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7일차 (사리아 - 포르토마린)

carmina 2016. 6. 14. 22:10


2016. 5. 15


만약 까미노를 부부와 같이 걸으며 따로 방을 가질 경우

혹은 혼자 걸으며 알베르게에서 불편한 다인실을 이용하지 않고

호텔처럼 개인방을 원할 경우 비용은 얼마나 될까?

사리아에서는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알베르게들이 모두

그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혼자 독방을 사용할 경우는 30유로

침대 두개가 있는 방을 원할 경우 35유로


아마 다른 도시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대개 비슷할 것이다.


아침에 스파게티를 먹다가 버리고 대문을 살짝 열고 나와 길을 걷는데

이제까지 못 보던 얼굴들이 단체로 나와 길을 걷고 있다.

한 팀은 배낭도 마치 소풍갈 때 사용하는 작은 색을 메었고

한 팀은 배낭이나 옷차림을 볼 때 이제까지 까미노를 걸은 팀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사리아라는 도시는 유난히 도시의 여기 저기에 '사리아'임을 강조했다.

길가의 문장에서도 보듯이 사리아는 알폰소 9세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까미노의 큰 도시를 걸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 여긴 도시의 모습도 있고 

시골의 모습도 있는 중간 얼치기 도시다. 차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도시에 모여 살지만 불과 20~30분만 걸으면 전원생활이 가능한 곳,

또한 농사나 목축업을 하는 이웃들이 존재하는 곳.

아마 이보다 더 큰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가면 그렇지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까미노의 길들은 도시와 시골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도심의 집 옆에 망아지가 묶여 있다면 대충 이해가 가능하다.


알폰소 기념비가 많은 성당 앞길과 중앙로를 지나 조금 걸으니 금방 숲길이 나왔다.

숲길은 곧 철길과 만나고 까미노는 철길을 건넌다.

이 길을 넘어가면 수없이 많은 괴목을 만난다. 한국에서의 괴목은 죽은 나무이지만

이 곳의 괴목은 모두 살아 있는 나무다. 어떻게 나무가 이렇게 자랄까?

나무의 밑둥이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완전히 폭탄 맞은 듯이 처참하다.

그런 나무들이 조금 자라다가 그 위에서는 작은 가지를 뻗고 있을 뿐이고

산더미같이 큰 나무가 밑둥만 남아 길에 이끼만 덮은 채 남아 있다.


넓은 들판 길을 걷는다. 앞에 가는 가벼운 배낭의 여자들 몇 명은

소풍 나온 듯 즐겁기만 하다. 멀리 희미하게 고가로 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총알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이 곳 들판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그 차들에 비하면 달팽이처럼 천천히 걷고 있다.


이 곳은 넓은 벌판이지만 밀을 심은 것도 아니고 유채꽃을 심은 것도 아닌

그냥 잡풀들인 것 같다. 그런데 들쑥 날쑥 자란 것이 아니고 모두 높이가 다르지만

어느 높이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서 볼 때는 잘 다듬어 놓은 풀밭으로 보인다.

비는 오지 않지만 어제의 비로 땅은 축축하나 물이 고여있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멀리 동쪽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듯 붉은 기운이 보인다.

오랜만에 내 긴 그림자를 찾았다.


길을 가면서 Casa de Carmen (까르멘의 집)이라는 이름의 알베르게가 자꾸 눈에 걸린다.

클래식 음악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내가

비제의 오페라 까르멘의 집이라면 어떻게 생겼을까?

물론 Carmen은 오페라의 주인공이지만 '노래'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까미노에서 내 이름이 '까르미나'아닌가?

이 집에 가면 빨간 드레스을 입은 요염한 까르멘의 모습이 보일까?  

이 집에 들어서면 '하바네라'음악이 들릴까?


길가에 알베르게를 겸한 멋진 카페를 발견했다. 아침 먹어야지.

식사 중인데 그 곳에서 투숙한 사람들이 체크아웃을 하는지

가지고 온 트렁크를 모두 밖에 모아놓고 있다. 이 사람들은 걷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 아니고 여행을 온 것 같다.

 

지도상으로 다음 마을까지 한참 언덕을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다지 높은 언덕은 아니고 완만한 경사라 좋았다. 길가에는 예쁜

하얀 색의 사과꽃이 피었고 여기 저기 노란 꽃, 보라색 꽃들이 가득하다.  


