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일차 (론세스바예스 - 라라소나) 25 km

carmina 2016. 6. 6. 19:14


2016. 4. 20


새벽 6시경에 어디선가 명상음악이 들렸다.

아마 사람들에게 깨끗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라는 방송인 줄 알고

난 편하게 듣고 있는데 외국인 한 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더니

여기서 소리가 난다며 내 앞에 침대의 침낭을 뒤져 보더니 그 속에서

핸드폰을 찾아 냈다. 앞에 한국인 아가씨가 알람을 해 놓고

샤워장 간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넓은 방은 다시 조용해 졌지만 곧 잠을 깬 김에 준비를 하려는 듯

여기 저기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방의 중간 쯤에 머리가 하얀

외국인 여지가 자기 침대 옆에서 중국의 태극권 같은 기체조를 하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6시에 문을 연다 했더니 사람들이 문 앞에서

옹기 종기 모여 문열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문 열자 마자

몇 명이 어둠 속으로 힘차게 걸어 나갔다. 나도 그 들의 무리가 되었다.


호젓한 숲길로 시작되는 두번째 날 코스.

끝이 안보이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어제 숙소를 찾다가 만난 젊은 청년과

어제 길을 걷다가 만난 한국 아가씨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간다.

서로 모르는 사이같은데 밤새 눈이 의기투합했나 보다.

그 뒤로 알고보니 이 선남선녀가 서로 학벌이 좋고 성격도 참 좋았다.

또한 아가씨 2명이 더 합세해 4명이 그룹을 지어 까미노 끝까지 같이 했다. 


얼마 걷지 않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를 조금 맞으며 걷다가 빗방울이 굵어져 우비를 꺼내 입고

어제의 까미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의 집이 아름 다운 마을 길을 걸었다.

헤밍웨이가  도시의 소음을 피해 조용한 시골 마을인 이 곳 부르게테애서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 소설을 집필을 한 곳이다.


비가 오니 사람들 인적은 없고  이제 막 문을 연 길가 카페에서는

빗방울에 노란 백열등이 더 어울린다.

그 곳을 지나치며 아침을 여기서 먹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 같아 더 걷다가 먹기로 했다.


마을 길을 걷는데 마을 가운데 쯤 성당 옆 골목길로 화살표가 나있는데

앞서 가던 외국인이 그 곳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치기에 큰 소리로

'올라'하고 불렀지만 듣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다시 돌아오겠지.

마을 끝에 쯤 길가의 니꼴라스 성당의 모습이 다른 곳과 조금 달라 비를 맞으며

한참을 바라 보았다.


마을을 벗어나 농촌들이 있는 농기구가 있는 창고를 지나기도 하고

작은 목조다리를 건너 목초지사이의 넓은 길로 들어섰다. 

언덕길 옆에 넓은 초원에서 비를 맞으며 풀을 뜯는 말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길을 가다가 이정표는 앞으로 가라 하는데 나무 문이 닫혀 있기에 멈추어 서서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뒤를 따라 오던 외국인이 나무 문을

열고 진행한다. 알고보니 아마 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에스피날 마을을 지날 때 이곳 시골 마을의 성당모습과는 사뭇 다른 현대식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또 시선을 끌었다.

우리 나라 시골마을에 예쁘게 건축한 교회모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 까미노에 존재한다.


숲으로 들어가니 이끼가 가득한 울창한 나무들이 열병식을 하고 있는 사이를

걷는 기분이 무척 좋다. 그 숲 가운데 성모가 새겨진 비석이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꽃이 밑에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묘지같다. 나무들도 내가 국내에서 평소

길을 걸으며 보던 나무들과는 사뭇 다르다.


린조아인 마을을 지날 때 대문이 있는 곳 위에 집이 세워진 것을 의미하는

년도가 적혀 있는데 하나같이 건축한 지 400년이 넘은 집들이다. 까미노를

걸으며 느낀 것이 많은 집들이 외관은 몇 백년 째 그대로 둔채 내부만

현대 생활에 맞게 개조해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전통은 지키고 생활은 편하게

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기에 우비를 벗고 쉬고 있는데 지나던 프랑스 아줌마가

내게 말을 건다. 까미노를 걸으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면 좋은데

사람들이 단체들끼리만 이야기하며 걷고 있다고 불평한다.

나도 그 의견에 공감한다고 했다.

비록 언어의 의해는 조금씩 부족해 의사 전달이 어려워도 까미노를 통해 서로 다른

민족의 사람들끼리 하나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다. 그 아줌마는 나와 그 뒤로도

몇 번을 길에서 만나 이야기했다.


집집마다 대문이나 벽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어 카톨릭 신앙이 스페인 사람들의

모든 생활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집에서는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문 문고리와 이층 난간에 등산화와 배낭들을 얼기 설기 걸어 놓아 까미노의

중요성을 보여줄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하는 우리네 가정에 아침이면 우유가 놓여 있듯, 이 곳에서 대문에

작은 주머니가 있어 배달하는 사람들이 긴 바겟트 빵을 그곳에 넣는다.


