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19일차 (레온 - 산 마르틴)

carmina 2016. 6. 13. 11:23



2016. 5. 7


겨우 5유로를 숙박료로 지불했을 뿐인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당 알베르게이다 보니

지난 번 코센토의 산타마리아 성당에서는 저녁에 스프와 빵을 제공하더니

이 곳에서는 아침에 빵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유명 관광지이고 대도시라 길거리에 지난 밤 불금에

즐겼던 잔해물등과 토사물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비는 안오지만 지난 밤 내린 비로 새벽거리는 

가로등의 불빛이 도로에 은은한 빛이 반사되어

아늑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까미노 이정표는 도시의 유명 관광지를 휘휘 돌아가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지 자꾸 길의 방향을 꺽어 가며 걸었다.

대성당 앞을 지나고 또 다른 성당 앞을 지나,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는 광장을 지나고 어느 순례자가 지쳐 신을 벗은 채

손을 단정히 모으고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동상 앞에서

그 순례자의 차디 찬 손등을 만져 주었다.

다리를 건너 도심을 빠져 나가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주말이라 차가 한산해서 걷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길가에 이상하게 다각형으로 지은 건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레온에 가면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이 있어

찾아 본다는 것을 비가 오느라 여유가 없었던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비가 계속 내려 강폭이 넓은 베르네스가 강물은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다리 밑에 낙차가 큰 곳이 있어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해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지난 며칠간 대평원을 걸을 때는 아침에도 추운지 몰랐는데

비가 오니 손이 시려워 얼마 전 사 둔 털실장갑이 아주 고마왔다.

털실장갑을 7유로를 주고 산 뒤로 날씨가 따뜻해 져서 괜히 샀나 하고 후회했었다.


어제 이틀치를 한 번에 걸어서인지 무릎에 통증이 온다.

그 때마다 걷는 속도를 조금씩 줄였더니 통증이 금방 사라졌다.

도심이 끝나는 곳에 있는 낮은 오르막을 걷는데 눈 앞에

이상한 토굴집들이 보였다. 언덕의 흙을 그대로 이용한 채

집과 언덕이 하나가 되게 집을 지었다. 그러니까 언덕 기슭에

집이 들어간 셈이다. 굴뚝도 땅속에서 솟아 오른 것처럼 보였다.

저런 곳에 살면 완벽한 방수와 방충등의 조치가 해결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우풍은 없을 것 같고 비가 많이 오면 위의

흙이 쓸려 내려와서 입구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레온의 도시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의 첨탑이 유난히 뚜렷하고 그다지 높은 건물 없이

중세형 건물들이 많아 역사가 깊은 도시임을 멀리서 보니 뚜렷하게 알겠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내 옆을 스쳐가는 이가 배낭을 메고 뛰어 가고 있다.

혹시 저 사람도 순례자? 이제껏 뛰어서 가는 사람은 며칠 전 이태리의

팔레리아가 아침에 기분이 좋은지 배낭메고 거리를 잠깐 뛰어가는 것을

본 뒤로 본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은 배낭이 조금 가벼운 것을 보니

작심하고 뛰어 가는 것 같다. 만약 동네 사람이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굳이 배낭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언덕 위로 올라가니 다시 차도가 이어지고 직장시절 익히 듣던 이름의 스페인의

정유회사 브랜드의 주유소가 있어 반가움에 주유소 편의점에 들어가 오렌지 쥬스를

하나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길가 잔디가 있는 공터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순례자의 모습을 예쁘게 만들어 놓아

길을 가는 이들 모두 카메라를 그 곳에 들이댔다. 고속 도로를 따라가는 비탈길에

흙바닥이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 조심 조심 곁길로

가다가 앞에 이어지는 길에 이런 진흙탕길이 보이니 순례자들이 도무지

걷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도로 옆 철조망을 넘어 위험하지만 도로 옆의

작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정표는 없지만 그 길을 잘 아는 듯한 사람들이

저 앞에 도로를 따라 걷고 있기에 나도 무작정 따라갔다.


걸으며 까미노 길을 보니 진흙탕길로 간 사람들은 길을 못 걸으니 비탈 언덕길의

잔디밭 위로 간신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쨋든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차들도

사람들이 걸으니 속도를 줄여 간신히 제 코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물 웅덩이와 진흙탕 길이 많아 참 힘든 길이다.

