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31일차 (오 페드로우즈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carmina 2016. 6. 15. 22:28



2016. 5. 19


산티아고는 혼자 가기로 했었다.

나만의 산티아고를 경험하고 싶었다.

나 혼자 느끼고 나 혼자 감동받고 싶었다.

누구의 제지를 받거나 누구를 매일 도와주거나 혹은

내가 도움을 받기 위해 신경쓰는 것도

진정 순례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거추장 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걷고 싶었고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땅끝까지 가서 내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고

정말 고지식하게 땅끝까지 간 야고보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마음을 알기에는 그릇이 부족했다.

믿음이 부족했고, 남들보다 조금 편해지고 싶은 마음도 늘 가득했다.

그런 내 부족함을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싫었다.

그냥 나 만이 스스로 알아서 하고 싶었다.

말 실수 했다고, 행동 조심안했다고 누구에게 말 듣고 나를 통제하기 싫었다.


지난 31일동안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엄격하게 나를 통제했으며, 스스로 이 순례의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내 건강과 안전사고나 다른 사람과의 트러블이 없도록 조심했다.

후반부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조금 좋은 알베르게를 사용하고 싶어

사치한 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은 조건에서 생활하고 먹고 마셨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날의 첫걸음을 내 딛기 위해 지난 30일 간 수없이

많은 밤을 같이 보내고 먹고 또 같이 웃고 즐기던 동료 순례자들이 잠든 시간에

또 혼자 문을 나섰다.


오 페드로우주는 까미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에 어제 순례를 마친 곳으로

다시 가야 했다. 나처럼 그 곳으로 가는 일반여행객들의 무리 속으로

마치 일행인 양 어둠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 여행객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출발점까지 왔고 그는 그 곳까지 안내하고

돌아가 버렸다. 새벽시간에 숲속으로 들어가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랜턴은 있었지만 배낭 깊숙한 곳에 있어 차라리 남들이 비추어 주는

불빛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곧 숲을 벗어나고 희미하지만 길을 찾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아니, 길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앞으로 가면 되니까..


스페인 여행객들의 느린 걸음을 벗어나 혼자 앞서 나가

아름드리 나무들과 한 몸이 되었다. 그런 나를 길가의 길고양이가

추운지 쪼그린 채 움직이지도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고양이들아. 제 친구들의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내가 너를

내 컴퓨터 속에 모두 간직하마.


1시간 가량을 걸어 아메날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밑 터널을 지나니

바로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페기 일행을 만났다.

영화 러브어페어의 배우 어네트 베닝처럼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만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생각이다.

이 카페의 샌드위치를 굽는 기계가 신기했다. 마치 자동 피자 만드는

기계처럼 토스트에 햄을 끼워서 히터를 통과시키면 롤러를 통과해서

저절로 바삭하게 구운 샌드위치가 나왔다.  


지도상으로는 페드로우주에서 계속 내리막길로 되어 있는데

아마 책자가 중간의 오르막 내리막을 표현하기 불편해서 그렇게

그려 놓았는지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흙길의

표면은 부드러운 흙이었고 비가 개인지 며칠 지난 뒤라

물웅덩이가는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또 숲속을 나오면 그림같은 초원이 펼쳐지고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이

그리는 집모양 같은 아담한 집들이 초원 한 구석에 있었다.


아침에 또 무릎에 통증이 오기에 천천히 걸었다. 한 30분 걸으니

그 통증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산티아고 마치고 피니스테라까지

걷기로 한 생각은 재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어떤 나무는

껍질이 온통 벗겨지고 밑둥에만 간신히 껍질이 남아 있다. 마치 누군가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껍질을 끌고 내려온 것처럼 말끔하게 벗겨져 있어

밑둥만 잘라내면 큰 건물의 기둥으로 쓸만큼 반듯하다. 무슨 나무이기에

이런 모습일까? 


