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선 코스 목아재 - 당재

carmina 2016. 3. 24. 09:58


2016. 3. 21


지난 가을 이래 지리산둘레길을 다 돌았다고 늘 자랑스러운 말투로

남들에게 얘기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걸리는 것이 두 개의 지선코스를

모두 가지도 않았으면서도 그리 말하는 내가 부끄러워 

지리산 둘레길 겨울 입산금지가 풀리자 마자 휴가를 내고 일정을 잡았다.


먼저 2년전 여름 걷다가 너무 더워 포기한 하동읍 - 서당구간을 걷기 위해

고속버스를 하동까지 가다가 버스가 구례부터 서는 것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코스를 목아재 - 당재 구간으로 바꾸었다.


하동읍 - 서당 구간보나 목아재 - 당재 구간이 조금 힘들 것 같기에

힘든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막 버스가 구례를 떠나려 할 때에

서둘러 배낭들고 버스에서 내리니 기사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구례역 앞에 식당에서 맛있는 감자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택시기사에게 목아재가느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 하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고는

나를 태웠다. 둘레길 안내도 목아재는 택시를 타야 한다고 써 있었다.

물론 목아재는 내가 가탄 송정 구간을 걸을 때 중간에 지나쳤던 지점이다.


택시가 하동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산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산길을 올라가는 길이 도무지 차가 다니지 않는 길같다.

겨우 차 하나가 지나갈 만한 세멘트도로와 흙길이 이어지고

급한 경사를 올라가느라 길은 위험하기 그지 없는 지그재그 구불길로 올라가고 있다.

좁은 길을 잠시라도 벗어나면 그대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험한 길이다.

베테랑 택시기사가 아니면 길도 않좋은 임도길을

해발 400m 까지 운전하며 올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만약 이 길을 배낭메고 걸어 올라왔다면 아마 중간에 포기할 것같은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리산 둘레길은 매 코스마다 깔딱고개같은 이런 길이 종종 있는 편이다.


당초 터미널에서 15,000원 정도 나온다고 예측하며 조금 웃돈을 더 달라기에

그러마하고 탑승했는데 그 위험한 길을 올라가 눈에 익은 목아재 이정표 앞에

도착하니 요금이 18,000원이 조금 더 나왔다. 기사분도 조금 더 주기를 원하기에

그렇게 위험한 길을 투덜대지 않고 운전하고 올라온 친절이 기분좋아

예정금액보다 조금 더 드리고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인사하고 나니

그 산꼭대기에 나 혼자 덜렁 자리에 남겨졌다.


목아재 왼편에는 송정에서 오는 산길이 있고 오른편에는 가탄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무에 매달린 리본과 둘레길 나무 이정표의 붉고 검은 화살표로 알려 준다.

목아재에서 시작하여 남산마을, 평도마을, 당치마을, 농평마을 그리고 당재까지 이어지는

약 8.1Km의 비교적 짧은 길에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한 시간에 겨우 2~2.5Km를 가야 하는

험준한 길이 보통이다.


발바닥에 바세린을 골고루 바르고 신발 끈을 단단하게 동여매었다.

산위라 구례시내에서 느끼지 못한 한기가 몰려드는 것 같아 패딩이랑

점퍼를 껴 입었다. 오늘 이 산행은 다음 달에 내게 오래 전 부터 꿈꾸어 오던

산티아고 까미노를 가기 위한 복장과 배낭 무게를 비슷하게 맞추어 길을 나섰다.


목아재가 이번 코스의 가장 높은 곳이니 우선은 곧게 아래로 뻗어 내려가는 길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산에서 조금 내려가니 길가에 매화꽃이 조금씩 피어있더니

그 사이로 멀리 역사깊은 지리산 피아골 골짜기에 남산마을이 조그마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건너편 산에는 새로운 길을 닦는 듯 동네 이발소에서 이발사 아저씨가

머리칼이 짧은 남학생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듯이 

길이 이리 저리 한 줄기씩 길이 나있다. 


