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서산 아라메길 4코스

carmina 2016. 3. 2. 17:11

 

 

2016. 2. 29

 

'아라'는 강이고 '메'는 산이다.

서산에 트레킹 코스인 아라메길은 그다지 유명한 코스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멀지 않으나

지방으로 떠나는 즐거움도 있고

길을 걷고 종착지가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는

편리한 코스를 선택할려다가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아내의 부탁으로 여행가자 해서

둘만의 여행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샌드위치데이를 끼고 결정한 1박 2일 트레킹.

 

아내도 친구도 첫날 오전은 일을 해야 한다 해서

낮시간에 만나 서울과 산본에서 각각 만나 3 부부 6명이 출발했다.

갑자기 몇 십년만에 생긴 눈다래끼의 불편함으로 지난 밤 거의

잠을 못잤기에 나는 승용차의 맨 뒤에서 가는 잠에 빠져 들었다.

 

아라메길은 전체 5개의 코스가 있는데

1코스 18km, 2코스 11km, 3코스 18km 4코스 22km 그리고 5코스 7km로

구성되어 있고 각 코스마다 단축코스가 있다.

그러나 그 코스들이 모두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 동떨어져 있어 한번에 한 코스만 가능하다.

또한 4코스와 5코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들은 모두 출발점과 도착점이 달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다시 차가 주차된 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5코스는 거리가 너무 짧다.

우리가 갈 코스가 22km 라 하니 평소 잘 걷지 않는 아내와 친구 부인이

조금 걱정하였지만 그래도 평지를 걷는다 하니 모두 안심하였다.

 

특히 4코스는 태안반도의 팔봉면에 바닷가로 돌출된 지역을 한 바퀴 돌아가는

코스로 코스의 3면이 바다고 아래쪽의 높은 팔봉산외에는 거의 바닷가나

인접한 낮은 산길이라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펜션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니 주말이라 모두 비싼 가격이지만

그중 가격대가 좋고 바닷가에 있는 서산나폴리펜션으로 예약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먹을거리가 풍부해 질 것 같아 

걷는 즐거움외에 먹는 즐거움도 같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고 지난 해 지리산 둘레길을

같이 여행했던 팀 구성이라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아는 친구들이다.

 

사무실 화장실에 앉아 서산에 도착해서 무엇을 할까 하며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다가

횟감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검색중인데 같이 가는 친구에게서

카톡이 온다. '형님 서산동부시장에서 회를 삽시다"

세상에 미리 그런 것 알아보자고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서로 이런 마음이 통하다니..

우리의 여행은 그랬다. 모든 것에 서로의 생각이 같았다.

 

서산 동부시장 주차장에 나오니 찬 바람이 쌩~ 하고 분다.

추운 날이라 허름한 동부재래시장의 많은 가게들이

빛바랜 두터운 비닐로 물건들이 뒤 덮여 있지만

찐빵을 파는 가게들은 김이 무럭 무럭 솟아 오르고 있다.

동부수산시장에 들러 숭어, 우럭, 멍게 그리고 서산 바닷가가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겨울철의 별미 생굴을 샀다.

그 추운 날에 씩씩한 아줌마들이 두터운 장갑을 끼고 

날렵한 모습으로 회를 썰고 있다. 벌써 입에 침이 돈다.

 

회를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무리지어 지나간다.

그 한가운데 까만 염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방송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사람들이 뒤를 따른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인 TV동물농장 촬영중이라 한다.

 

모두 양손에 검은 비닐에 가득 든 먹거리들을 들고

부푼 마음으로 펜션에 도착하여 우선 혹시 서산의 갯벌 노을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 포기.

 

따뜻한 방안에 둘러 앉아 서로의 배낭에서 저녁 전에 먹을

애피타이저들을 꺼내 펼쳐놓고 깔깔거리며 대화를 시작한다.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가지고 온 맛있는 치즈와 너트 류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온 칠레 와인들...