길에서 여전히 바르셀로나 두 친구를 만났다. 참 우린 질긴 인연이다.

이 사람들도 하루의 생활을 늘 같은 시간에 시작하는 성실한 순례자다.


오래된 이정표에 누군가 한글로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라고 쓴 것을 보고

나에겐 언제나 까미노가 목마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곳에 작은 돌하나

얹어 놓았다. 어느 모녀인 듯한 순례자가 걷는데 모녀가 늘 작은 돌멩이를 손에

가지고 있다가 이런 이정표 위에 늘 하나씩 올려 놓았다. 아마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나는 거의 올려 놓지 않았다.


비행기 이착륙소리가 들렸다. 공항 옆을 지나간다.


문득 오늘 아침부터 이정표에 거리표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제는 다 왔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뜻인가?  공항 끝에쯤에

아주 오래 된 듯 보이는 순례자의 모습이 음각된 비석이 있었다.

얼핏 봐도 몇 백년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다. 나도 다른 순례자처럼

같은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외국사람들은 이런 전자 기기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두 번을 찍었는데도 흐릿하게 나왔다.

결국 포기했다.


단기여행자들이 참 많다. 그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 버스도 가끔 보인다.

그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많았다. 정말 저 나이에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도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산 파울로 마을 지날 때 성당 뒤에 SELLO (스탬프) 라고 크게 써 붙인 증서의

내용을 읽어보니 대충 이 마을의 역사 보존을 위해 1%을 공제한다는 뜻 같았다.


라바꼬야 마을을 지날 때 스페인 사람들의 평소 아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학버스가 마을로 들어 오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학교를 가고 선생님들은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성당과 공동묘지가 같이 있는 곳에 성당 문이 열려 있어 슬쩍 들어가 보니

마침 아침 미사가 열리고 있는데 신도들이 불과 몇 명밖에 없었고  

대부분이 나이든 사람들이며 그들은 대개 신부님하고 거리가

먼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교회에서 뒷좌석에 앉으려는 심리가

어쩌면 우리네 모습하고 비슷한지 혼자 웃었다.


교회와 공동묘지가 같이 있다면 참 효과적일 것 같은데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묘지가 무서움의 대상이 될 수 도 있으니 허가가 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목사님이 이 일을 실천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여러번 협의를 거쳤지만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안다. 국내 성당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성당을 지나 다시 언덕길로 가는 길가에 누군가 바위을 파내고

그 안에 작은 성모마리아상을 모셔 놓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작은 불빛이 비치게 해 누구나 한 번은 시선을 주고 갔다.


긴 긴 오르막길. 비가 조금씩 내리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미리 우비를 쓰고 나는 모자가 있으니 문제 없을 것 같아

그냥 맞고 걸었다. 이 비가 은혜의 비라고 생각하면서 .,..


이제는 더 이상의 오름도 없을 것이다.

페기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고 모두들 거대한 나무들이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 처럼 모두 한 방향을 향해 편한 걸음으로 걷고 있다.


산 마르코까지 이어지는 긴 평지길에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 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걸어 왔더니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아

산 마르코 호텔과 같이 있는 카페에서 콜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그 곳에 들어 온 일본인이 나보고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 여자는 한국인같이 생겼다. 남편은 완전 일본인 얼굴이었고..

산 마르코는 마을이 넓었다. 주택가를 한참 지나고 그 끝에 몬테 델 고조

탑이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이 곳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인다 하는데

이 날은 안개가 가득해 사람들은 기념 사진만 찍고 내려가기 바빴다.


이제 내려만 가면 된다.

