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1일차 (생장 - 론세스바예스), 26.5 Km

carmina 2016. 6. 6. 16:26



2016. 4. 19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밤새 누군가 기침을 했고, 코를 골고, 2층 철침대에서 들리는

삐걱거리는 쇳소리를 들으며 자다가 깨어 새벽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별을 보았으나 구름이 많아 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침 6시경에서 부터 사람들은 일어나 어둠속에서 작은 랜턴에 의지해

짐을 챙기고 있다. 나도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7시경에 알베르게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준비한 빵과 잼, 치즈 그리고 걸쭉한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 후 길을 나서니

어제 같이 이 곳에 왔던 아주머니 한 분이 짐은 보내고

점심으로 먹을 것만 싸들고는 길을 잘 모르니 나랑 같이 나가겠단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짐을 모두 택배로 오늘의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로 보내고 간편한 차림이었다.


나무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공기가 아직 쌀쌀하지만 싱그럽다.

헤드 랜턴이 있긴 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길이 보였다.

작은 개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나처럼 일찍 출발한 두 명의 덴마크인들을 만나 부엔까미노로 인사하고

겨울철에 걷는 발카를로스로 우회하는 갈림길에서

처음으로 오리손으로 향하는 노란 화살표를 찾아 길을 걸었다.


언덕을 올라가다 뒤를 바라보니 붉게 물든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멀리 여명이 트는 곳은 구름이 많았지만 우리 걷고 있는 위의 하늘은

구름하나 없이 맑았다.

여명은 언덕을 오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멋있어 자꾸 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댔다.

 

날이 밝은 후 부터는 언덕에 펼쳐진 푸른 잔디와 그 사이에 예쁘게 자리 잡은

작은 집들과 양때들이 풀을 뜯는 아름다운 목장의 아침 모습에 빠져서

감탄을 하며 한참을 언덕을 오르다가 뒤를 바라보면 산 아래 펼쳐지는

계곡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모습에 또 넋이 빠져 버렸다.


길을 걷다가 덴마크 인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어제 공항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를

갈림길에 만났는데 배낭없이 서로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스틱을 하나씩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평생 저렇게 여행을 다녔는지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이 부부는 그 뒤에도 계속 이런 모습으로 다녔다.


가끔 앞에 보이는 언덕길은 길게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구비 구비 올라가고 있었고

소들이 있는 어느 목장앞에서 힘들어 잠깐 쉬고 다른 이들은 먼저 올라갔다.

문득 앉아 있는 옆 철조망 안에 작은 십자가가 하나 세워져 있기에 자세히 보니

누군가를 위한 묘를 대신하는 십자가였다. 길을 걷는 중 이런 십자가 묘가 자주 보였다.


소들은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풀을 뜯고 순례자들은 가끔 서서

길에서 처음 보는 목장의 새로움에 소들을 구경하며 가곤 했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그림자의 길이가 조금씩 작아질 때 쯤

산 아래 보이는 초원은 밝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웠다.

산을 이렇게 일부러 나무없이 가꾸어 놓은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나무가 없었을까? 이전 북구유럽 여행할 때 자주 보았던 전형적인

유럽의 농촌 풍경이 산 아래로 산 위로 펼쳐진다.


저 멀리 첩첩 산 중에 낮게 드리워져 있는 구룸의 모습들은 볼수록

더 신비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산으로 올라갈 수록 내가 쉬는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아침에 추워 껴 입었던

옷들을 하나씩 벗어내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친 온토 (Honto) 마을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카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경사는 기울기가 더 심해졌지만 멀리 아래로 사람들은 끝없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오고 또 지나친 사람들은 아득하게 멀리 올라가고 있었다.

문득 뒤를 바라보던 내 입에서 찬송이 흘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정말 아름다웠다.

한국의 산 모습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한국의 산은 나무가 대부분이지만

피레네 산은 초원이 거의 전부였다. 산 꼭대기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지만

차의 통행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끝없이 이 길을 지나갈텐데 지금 이 길은 온전히 순례자들의 몫이다.

