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6일차 (트리아카스텔라 - 사리아)

carmina 2016. 6. 14. 17:50



2016. 5. 14


전 직장에서 스페인에서 몇 년간 부인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 직원이

한국에 돌아와 본사 근무하는데 부인이 자꾸 스페인 가서 살자고

부추긴단다. 비록 스페인의 시골마을만 다니긴 했지만

참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욕심부리지 않는

모습들이 부러웠다.

 

간밤에 자면서 내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날까봐 양치질을 오래 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히터를 꺼 버리는 바람에 빨래는 결국 다 말리지 못했다.

밤새 이층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에 잠도 설쳤다.


오늘은 큰 도시 사리아까지 약 19km 정도만 걷기에 아침에 여유 좀 부렸다.

트리아스텔라에서 사리아로 가는 까미노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산실을 거쳐 그다지 높지 않은 산과 숲을 거쳐 가는 오른편 코스와

비록 26km 정도로 길은 멀지만 카톨릭교인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수도원이 있는

왼편코스가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로 포장된 길이라 자연미는 없다.


트리아스텔라를 나온 대부분의 순례자는 산실 방향으로 걸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새소리는 참 많이 들렸다.

작은 개울이 있는 다리를 건너 산으로 올라간다.

지나치는 작은 마을이 있지만 인적은 없다.


이 길이 이제까지 까미노의 다른 길과 사뭇 다르다.

좁은 숲길로 올라가는 주위의 나무들이 얼마나 이끼가 많이 끼었는지

거의 괴기 영화 속 풍경 수준이다. 가끔 잘려진 나무도 어둠 속에서 봤다면

겁을 낼 정도로 이상했고 대개의 나무들의 밑둥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마치

괴기 영화에 나오는 식물들 같았다.


언덕 중간쯤에 가리비 모형도 크고 급수대 크기도 큰 저수조가 있는데 그 곳도

역시 오래되어 마시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이 안 다녀서일까 아니면 햇빛이

없이 늘 그늘 속에서만 있어 그런 것일까?


오른 쪽 무릎에 또 통증이 왔다. 산실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길에

천천히 한참 걸으니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져 버렸다. 초기에 올라가는 길에

한 사람을 추월한 이후 산실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경사는 거의 두시간 동안

이어졌다. 숲길에 빗물 웅덩이를 피하느라 조심스럽게 걷고 가파른 언덕에서

멈추어 쉬기를 몇 번을 했다.   


혹시나 산실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문을 연 카페가 없었다.

산실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그 때부터 길이 편해졌다. 그러나 숲길에 물이 많이 고여

어떤 곳은 길 옆 돌 담장으로 올라가 걸어야만 했다.

이 곳은 목축을 주로 하는 듯 왼쪽 언덕은 푸른 초원에 거의 모두 돌담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가축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 같다.

돌담이 끊긴 곳에서는 전선 코일로 해 놓고 전기가 흐른다는 경고판이 있었다.

아마 그런 곳을 통해 가축을 이동시키는 것 같다.


간이 쉼터가 있지만 비가 오니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내려와 순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어떤 마을 주민이

집의 공터에 셀프 카페를 만들어 놓았다. 비록 주변은 조금

지저분한 환경이었지만 적당히 앉을 자리도 있었다.


빵과 바나나, 오렌지, 사과, 서양배, 딸기, 포도 등과

몇 종류의 쥬스, 밀크, 보온병 올리브오일 그리고 잼까지..

접시를 몇 개 준비해 알아서 먹으라 하고 작은 칠판에 이렇게 썼다.


'당신의 마음을 따르세요 그것이 당신의 진실한 나침반이니까요.'


나도 빵과 과일 몇 개를 집어 먹고 그릇을 씻어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내 접시에 놓았다. 이제 요기는 한 셈이다.

다른 순례자도 도착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숲길을 한참 걸었다. 평소 아침을 먹는 카페에서 화장실을 꼭 가곤 했는데

오늘은 그럴만한 장소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길가 숲속에서 용변을 해결해야만 했다.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길에 소 배설물이 무척 많은데 왜 파리가 없을까?

지나는 마을마다 축사 옆을 지날 때 고약한 냄새가 지독한데 파리가 없다.


