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9일차 (팔라스 데 레이 - 아르주아)

carmina 2016. 6. 15. 15:10



2016. 5. 7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마다

자꾸 가슴이 복받쳐 오고 눈물이 흐른다.

이러니 그 곳에 도착하면 얼마나 감동의 눈물이 흐를까?


오늘도 여전히 내가 잠긴 대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아침에 출발할 때는 가족에게 나의 출발을 알렸고

도착하면 역시 도착을 단체카독창에 알렸다

마을에서 까미노로 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사리아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런 모습이 이제는 의외가 아니었다.


이 마을에 어느 작은 광장에 순례자들이 춤을 추는 동상이 있었다.

어둠 속이라 순례자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동상은

이제껏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큰 도로와 만나고 길 가에 펌프가 있었지만 고장 난 듯

윗부분이 사라졌다. 도로를 횡단해 커다란 급수대 앞에 누군가 장갑을 놓고 갔다.

목가적인 농촌의 아침풍경을 즐기며 걷는다.

그제 걸으며 처음 본 주택용 저장창고는 이제 어느 집이나 하나씩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이 고기와 야채 저장용이라는 것은 어느 창고에 한 켠에는

스페인어로 고기 그리고 한켠에는 야채라고 써 있어 확실해 졌다.

아마 지열로부터 멀리하고 바람이 밑에서부터 올라오게 하느라 지상과 거리를

두는 듯했고 옆의 벽면도 나무널판지의 틈을 조금씩 두어 통풍이 원활하게 만들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물려 받는 것인지 대개의 저장창고가 상당히 고픙스럽고

낡아 보였으니 어떤 것은 막 새로 만든 듯 흰 빛이 났다.


습한 기운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그간 며칠 동안의 비가 숲 속에 아직 남아 있는 듯 했다.

비록 언덕길이 계속 이어졌지만 길지 않아 좋았고, 그다지 높지 않아 좋았다.

요즘 며칠 째 언젠가 비오는 날 이른 아침에 길에서 만난 수녀같은 여자 순례자를

오늘 또 숲속에서 만났다. 이제껏 우비를 쓰고 만나 치마를 입고 있어

몸이 상당히 뚱뚱한 줄 알았는데 간단한 목례를 하며 보니

작은 배낭을 앞에도 메었기에 그렇게 뚱뚱해 보였던 것이다.


큰 가리비를 벽에 장식한 카페 겸 알베르게는 아직 영업준비가 안되어 지나치고

다음 카페에 들어갔는데 어네트 베닝 닮은 여자 일행이 호주 남자와 같이

아침을 먹고 있기에 목례를 하고 길을 걷다가 다시 만나 

통성명을 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페기이고 친구는 캐틀린이었다.

페기는 남편과 사별 후 무언가 인생의 전환이 필요해서 친구와 함께 까미노를 걷고 있다.

페기는 걸음이 상당히 빨랐다. 캐틀린은 걸음이 느려 늘 뒤에 쳐 졌다.

캐틀린은 어코디언과 우클레레를 연주하는데 배낭을 메고 걸어 보니

어코디언 무게와 비슷하다며 깔깔 웃는다. 나도 우클렐레를 연주한다 했더니

무척 반가와 했다. 그러면서 페기가 당신에게 잘하니 빨리 걸어서 페기에게

가라하며 또 웃었다.


오늘도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온 남자 두명을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났다.

서로 이야기는 통하지 않지만 그들은 내가 알아 듣던 말던 열심히

스페인말로 이야기했고 나도 확실히 모르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충 알아 들을 수 있어 '시, 시 (예)' 하면서 맞장구쳤다.

그리고는 내가 그 들에게 우리는 Siempre Amigo (영원한 친구)라 했더니

무척 좋아한다.


어느 마을에 대문에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모형을 세워 놓아

눈길을 끌고 그 집 마당에는 레몬이 주렁 주렁 열려 있었다.


레보레이로 마을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서 조금 특이한 까베세이로라는 밀집으로 만든

곡물 저장창고를 보았다. 대개 돌과 나무로 만들어 놓는 것이 보통인데

이런 저장창고는 여기서만 보았다.


멜리데를 향해서 가다가 가운데 부분이 높이 솟은 작은 돌다리를 보았다.

원래 이길은 로마로드라 하는데 로마시대에 전차가 지나가기 위해 만들어 졌다.

그래서 다리의 폭이 전차의 바퀴 폭에 맞추어져 만들어 졌다. 페기와 같이 있던

호주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잘 이해되지 않다가 로마의 황제 시저가

지나갔던 길이었을 것이라고 농담삼아서 얘기했더니 시저라는 말을 들은 이후는

나만 보면 어디서든 로마식으로 가슴에 팔뚝을 얹으며 인사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 마침 숲 속에 앉기 편한 바위가 있어 신발까지 벗고

여유를 즐기며 햇빛 따스해 지니 배낭 속의 빨래들을 주렁 주렁 배낭에 걸었다.