통제를 하는 것일까? 어디에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운토 마을을 지나 약 1Km를 더 가니 알베르게가 있는 오리손 (Orisson)에

도착하니 먼저 지나 간 사람들이 다 그 곳에 모여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피레네 산을 한 번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은 이 곳에서 하루를 쉬고 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 곳은 달랑 건물 한 채 뿐이라 수용인원이 적어 예약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나도 배낭을 탁자가 있는 전망대에 내려 놓고 큰 잔에 든 맥주를 5유로를 주고

들고와 전망대 데크에 앉아 마셨다.

평상시 먹던 맥주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갈증이 해소 되는 것 같았다.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을 이용하고자 카페 안으로 들어가 줄을 섰더니

카페 주인이 나보고 여기 손님이 아니니 나보고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란다.

화장실 앞에 써 있는 스페인어가 대략 그런 뜻이었다. 손님만 이용하라.

어이가 없어 내게 맥주를 팔았던 아가씨에게 내가 손님임을 말해 달라 했더니

아가씨가 주인의 눈치를 보더니 얘기하기를 꺼린다.

내가 당신 앞에 빈 잔을 놓은 것 모르냐 했더니 여전히 대답을 못한다.

그래서 주인에게 내가 큰 소리 쳤다.

내가 맥주 한 잔을 5유로를 주고 마셨다. 나는 당연히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더니 그제서야 맥주가격을 알고 있으니 손님인 줄 인정하는 듯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주인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나가라며 소리치니

다른 순례자들은 화를 벌컥 내며 나가버렸다.


기분 나쁜 카페주인 행세에 얼른 일을 보고 언덕을 오르니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사람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일을 보는 모습이 보였다.

까미노는 어디에든 순례자를 위한 무료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는 여지없이 노란 화살표가 있었고

중간 중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던져놓아 만들어진 돌 무더기들이 보였다.

오리손을 지나고부터 경사가 다시 급해져서 더 힘들었다.

몇 km를 가파르게 올라가서야 경사가 완만해지고 힘든 부분이 지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먼길이라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걷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개 한마리가 사람들 속에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주인이 없는 개 같았다. 이 개는 이틀동안 순례자들을 따라 다니다가

3일 째 되는 날 비가 오고 알베르게 주인이 숙소로 들여 보내지 않으니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멀리 전방에 보이는 산 기슭에서 산불이 났는지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났다.

나무가 있는 산비탈이 아니라 풀들만 타기에 큰 불길은 보이지 않지만

풀들이 타는 것이 보였고 검은 부분이 점점 커지더니 산으로 올라갈수록

연기의 양이 줄었다.


어느 새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걸어가는 속도가 느리니 사람들이 모두 내 옆을 스쳐간다.

배낭을 등에 지는 대신 짐을 바퀴가 달린 배낭에 올려 놓은 채 천천히

길을 걷고 있는 외국인도 힘이 드는지 웃통을 다 벗어버리고 맨 몸으로 걷고 있었다.

그건 무례함일까? 자유일까?


내려다 보이는 언덕과 건너편 산이 너무 좋아 길가에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한참을 쉬웠다. 

완만한 경사를 한참 걸어가니 언덕 저편에 목동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는

하얀 비아코리 (Biakorri) 성모 마리아상이 반갑다. 배낭을 내려 놓고

마리아상쪽으로 가니 그 뒷편은 거의 낭떠러지다. 만약 안개가 끼어 있다면

호기심에 이 곳으로 왔다가 위험한 일을 당할 것 같다.

사람들은 성모상 근처에 옷들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이젠 다 올라왔다는 안도감인지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 말 한 마리가 마치 동상을 세워놓은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를 더 가니 말뚝에 처음으로 론세스바예스 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가벼워진다.