넓은 고속도로위의 나무 육교를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그 곳에

대형 순례자 기념탑이 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쓴 빨간 글씨를

보면서 그냥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글썽거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해서 내 모습을 보니

두 달동안 머리를 깍지 못해 등산모 사이로 삐죽 나온 머리

그 사이 살이 빠져 뾰족해진 턱에 텁수룩한 흰 수염과

흰 바지가 누렇게 변했고 녹색의 신발은 먼지로 회색으로 변해 버렸으며

비가 와 카버를 덮은 빨간 배낭을 멘 내 모습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 곳부터 대성당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거의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산티아고 사람들은 배낭을 멘 순례자들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으며

이제까지 한 달 동안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해 주었던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모두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도심은 여느 대도시의 모습과 다름이 없고 나는 그저 바닥에 표시되어 있는

가리비 마크만 보고 걸을 뿐이다.


대성당에 가까이 온 듯 어디선가 백파이프가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문 안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진행하니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그러나 이미 감동을

며칠 동안 발산했기에 눈물이 터지지는 않았다. 


광장에 모여 있던 낯익은 외국인들이 모두 나를 보더니 달려와

나를 안아 준다. 나도 그들을 안아 주었다. 미국인 칼슨, 이태리인들,

독일 사람들, 국적을 모르는 낮익은 순례자들은 모두 내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나도 그들에게 정말 수고했다고 등을 두들겼다.


다 같이 성당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혹시 12시 미사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 보니 배낭을 메고 들어갈 수 없으니 배낭을 맡겨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미사 보는 것을 포기하고 완주 증명서를 받으러 가니

그 곳에서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모두 반갑게 다시 인사했다.


오늘 저녁 묵기로 한 한인 민박집에서 2시에 내 배낭을 픽업해 주기로 해서

약속 장소인 버거킹을 찾아 갔더니 그 곳에 낯익은 한국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3일전인가 미국 청년들이 마을을 청소 봉사 하던 곳에서 만난 한국인 교포도

역시 민박집 주인을 기다렸다가 차로 피니스테라로 관광을 간다 했다.


배낭을 전해 주고 나는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늦게 도착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다시 긴 포옹을 나누었다.

이름도 모른다. 단지 많은 날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쳐가며 걸었을 뿐이다.

보고 싶었던 이태리의 이지노씨나 나만 보면 환하게 웃던 펠라리오 변호사나, 

포르투갈의 파르코, 도나와 루타, 헨리와 헨리엄마, 바르셀로나 아저씨들,

독일 사람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불과 몇 분 전 떠난 듯한 페기의 얼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담아 두기로 했다. 다시 나 혼자 일 뿐이다.


완주증을 한 참 줄서서 받고 나오니 한국 청년들이 도착해서 또 한 번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한 명 한 명 안아 주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대성당 광장을 들어 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보수중인 대성당을 바라보면서 우는 남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광장 바닥에 누워 일어 설 줄을 모르고

어떤 이들은 광장 건너편 건물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성당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귀에 익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노래 소리가 들렸다.

단체로 온 외국 사람들이 성당 앞에서 둥그렇게 손을 잡고 합창을 하고 있다.

다 끝난 뒤에 이스라엘에서 왔느냐 물어보았더니 이태리란다.


순례자들은 이 넘치는 감동들을 성당 앞 광장을 서성이면서

다른 순례자들과 정담을 나누며 보냈다.


아는 사람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광장 옆의 긴 돌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성당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인생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한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늘 그랬다. 산티아고 까미노는 내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나는 지난 60년의 내 삶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노력한 끝에 가장 의미있고

내 육체와 정신을 다 소모해야만 가능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택했다.


산티아고 까미노 완주증은 내게 정말 귀한 선물이다.

마치 군대 전역증과도 같은 값진 선물이다.

나는 군생활도 안해도 되는 상황에 있었지만

내가 하겠다고 해서 무사히 병장으로 전역했다.

군생활하는 동안 남의 뜻에 움직여야 하는 날들이 매일 매일 고역이었지만

까미노를 걷는 날들은 매일 매일이 천국이었다. 

단언컨데 까미노 걷기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보내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순례길의 다른 코스들을 보며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또한 나를 끝까지 응원해준 가족과 모든 지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