이어지는 길은 끝없는 초원에 소들이 한가롭게 비를 맞으며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고

소방울의 조금 둔탁한 울림 소리가 좋다. 비가 오지만 질퍽한 길이 이어지지 않아 좋고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이 좋고 넓은 초원에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정답게 서있는 모습은 흡사 가족의 모습같이 좋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사리아인지 좋은 집들이 보인다. 이제 저 정도 멀리 있는 것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한국에 있으면 당연히 차를 몰고 가야 할 거리도

이 곳에서는 모두 걸어서 가야만 하니 그저 그러려니 한다.


핀틴 마을 이후 알베르게가 안 보이다가

사리아 전의 산 마메데 마을에 알베르게가 보였다.

마을 초입에 넓은 마당을 가진 알베르게에 기아 SOUL차가 주차되어 있어

눈길을 끓었다.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은 잔디에 쉴 수 있고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 놓아 순례자들이 오랜만에 실컷 여유를 부릴 것 같다.


이제는 사리아까지 편한 길만 남았다.

사람들 걸음이 여유로웠다. 비록 신발이나 바지 하단은 비에 젖고

흙탕물이 튀겨 볼품없지만 비가 와도 어깨를 피고 걷는 모습이 보인다.

푸른 목장이 이어지고 커다란 소나무 밭을 지난다.


사리아는 큰 도시라 캠핑을 겸한 레스토랑이 있고 마을의 집도 넓직하다.

어느 저택 마당에 기둥을 하나 세웠는데 그 기둥 위헤 황새가 집을 지어

완전 독채 무임 전세가 되었다. 일부러 황새를 위해 저렇게 만들었을까?


사리아로 들어가니 온 마을이 공원같이 아름답고 각종 벽화를 그려 놓았다.

마을의 다리 및 하천에는 오리가 놀고 있고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목재 다리도 놓여 있다.

사리아에 가까이 오니 이제 곧 산티아고에 도착하겠구나 하는 벅찬 마음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알베르게를 예약해서 가는 적이 없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대성당이 어디 있느냐고만 물었다. 대성당 근처에는 반드시

공립알베르게와 사설알베르게 많을테니 그 곳만 찾으면 된다.

대성당이 있는 언덕을 올라 가다가 문득 어느 알베르게에 수건 포함 10유로라는

홍보 간판이 내 욕심을 자극했다.


수건을 제공한다고?

까미노 기간 내내 폭 한 뼘 정도 길이 60cm 정도 되는 스포츠 타월을 가지고

좁은 공간에서 샤워 후 물기를 닦아 내고 타월을 짜서 다시 닦아 내도 완벽하게

닦이지 않아 옷을 입을 때 습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10 유로를 주면

큰 타월을 빌려 준다는 말에 그냥 다른 생각 안하고 체크인 했다.

그리고 가능한 빨래를 말려야 하니 히터를 계속 틀어 달라 했다.

4인용 방이니 그 조건이면 10유로가 비싼 금액이 아니다.

사리아의 다른 알베르게들은 거의 7유로부터 10유로 정도였다.


샤워 후 큰 타월로 몸을 씻어내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 작은 행복을 어느 누가 알까?

낮부터 따뜻하게 히터를 틀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누가 알까?


평소 자주 보이던 두 명의 여자 순례객도 이 곳으로 들어 왔는데

그 들은 사리아에서 왼 편길로 걸었는데 점심도 못 먹고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어느 독일인 두 명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마을을 거닐다가 팔레리아 일행을 만났는데 그들은 더 걸어서

30일 예정으로 까미노를 끝내고 산티아고에서 3일을 지낼 예정이니

그 곳에서 보자며 마을을 지나갔다.


폰세바돈에서 노래를 같이 부른 이태리인 부부가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와 한다.

그러면서 그날 같이 지낸 캐나다인 브루스를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이 의사라 도움 좀 받을까 했는데 못 찾겠단다.

길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 부부가 레온부터 걷기 시작했다며 알베르게를 찾고 있다.


마을에 경찰서 있는 것이 신기했고 알베르게마다 여러가지 혜택들을

밖에 써 놓아 도시의 알베르게답게 돈을 벌려는 욕심이 많았다.


저녁에 파스타를 사서 먹고는 양이 많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 아침

먹을까 했는데 아침에 전자레인지로 데워도 맛이 없어 버렸다.


밤 늦게까지 독일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