만약 발목까지 덮지 않은 트레킹화를 신었다면 아마 신발이 흙 속에 파묻힌 채

발만 빠져 나와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도로 옆 멋진 이층 건물의 사무실이 있었다. 간판을 보니 여성용품 판매를 위한

회사인 것 같은데 벽이 없이 전면이 온퉁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무실 집기까지 고스란히 밖에서도 보였다.  


무너진 성당의 종탑에 역시 황새들이 집을 짓고 있는

작은 마을 앞에 벤치가 있기에 쉬고 있는데 10m 전방 쯤에 누군가

자기 집 앞에 순례자를 위한 간식을 바구니에 담아 창문 틀에 걸어 놓고

과일, 과자, 땅콩 그리고 사탕을 제공하며 바라는 것은 방명록에

한 마디 인사를 쓰고 스탬프를 찍어가라는 부탁 뿐이었다.


내가 가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창문으로 주인이 슬그머니 나를

바라 보고 있기에 고맙다며 몇 개 집어 들고 벤치로 돌아와 먹고는

그 분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고자 선물을 드리고자 창문을 두드렸으나

방에 없는 듯 답변이 없기에 대문 바닥 틈으로 집어넣으려 해도

둔턱이 있는 듯 들어가지 않아 고민하는데 지나가던 파르코가

우체통에 넣으라며 알려 주기에 그 곳에 넣으니 파르코가

나와 합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기뻐하며 손바닥을 서로 마주쳤다.

덕분에 인근 카페에 들어가 한 잔 할려던 생각을 접고 그냥 지나쳤다.


한적한 길가 중간 중간에 토굴같은 것이 보여 혹시 와인저장고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손을 댄지 오래된 것으로 보아 아마 예전의 순례자를 위한

간이 시설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혹시 이전에 문둥병자가 살던 곳은 아닐까?


걷기 너무 불편해 레온에서 약 21km 지점에 있는 마을 비야단고스 델 파라모에서

하루 쉴까도 생각하며 까미노 길의 한 블록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데 얼굴을 익히 아는 외국 순례자들이 우르르 밀려들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오늘 종일 한국인 순례자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젠 완전히 그 들과 하루차가 벌어졌다. 오히려 편했다.


식사하고 나니 발이 편해져 이곳에서 머물까 하던 생각을 접고 다시 걸었다.

문득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비록 다 수확해서 밑둥만 남긴 상태이지만 밭에 너저분하게 있는 것들이

모두 옥수수였다. 며칠 전 길에서 떨어진 옥수수를 보며 그 때까지는 한번도

옥수수밭을 보지 못했는데 혹시 누군가 가져와서 먹은 것일까 하고 궁금했었다.

끝없는 밀밭처럼 이곳도 끝없는 옥수수밭이 이어졌다. 참 거대한 농장이다.

길가 커다란 나무 숲에는 나무들이 흔들릴 정도로 새들이 떼로 몰려와 앉았다.

아마 옥수수가 있어서 새들이 많은 것인지...


산 마르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알베르게가 있었지만 마을과 거리가

멀어 한참을 더 걷다가 찾아 들어간 카페를 겸한 공립알베르게인 산타 아나에 접수할려고

기다리다가 여자 주인의 말투가 상냥하지 않아 그냥 나와 버렸다.

나중에 어느 한국 사람에게 들으니 그 곳은 밤에 너무 추워 혼났다 한다.


다른 알베르게에 들어가 접수하는데 이번에는 여자주인이 레게 머리에다가

얼굴에 몇 개의 피어싱을 하고 있어 조금 거부감이 있었지만 주방이 있고

침대사이도 여유공간이 많아 마음에 들었다.


걷는 내내 우중충하고 안좋던 날씨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좋아져

어제 밀린 빨래를 하니 서둘러 하고 잠시 쉬며 마트에 다녀온 사이

다 말라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처음 보는 한국인 부부가 쌀이 있다며 밥을 하고 나는

파스타를 만들어 서로 각각 사온 와인 한 병씩을 오랜만에 메뉴가 좋아

기분좋게 다 마셔 버렸다. 카트를 끌고 다니는 프랑스인이 주방에 와 있기에

와인 한 잔을 권했더니 자기는 술 안마신다며 와인을 들고는

병 입구 부분을 코로 냄새를 맡는데 양쪽 코에 번갈아 갖다 대며

와인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하는건가?


어쨋든 지난 달 15일 한국을 떠나 온 이래 비록 압력솥으로 지은 밥은

아니지만 냄비로 지은 밥 다운 밥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그날 한적한 알베르게에서 어제와는 다르게 편하게 잠을 잤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