가능하다 한다.

 

오전에 드디어 복부 옆구리에 차고 있던 관도 제거되었다.

아..이렇게 홀가분할수가..

뛰어 갈 것 같은 기분이다.

 

비록 몇 개의 상처때문에 복대는 차고 있지만 뭐..이 정도야 보기 흉하지 않지.

 

지하 매점으로 내려가 군것질 거리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땅콩.

 

모든 상태가 정상이다.

혈액 검사도, 소변검사도, 혈압도, 몸에 열도..

이대로 퇴원해도 될 것 같다.

 

집에 가면 무얼할까?

우선 맛있는 것 좀 먹고 싶다.

오후에 병원에 온 가족들과 내일 퇴원 후 무얼 먹을 건지 고민부터 한다.

 

내가 명색이 환자니 짜고 맵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안된단다.

그럼...초밥으로 하자. 초밥으로..

 

요즘 잠을 잘 때마다 자주 업무를 보는 꿈을 꾼다.

직원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꿈.

회사에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온 업무가 궁금해

스마트폰으로 회사 이메일을 보니 명절 휴일이 시작되었는데도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이는 듯 하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의사에게 내일 오후에 퇴원하겠다고 요청했다.

가족들이 주일 오후에 교회를 다녀와야 하니까..

그리고 내가 보험청구에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신청해 놓고

집에서 치료할 때 필요한 약품까지 리스트를 받아 미리 구매해 놓았다.

 

교회에 내 수술 사실을 알리면 내가 속해 있는 기관

그리고 아내가 속해 있는 기관에서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질까봐 애초부터 처남인 담임목사님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 했다.

덕분에 방문객은 많이 줄었다.

내가 지난 1년간 꾸준히 참석한 걷기 모임에도

당분간 회사 교육때문에 참석 못할 것이라

언질을 해 놓았기에 당분간은 연락이 없을 것이다.

 

가능한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회사와 친족들 외엔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우선은 그게 편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병원생활에 불편하지 않았으니 알리지 않기를

무척 잘 한 것 같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병실의 TV를 내 쪽으로 돌려 놓고 내가 원하는 채널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미리 해놓고...

 

나는 잠시 머무르다 가는 환자고

간호사에게도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환자일 뿐이다.

 

누구나 다시는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곳.

다시 이 곳에 들어온다면 부끄러울 것 같다.

 

한 밤 중에 아내와 팔장을 끼고 병원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다.

이젠...잠이나 자자.


 

 

 

퇴원하는 날

 

 

주일이라 새벽에 아내가 마치 샛서방과 외박한 여자처럼

살짝 병원을 빠져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를 갔다가 오후에 아이들과 돌아오겠다고..

 

오전에 다른 환자 없는 빈 병실에서 최고의 한가로움을 누렸다.

 

밖이 무척 추운 것 같다.

TV에선 오랜만에  시골에서 사는 노부부가 명절을 맞아 가족들을 만나는 이야기들이

먼 훗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저렇게 살고픈데..

 

병원에 있는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자란 턱수염이 처음엔 까칠하더니 이젠 부드러워졌다.

내 모습이 스스로 대견스러운지 자꾸 턱수염에 손이 간다. 부드럽다.

거울에 비친 내 옆 머리가 백발이다. 흰머리가 이리 많았던가?

머리 염색을 안하면 내가 평소 원하던 백발을 가질 수 있을까?

늘 작은 욕심하나가 백발로 자란 꽁지머리를 갖는것이었는데..

 

오전에 퇴원절차를 밟고 병원비를 계산했다. 약 355만원

예상했던 금액만큼 나왔다. 

 

무료한 오전.. 썰렁한 로비에 나가 앉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응급실쪽은 늘 바쁘다.

걱정에 가득찬 사람들이 급히 응급실 쪽으로 오가고..

군데 군데 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응급실로 오지 않길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 내가 몸이 아파 이 곳을 찾아오지 않은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이미 암은 퍼질대로 퍼져 있었을 것이고

항암제나 방사능 치료같은 것으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조기에 발견되어 이렇게 신장하나 적출하는 것으로 모든 치료가 끝났다 한다.

이후 3개월에 한번씩 외래로 와서 경과를 보고

그 뒤로는 1년에 한번씩만 오면 된다 한다.

퇴원 이후라도 언제든지 몸이 이상하면 즉시

응급실로 오라고 하지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환자복을 벗기 전 몸무게를 재보니 3키로가 빠졌다.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핼쑥해 보인다 했으니 아직은 환자처럼 보이나 보다.

사복을 입었다.

이렇게 편할 수가..

오후에 아이들과 같이 병원에 온 아내가 부지런히 짐을 꾸린다.

그 며칠 사이에 짐이 상당히 많아졌다.

 

대부분이 남들이 가져다 준 것들.

모두가 인생의 짐이다.

 

아내가 운전하는 내 차의 뒷 좌석에 처음으로 앉아 돌아 온 집.

거실의 따스한 햇빛이 반갑다.

소파에 길게 누웠다.

 

아...이제 새로 시작하자.

 

이렇게  나에게 미리 생명의 위험한 곳을 알려 주시고 고쳐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나에게 두번째 주어진 삶이다.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좀 더 가치있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