와인 몇 잔에 기분이 좋아 꺼내 놓은 오늘은 메인 메뉴

횟거리들. 모두 굴을 한 번 먹어 보더니 감탄사를 연발한다.

보통의 회들이야 도시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천연 굴은 이런 바닷가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

그리고 굴이 얼마나 싱싱한지 입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등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방에서 친구와 신나게 코를 골며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보는 것을 잊었다.

어제 주인이 이 곳에서는 일출을 볼 수 없다고 말해 포기했는데

알고보니 내 방에서 충분히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펜션 주인이 노인들이라 그런 즐거움에 대해 사전 정보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아라메길을 걷는다고 정해 놓고 코스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찾아 보니 모두 한결같이 점심을 먹기

힘들다고 말하기에 어제 펜션에 오면서 구도항에 들러

점심을 먹을 만한 장소를 물색해 놓고 휴일 문여는지도 확인하고

그 곳에 점심 쯤 도착될 수 있도록 출발지를 고려해야 했다.

펜션을 나서니 아침 공기가 쌀쌀하지만 하늘은 무척 맑았다.

혹시나 눈이 오며 나야 즐겁지만 잘 걷지 않는 이들은

아이젠과 스패츠도 없는데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지도상에서 구도항의 반대편 쯤 되는 지역에 가기 위해

마을길을 지나는데 산 그늘에 있는 곳은 길에 눈이 얼어

조심스럽게 운전하여 덕송리 제방에 주차를 했다.

 

그런데 아라메길 이정표에 인터넷 검색 중 보이지 않던 양길주차장이라는

지명이 불쑥 튀어 나왔다. 이게 어디지?

옆에 지도에 보여지는 약도에도 양길주차장은 없고

익히 알고 있는 팔봉산주차장만 보이는데 이정표에는

지도상에 표시된 호덕간사지나 방천다리등의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이 양길주창장 지명으로 인해 내 실수는 시작되었다.

왜 이정표 만들 때 지도상의 지명과 이정표의 지명을 통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4코스 환상(環狀)코스에 각 지역마다 반대편 해안으로 가는

4-1이라는 서브코스를 만들어 지도보기에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쨋거나 빙 돌아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모두 파이팅하고 외치며

힘차게 줄발했다.    

 

제방을 걸으며 눈에 가득 들어오는 서해안의 바다색깔은 내가 잘 걷는

강화도의 바다 색과 동해안이나 남해안 푸른 바다색의 중간 정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멀리 보이는 맞은 편의 섬들의 그림자가 아침바닷속에 드리워져

멋진 데깔꼬마니 화폭을 만들고, 하늘의 뭉게구름도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지

바닷속에 구름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제방위 메마른 풀들을 적셔주고 파릇한 잎들을 피워 낼 수분을 가득담은

겨울눈들이 마른 땅을 촉촉하게 해 주고 있다.

제방옆 바다에 사공도 추위에 나오지 않아 작은 빈 나룻배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기에 가만히 보니 물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얼었다.

바닷물이 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돌멩이를 던져 보니

아주 얇게 살얼음같이 얼었는지 바다에 구멍이 뽕 뚤렸다.

하늘 색과 바다색이 모두 같다. 멀리 섬들이 없었다면 아마 두 개체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방끝으로 내려가 걷는 길은 산에 가려 햇빛을 못받아

그제 내렸던 중부지방의 폭설이 얼이 빙판길이 되어 버려

조심스럽게 걸어야만 했다.

 

넓은 벌판이 눈 앞에 펼져진다. 골골이 눈이 쌓여 있고

멀리 오리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하늘을 날고 있다.

저들도 좌파 우파를 만드는 것인가?

 

바다가 앞으로 펼쳐진 골짜기마다 집들이 숨어 있고 인적조차 없다.

하늘에서 보는 그 사이에 꼬물대는 것은 우리들 뿐이다.

