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8일차 (포르토마린 -팔라오 데 레이)

carmina 2016. 6. 15. 11:14



2016. 5. 16


밤새 잠을 설쳤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어제 잠시 낮잠을 잔 후유증이고

또 한 편으로는 이제 산티아고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과

흥분이 나를 잠을 못잘 정도로 설레게 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걷고 숙소에 도착하며 샤워와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는 편인데 나는 거의 낮잠을 자지 않았다.


평생 직장생활동안 늦잠때문에 지각한 적이 없었고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을 넘지 않았기에 이 곳 산티아고를

걷는 기간에는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자는 셈이라 매일 그런

힘든 운동을 해도 잠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어제 사리아에서 왜 못 보던 사람 그리고 가벼운 배낭의

무리들이 그리 많은가 했더니 스페인의 여행사들이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100km 걷기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했다.


산티아고 준비물 중 비상약 중에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매일 걸으며 제일 고생하는 것은 발 뿐이 아니고 늘 땀이 배고

마찰이 많은 사타구니에 습진때문에 고생했다.


가로등이 있기에 그다지 어둡지 않은 부지런한 상인들 몇 명이 가게문을 열기 위해

어슬렁 거리는 길을 따라 강가로 내려갔다. 까미노는 다시 강을

건너야 하는데 어제 건너 온 다리가 아니고 다른 작은 다리로

가야 한다. 다리를 넘어 건너 간 길은 숲길이라 갑자기 조금 전보다

시야가 더 어두워졌다. 


어둠속에 보이는 이정표에 거리 표시 대신 'COMPLEMENTARIO'라는

말로 대신 써 놓았다. 무슨 말일까? 영어로 표현하면 '부수적인' 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저렇게 썼는지 글을 쓰는 지금도 추측이 안된다.

단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 길이 혹시 정식 까미노가 아니고 대체 길인가 하는

노파심과 함께 내가 길을 잘 못 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의

까미노 어플로 GPS를 보았지만 가는 길은 틀림이 없었다.


숨가쁘게 어두운 숲길 언덕을 올랐다.

그 언덕 꼭대기에 거리표시가 있는 이정표가 있었다. 일단 안심을 했다.

언덕에 오르니 이제부터 평탄한 길이 연속되었다.

길 옆에 밭에는 이제까지 까미노를 걸으며 보이지 않았던 곤포 사일리지가 보였다.

추수후 대개 밀짚을 그냥 커다랗게 엮어 높게 싸 놓았었는데

여기선 한국에서처럼 밀짚을 흰 비닐로 꽁꽁 싸매어 보관하고 있다.


먼동이 튼다. 전방이 훤해졌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 반이 넘었건만 아직 앞 뒤로 아무도 없었다.

어제 그 많은 순례자들 중 내가 제일 먼저 길을 나선 것인가?

다음 마을인 곤자르까지 8km를 가야 하는데 배가 고플까봐

어제 미리 사놓은 바나나 큰 것 2개를 아침에 먹고 나왔더니

아직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도상으로는 지속적으로 언덕을 오르게 되어 있기에 조금 걱정했는데

실제 걸어보니 긴 길이 걸음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낮은 경사로

길게 되어 있어 언덕을 느끼지 못했다.


추수가 다 끝난 밭에 황새 한 마리가 무언가 밭을 헤집으며 찾고 있다.

까미노에서는 날짐승들도 사람으로 느끼는 위험성을 느끼는 거리가

한국보다 많이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길을 걸을 때 참새들도

행인이 오기 10m 전에 날라가고, 이런 황새는 더 예민해서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날라가 버리는데 이 곳에선 그 위험거리의 지수가

반 정도 줄어든다. 더우기 길에서 자주 보는 까만 새도 사람이

불과 2~ 3m 앞에 있어도 날라가지 않았다.


길 옆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근처 사거리에서 길이 헷갈렸다.

노란 화살표는 보이지 않고 각 길마다 지명만 표시하고 있었다.

각 방향으로 모두 가보아야 하나 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무조건 직진 방향을 택했더니 큰 도로가 나오게 이정표를 보았다.

길가에 커다란 사료공장이 보였다.


까미노는 차도 옆을 따라 긴 긴 길을 가는데 내 옆을 지나치는 것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과 바이크 순례자 뿐이었다. 길이 숲으로

이어져 조림이 잘 된 지역을 지나가는데 두 사람이 앞서 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 내 앞에 있다면 걸음도 나보다 빠르지 않은 편이니

아마 6시 전에 나온 것 같다. 나이는 많이 들어 보이고

바르셀로나에서 왔으며 친구사이란다. 영어를 전혀 못해 인사정도만

하고 지나쳐야 했다.


곤자르까지 거리가 멀어 배낭 속의 빵을 먹으려 했으나 도무지 앉을 만한

자리는 커녕 큰 바위 하나도 없었다. 결국 곤자르까지 가서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곤자르 카페에서 평소 알베르게에서 가끔 보던 나이 든 미국 여인을 보았더니

내게 다가와 어느 곳에서 내가 노래부르는 것을 들었다며 참 좋다고 칭찬한다.

나도 다른 알베르게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헐리우드 영화 '러브 어페어'의 여주인공인 어네트 베닝의

나이든 모습을 많이 닮아 눈에 익었다. 그녀는 친구와 동행하고 있었고

누군가 남자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내가 알기론 혼자 걷는

사람이다.  