5분이나 걸었나? 잠시 걸었는데도 금방 추위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고개 넘어 반대편 길이라 목아재처럼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경량 패딩을 벗어 배낭에 조그만 주머니에 담아 배낭에 넣고 다시

룰루 랄라 흥얼거리면서 길을 내려간다.


길을 내려 갈수로 매화꽃의 크기가 커지고 나무에 매달린 꽃 송이가 많아진다.

그 사이로 다시 바람이 부는데 정상에서 느끼던 바람의 차가움이 아니고

온도와 색깔이 다른 바람같다.


이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개인 사유지가 많은지 길마다 줄로 영역표시를 해 놓았다.

그리고 그 곳에 매화나무가 가득하고 여기 저기 비료부대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잠시 발을 멈추어 바라보는 건너편 멀리 보이는 산자락들이 손가락을 서로 깍지 끼듯

겹치어 있고 그 위로 깨끗한 봄하늘이 부드러워 보이는 구름을 뿜어내고 있다.


길가에 있는 매화도 산 주인이 재배를 하는 듯 나무 밑둥에 비료를 뿌린 듯한 흔적이 있고

산 언덕 매화나무가 많은 곳에는 농부가 비료부대에서 바가지로 비료를 퍼내어

나무 밑에 뿌리고 있었다. 그래야 나중에 알이 굵고 튼실한 매실을 얻을 수 있겠지.

그 길가에 이 지역은 간이 상수도 취수원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어 이런 곳에서도

비료를 사용해도 되는지 잠시 궁금해 졌다.


남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전망이 좋아서인지 눈에 보이는 집들이

모두 유럽식 깨끗한 단독 주택들이다. 인적은 없지만 주위에 고급차가 있고

집들도 지은지 얼마 안된 듯 모두 깨끗해 보였다.

어떤 이는 양옥집을 어떤 이는 넓은 마당이 있는 전통한옥을 지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해 놓았다.

이 집들은 분명 모두 외지인이 소유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느 곳에서는 낡고 오래된 집이 높은 곳에 있고

그 아래로 좋은 집들을 지어 놓아 길을 걷가 보면 일부러 관심있게 보지 않는 한

좋은 집 두의 허름한 집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길가에 하트모양의 동백나무 두 그루에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처럼

빨간 동백꽃들이 숨어 있다.


길가 매화나무 밭에 아주머니 한 분이 밭일을 하고 계시기에 인사드리고

봄나물을 캐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밭매는 중이라 하신다.

작은 땅이라도 그냥 놀리지 않는 우리네 농부들은 참으로 억척스럽기만 하다.

이번 트레킹을 하면서도 그런 농부들의 손길들을 많이 보았다.

곧 봄이 오니 그 짜투리 땅에 무어라도 심어 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아래로 내려올 수록 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을은 조용하기만 한데 나무들이 가지 째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흙길이 세멘트길에서 아스팔트로 바뀌는 끝에

몇 사람들이 모여 땅을 측량하고 있다.

인사를 하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 있던 사람이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해 준다.

부산사람인데 이 곳에 펜션하나 지을려 한다고..

계곡 사이 흐르는 큰 하천이 물이 맑으니 이전부터 이 곳에

도시사람들이 많이 왔을 것이고 수요가 있으니 필요도 있으리라.

 

이런 한적한 길에 새로 지은 듯 카페도 하나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매화와 홍매화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고

농부는 올해의 농사를 위해 비료대신 밭에 불을 놓아 재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길가에 폭포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아주 작은 폭포가 흐르는데

그 곳마저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지 주위에 쓰레기가 어지럽다.


피아골 넓은 계곡 옆에 구멍가게는 아직 피아골 하천이 물이 차가워

행락객이 없어 한가하지만 본격적인 시즌이 오면 홀로 쉬고 있는

주인 아줌마도 무척 바쁠 것이다. 눈을 들어 멀리 보니 펜션들이 보인다.

