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의 끝과 시작 - 피니스테라

carmina 2016. 6. 22. 17:13


2016. 6. 20


어제 오후 늦게까지 산티아고 시내를 돌며 까미노를 마친 사람들의 모습과

길거리의 관광객들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이제까지의 힘든 일을 달콤함으로 씻으려는 듯

많은 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녔다.


노천 카페에서 삼삼오오 담소를 하고 있고 눈이 익은 길벗들이

골목에서 몇 번 마주칠 정도로 여기 저기 오고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까미노에서 같이 걷던 사람들을 만나면 비록 이야기를 많이 안한 사람이라도

서로 껴안아 주며 축하하고 다독거리며 서로의 노고와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관광 안내소에 들러 피니스테라(혹은 피스테라라고 불리움)로 가는

까미노 코스와 교통편을 알아 보고

노천 카페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여행 메모를 하면서

거리의 악사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즐겼다. 


비로 거리의 악사지만 그들은 모두 전문연주자인듯 대부분 클래식을 연주했고,

연주 솜씨도 훌륭할 뿐 아니라 귀에 익은 음악들을 연주하기에 오랜동안 서서 듣기도 했다.


순례자들은 늦게까지 산티아고 성당 앞 광장에 누워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느 건물에서 까미노 전시를 하기에 들어가서 천천히 전시된 사진들을 보며 산책하고

나도 다른 이들처럼 대성당 앞 긴 돌 위에 앉아 그토록 오고 싶었던 이 땅에 오래 머물렀다.

아니, 내가 오고 싶었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 길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은 한인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제까지 지내던 알베르게에 비하면 여긴 호텔 수준이다.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아늑했다. 푹신한 소파와 큰 침대 그리고 욕실.

깨끗한 샤워실에서 오랜만에 내게 사람 대접을 해 주었다.


저녁식사는 삼겹살로 준비한다 해서 식탁에 앉으니 총 8명의 손님이 있었다.

목사님 가족, 모녀, 홀로 여행하는 남자 한 명 그리고 여자 한 명이 둘러앉아

오랜만에 한국을 떠나오기 전과 같은 밥을 먹으며 삼겹살과 샹글리라를 즐겼다.

주인이 까미노를 마친 순례자들을 위해 작은 케익을 준비했다.

길에서 수없이 보던 아래가 뾰죽하고 장식이 있는 십자가의 모양이

실은 야고보를 참수할 때 사용했던 칼의 모습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십자가를 거꾸로 세워 놓으면 그 말도 맞는 듯 했다.


그 곳에서 앞으로 내가 혼자 배낭여행할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리스본에 대한

가이브북이 있기에 메모를 하고 스케쥴을 짜고 교통편을 확인했다.


피니스테라까지 걸으려던 내 계획은 이런 편안함 속에 스멀 스멀 사라져 버렸다.

걷지 않을거야. 이만큼 걸으면 되었지. 더 걸을 필요있나?

아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원래 목적했던 대로 해야지.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자고 나니 마음이 굳어져 피니스테라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중간에 세라는 곳에서 피니스테라까지 걸을려고 생각도 했으나

늦게 그 곳에 도착해 또 몇 시간 걷는다는 것이 싫어 그것마저 포기했다.

스스로에게 핑계를 생각했다.


"다음에 혹시 잘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까미노를

걷자고 해서 또 올 기회가 있다면 사리아에서 피니스테라까지

약 200 km를 걷는 것으로 하고 오면 되지."



버스를 타니 버스 안에는 대부분 순례자 승객이었다.

어느 커플 순례자가 내 앞에 앉아 가는 동안 내내 진한 키스를 여러번 나누었다.

아마 서로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라에 도착하니 버스 문 앞에서 알베르게 주인이 손님을 호객한다.

못이기는 척 따라가 짐을 풀고 편하게 옷을 입고 나가는데

까미노를 걸을 때 자주 보았던 브라질 여자가 숙소로 들어오기에

반갑게 인사하며 계획이 무엇이냐 물으니 아무 계획이 없단다.

그냥 여기에 있고 싶다한다.


바닷가로 나갔다. 얼마 만에 보는 바다인가.

까미노 하늘이 바다로 이동한 것 같이  파란 바다가 눈 앞에 있었다.

바닷가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주로 작은 보트가 많았다.


유난히 큰 갈매기들이 사람이 무섭지 않은 듯 바로 내가 앞에 있어도

날아가지 않았다.


바닷가 공터에서 노천 장마당이 벌어졌다.

돼지 족발과 껍데기도 보였다. 포도와 서양배를 샀다.

포도가 정말 맛있었다.

그 곳에서 여행 용 옷가지와 신발을 싸게 사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생각났다.


바닷가 모래 사장이 있는 곳에서 편하게 누워 하늘을 보았다.

얇은 자갈을 주워 바다로 물수제비를 날렸다.

순례자들이 바닷가에 눕거나 모여서 담소하고 있다.

어떤 이는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자고 있었다.


