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강원도 대간령 - 가을, 계곡물에서 만나다.

carmina 2016. 9. 20. 22:06



2016. 9. 20


추석이 지났는데도 아직 낮에도 선풍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더워

강화 나들길 화요도보팀이 주선한 강원도 대간령 트레킹에 나서면서

반팔옷을 입고 여벌옷도 반팔을 챙겼다가 대문을 나서며 마음을 바꾸어

반팔옷대신 긴팔 옷을 챙겼다. 거긴....강원도니까.. 설악산 줄기니까...


대간령. 몇 년전 가보았던 곳이다.

그러나 흔치 않은 기회인데 놓칠 수야 없지.

관광버스에 33명의 길벗들이 모였다.


강화도에서 온 사람들은 김포에서 버스를 타고

당산역, 사당역, 양재역을 들러 버스는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양재역에서 7시경 넘어 출발한 버스는 평일이고 외곽으로 가니

막히지 않고 달려 동홍천 IC에 8시 반 경 도착했다.

그리고 홍천강을 남북으로 잘라버리는 38선을 넘어

진부령의 흘리까지 가는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나치며 본 인제읍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작은 읍에 불과했던 곳이 이젠 제법 도시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도로 변에 도심에서나 볼 수 있던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커다란 호텔도 하나 생겼다.


버스에서 내려 흘리1마을을 지나 바로 숲으로 들어서는데

마을에서부터 작은 흰강아지 한 마리가 동행한다.

숲으로 들어가면 돌아갈 줄 알았던 강아지는 길벗들의 바지에

얼굴을 비벼가며 같이 걷고 있다.


오늘 하늘 참 파랗다.

서울하늘도 오늘 이럴까?

뭉게구름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보통 논이 많은 벌판 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닐 하우스가

이젠 이곳에서도 많이 보인다. 무엇을 재배하는지 들여다보니

빨간 피망이 주렁 주렁 열려 있다.

어느 새 국내의 모든 과일이 지방 색이 없어진 것 같다.

하늘만 바라보다가 망치는 농사보다는 이런 작물이라도 키워야 하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


지난 주 대만을 강타한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인지 계곡에 물이 가득하다.

평소같으면 그냥 계곡물이 있어도 바위를 딛고 걸을 수 있는데 오늘은

물이 많아 모두 조심스럽다.


숲으로 들어간다.

숲과 계곡물 이외 보이는 것은 작은 하늘 뿐이다.

강화 나들길에서 볼 수 없었던 야생화들이 많아

길벗들은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 속에 곱게 접어 넣느라 여념이 없다.


그 훤하던 하늘도 이제 나무의 공간보다 더 적게 보일때 쯤

어둡지도 않은데 길을 잃었다.

아마 여름내 자란 풀들과 나뭇가지들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을

덮어 놓았나 보다.

그래도 가이드가 제대로 길을 찾아 나서니 계곡물이 막아선다.

서로의 도움이 없이는 건너지 못할 그 계곡에 아까부터 따라오던

강아지도 조심스레 바위를 타고 건너다 풍덩 빠져 버렸다.

물살은 빠르고 강아지는 당황했다. 바위로 기어 오르느라 안간힘을 쓴다.

내가 스틱으로 밀어서 강아지를 조금 얕은 곳으로 가게 했으나

그 곳에서 강아지는 더욱 당황하여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기에

스틱을 배가운데로 넣어 조금 들어 올린 뒤 목줄을 잡아 들어 올려 주었더니

뒤도 안 보고 도망가 버려 그 뒤로는 따라 오지 않았다.


숲에 도토리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여자들은 모두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다. 벌써 주머니가 불룩하고 비닐이 터질 듯 했다.

계곡 옆길은 조금 위험할 정도로 흙이 밀려나고 있어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계곡을 계속 따라가면 좋으련만

어느 계곡을 건너갈 때는 어쩔 수 없이 모두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조심스럽게 건너야 했다.


숲이 너무 우거져 앞서가는 일행들이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이젠 계곡물이 무릎까지 잡아 먹고 있다.

그리고 미안했던지 하얀 버섯들이 나 잡아 먹으라고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다 진짜 잡아 먹힐라..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은 마치 폭포같은 소리가 들린다.