그 길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이태리인 이지노씨보다 더 천천히 걷는 스페인 사람을

보고 인사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다 했더니 나보고 "뽀까, 뽀까" 했다. 무슨 뜻일까?


길을 걷다가 드디어 평범한 주택의 흰 건물인  까르멘의 집을 발견했다.

들어가 볼까? 인기척이 없다. 대신 새 한마리가 자꾸 내 주위를 맴돌며 놀리고 있다.

"너 용기가 없는거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내가 뒷 모습을 찍으며 문득 내 뒷 모습이 찍고 싶어져

부탁을 해서 내 뒷모습을 찍어 보았다. 어떻게 해야 까미노의 순례자같을까?


계속된 비로 작은 언덕이 있는 숲길에는 물이 넘쳐서 만약 돌다리를

별도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여러가지로 낭패를 당할 것 같았다. 이런 곳들이

자주 보였다.


페르스까요을 지나면서 정말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보았다.

거의 9일만 인것 같다. 푸른 초원은 더 푸르렀고 나무들은 싱그러워 보였고

길가의 돌들은 깨끗하고 멀리 마을의 집들도 더 또렷하게 보였다.  


목가적인 마을을 지나 어느 골목을 지나니 갑자기 어수선한 카페가 보였다.

까사 모르가데라는 카페 앞에 사람들이 실내나 실외에 많이 몰려 있고

너도 나도 스탬프를 찍는다. 나도 스탬프를 찍어보니 까미노 99.5 km로 표시되어있다.

그런데 그 거리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까미노 이정표의 거리와 다른 수치였다.

지나가던 바이크 순례자들도 이 앞을 지나면 일행들을 '세요 세요(스탬프)'하며

불러 세웠다. 스탬프 찍고 가라는 이야기다.

까미노 어플 상에 모르가데는 까미노 103,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 갈리시아주 정부에서 거리 표시가 된 이정표를 세우기 전부터

이 곳에 산티아고 100km 가 남은 뒤 첫번 카페로 알려진 것 같았다.

카페 앞 낙서가 가득한 벽에 내 스탬를 찍었더니 맥주를 마시던

얼굴이 눈에 익은 덴마크 아가씨 일행이 그 스탬프를 자기들 여권에

찍어 달라기에 갑자기 내 스탬프가 인기가 되었다.


드디어 어느 순간부터 길가의 이정표 숫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데이트하기 좋은 호젓한 숲길을 걷는다. 목장길을 한참을 걸었다.

어느 순간 이정표 숫자가 100.757을 보여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100km를 넘는다. 이 긴장된 순간에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좋겠다.


길가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형태의 십자가를 보았다.

돌십자가 안에 작은 나무 십자가를 심어 놓았다.

마을 끝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여느 묘지와 달리 이 곳은 순례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묘지의 앞 뒤를 열어 놓았다.  


그들의 묘비에 적힌 글은 아주 간단했다.

망자의 이름, 생일, 사망일 그리고 자손들의 이름이 아닌

'자녀와 손주들' 이라고만 표시되어 있다.

각 묘비마다 작은 꽃들이 장식되어 있고 어느 묘비에는 사진도 새겨있었다.


그곳을 지나서 첫번 발견한 이정표에 100.252.   자 이제 대충 걸음만 계산해도

100km 지점이 어딘지 알 것 같다. 동네를 지나다가 여자가 막대기를 들고

소를 몰고 있는 어느 축사가 있는 삼거리가 꼭 100 km지점일 것 같아

 지나는 순례자가 이 곳이 그 쯤 될 것이라고 흥분되어 이야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가서 발견한 이정표에 99.930 표시가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젠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산티아고를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가 가까워 지다 보니 버스 정류장의 대기실도 현대화가 되어

투명 플라스틱 막이로 되어 있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 누군가를 묘비용 십자가에 온갖 쓰레기들이 다 걸려있다.

순례자들이 이제 까미노 막바지다 보니 필요없는 것들을

그 곳에 걸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주민 중 자신들의 공간 일부를 순례자들을 위해 쉼터로 제공한 곳도 있다.  