 

계곡물은 깨끗하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얼기 설기 철로 만든

간이 사다리가 있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과감히 양말을 벗은 곳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남산교를 지나

건너편에서 피곤한 발을 쉬게 하기 위해 햇볕을 쪼인 것 뿐이다.

나는 오늘은 단지 걷기 위함일 뿐이다.

 

아주 천천히 산책하는 임산부를 낀 3명의 남녀 옆을 빠르게 지나

한참을 걸어 왔는데 양말 벗고 조금 쉬다 보니 금방 그 들이

내가 방금 지나와서 쉬고 있는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빠르게 걸으나 천천히 걸으나 시간대는 그다지 차이가 없음에

인생무상을 새삼 깨닫는다.

 

마을길로 들어가는 도로에 차량을 위한 도로표시가 도로는 반듯한데

일부러 구불 구불하게 만들어 놓아 차량이 조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 평도 마을 앞에 차가 다니는 큰 도로가 나왔다.

 

이 곳에서 부터 다시 산길로 올라가야 한다.

지나가다 보니 내가 오늘 민박을 정한 집 앞이 눈 앞에 있어

밖에 나가 있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배낭을 집 안에

잠시 두고 물과 스틱만 가지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지리산 둘레길 홈페이지에 이 곳에 민박하는 가정이 별로 없어

숙박시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길을 걸어 보니

펜션과 산장들이 많았다. 아마 둘레길 정책은 고급 숙박시설은

일부러 소개를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루 몇 십만원 하는 펜션에서 묵을려 하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펜션, 산장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도로 앞을 지나

아스팔트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배낭이 없으니 날라갈 것 같이 걸어가다가 급한 경사가

나오니 그것도 힘들다.

 

시야가 넓은 산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 곳에 전망이 좋은 곳마다

모두 펜션이 들어서 있다. 하다못해 커피도 팔고 점(占)도 보는 곳이 있다.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차량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는 줄 알았다.

때론 큰 통나무를 실은 트럭도 가파르게 산을 오르고 있고

택배트럭도 우체국 오토바이도 산길을 오르고 있다.

 

이 곳 언덕에는 펜션 뿐만이 아니라 한 눈에 보기에도 비싸게 보이는

개가 뛰어 놀고 있는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 개인 주택도 있어

생활의 여유로운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뚜렷이 보이는 고급주택이나 펜션들 사이로

다 쓰러져 가는 움막집들이 많다. 이미 삶을 터전을 그대로 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갔는지 낡은 주택은 대문도 흙 담장도 무너져 버렸다.

어떤 넓은 집은 철망으로 입구를 막아 놓았고 인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 쓰러져 가는 움막집이나 잘 지어진 주택 넘어로

지리산 높은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아무리 삶의 모습이 달라도 대자연 밑에는 그저 작은

존재라고 억지로 자위해 본다.

 

어디선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들린다.

점집 겸 카페에서 들리는 소리다. 

집 앞에 막대기가 가로 막혀 있는 것을 보니 주인은 출타 중이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끝이 없다.

고도상으로는 오늘 목적지인 당재의 높이가 약 200m에 불과한데

경사가 급하다 보니 더 높은 것 같이 힘들다.

 

그저 밋밋하게 보여졌을 산 언덕들이 모두 고급 주택들의

군락으로 가득 차 있어 그거라도 경치삼아 올라간다.

산을 올라가면서 이따 다시 내려올 때 다리가 아플 것을

생각하니 벌써 걱정된다.

 

당치마을에 있는 어느 집은 산 비탈에 나무데크를 만들어

그 곳에 장독대들을 놓고 벤치까지 만들어 놓아 전망대 겸

살림 저장 공간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끝없이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

전망 좋은 곳에서는 둘레길에서 만들어 놓은 듯

이제 막 설치된 벤치에 나무를 감쌌던 비닐조차 벗겨내지 못한 채

뎅그마니 놓여 있다.

 

하늘이 구름이 많아 진다. 그리고 색깔이 달라 진다.