조심스레 비탈길을 오르고 마을 언덕길에 오르니

모두가 하얀 세상에 넓은 밭에 파릇하게 눈을 뚫고 올라온 키가 낮은 작물들.

아마 마늘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이는 모든 풍경에서 평화가 느껴진다.

 

요즘 도시사람들이 서산으로 많이 이주하여 산다는 애기가 있는지

길 거리 곳곳에 새로 지은 예쁜 집들이 자주 보인다.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이런 곳에서 중년의 부부들이 여생을 보내기에는

좋을 것 같다. 자연이 있고 가끔 우리같이 산길 걷기도 하면서

때로는 지인들 초대하여 웃고 떠들기도 하면서 ...

그런 한가롭고 여유있는 중년을 만든 부모님들은

지금도 농촌이나 어촌에서 허리굽혀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차가 다닐만한 도로외의 대지는 모두 백설의 세계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같이..

참 걷기 좋은 날이다.

 

양지밭에 있는 집들의 추녀끝에서는 작은 고드름들이 녹아 내려

물이 똑똑 떨어지며 봄소식을 알리고 있다. 때로는 지붕위의

눈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기도 한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없다.

주위를 한참 둘러 보니 어느 집 옆으로 나 있는 작은 제방길 시작되는 곳에

이정표가 있는데 그 집 앞에 길게 줄을 매어 있는 흰 개가 우리를 보고

자기 땅에 들어오지 말라고 짖고 있다. 고민이 되었다.

일행 중 친구 부부는 거기로 가지 말자고 하지만 돌아갈만한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용감하게 그 집 앞마당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혹시라도 모를 개의 공격을 가능한 막아 볼려고 손을 앞으로 내 밀고

걸어가니 개도 우리의 의도를 알았는지 자기 집 앞에서 짖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제방 밑의 갯벌에는 게의 구멍이 많이 보이는데 전혀 게들의 움직임이 없고

칠게들이 돌아다닌 흔적도 없다. 어릴 때 부터 수없이 갯벌에서 이런 게구멍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갯벌만 보고도 이 갯벌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이 풍족하지 않으니 게들도 아마 자연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아라메길은 길가에 나무들이 별로 없으니 깃대봉을 세워 놓고 노란 삼각천으로

방향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 삼각천도 바닷바람에 많이 낡아 보여 조금 초라해 보인다.

멀리 벌판 끝 산 기슭에 커다란 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그 어떤 마을의 집보다도 더 큰 교회의 앞 부분이 마을쪽이 아닌 산쪽으로

나 있어 조금 의아해 진다. 아마 도로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교회가 사람을 등진것 같이 보이는 것은 아마 내가 마음이 조금 삐뚤어져 있나보다.

 

인근에 마침 주유소가 있어 여자들에게 화장실을 보고 오라했는데

한참 지나도 오지 않기에 사정을 보니 일을 보고 났는데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단다. 어쩔 수 없이 주유소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나도 잠시 쉬면서 아침에 추울까봐 껴 입었던 옷을 하나 벗어 배낭에 넣어 버렸다.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팔봉산이 눈 앞에 크게 나타났다.

여덟개의 봉이 있다 해서 팔봉산인데 약 400m 높이로

이 지역에서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이다.

주위 산들에 비해 유독 높게 솟아 있는 팔봉산의 정상이 한라산같이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고 그 정상에 작은 바위가 하나 돋보이게 솟아 있어

마치 여자 가슴의 그것같아 한참 웃었다.

 

양길주차장으로 가는 평탄한 마을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 끝 먼 곳에

우리같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이 걸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우리 앞을 지났을텐데 부인들을 기다리는동안 보지 못했다.

 

한참 걸어가서야 그 길 끝에 양길주차장이 있고

트레킹을 즐기러 온 사람보다 팔봉산 등산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음을 알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식당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나의 코스 준비가 잘 못된 것을 알았다.