멜리데는 큰 도시라 그런지 멀리 큰 건물이 몇 개 보이는데 그 중 하나의 건물

위에 한국의 기아자동차 로고가 선명하게 보여 반가왔다. 그리고 이 곳에서

조금 특별한 돌 비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큰 돌의 가운데를 사각형으로 파내어

그 안에 또 다른 돌을 집어 넣었다. 특별히 박아 놓은 돌에 무슨 표시는 없었는데

그 돌 또한 누군가의 낙서가 되어 있는 돌에서 파 온 것 같이 글씨의 일부가

잘려 있다. 무슨 이유일까? 이런 것이 몇 개 보였다. 이 근방에서도 역시

어느 순례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돌비석이 있었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까미노 중에 순교 혹은 병사를 했겠지만 주로 보이는 것은 최근 10년에서 20년 사이의

묘비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묘비나 기념 십자가들은 다 어디 갔을까?

세월이 지나가며 까미노에서도 굳이 종교적으로 남길 것이 아니면 치우는 것이 아닐까?


길가에 좌판하나 벌여 놓고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작은 선물을 팔면서 크레덴샬에 스탬프를 찍어 주는 댓가로 돈을 받는다.

그런데 그냥 찍어 주는 것이 아니고 외국에서 아주 중요한 서류에

서명 후 봉퉁에 넣을 때 봉투를 닫은 실 끝에 빨간 양초를 녹여 실위에 떨어 뜨리고

아직 굳지 않은 양초에 스탬프를 찍어 그 서류가 담당자 외에는 절대 열어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봉인이라 하는데 그처럼 크레덴살에 양초를 녹여 스탬프를 찍어 주고

1유로씩 받았다. 아이디어 노력으로 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어 나도 스탬프를 받았다. 


이제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50km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이정표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더 복받혀 온다. 옆에 지나는 독일인이 말을 걸으며 자기는 하루 40~50km를 걸으며

까미노를 내일 안에 끝내는 목표로 걷고 있다 하며 이제 거의 다 왔다며 좋아한다.

세상에! 어떻게 하루에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을까? 완전히 철각이다.


다시 걷기 편한 숲속으로 맘껏 숲냄새를 맡는다. 이런 기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길가 간판에 폰테라는 말이 보여 앞에 연못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 연못 앞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온 두 남자의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더니

그 뒤로도 '도스 포토' 하면 무척 고마와했다.


뒤로는 도심의 건물들이 있고 앞의 넓은 벌판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이

참 아이러니하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이 멋있는 나라가 좋다.


멜리데 시내를 들어가기 전에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을 보며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식히고

시내에 들어가니 큰 도시답게 주차된 차들이 많고 건물들도 단층건물이 없을 정도로 번화가다.

그 사이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들어가 낮은 소리로 찬양을 부르니 성당 봉사자와

다른 순례자들이 참 좋아했다.


도시를 이리 저리 구부러지며 걸어가 외곽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를 지나 

다시 농촌길로 나왔다. 길가에 커다란 콘크리트 수조에 물을 저장해 두었는데

어느 부부가 그 곳에서 차에 이불을 가져와 이불 빨래를 하고 있다.

이게 혹시 불법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 수조안에

세제는 넣지 않았지만 그 물이 무엇을 위한 물인지 궁금했다.

그 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샘물이 가득한 숲속길에서 순례자들은 신이 났다.

여기 저기 모여 사진도 찍고 앉아서 쉬기도 한다.

그런데 모습을 보니 거의 모두 단기여행자들이다.

장기 여행자들은 그런 곳에서 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골 길을 가는데 마주 오는 아가씨가 아무 말도 없이 내게 불쑥 무엇인가

사인해 달라고 내민다. 다른 이들이 사인한 것을 보니 그 옆에 금액이 적혀있다.

아차. 농아들이 길에서 자선을 바라는구나. 미안하지만 그런 동정을 주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이제 아르주아 지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간판이 반갑다. 배가 고프다.

마당이 넓은 길가 카페에서 점심을 시켜 먹고 있는데 페기와 캐틀린이 뒤를 따라와

들어오니 나보다 먼저 와 있던 호주인이 그 들을 반갑게 손짓하며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 부르는데 그 두 여자는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페기가 힘들다며 신발을 벗었는데 발가락에 테이프들이

칭칭 감겨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씩씩하고 빨리 걷다니 대단한 여인이다.