얼굴에 차가운 습기가 느껴지며 약간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배낭없이 올라왔으니 우비도 없는데 비가 쏟아지면 큰일이다.

 

당치마을을 지나 어느 곳에서는 예술가가 개인 작업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이 높은 곳에 펜션이 있고

더 높이 올라가니 넓은 공간에 마을이 있다.

이 곳이 농평마을일 것이다.

그런데.. 길은 3갈래로 갈라지는데 이정표가 없다.

거리상으로도 거의 다 온 것 같으니 이제 당재 이정표만

찾고 인증사진만 찍으면 되는데 몇 번을 둘러 봐도

저 멀리 마을로 들어가서 물어 보지 않는 한

당재 종점을 찾지 못하겠기에 아무래도 올라오다가 이정표를

놓친 것 같기에 내려오며 길이 갈라지는 곳이 있나  보았는데도  

찿지 못하겠기에 둘레길 구례 안내센터에 전화해 보니

오늘은 월요일 휴무라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둘레길 이정표의 거리표기상으로는

목표에 거의 다 온 것 같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

내려가기로 하자.

 

그리고 길 끝에 와서 보니 도로가 끊긴 것을 보니

아마 아까 올라 올 때 도로를 따라 내려 오던 차들은

펜션에서 지내다 내려가는 차들일 것이라 생각해서

혹시 편히 내려가기 위해 지나가는 차를 기다려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트럭이 하나 지나가기에

엄지손을 치켜 들었더니 비탈길이라 세우기가 힘들었는지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한참 내려 오다가 마침 지나가는 SUV 차량이 나를 태워주기에

차에 오르니 백미러에 염주가 가득 걸려있다.

역시 자비를 베푸는 종교인이라 이런 친절을 베푸는구나 하고

고맙게 생각했다.

 

도로 옆 민박집에 들어가 인사드리고 저녁식사를 물어 보니

자신들이 먹는 된장국과 밥으로 간소하게 드릴테니

대신 식사비는 받지 않겠단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고 내겐 무언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아

혹시 고기를 구워 먹고 싶으니 살 곳을 알려 달라 했더니

나를 차에 태우고 달려 간 곳은 내가 오고 싶었던 화개장터였다.

 

오래 전 내가 성씨의 본이 하동이지만 하동이라는 곳을 가보지 못해

어느 날 혼자 훌쩍 하동을 찾아 나선 적이 있었고 화개장터도

찾아 가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의 가사같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 쪽은 경상도 저 쪽은 전라도라

닷새마다 장이 벌어지는 화개장터에서 만나기 위헤

강 위에 밧줄하나 매달고 밧줄을 끌며 배를 타고 오갔는데

이젠 그 곳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어

그런 낭만이 없어지고 5일장도 사라졌다 한다.

 

그리고 이전에 할머니들이 장날마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나온 시골냄새나는 농작물을 팔던 넓은 공간도

화개장터에 세워진 큰 빌딩들에 자리를 뺏겨 이젠 아주 작은

공간만 할머니들에게 남아 있다.

 

그야말로 요즘 도시의 문화공간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장 영향을 받는 곳이다.

 

화개장터가 노래 하나로 유명해지고 도심에서 구경꾼들이 모이고

시골 사람들이 덕분에 돈을 버는 것을 본 도시 사람들이

사람많이 몰리는 이 곳에 땅을 사서 작은 빌딩을 짓고

세를 주어 이득을 올리다 보니 할머니들 공간이 사라지고

혹시 그 곳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도 빌딩 주인이 임대료를

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곳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혹시 지리산 둘레길도 전문적으로 펜션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사업허가 없이 민박을 하는 마을 주민들이 둘레길 걷는 사람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민박을 못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하루 즐겁게 걷고는 저녁에 그런 알 수 없는 걱정에 빠져 버리듯

나도 장작불로 방을 따뜻하게 만든 작은 공간에서 잠에 푹 빠져 버렸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