굳이 구도항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는데

펜션 주인에게 물어 볼 때도 점심 먹을 곳은 구도항밖에 없다고

잘못된 정보를 알려 주었었다.

 

이 곳이 양길주차장이면 그럼 지도상에 나와 있는 팔봉산 주차장은 어디인가?

여기 저기 둘러 보아도 아라메길 이정표가 없다.

주차장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에게 아라메길을 물어보다 아는 이가 없다.

 

할수 없이 지도에서 본 코스의 중간기점이 면사무소가는 길을 물어보니

옆길을 알려 주기에 그 길을 따라 가니 그만 큰 도로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코스가 잘 못된 것을 알았지만 이제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큰 트럭이 오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어느 로타리에서 구도가는

도로길을 접어들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계속 걸어가는 것이 방법이 아닐 것 같아

길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확인하니

해변가로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아 무조건 해변가로 가는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같이 따라가는 사람들은 이게 제대로 된 코스인지 아닌지 몰랐을 것이다.

 

작은 길 끝에 해송가든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 아라메길을 물으니

음식점을 지나쳐 조금 걸어가면 해변이 나오고 아라메길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기에

그 길을 아는 것조차 너무 고마왔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눈 덮인 길을 따라 알려준 대로 찾아가니

큰 소나무들이 있는 언덕을 넘고 공동묘지가 있는 길을 따라 가니 해변이 보인다.

드디어 찾았다. 해변길로 가는 나무 계단 저 밑에 반가운 아라메길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나 이정표 기둥의 윗쪽에 붙어 있어야 할 방향표시가 모두

기둥 밑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다. 누군가 고의로 떨어트린 것 같다.

구도항이 약 1.5km 정도 앞에 있다.

반가운 식당이 있다.

 

둑길로 가는데 낭패를 당했다.

둑 위에 덮인 흙이 모두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이다

길 보수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덕분에 길 끝에서 모두 다 한참 신발의 진흙을 떼어내야만 했다.

 

멀리 펜션촌이 보인다.

하나같이 유럽식 건물이지만 개인이 사는 주택이 아니라

그리 정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잠시 하루 자는 곳.

 

길 끝에서 산길로 접어 들었다.

눈이 뽀득 뽀득 소리내며 밟히는 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다.

이정표에는 눈이 쌓였다 녹으면서 얼어 붙어 글씨가 보이지도 않는다.

멀리 구도항이 보이기에 이제 굳이 얼어붙은 눈을 털어

방향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푸른 이끼가 가득 덮인 갯벌끝의 바닷물에는

많은 오리떼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열심히 놀고 있어

혹시나 저 오리들이 동시에 하늘을 나르면 멋있겠다 하고

큰 소리로 훠이~~ 하고 외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도항의 식당에서 맛있는 해물칼국수로 점심을 즐기고 다시 출발.

 

길 끝에 또 다른 길의 명칭이 보이고 호랑이를 이용하여

벤치를 만들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커다란 호랑이 두마리를

세워 기둥으로 만들어 가로림만 범머리길 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가로림만 해변길을 조금 더 가면 바닷가 조금 툭 튀어 나온 바위의 모양이

범머리의 형상같아서 범머리길이라 한다.

 

이젠 편안한 숲길로 접어 들었다. 눈이 조금 쌓여있고

숲 사이를 걸어가는 친구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유독 보기 좋았다.

워낙 평소에도 얄미울 정도로 부부애가 좋으니 걸어가는 뒷모습도

조금 남달라 보인다.

 

산길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 '스문여'라는 이름붙이 바위섬이 있다.

썰물 때만 보이는 숨어있는 바위라는 뜻도 있지만 어느 해

해산물을 채취하러 갔던 스무명의 아낙들이 밀물에 빠져

모두 죽었다는 전설때문에 스문여라고 이름 붙였다.