바닷가에 중학생 정도의 작은 꼬마 여자들 몇 명이 물 가에서 잠수하며

바다 속에서 불가사리를 주우며 놀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약 3키로 지점의 등대를 가기 위해 편하게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등대로 가는 길은 낮은 경사가 지속되었다. 관광버스가 지나가고

몇 명이 길을 걷고 있다. 대서양 바다는 동해바다처럼 눈이 부시게 파랗다.


그 길 끝에 까미노 이정표가 하나 있다.

거리 0.0 km

이 곳이 까미노의 시작이자 끝이다.

등대 아래 절벽에 사람들이 쉬고 있다.

어느 연인의 진한 키스를 보면서 나도 내려가 바위 위에 앉아 한 참

내가 걸어 온 곳보다 더 긴 곳에 시선을 허공에 맞추고 하염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 옆에 등산화 한 짝의 동상이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절대 닳아 없어지지 않을 신발은 아마 영원히 이 곳을 남아

긴 길에서 지친 순례자들에게 위안을 줄 것이다.


절벽 위 어디선가 음악이 들렸다.

누군가가 등대 옆에서 바다를 향해 백파이프를 불고 있었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큰 건물에 들어가니 생선 경매가 있어 들여다 보니

생선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바다라도 신선한 생선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일부러 레스토랑의 식사는 하지 않았다.

회나 먹을 수 있으면 금액에 관계없이 먹었을텐데

레스토랑 앞에 펼쳐 놓은 메뉴판의 메뉴 중 어디에도 회는 없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큰 빈대같은 것을 보았기에 사진을 찍어

까미노 카페에 이게 베드버그냐 물었더니 아니라 해서 안심했다.

다음 날 아침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늦잠을 자고

8시가 넘어서야 어슬렁 거리고 일어섰다.

브라질여자에게 어디로 갈거냐고 물어보니 전혀 계획이 없단다.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정류장으로 나갔는데 이미 버스는 만원이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는가 했는데 막 들어오는 버스를 타란다.

알고보니 이 버스는 여기 저기 들러 가는 완행버스였다.

그 완행 버스에도 사람들이 많이 타고 중간에도 몇 명을 더 태웠다.


비가 많이 온다. 버스가 바닷가를 달리는데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그 빗속을 걷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그게 내 모습이었을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순례중이다.

등산복 차림의 어느 아가씨 하나가 중간에 내려 걸을려다가

비가 오니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기를 포기했다.


한적한 바닷가에 조각배가 많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평화스러웠다.

그 빗속을 어떤 민속농악대가 걸어가고 있다. 오늘도 여기 축제가 있나보다.

버스가 20분 정도 달리니 세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제서야 어제 조금이라도 이 바닷가를 걷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세의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흠뻑 맞은 세명의 바이크 순례자가

순례를 다 마친 듯 바이크를 짐칸에 싣고 올라탔다.

그 들의 얼굴은 오로지 선글라스를 끼었던 눈 있는 부분의 피부만 하얗고

얼굴, 팔뚝 그리고 다리까지 나머지 피부는 거의 모두 검은 흑인 같았다.


방금 승차하여 앞자리에 앉은 바이크 남자가 기사와 너무 길게 이야기하고 있어

많이 불안했다. 곧은 길도 아닌데 저렇게 대화하며 운전하면 기사가  

집중도가 떨어져 위험할 텐데 하는 걱정만 가득하며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승객들이 산티아고에 오기 전까지 도심의 중간에서 몇 명씩 내리더니

종착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겨우 몇 명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고

정류장엔 떠나려는 버스도 도착하려는 버스도 없어 제대로 산티아고에 왔는지 의아했다.

주위를 둘러 보다가 문득 갑자기 어제 피니스테라에서의 한적한 쓸쓸함보다

더 큰 외로움이 밀려 왔다.   


이제 공식적으로 산티아고의 모든 여정을 끝냈다.

산티아고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속에서 순례자들은 일반 도시의 숙소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베드버그 때문에 받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기에

3단 스틱을 분리하고 가리비의 끈을 풀어 모자와 함게 배낭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이젠 내가 순례자였다는 것은 남이 모르게 해야 한다.

난 그저 유럽을 떠도는 배낭여행객일 뿐이다.


어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까미노를 떠나기 전에 미리 유럽 여행을 위한

준비물을 같이 가지고 와 출발 전 미리 산티아고 대성당 옆의 우체국으로 보내 놓고

도착후 순례용 옷이나 준비물등은 배낭 째 한국으로 항공화물로 보내기도 한다.


참으로 긴 여정에 지칠대로 지쳐 있지만 이젠 까미노에서 충전한 행복 에너지를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리스본 그리고 스페인의 톨레도, 세비야, 그라나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등

과거와 현재의 영화가 가득한 도시들을 혼자 여행하며 많이 외로울 때마다 

조금씩 나누어 써야 한다.


브라질의 포르투를 철도로 가기 위해 고속열차인 렌페를 탈 수 있는 바닷가 도시 비고로 떠나는

시외버스의 짐칸에 빨간 배낭을 던져 넣고는 일반 여행객처럼 편한 복장으로 버스에 올랐다.

이제는 지나치는 사람에게 스페인식 인사인 '부에노스 디아스'나

까미노 인사인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더 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매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부엔까미노로 인사하는 날이 또 올 수 있을까?



내 사랑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