마을을 지나 포르토마린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가게 앞 진열대에 한글로 써 있는 말을 보고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 컵라면 있습니다!, 진 컵라면, 김치 밥!"

어찌 이 길을 그냥 지나 칠 수 있는가?

가게 안에 진열된 한글이 선명하고 한국에서 익히 보던 컵라면들이 즐비하다.

지난 번 카카벨로스에서 먹은 라면은 우리나라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한국산이다. 신라면, 새우탕, 진라면, 김치라면. 짜파게티, 3분짜장...

아이고 이걸 다 먹을 수도 없고...

"신라면 하나 주세요."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 내오고 나무젓가락을 준다. 이거 제대로네.

가격은 2.8유로, 그러니까 약 4,000원인 셈이다. 그래도 이 가격이면 먹을 만 하다.

국물까지 다 마셔 버렸다.


언덕에서 멀리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포르토마린은 항구도시다.

큰 보행길 저 멀리서 농부가 소떼들과 양떼들을 몰고 올라 오고 있다.

농부와 개가 합작으로 이 천방지축 동물들을 제대로 방향을 잡아 몰고 가고 있다.

소들이 지나간 길에 커다란 소배설물들이 널려 있었다.


파란 하늘아래 소들은 한가하게 풀을 뜯고 길가의 농부들도 바쁘지 않은 손길로

일을 하며 순례자들도 한가한 걸음으로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다.


어느 언덕을 지나니 수풀 사이로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그 호수는 점점 커지더니

어느 사이엔가 낮은 숲에 가려져 버렸다. 포르토마린으로 입성을 위한 통로인가

작은 골목의 양 옆에 이끼가 가득한 돌담길을 쌓아 놓고 이리로 가라 한다.

그리고는 더 높은 돌담이 있는 골목에서 돌들이 용암에 녹아내려 길을 만든 듯한

멋진 길을 만났다. 겨우 사람 한 명 정도 지나 갈 만한 좁은 길에 길바닥에

통으로 되어 있는 용의 등같은 곡선이 있는 길이 참 경이롭다.


그 끝을 벗어나니 탄성이 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요새같은 도시의 모습이

미뇨 강 위로 놓인 아름다운 다리 건너에 있었다. 강을 건너니 갑자기

어디로 갈지 막막해졌다. 계단 위의 성문으로 올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옆의

길을 따라 가야 하는지 이정표가 불확실했다. 


계단 꼭대기에 순례자인듯한 사람이 보이기에 올라가 성문을 지나니 

그 곳에 포르토마린 마을이 있었다.

한국처럼 강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지점에는

모두 레스토랑이나 알베르게가 차지하고 그 곳 알베르게에 가격을 물어 보니

가격도 비싸고 식사도 자기 레스토랑에서 사 먹게끔 주방도 없었다.


일부러 그러기는 싫어서 공립알베르게를 찾아 기웃거리다가 한국 아가씨를

한 명 만났더니 자기는 이 곳이 아름다워 어제 도착해서 하루 더 묵고 있다며

공립 알베르게 위치를 알려 준다.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성당이 있는 마을 광장을 지나니

끝에 쯤에 큰 알베르게에 체크인하여 와이파이 되느냐 했더니 된다고 하고

옆에 큰 주방이 있기에 모든 것이 다 가능하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와이파이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했고 주방은 모양만 있지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저녁거리를 사 왔으니...

그래도 남녀 별도로 있는 샤워시설이나 화장실등은 크고 좋았다.

혹시나 프리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몰라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검색을 켜놓고 상가를 다 뒤져도 모두 비번이 걸려 있었다.


할 수 없이 언제라도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알베르게 바로 앞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광장을 산책하니 어느 남녀 순례자가 광장 계단에서 진하게

키스를 하고 있다.


이 날씨가 너무 좋아 강을 바라 볼 수 있는 성문 앞에 벤치에 가서

혼자 우두커니 강물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같은 순례자가 몇 명 있었다.


넓은 방에 많은 침대가 있으니 사람들의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제발 남자들 웃통 벗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두워져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내 옆 이층 침대의 아가씨가 말을 건다.

마리아는 내 위에서 자고 있는 친구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왔으며

사리아에서 출발했단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넓은 방에 햇빛 차단이 안되어 밤 10시가 다 되어야 어두워 지는 스페인이라

어둡지 않은 시간에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