길가 잔디밭에 민들레 꽃 크기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노란화살표가 바닥에 있어 주울려 했으나

이 것도 이정표려니 하고 그냥 두었다. 누군가 잃어버린 기념 뱃지같았다.


조금 진행하니 길가 나무 울타리 안에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나도 그곳으로 가니 갑자기 스마트폰에서 문자가 쏟아진다. 외무부에서 국경을 지나면

자동적으로 보내주는 여행 주의 안내문자다. 그 지점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이다.

다시 뒤로 돌아 왔던 길을 조금 걸어가니 프랑스로 왔다고 문자가 다시 온다. 재미있다.

그 곳에서 몇 몇 한국 사람들이 모여 배낭에서 빵과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점심을 대신했다. 

점심을 먹다가 그만 내가 싸온 빵 포장지가 바람에 날려 언덕 아래로 휘익 도망간다.

급히 손을 뻗었지만 잡지 못했다. 이런 깨끗한 자연에 오점 하나를 남긴 것 같아 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어디에도 쓰레기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까마득한 언덕아래로 내가 아침부터 산을 오르며 뒤로 보아왔던 산들이 훨씬 더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언덕 길의 노면상태가 갑자기 튀어 나온 돌들로 거칠어졌다. 눈 앞에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들은 이제까지 내가 걸어 온 길에서 보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곳보다 높은 산 꼭대기에 눈이 덮여 있고 그런 산들이

첩첩이 이어져 있다. 설마 저 곳까지 가는 것은 아니겠지.


산 정상에서 평평하게 이어지는 메마른 흙길을 걸으며 주위의 나무들 높이가 낮은 것을 보고

이 곳에 바람이 강한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끝에 반가운 샘물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롤랑의 샘. 학창시절 배웠던 프랑스 역사에 나오는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이다.

롤랑이 스페인 군과 싸울 때 이 길을 가며 마셨다고 해서 롤랑의 샘이라 부른다.

물은 롤랑의 용맹처럼 버튼을 누를 때마다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나도 시원한 물을 마시고

이 곳까지 오며 다 말라버린 물병을 다시 가득 채웠다.  


이 곳을 지나면서부터 숲의 모습이 큰 아름드리 나무로 채워지고 언덕으로

그늘 진 곳에서 여지없이 아직 녹지 않은 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서는 마치 늪 처럼 신발이 낙엽속으로 쑤욱 들어가면서

습기가 느껴지고 낮은 등산화를 신었다면 양말이 젖을 정도였다.


원래 피레네 산맥이 겨울이나 날씨가 험한 날에는 위험한 곳이라

여기에서도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가 유명을 달리 했는지 길가에 돌로 만든 울타리에

십자가 묘비를 세우고 이름과 사망한 날짜를 새겨 놓았다.  

이러한 길가의 순례자의 십자가 묘비는 그 뒤로도 자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길을 걷기 전 유서를 써 놓고 오기도 한단다.

그 만큼 산 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기상악화로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많은 곳이 까미노 길이다.


길을 걷다가 길 옆에 가파른 언덕 앞에 나무로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은

사람의 추락을 방지하기위해서라기보다 동물들의 추락방지를 위한 것 같다.

까미노 길은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이다.

까미노 길 어디든 소나 말 그리고 염소들의 배설물이 널려 있고

어느 곳에서는 소 배설물이 너무 많이 순례자가 피할 수 없을 정도라 한다.

우연히 배설물이 말라 춤추는 사람의 모양으로 떨어진 것을 보기도 했다.


언덕이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멀리 멀리 보이는 곳에 또 다른 언덕이 있다.

그 곳에 오르기 전 작은 가옥 옆에서 앉아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어제 만난 제주도에서 온 두 아가씨 중 한 명이 친구가 많이 뒤쳐져 있다고

걱정하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나도 많이 늦었기에 일어나서 길가에 눈이

두텁게 쌓인 언덕을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50미터 정도마다 세워져 있는

나무 기둥을 매번 잡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러다가 정상에 올라가

아까 잠시 쉬었던 곳을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가씨가 혼자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여 조금 걱정되었으나 곧 따라 오겠지 하며

정상을 넘으니 그 곳이 바로 피레네 산의 정상인 레푀데르 기점이었다.