여느 유럽의 모습들처럼 까미노 중의 많은 마을들은 마을의 한 귀퉁이나 멀지 않은 곳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거의 전국민이 카톨릭 신자인지라 모든 묘비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내세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다.


 길가 한 모퉁이에 나무가지로 쌓여진 무덤 위에 작은 십자가가 있어 가만히 보니

64세의 어느 일본인 순례자의 무덤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심장마비같은

급성 장애로 사망하는 예가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들은 이 곳에 온다.


나무 이끼는 공기 청정지역에 주로 생기는데 내가 걸은 까미노의 길들은 거의 100% 공기

청정지역인지라 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이끼가 온 나무에 가득하다.


마을과 마을사이가 길어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힘든 거리일 때는 가끔 중간 쯤에

간이 매점이 서기도 한다. 이 곳에서 길거리에 차를 개조한 간이 매점이 힘든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례자가 며칠에 까미노를 걸을지 도와주는 까미노 어플이 있다. 

이 어플을 사용하고 30일에서 35일 사이 일정을 스스로 판단해 정해 놓으면

날짜에 맞게 하루 걷는 거리와 어느 마을에 묵어야 하는지 알려 준다.

나는 우선 32일로 셋업해 놓았다. 대개 2번째 날은 수비리에서 묵는데

오늘은 어플이 나보고 라라소나까지 가라한다.


라라소나까지 가는 길에 마주 오는 중년의 순례자들이 자주 보였다. 거의 모두 배낭없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기에 부엔 까미노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까미노를 걷는 것이

아니고 운동을 하는 것이라 한다.  그 중 맨 뒤에 오는 아저씨가 노래를 크게 부르며

지나가기에 나랑 같이 하자 하고 붙잡고 얼른 멕시코 노래인 'Cielito Lindo' 했더니

금방 알고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기에 나와 같이 이중창을 했다.

나도 지난 해 우리 합창단에서 이 노래를 공연했기에 가사는 외우고 있었다.


Ay, ay, ay, ay,
Canta y no llores,
Porque cantando se alegran,
cielito lindo, los corazones


그 스페인 아저씨가 손을 들어 크게 손바닥을 마주치고 헤어졌다.


혼자 걷고 있는 여자에게 국적을 물어 보니 오스트리아인이고

할슈타트에 산다고 한다. 내가 모짜르트를 좋아하고 스마트폰에서

모짜르트 음악만 종일 나오는 어플을 다운 받아 늘 듣고 있다 했더니

나를 이상하게 보기에 모짜르트라고 몇 번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럴 수 가 있나?  어쨋든 이 아가씨는 그 뒤로도 길과 숙소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혼자

다니는것 같기에 일부러 스쳐 지나가며 의례적인 인사만 주고 받았다.  


길을 걷다가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부모가 아들과 함께 잠깐 시간내서 왔단다.

수비리 마을로 들어가는 아치형 돌다리 아래 맑은 물이 흐르고

몇 몇 순례자들이 물가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아직 문을 연 알베르게가

없는지 사람들이 배낭을 옆에 둔 채 공터에 앉아 쉬고 있다. 

나는 한인 가족들과 함께 그 곳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식사 후 그들은 돌아가고 나는 수비리를 지나 라라소냐가는 길로 들어섰는데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한다. 작은 마을의 정자에서 잠시 쉬며 비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비가 계속될 것 같아 다시 우비를 뒤집어 쓰고 길을 걸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숲길에 비가 계속오니 빗길을 피할 수가 없다.

옆에 개울은 소리내어 흘러가고 나무가지들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문득 앞에 오던 우산 쓴 중년의 외국인이 손에 가위를 들고 튀어 나온 가지를

자르며 지나간다. 이것도 자원봉사의 일종인가?


약 4km를 걸어 라라소냐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접수를 기다리는데

어제 피레네 산을 오를 때 만났던 개가 비를 쫄딱 맞고 털이 비에 젖은 채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개를 보살피는 사람도 없고 알베르게 주인은 개가 사무실로 들어 오지 못하게

막아 그 이후 개를 보지 못했다.


이 알베르게는 건물이 2동으로 운영하는 듯 늦게 도착한 우리는 별도로

만들어진 건물에 침대를 제공했다. 그 곳으로 가니 와이파이가 안되어 불편했고

키친도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와서 이용해야만 했다.


씻고 빨래하고 나니 비가 개어 인근에 있는 한국말을 하기 좋아하는

뚱뚱한 아저씨가 있는 마트에 가서 소세지와 계란 등 먹을 것을 사고

와인도 한 병 사오고 서비스로 주는 감자 2 알도 얻어와  

간단히 상을 차려 먹다가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하는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위기가 되어 서로 가지고 있는 와인을 같이 나누며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며 지냈다.


비가 와 눅눅한 침소는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모두 안에 걸어 더욱 습했다.

그러면 어떠랴. 고단한 몸을 누일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