 

바다의 밀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도시생활이나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끝없이 넓은 갯벌에 바닷물이 안보인다고 물때를 멀리까지

걸어갔다간 거의 불꽃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같은 모습이다.

갯벌에서 아무리 빨리 뛰어도 푹푹 빠져서 걷기 힘들고

평평한 갯벌에 물이 들어 올 때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갯벌에 멀리 나갔다가 물이 들어오는 것을 깨닫고 도망나오면

수영을 특별히 잘하지 않는 한 거의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어릴 때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그 위험함을 잘 안다.

그런데 어촌에 사는 사람들이 밀물때문에 스무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아무리 이해해도 너무 과장된 것 같다.

그걸 모르고 어촌에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스무명이나..

 

길은 계속 바닷가와 산길을 번갈아 걷는다.

올 겨울에 눈덮인 산길 트레킹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이 먼 곳에 와서야 소원을 풀었다.

 

이쪽 해안가로 오니 여기 저기 사람들의 손이 간 코스가 보인다.

도로를 걷는 대신 도로 안쪽에 밧줄멍석을 깔아 길을 편하게 해 놓았고

일부러 도로 바깥쪽으로 나무데크를 만들고 색색의 바람개비를 세워 놓아

걷는 즐거움도 느끼게 해 놓았다.

 

도로 옆을 걷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가니 또 범모양의 벤치가 있어

여름에 걸으면 쉬었다 갈 수 있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와 있는 숲길은 썰물 때는 바닷가를 걸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 놓았기에 지금 물이 조금씩 들어 오긴 하지만

가능한 바닷가 길로 걸었다.

 

휑한 갯벌 위에 하늘색 작은 배가 물만 들어 오면 둥실 떠오를 것 같다.

물론 밧줄로 매어 놓긴 했지만 그 보트의 쉼속에서 노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가정이라는 밧줄에 매어 있긴 하지만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훌쩍 먼 바다로 떠나리라.

그리고 돌아와 다시 저렇게 바닷소리 숲소리 들리는 곳에서 쉬리라.

 

산길을 넘어오니 바닷가에 '햇님 달님'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동화 내용 중

호랑이에게 떡을 주고 잡혀 먹었던 어머니의 전설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릴 때 이 동화를 읽고 정말 밤에 호랑이가 찾아 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동상을 가만히 보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면서

동상이 잘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절박한 순간에 웃음이 나왔을까?

 

길은 다시 숲길과 바닷길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비록 물이 들어오긴 하지만 이 정도면 물이 많이 들어와 

걷기 힘들면 산길로 올라갈 수 있겠다 생각하고 내가 앞장 서서

상황을 살피며 걸었다 산모퉁이 돌아가는 곳에서 전방상황을 살피고

일행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또 모퉁이가 나오면 또 진항하게 했다.

그런데 이 길을 가게 된 것이 이번 여행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그 길은 바닷가 바위에 정말 수없이 많은 굴들이 깨알같이 붙어 있었다.

이제까지 강화의 주문도길 이외에 그 어떤 길에도 이런 길을 보지 못했는데

이 곳은 주문도 보다 더 많은 굴밭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들에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빽빽히 들어서 굴들.

거의 많은 굴들이 이미 어부의 손을 거쳤지만 그래도 많은 굴들이

아직 손도 못댄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음이 여린 친구 부부는 그 굴을 밟고 지나가는 것이 굴을 등산화로 밟아

껍데기가 부서져 죽이는 것 같아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굴밭 바닷가길 끝에 있는 위로는 주벽전만대가 있고 아래로는

바닷가 나무데크를 따라 한참 걸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마을 아주머니를 만나 물어 보았다.

"여기 굴 따러 오셨어요?"

"아냐 굴은 여기서 안따요. 저거 섬에 나가서 따요.
그리고 겨울에는 굴 따지 않고 감태를 따요"
그러면서 멀리 갯벌에 이제까지 푸른 이끼로만 알았던

감태가 있는 곳을 가르킨다. 멀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 몇 분이 넓은 갯벌에서 감태를 따고 있었다.