내 몸을 서서히 적셔 가고 있는 것이 습한 대지와

이끼낀 바위와 계곡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가지들이 뿜어내는

습기인 줄 알았는데 온 몸에 흐르는 땀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땀은 오래 걸어서나 더워서 흐르는 것이 아니고

발밑을 조심하느라 긴장해서 흐르는 땀 같았다.


처음 한 번 신발을 벗을 때는 한 번 뿐이겠지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또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계곡을 만났을 때는

가이드가 아쿠아 슈즈를 가지고 오라는 말을 미리 못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다 3번째 신발을 벗었을 때는 이런 기회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되어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굳이 신발을 벗지 않아도 건널 수 있는 계곡물의 바위를 건널 때도

여지없이 한 두 명은 물에 발을 빠트렸다.

어떤 이는 아예 포기했는지 그냥 신발을 신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하리라.


모두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원래 새이령까지 올라가기로 되어있던 계획이

시간이 너무 늦어 일부만 올라가고 나머지는 속칭 마장터라는 곳의 

골짜기에 허름한 집을 지어 사는 독거노인의 움막집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움막으로 들어가는 길은 계곡위에 놓여진 외나무 다리.

내 입에서 노래가 흘렀다.

'외나무 다리 건너가면 우리가 찾던 그곳일까

흰구름 타고 오고가는 구름아 구름아 묻는다'


그 집앞에 주인과 손님 몇 명이 능이버섯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잠은 어디서 자는지 물어보니 허름한 변소 같은 곳을 가리키며 열어보란다.

나무를 때는 부엌은 어릴 때 보던 시골집 같았고 같은 크기로 잘라 놓은

장작들이 높이 쌓여 있었다.

그 곳 마당에 떨어져 있는 잣방울을 하나 까보니 무수히 많은 잣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잣을 돌로 깨어 먹느라 바빴다.


좁은 하늘 밑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참을 쉬다가

하산하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고 평화스러웠다.

비록 가파른 언덕도 있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고

그 언덕위에는 누군가 산신령께 제사를 지내는 듯

나무 밑에 작은 제단을 만들고 향불을 피우고 있었다.


좁은 길에 문득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동물의 배설물을 둥그렇게 만들어 옮기고 있는 쇠똥구리들의 무리.

남의 작업장에 무단 침입한 것 같아 조심스럽게 옆길로 돌아서 왔다.

 

깊은 산중이다 보니 우리 일행 외에 다른 사람들이 안보이다가

문득 인사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니 등산객 차림이 아닌 것을 보니

산에서 약초를 캐는 사람들인 것 같다.


천천히 걷고 싶은 숲길.

사람들은 빠르게 걸었다.

무심코 그 뒤를 따라 가다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혼자 떨어져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계곡물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아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보니 작은 쉬리들이 물 속에 놀고 있다가

내 그림자에 놀라 급히 물속 바위 속으로 사라진다.

조금 멀찌기 앉아 다시 숨도 안쉬고 있으니 다시 물 한가운데로 나와

천천히 가을을 즐기고 있다.

나도 천천히 가을을 즐기고 싶다.

긴 긴 여름. 그리고 곧 다가올 겨울을 늦추기 위해서라도

이 가을은 천천히 즐겨야 함이 마땅하다.


그냥 강화 나들길처럼 편한길이려니 하고 왔던 길벗 한 명이

다리에 심한 고통을 느껴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많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점심으로 먹은 황태와 옥수수막걸리는 더 맛있었다.


사람들은 피곤했던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모두 커텐을 내리고 잠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서서히 지는 초가을 햇빛을 눈 속에 오래 담아 두고 싶어

팔로 턱을 괴어 오래 오래 바라보며 왔다.

맑은 가을 하늘에 커다란 흰 새 몇 마리가 떠 있고

아주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입을 뻐꿈거리고 있다.


사당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안에서도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올 여름 너무 더워 집안에서만 지냈던 생활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계곡에서 만난  가을을 핑계삼아 이런 숲을 더 자주 찾아야겠다.


가을아...반갑다.

네 품에 오래 있고 싶으니 나를 힘껏 안어다오..

겨울이 오기 전에 네 따스한 가을 햇살을 저축해 두어야겠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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