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30일차 (아르주아 - 오 페드로우주)

carmina 2016. 6. 15. 16:42

 

 

2016. 5. 18

 

가슴이 떨린다.

긴장이 된다.

새벽 3시 반경부터 눈이 떠졌다. 

내가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었다니..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까미노 걷기가 이제 거의 완성단계다.

아무리 내가 원해도 충분한 시간과, 건강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특히 걷는 중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안전에 절대 신경써야 하는 일과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이 거대한 일.

이 간절한 소망이 감사와 은혜로 마무리되어간다. 

국내 트레킹시에 며칠만 걸어도 물집이 생겨서 고생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물집이 아주 작게 두번만 생긴 이후 안 생겼고

감기때문에 고생할까봐 일부러 늘 몸을 따뜻하게 한 결과

콧물감기 한 번 안 걸리며 이제 마지막 이틀만 남겼다.

모든 순례자들과 예비 순례자들이 걱정하는 베드버그는

그다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물린 흔적이 없다.

이제까지 직장생활동안의 외국인들과의 영어대화는

모두 신경을 쓰고 들어야 책임과 이익을 위하는 만남이었는데

이번 여행기간 내내 만나는 모든 외국인과는 정말 즐거운 얘기만

나누는 영어대화였다.

오래 전에 배웠던 스페인어가 여행에 많이 도움이 되었고

불과 몇 마디 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친밀하게 닥아 갈 수 있었다. 

정말 내게는 기적같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마다

 

오늘도 역시 알베르게 철문은 내가 열었다.

높은 고지에 있는 아르주아를 빠져 나오니 바로 하산길이고

곧 넓은 숲길이 이어졌다. 이 곳은 특히 숲속에 있는 대개의 집들이

보라빛 꽃이 좋은 등나무로 대문과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평탄한 길을 가다가 다시 몇 번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지난 밤 내가 묵었던 아르주아의 빌딩들이 저 산 건너편에 보였다.

 

야생의 나무들이 거칠게 자라는 숲을 오래 걸었다. 그런 숲 사이를

불도저가 지나가며 길을 낸 듯 길은 반듯했으며, 더 큰 숲은

마치 기차가 지나가며 길을 만든 듯 커다란 숲 터널 하나 뚫려 있었다.

그 사이를 걸어가는 기분을 사진으로만 표현될 수 있을까?

 

이미 밀농사가 끝난 지역은 갈색 낟가리들이 땅에 누웠고 골을 따라

잘 정리되어 있었다. 스페인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이다.

비옥한 땅에 밀밭과,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카올라유를 만드는 유채꽃이

전국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사람손이 많이 들어가는 논농사나 밭농사와는 다르다.

이 들은 그렇게 경작하는 땅이 넓어도 거의 모두 기계농업을 하고 있다.

한 번도 밭에 여자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한 번도

밭이 농부가 기계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리아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는 거의 숲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00km 걷기 상품이 인기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명언들을 카드로 만들어 '지헤의 벽'이라는 마을 주택 벽 잔뜩 전시해 놓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쓰여진 그 명언들의 출처는 불확실하다. 대개 그런 명언들은

어디에서 인용했는지 쓰는 법인데 여기 붙여진 명언에는 그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느 누군가 개인의 생각을 써 놓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종교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과학이 우리에게 노예근성이나 혹은 자신파괴를 불러오는가?'

'당신은 당신의 부모가 신을 믿어서 신을 믿는가 아니면 당신의 친구가 믿지 않아서

당신도 믿지 않는가'

참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끝없이 이어진 질문들을 조금 읽다가 그만 두었다.

 

앞에 다리가 있다 그 밑은 커다란 수로가 지나갈 듯이 넓은 공간이지만

아직 그 수로 혹은 도로같은 길에 무엇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걸 보며 까미노 순례자들을 위해 이 다리를 미리 건설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처음 만나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지난 번 포르토마린에서 만났던

아가씨가 외국인과 함께 지나가면서 내 얼굴을 봤을텐데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혹시 지난 번에도 그 외국인과 같이 다니던데 조금 미안했나?

길가 목장에 풀은 없고 모두 벌건 흙뿐인데 그 위를 얼룩소들이 모두 앉아 있다.

왜 그랬을까? 혹시 흙을 이용한 소들의 방역작업일까?

숲길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상수리 열매의 뚜껑을 보았다.

그런데 그 모든 뚜껑들의 알맹이를 찾아 보려 숲속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

그럼 알맹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수확한 것일까? 아니면 다람쥐?

다람쥐는 까미노 초기에 보고 이제껏 보지 못했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의 연속이다. 

 

큰 도시가 가까워져서인가 우람한 숲의 나무들이 아주 규칙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병정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서있는 것처럼 나무들이 같은 굵기와 같은 높이로

자라고 있다. 이런 숲길 속에 늘 걷고 있으면 만병이 치유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이정표의 숫자가 10단위로 줄어들 때마다 자꾸 카메라를 들이댄다.

