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DMZ 임진강길 트레킹

carmina 2016. 3. 28. 09:17



2016. 3. 26


내 기억은 40년전으로 돌아간다.

군시절 임진강 앞에서 밤새 보초를 서던 기억.

입대후 논산훈련소와 후반기교육을 마치고 트럭은 전방으로 전방으로 내달렸다.

그러다 어느 골짜기 텐트촌에 나를 내려놓은 이후 내겐

생전해보지 않던 일들이 눈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산꼭대기에 물지게 하나 지고 올라가 콘크리트 작업하는데 쏟아 붓고 내려와

점심을 먹고 또 한 번 물지게 지고 올라가면 하루 해가 다 갔다.

그렇게 여름 내 산속에서 벙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자대로 돌아오니 이젠 밤에 야간경비를 임진강으로 나가야 했다.

어둠속을 조용히 걸어 초소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달빛에 비치는 물빛과 어둠 뿐.


특별히 그 임진강가 철조망 옆을 걷는 생태체험 걷기 트레킹 뉴스가 있어

하루 걷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해서 얼른 친구들을 불러 모아 신청을 했다.


이른 아침에 자유로를 드라이브하는데 이전같으면 개성공단으로 가는

차량들이 많았을텐데 최근에 개성공단이 폐쇄된뒤로 차량이 줄어든 것 같다.


집결지가 임진각의 평화누리공원이라 해서 몇 십년만에 다시 가본 임진각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우리 애들 어릴 때 갔을 때는 그냥 건물하나였었는데

이젠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대형버스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에

가까이 가보니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아마 이 곳이 외국인에게 단골

관광코스인 것 같다. 녹슨 기관차와 경의선 철교 그리고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자유의 다리 끝 막아 놓은 벽에 

무수히 많은 염원들이 붙어 있있다.


당초 오늘 신청한 사람들은 150명 정원에 약 50명 정도였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 신청으로 갑자가 인원이 많아 졌다.

3그룹으로 나누어 조편성이 되었다.

각 조의 안내는 모두 군생활을 몇 십년 한 퇴역 군인들이다.


특별히 지급받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출입이 통제된 커다란 철문을

지나 DMZ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이번 트레킹은 최대한 전방지역까지 가서

살벌한 지역을 걸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걸은 길은 단지 임진강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고 곳곳마다 군 초소가 있어

허가된 지역이외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임진강 건너편에 농사가 가능한 듯 벼를 베어 볏짚으로 모아 놓은 곳이 보였고

가끔 커다란 트랙터로 밭일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아침에 들어가 저녁 해 지기전에 나와야만 하고

절대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한다.

DMZ 내에는 대성동 마을을 비롯한 3개의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저녁마다 마을주민조차 인원점검을 한다.


길은 평탄했다.

임진각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9.1 Km라 하는데 일직선으로 끝이 안보이는 길

늘 병사들이 걷는 길이니 평탄할 수 밖에 없다.

혹시나 비가와 지표면이 두드러진 곳은 군대 생리상 그냥 두지 않으니

최근에 땅을 다듬은 흔적이 보였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다듬느라고 병사들 힘들었을 것이라고 안내자에게 이야기하니

요즘 그런 것 사병들이 안한단다. 모두 기계로 하거나 하사관들이 한다고..

이젠 직업군인들이 사병들 눈치 보면서 군대생활한다고 한다.

군에서 제일 힘들다는 내무생활도 워낙 사고가 많이 나니

이병, 일병, 상병, 병장들이 따로 잔다.

걷는 내내 안내자로부터 참으로 안타까운 현재의 사병들의

어이없는 군생활을 들으면서 이러다 전쟁나면 과연 상관의 말을

듣고 작전에 임할지 한심하기만 하다.


임진강 근처라 겨울 철새를 많이 볼 줄 알았는데

지난 달 까지만 해도 독수리를 비롯한 철새들이 많았는데

모두 추운 나라로 날아가 버려 철조망 너머 임진강가는 참 쓸쓸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어 임진각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통일대교에 차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개성까지 차로 15분 걸리는 곳. 늘 남쪽을 향해 금방이라도

침략할 것 같이 큰소리는 치는 북한의 군대들이 바로 15분거리에 있다.

임진강 저 편에서 포를 한 번 쏘면 불과 몇 초만에 수없이 많은 생명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린 극도로 위험한 환경이지만 워낙 오랜 세월동안 그런 대치가 계속되니

누구나 그런 위험을 인지 못하고 있다. 과연 전면전으로 가는 날이 있을까?

내가 군시절에도 북 특수부대들이 남한을 침입해 비상령이 걸리고

인근 야산에서 그리고 도심에서 수색작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연평해전 같은 소규모 전투가 늘 이어지지만 막상 확전시에는 어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 걷고 있는 옆의 철조망이 무너지는 날이 있을까?


길을 걸으며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진촬영에 제약이 있었다.

군초소나 군인들 얼굴을 촬영하지 못하며 특별히 허가된 구간만

촬영이 가능했다.

 

이런 분단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철조망에

각종 조형물을 설치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모두가 통일의 염원을 표현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 곳에서는 촬영이 허가되어 오랜만에 셔터를 눌렀다.

 

혹시나 걷기 불편하여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길로

승용차가 한 대 따라오도록 준비했으나 애기를 품에 안고 걷는

젊은 부부도 완주했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시종 많은 군대 이야기를 안내자가 있어

평탄하고 밋밋한 길이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늘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은 누군가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면

귀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걷기도 한다.

 

어느 코너를 돌아가는데 문득 숲에서 급히 도망가는 고라니 한 마리.

그 숲에 지뢰가 많을텐데 고라니 발굽정도의 압력으로는 어떤 지뢰도

터지지 않는단다. 실은 이런 야생 동물이 많을 줄 알고 이 길을

찾아 온 것인데 걷는 내내 철조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단지

고라니 한 마리였다.

그리고 멀리 탱크 군단이 흙먼지를 구름같이 내며 훈련을 하고 있고..

 

중간 중간에 전망대와 포토존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중간에 임진나루는 조선시대 선조왕이 피난왔던 포구라 하는데

이 곳에 어부들이 있는지 작은 나룻배가 몇 척 강가에 쉬고 있었다.  

 

어느 정도 평지를 걷다가 약간의 언덕 몇개가 있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명칭은 생태길이라 하는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모든 생물은 아직

무채색의 색깔로 깨어나지 못했다.

 

초소를 지키는 젊은 병사들의 혈색이 좋다.

하긴 요즘 군대는 저녁에 사병들이 얼굴팩을 한단다.

길을 가다가 마중나온 소령 한 분의 포스도 멋지고..

 

차라리 약간 녹음이 우거졌을때 트레킹을 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기회되면 다른 날 다시 한 번 가야 할 것 같다.

 

율곡습지공원까지 트레킹 후 다시 주차되어 있는 임진각으로 콜택시를 불러 가니

임진각 주차장은 관광객들로 거의 만석이 되어 있었다.

작은 공원에는 가족들이 연을 날리고 있고 작은 텐트를 치고

한 낮의 햇볓을 즐기는 가족도 있었다.

 

친구들과 점심을 위해 들른 식당에서 민물매운탕과 민물게장을

주문했는데 살도 없는 게장백반 가격이 무려 15000원나 되어 놀랐다.

 

코스는 밋밋했고, 그다지 생태코스라고 불리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풍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을 트레킹하였다는

의의 하나로 오늘 트레킹을 일찍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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