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괴산 산막이길

carmina 2016. 4. 3. 21:42



2016. 4. 2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많은 매스컴으로부터

많은 사람들 블로그에서

많은 길벗들의 추천으로 

찾아간 괴산 산막이길.

2년전 부터 같이 잘 지내던 이웃이

마침 산막이길 근처에 있는 미루마을로 이사갔다 해서

겸사 겸사 해서 아내와 함께 배낭을 꾸렸다.


내 모교인 인하대학 졸업생들끼리 조성한

미루 마을은 산으로 둘러 쌓인 공간에 약 60호 정도의

집들이 오손 도손 자리를 잡았다.

모든 도시사람들의 꿈인 전원생활을 먼저 이룩한 이웃집에는

넓은 거실에 천정이 높고 다락방이 탐나는 목조가옥으로 그곳에서

밤새도록 이야기와 와인으로 정담을 나누고

다음 날 집에서 산막이길 입구까지 걸어갔다.


잘꾸며진 미루마을 을 지나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니

듬성 듬성 오래된 집들과 새로 지은 집들이 놓여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여전히 밭에서 일하시고

한참 나이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도 농기구를 손질하고 계셨다.

두루 두로 인사를 드리고 두 번째 고개를 넘어서니

갑자기 눈 아래로 보이는 공터에 승용차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내 앞으로 마주 오는 수많은 사람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냥 간단한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부모의 손을 잡고 걸으로 나왔으니 이 골짜기가

봄에 핀 꽃 보다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 이것 저것 볼거리도 많이 만들어 놓았다.

나무 사이로 출렁다리를 만들어 놀거리를 만들었고

작은 바위 틈 사이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억지 전설을 만들어

금방 만든 듯한 호랑이 상을 만들고

나무이름을 많이 적어 놓아 학습효과도 있고

여기 저기 사진찍을 수 있는 곳과 휴식처를 만들어

매니아의 트레킹 코스보다는 관광지에 가까운 코스라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산막이길은 길이 없는 곳을 길을 만들었다.

중국의 장가계 처럼 산 기슭에 나무로 데크를 만들어

걸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산을 막았다는 말인가?

4Km 코스에 흙길보다 나무 데크를 걷는 부분이 더 많다.

덕분에 나이드신 어른들도 키작은 아이도

운동화를 신지 않은 젊은 연인도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적당히 오르락 내리락 하니, 적당히 땀이 난다.


어느 노인 산악회에서 나온 어른이 등산스틱이 아닌

노인용 스틱을 짚고 올라오다가 혼자 중얼거리신다.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온 작은 여자 아이는

계단을 쪼르르 올라가며 엄마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힌다.


옆으로는 하늘 빛 괴산호의 수면이 어쩌다 지나가는

유람선으로 흔들리는 물결외에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누군가의 배낭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트롯트 메들리의

소음이 그 적막함을 깨트리고 있다.


호수 옆 정자 아래 작은 공터에 단체로 온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간식을 먹고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 아이는 위험하게도 난간 사이로

들어갈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연 외에 이 사람 저 사람 볼 것이 많으니

시간가는 줄은 모르겠다.


등산로로 올라가는 산길의 입구에 만들어 놓은 간이 출입구에

수없이 많은 동호회의 리본이 성황당처럼 걸려있다.


끝이 보이는 길이다 보니 짧은 길인데도 먼 곳 같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돌아 와야 한다는 슬픈 사실에 별로 힘들지 않은데도

돌아 올 때는 배를 타고 오기로 했다.


길의 끝에쯤 작은 물 웅덩이 가운데에 항아리를 놓고

동전을 던져 넣어 로마의 트레비 분수같은 사연을 만들었다.

수 많은 동전이 물 속에 가득하다. 자선행사에 쓰인다 한다.


산막이길 끝에 음식점들이 몇 채 있어

감자전과 괴산 막걸리를 즐겼다.

실내에 직장에서 단체로 온 손님들이 거의 재즈페스티벌 스피커처럼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차라리 호수 건너편에 조붓한 길이 탐이 난다.

이쪽과 호수 저쪽을 잇는 다리가 건설예정이라 한다.

아무래도 이 곳은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그냥 관광지로 불리우는 것이 낫겠다.


배를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데 술 취한 이들 중 한 명이

선박 이층에서 들어가지 말라고 밧줄 쳐놓은 곳에 들어가니

주위에 있는 그 사람 동료들도 안되는데...하면서 따라 들어가는

용기(?)를 보였다.


배에서 바라보는 산막이길의 모습이 참 좋다.

빌딩의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걷는 것 같다.

내 눈에는 피난가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독설일까?


정말 다행인 것은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이

이웃이 새로 이사간 곳까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상과 떨어지고 싶어 찾아간 곳에 세상사람들 몰려서 기웃거리면

슬퍼질 것 같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119 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다. 누군가 떨어진 것일까?

휘청거리는 오후였지만 아직도 빼곡한 주차장을 지나

다시 미루마을로 오는 길은 호젓해서 좋았다.


몇 시간 전 농기구를 손질하던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싸리빗자루를

단단히 동여매기 위해 힘을 쓰고 계셨고 밭일하고 돌아오시는

키 작은 할머니는 오전처럼 우리의 인사에 밝게 웃음지어 주셨다.


괴산 산막이길 트레킹 보다는 친구 집에서 지낸 하루가 더 즐거웠다.

마을을 산책하고 마을에서 단체로 만들어 판 구멍이 엉성한 촌두부가 맛있었고

이웃집과 같이 저녁하자 하니 가지고 온 주먹만한 더덕과

먼저 살던 사람이 키우던 머위를 뜯어와 밥상에 올려 놓으니 향이 기막혔다.

3가족이 모여 맛있게 식사하고 나니 접시가 모두 절간 공양처럼 다 비워져 버렸다.  


지난 해 수확하고 버려진 콩가지들을 작은 통에 넣고 불질러 청소하는 것이 좋았고

마당앞에서 기타치며 부르는 노래가 좋았고

다같이 모여 저녁 늦게 와인을 즐기다가 밖에 나오니

지붕 바로 위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북두칠성과 밝게 빛나는 목성이 좋았고

알고 있는 다른 이웃을 불러 밤 늦게까지 피아노치며 가곡과 찬송가를

화음맞추며 부르는 시간이 행복했다.

 

다음에 이 곳에 다시오면 굳이 트레킹 복장 없이 그냥 청바지에 운동화 하나 신고와

오전 조용한 시간에 천천히 거닐고 싶다.

작은 돗자리 하나 들고 정자에 누워 낮잠을 자고

선착장까지 가서 맛있는 것을 먹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다.


미루마을 뒤에 병풍처럼 쳐 있는 산을 보며

저 산에 작은 오솔길이 있어 한바퀴 돌아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높이 올라가면 괴산호가 다 보여 기슴이 트일 것 같고

눈 아래 보이는 작고 예쁜 집들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