오스피탈 데 크루즈 마을을 지나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다리를 건너

걷는데 문득 앞에 홀로 가는 여성의 머리칼이 은발이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걸어

지나치며 보니 나이가 많이 든 모습이었다. 그냥 지나치다가 나이가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86세란다. 놀라웠다. 그 나이에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된다. 독일에서 왔는데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사리아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단다. 그 분에게 '꼭 산티아고까지 완주하세요' 하며

길을 걷다가 무언가 그 분에게 드리고 싶어 멈추어 서서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

일부러 내가 반대로 길을 걸어 그 분에게 가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기에

조그만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 왔다 했더니 너무 고운 미소로 고맙다며

나를 안아 주었다. 그래서 그 분과 같이 셀카를 찍었다. 그 분은 내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86세라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분은

그날 오후 5시 반경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 도착하셨다.


곤자르 이후 이쁜 마을이 자주 보였다. 그러나 굳이 쉴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지나치다 보니 마을 공동묘지가 빨간 해당화같이 생긴 협죽도 나무와

그 꽃잎이 떨어져 그 밑에 빨간 주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여 너무 아름다웠다.


짧은 거리마다 작은 마을들이 계속되었지만 쉴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냥 지나치며 산을 오르는데 점점 안개가 짙어졌다.

그 길을 바이크 순례자들이 낑 낑 대며 올라가고 있는데 뒤에 브라질 국기가 보인다.

열심히 달리라고 크게 소리쳐 응원하니 뒤로 손을 흔들어 답했다.


다시 산 아래는 어두워지고 또 비가 올 것을 대비해야 했다.

걷는 길의 노면 상태는 최고였다. 부드러운 흙길, 길가에는 큰 나무들

차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통행량은 많지 않았다.


소를 모는 농부가 바쁘게 걸어가는 어느 목장을 지나니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많은 무리의 소리. 어느 집 담장 너머 들리는 소리인데

그 담장 앞에는 돌로 예쁜 꽃들을 형상화 해 놓았다. 담장 안이 궁금했다.


남녀 순례자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금방 멀어졌다. 어찌 저렇게

빨리 걸을 수 있을까? 배낭을 볼 때 까미노 완주 순례자는 아닌 것 같다.


리곤데 마을 길가에 독특한 탑 기둥하나를 보았다.

이 기둥에 내용을 어제 까미노 관련 책에서 보았다.

이 기둥에는 꼭대기와 하단에 사방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못과 망치,

가시관, 해골이 조각되어 있고 또한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습도 있다.

이 옆에서 나처럼 사진을 찍는 외국의 두 아가씨를 보았다.

그 곳을 지나니 마을 한복판이 나오는데 그 곳에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고

앞에 작은 카페가 있어 커피를 한 잔 할까 하고 들어가니 커피는 없고

다른 간식들만 있어 실내를 둘러 보다가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영어 문장을 보고 

그냥 나오다가 문득 카페에 스페인어도 써 있지 않고

이 청년들이 얼굴을 볼 때 스페인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타를 치는 젊은이 옆에 약간 정신지체아인 듯한 아이가 바이크용 헬멧을 쓰고

젊은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데 어눌한 말이지만 잘 받아 주고 있었다.

기타치는 젊은이에게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같이 부르자 했더니

존덴버가 누군지 모르고 노래도 모른다기에 내가 노래의 앞의 서두를 부르니

코드를 잡을 줄 모르기에 G 코드를 잡으라 하고 노래를 이어가니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다는 듯 후렴 부분을 따라 했다.


그 청년들에 대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간 카페에 청년의 일행 두 명이

음료수를 마시러 왔다가 얘기를 듣게 되었다.


자신들은 모두 크리스찬으로 이 곳에 마을을 청소하는 봉사 활동을 왔다 한다.

그래서 전도가 목적이 아니냐 했더니 일부러 부인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마을 청소가 목적이며 일주일 동안 체류하며 마을의 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돌아간다 했다.

하긴 동네가 조금 지저분하긴 했다. 시골 동네가 다 그렇겠지.

그러나 그 청년들 옷은 청소 복장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 카페에서 한국 여자와 외국 여자가 같이 들어왔기에 인사했다.

그 들은 짐을 간단히 메고 있었다. 까미노를 완주하지는 않고 일부만 걷는다 했다.


점점 순례자들이 많아 졌다. 아마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합세한 것 같다.

팔라스 데 레이까지 길은 멀지 않았지만 긴 긴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야 했다.

어느 알베르게는 정원에 개미를 크게 형상화한 작품을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데 마주 오는 여성 순례자가 있기에 물어보니

산티아고에서 생장까지 가는 길이란다. 이전에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었는데

너무 좋아 이번에는 역으로 걷고 싶어 나섰다 한다. 아직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없다.


길을 걸으며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순례자와 허리가 아파 거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순례자를 보며 가슴이 찡했다. 저런 몸으로도 나서고 싶었을까?


큰 나무들이 그늘 터널을 만들어 주는 편안한 숲길을 걸었다. 이제 거의 다왔다.

공립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하니 여기도 와이파이가 연결이 되지 않았고 주방은

아무런 식기도 없고 오로지 전기히터만 쓸 수 있어, 어제 사 놓고 알베르게에

주방이 안되어 먹지 못한 소세지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데 마침 같은 방에

체크인 한 한국인 부부가 작은 코펠 하나를 빌려 준다. 남편이 지난 해

까미노를 완주했는데 다니다 보니 이 작은 코펠이 필요할 때가 많다며 정보를 알려 준다.

이번에는 부인과 함께 부르고스에서부터 시작했다 한다.

저녁은 그 분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아르헨티나에서 온 아가씨 마리아와 같은 방에 투숙했는데

마리아는 끊임없이 조잘대고 끊임없이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저녁 늦게까지

몇 명과 함께 스마트폰에 저장된 비틀즈의 노래들과 올드 팝송들을 부르며

즐거워 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