점심을 먹고 20유로 지폐를 주었더니 10유로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를 부기에

내 자리로 돌아오며 세어보니 동전이 모자른다. 다시 가서 손 안에 있던

동전과 지폐를 보여 주며 계산 잘 못되었다 했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의 금전출납기계에 놓인 남은 동전을 주며 싫은 표정을 짓는다.

실수로 그런건지 의도적으로 그런건지 몰라도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역시 나는 도시에 왔구나.


이제 순례자들도 여유가 있는지 길을 걷다 말고 숲 속 의자에 앉아

편한 복장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 대니 환하게 웃었다.

어떤 이는 길가 그늘 진 곳에 배낭을 옆에 놓은 채 낮잠에 빠져 들었다.


꿈같은 숲속길과 목장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나무들이 보기 좋고

깨끗한 숲길이 어린 시절 아버님의 고향 시골길을 걸을 때 처럼 편안하다.

군데 군데 보이는 마을들 풍경이나 잘 다듬어지고 구획 정리가 잘된 밭들 그리고

마을 뒤에 보이는 울창한 숲이 좋다. 숲은 터널을 만들고 그 사이로 끝없이 걸어가면

토끼들이 말을 거는 이상한 나라가 있을 것만 같다. 


아르쥬로 가기 위한 언덕을 다 오르고 그 위에 전망이 좋은 벤치가 있어

나도 다른 순례자처럼 배낭을 옆에 두고 벤치에 길게 누웠다.

그런 모습을 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애드리안이라는 여자가 말을 건다.

까미노가 너무 행복하다며...

집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며 깔깔 웃는다.


아르쥬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큰 건물이 있는 도시다.

마을 입구부터 알베르게 선전이 지속되었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스페인 전통음식인 빠에야를 넓은 철판 위에 만들어 놓고 파는 식당을 보고

군침이 돌았으니 이미 점심을 먹었기에 지나쳐야만 했다. 다음에 먹지.


지난 번 사리아에서 맛을 들여서인지 갑자기 너무 복잡한 알베르게가 싫어졌다.

이전에는 공립알베르게도 모든 시설을 다 갖추어 졌었는데 산티아고에 가까이 올수록

공립 알베르게들이 편의 시설도 부족하고 와이파이를 위해 별도로 인근 카페를 찾아가서

무엇인가 마셔야 하고, 주방도 없으니 사먹어야 하는 상황들이 싫어 숙박비를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사설 알베르게를 찾았다.


공립 알베르게 건너편에 있는 사설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침대 간격도 넓고

깨끗이 다려진 하얀 침대 시트와 밤에 잘 때 덮으라고 주는 모포도 깨끗하고

마침 이층이 없는 단독 침대를 차지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빨래를 해서 햇빛드는 창가에 널어 말리고 주방에 남은 음식 재료들이 무엇이 있나

확인 후 시내를 산책하며 저녁꺼리를 사왔다.

하루의 일기를 다 메모한 후 다시 시내로 나갔는데 마을 광장이 시끄러웠다.

오늘 축제가 있는 듯 악기 소리가 들리고 둥그렇게 모인 관중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전통의상을 입은 부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한 사람이 선창하고 난 뒤 2마디 뒤에 모두 다 같이 춤추며 노래하고..

아이들이 할 때도 역시 똑 같았다. 그런데 발 동작이 참 재미있었다.

물론 전통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도무지 발이 더이로 갔다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자세히 봐도 잘 모르겠다.

모두 다 탬버린을 치며 부르는 노래도 탬버린의 박자가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무용수들과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다같이 추을 추었다.

악기는 북과 아일랜드의 백파이프형태의 악기 두 가지로만 연주했다.


그 춤이 끝나니 옆에서 꼭두각시 인형 춤이 시작되었다.

바이올린 같이 생긴 악기 밑에 회전시킬 수 있는 막대를 달고

한 켠에는 건반악기처럼 누름판이 있어 마치 오르골 처럼 돌리면

음악이 연주 되었다.  그리고 허리와 무릎에 끈을 달라 움직이면

바로 앞에 남자 여자 인형이 아까 어른들이 추웠던 춤을 추었다.

또 한 명은 우리나라 시골 장터에서 볼 수 있는 풍각장이처럼

발을 움직이면 울리는 북을 등에 지고 있고 백파이프와

가슴에는 캐스터네츠를 붙이고 박자를 맞추었다.

또 빨래판같이 생긴 것에 우툴두툴한 양철을 붙이고

긁어서 혹은 손가락에 철로된 골무를 끼고 박자를 맞추고

부착된 작은 심벌즈로 같이 리듬을 맞추었다. 그 들에게서는  

거의 비슷한 음악들이 끝없이 연주되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이런 스페인의 전통 예술을 보는 즐거움으로

오늘 하루 정말 행복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