감태는 마치 머리털같이 가는 바다이끼인데 맛이 달아

사람들이 좋아한단다. 그리고 굴보다 감태가 더 비싸게 팔린다 한다.

 

농촌은 기후에 따라 수확이 줄어들거나 혹은 과잉생산에 의한 가격 폭락으로

일년 내 농사를 망치기도 하지만 바다는 그런 악조건이 농촌보다 덜 할 것 같다.

갯벌의 초원처럼 끝없이 널려진 감태을 보며 나는 침을 다시고 있다.

 

강화갯벌에는 빨간 칠면초가 가득하듯이 이 곳도 녹색의 감태가 많아

하늘에서 보면 서해안이 거의 총천연색 바다로 보일 것만 같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누군가 바닷가에 돌로 크기가 비슷한 몇개의 석탑을

정교하게 쌓아 만들어 놓았다. 아마 특별한 볼거리를 위해

관청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것 같다.

눈 밭에 만들어 놓은 석탑이 오랜 세월 지나면 

꼭 남미 칠레의 이스터섬에 있는 석상같이 전설이 생기지 않을까? 

 

바닷가길을 걷다가 문든 길가의 이상한 소나무들들을 보았다.

바닷가 흙이 조금씩 침식되면서 드러난 소나무의 뿌리들이

하나같이 모두 옆의 나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마치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연리지와 같다.

연리지는 대개 나무가 서로 자라다가 줄기가 만나 같이

한 나무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곳 내 눈 앞의 소나무들은

모두 뿌리가 하나가 되어 있다. 그것도 몇 그루의 소나무가

연이어 그렇게 되어 있어 이 나무는 학술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침식작용이 더 일어난다면 소나무가 쓰러질 것 같지만

아마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세월을 버틸 것이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호리종점인데

이 곳 아라메길은 각 구간의 이정표를 구간마다 표시해 놓지않고

특별한 몇 군데만 지정해 거리표시를 해 놓아 길을 걷는데 조금 힘들었다.

 

차를 가지고 와서 같이 걷는 친구가 우리 차가 있는 곳이 멀지 않을 것이라하며

모두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길을 걸어도 우리가 묵었던 펜션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걸까?

분명 우리 차는 아라메길 코스 중에 두었기 때문에 그냥 한없이 걷다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모두들 힘든지 조바심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혹시 차를 찾더라도 오후에 기온이 내려 가 길이 얼어 비탈길을 올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숲길을 걷고 또 제방길을 한참 걸어 갯벌체험장까지 왔을 때

모두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다른 이들은 그 곳에서 쉬게 하고

친구와 나만 배낭을 내려 놓고 얼른 차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친구가 스마트폰 도로앱으로 거리를 현재 위치와 차 세워 둔 곳까지의 거리를 재보니

멀지 않다기에 둘이 빠른 걸음으로 길을 찾아 가는데

아무리 가도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곳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제방이 있는 곳인데 이런 제방이 계속 몇 개씩 이어지고

친구는 우리 차가 분명 어느 언덕아래 있을 것이라는 기억을 찾아

열심히 주위 지형을 돌아봐도 그런 지형이 없으니 더욱 조바심이 났다.

결국 제대로 아라메길 코스를 따라 30분쯤 걷다 보니 차를 찾을 수 있었다.

   

대개 22km를 걷는다면 6시간이나 7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가 늦게 걸은 것도 아닌데 그 보다 더 걸린 것 같다.

 

처음에 너무 긴거리라며 걱정했던 아내와 친구 부인도

얼었던 땅이 녹고 눈이 녹아 질퍽해진 길들을 걷느라 힘들었고

나중에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걸어 주어 다행이었다.

아마 만나면 늘 즐거운 사람들과 종일 웃으며 걸어서 덜 힘들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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