29km? 이젠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 정도다.

차로 천천히 30분만 가면 갈 수 있는 거리.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랴.

 

그런 생각들은 멋진 풍경들을 보며 잊어버린다. 골프장도 아닌데 균일한 잔디밭과

넓은 초원. 까미노를 걸으면서 이제까지 본 골프장은 하나 밖에 없다.

거의 농부들이 사는 곳이라 골프치는 인구가 없는 것인가?

 

길가 이정표위에 놓여진 중등산화의 옆에 이끼가 끼고 있다. 신발도 튼튼한 가죽이었고 

바닥상태도 좋았다. 이제 남은 길에 이런 중등산화를 신을 필요가 없으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

벗어 올려 놓은 것 같다. 이번 여행에 나도 등산화의 효과를 많이 본 것 같다.

그간 신던 딸이 몇 년 전 사준 등산화가 바닥이 많이 닳아 새 등산화를 신었는데 감촉이 좋고

쿠션이 좋아 여행떠나기 전 열흘 동안 매일 신고 주위 공원길을 걸으며 길을 들여 놓았었다.

까미노의 성공여부는 신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자기 집 앞 마당의 잔디를 깎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고 했는데

이 곳에서 그런 규정이 있는지 거의 모든 집의 정원이 잘 정돈되어 있다.

 

숲 길을 나오니 바로 농기계 전시장이 있고 도로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길을 가다 보니 도로 밑 터널 앞에서 화살표가 두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하나는 직진 또 하나는 터널 밑으로 가는 방향. 모두 정식 까미노 이정표다.

아마 도로를 두고 이쪽 편이나 저쪽 편으로 걸어도 목적지는 같은 것 같다.

직진길을 택했다. 그 길에 어떤 이가 개 한마리를 데리고 자기가 쓴 책을 놓고

팔고 있었다.

 

길가의 펜션이 산티아고를 주제로 한 헐리우드 영화 제목이다. "The Way"

이 영화가 상영된 이후로 미국 순례객이 많아 졌다고 한다.

길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왜 한국사람들이 까미노에 많은지

자신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내게 물었다.

이전에 파올로 코엘료가 쓴 책 "순례자"가 인기였고

사람들이 이젠 남이 알선해주는 단체 유럽여행이나

관광지만 찾아 다니는 배낭여행보다는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서는 체험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런 현상이 우리 경제 수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대답했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붙어야 하는데

오히려 다리가 더 아파오는 것은 무슨 일일까?

 

키가 너무 높아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삼나무의 숲을 지나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보니 인간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그 길은 언젠가 방문했던 보성차밭 들어가기 전에 지나는 울창한 숲길 같았다.

 

이제 오늘의 여정이 끝나간다.

GPS 상으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페드로우주인데 숲은 그대로 이어졌다.

왼편으로 집들이 몇 채 보이기에 써 있는 간판들을 보니 이 곳이 페드로우주였다.

 

알베르게를 찾아야지.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하는 알베르게 몇 개를 기웃거리다가

까미노 어플에 첫번으로 나와 있는 최신식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 한 후 

카톡으로 그간 많은 날이 같이 걸으며 즐거웠지만 이틀의 거리나 뒤처진

한국인 청년들에게 나는 내일 산티아고 도착예정이니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연락했더니 놀랍게도 지금 자신들도 곧 페드로우주에 도착한다며

마침 내가 있는 알베르게에 예약했다고 한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들은 레온에서 하루 더 쉬었기 때문에 쉬임없이 걸어온 나와는

2일의 코스차가 있었는데 하루에 40km 씩 걷기를 두번이나 해서

결국 그 날 저녁식사는 우리 모두 산티아고 입성을 축하하는 마지막 만찬의

시간을 즐겼다. 청년이 고추장 없이도 맛있는 닭도리탕으로 요리를 했고

내가 축하하는 의미로 주류를 모두 제공했다.

 

정말 놀라운 의지력들이다.

처음에 걷기 힘들어하던 전주 아가씨도 이젠 늠름하게 걷고

다리가 아파서 두 코스를 건너 뛰었던 뉴욕대 청년도 이젠 튼튼하고

다리에 근육통 방지를 위해 늘 테이프를 붙였던 아가씨도 이젠

테이프를 모두 떼고 다녔다.

그 4명의 인원에 한 명이 더 붙어 있었다.

한국인 단체 여행객 중 어머니를 따라 온 아들이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이들과 함께 걸으며 그간의 껄끄러웠던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며 좋아했다.

 

나는 비가 오긴 했어도 문제없었던 폰세라돈 구간을 지날 때는

눈과 우박이 쏟아져 어쩔 수 없이 택시로 다음 구간까지 이동했다한다.

까미노는 기상 변화가 워낙 심하기에

언제 걷느냐에 따라 그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모두 한껏 즐거웠고 고무되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