스위스에서 왔다는 두명의 아가씨가 나를 보고 부엔까미노 하며 인사를 건네며

이제 더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즐거워 한다.


이제부터는 가파를 내리막길이다.

그 길은 거칠어 돌이 튀어져 나와 있고 무릎에 무리가 갈 정도라

무척 조심스럽게 내려가야만 했다. 대개 산행 중 다리 관절의 이상은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에서 생기곤 한다.

가끔 그 언덕길을 산악자전거를 탄 순례자들이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곤 했다.


길은 곧 숲으로 이어지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형광색 노란 화살표를 찾는데 집중해야만 했다. 물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찾아가면

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믿을 수가 없으니 어디서든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꼭 노란 화살표를 찾기 전에는 섣불리 갈 방향을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든 시간이 많이 지나 곧 해가 지기 시작하면 숲이 어두워지고

아직도 그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아가씨가 너무 늦어

숲 사이 길을 제대로 찾아 올지 걱정되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거나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도와 줄 방법이 없어

잘 찾아 오겠지 하고 서둘러 내 길을 갔다.

길을 내려 가는 중 내 앞에 가는 사람도 내 뒤에 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해발 200m의 생장에서 시작한 길이 해발 1400m를 넘어 해발 950m 높이에 있는

론세스바예스까지 약 가파르게 내려가니 산 아래 또 다른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가 유명을 달리한 곳이라며 만들지 얼마 되지 않은 묘비가 있어

가슴이 섬뜩해졌다.


길이 끝나는 곳에 라라소나로 계속 진행하는 화살표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 곳이 오늘의 도착지이려니 하고 작은 개천을 건너

커다란 돌담 앞에 말처럼 생긴 전설의 동물과 사람의 동상이 있으나

알베르게 어디인지 찾을 수 없어 안내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잘 생긴 한국 청년이 내게 와서 알베르게가 어디냐고 묻지만 나도 모론다 했다.

그 후 이 청년하고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 나누어 준 알베르게 리스트에는 이 곳에는

콜레지알레 라는 곳 하나 밖에 없기에 어딘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알베르게려니 하고 돌아 다니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학교를 개조하여 알베르게로 만들었다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나이든 호스피탈레로들이 접수하러 들어가기 전에 배낭을

내려 놓고 신발을 신발장에 놓고 실내화로 갈아신으라며 안내해 준다.


미리 도착한 많은 순례자들이 벌써 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고 여기 저기

모여 담소하고 키친에서는 요리를 하거나 세탁장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 접수하고 저녁 식사금액이 포함된 비용을 내니 내게 3층에 있는

침대로 안내한다. 1층과 2층의 큰 방에 침대는 모두 이중 침대인데 3층에는

편하게 단층 침대고 내 자리는 맨 끝이었다. 이 곳에 모두 수용가능한 인원을

침대수로 계산해 보니 약 300명 정도인 것을 보니 하루에 까미노를 시작하는

사람이 대략 300명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 걸은 시간을 보니 코스 안내상으로는 대략 7시간 반 정도 거리라 하는데

나는 무려 9시간이 걸린 것 같다.그걸 보면서 내가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에 매일 이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샤워하고 간단하게 빨래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며

제주도 아가씨들이 도착했는지 알아 보니 모두 잘 왔다며 알려 준다.


저녁 식사는 튀긴 고기와 빵, 감자튀김 그리고 각 테이블마다 와인이 주어졌다.

어느 큰 테이블에 둘러 앉은 사람들이 모두 한국사람이라 단체로 왔음을 알았다.

그 들은 목소리가 컸기에 조용한 식당이 조금 시끄러웠다.


까미노 길 중 가장 힘든 코스를 넘었다는 안도감에 흰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