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carmina 2016. 7. 11. 08:53



2016. 5. 24


이른 새벽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전철을 타려 하는데

그만 티켓이 사용횟수가 다 되었는지 문이 안열린다. 어쩔 수 없이

입구 옆의 공간으로 슬쩍 들어가야만 했다.


이른 아침 포르투의 깜파냐역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로 붐볐다.

따라 나온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떠나는 기차 창밖에서 열심히 사랑한다는

손짓을 보내고 있고 열차 안의 아이들에 부모님이 안 보이자

자기들끼리 신이 났다. 인솔 교사인듯한 선생님들도 여유로웠고

아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무어라 하는 선생님들이 없었다.


그런데 열차 좌석 번호가 이상하다. 대개 옆자리의 번호는

순차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숫자 하나를 건너 뛰었다. 알고보니

의자를 돌리면 4자리가 서로 마주 보게 되는 곳의 번호는

그렇게 되어 있고 돌리지 않는 좌석의 번호는 연이어 있는 것 같았다.

미치 비행기처럼 화장실도 일회용 변기커버가 있다. 


리스본에 도착하니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기차역에 놀랐으나

메트로를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니 마치 궁전같이 거대한

지하 공간이 있어 놀랐다. 에스컬레이터 아래 CD와 LP떨이 세일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여유만 있다면 비록 사지는 못해도

여기 오랜동안 서서 한장 한 장 들추어가며 고리타분한 냄새를 맡으며

곡들을 하나 하나 읽어 보고 상상할텐데 아쉽다.


예약된 깨끗한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어제 손가락 임시치료한 것을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 숙소 바로 앞의 큰 병원에 들어가니

아동병원이라 성인은 치료안한다 하며 다른 곳으로 가라한다.


인근의 산 호세 병원을 찾아가니 치료하는데 무려 150유로를 내야 한다며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병원을 알려 줄테니 택시타고 가라며 주소를 적어 주었다.

여행 중 처음 택시를 타고 간 병원에서는 담당의사가 없어서

내일이나 진료가 가능하다기에 포기하고 전철로 바닷가로 가는 전철을 탔다.


리스본에서 모든 길을 바닷가 앞에 있는 넓은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통한다.

여의도 반 정도 크기의 이 광장에는 호세1세의 기마상이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광장의 대문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아르코 다 루아 아우구스타의 웅장한

백색 대리석의 아치 아래로 사람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 아치 위에 여신이 두명의 포르투갈 영웅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명은 스페인의 콜롬버스와 같은 역할을 한

포르투갈의 개척자 바스코 다 가마 와 또 한 명은 1755년 대지진이 후

폐허가 된 리스본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폼발 후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의 기마상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고 Eye 관광을 즐기며

한 켠에서는 세그웨이를 배우는 청년들이 강습을 받고 있다.

천천히 바닷가로 나갔다. 지난 한 달간 얼마나 그리워 했던 바다인가?

파란 대서양의 끝없는 물결이 천천히 밀려오며 '나 여기있소'하고 말을 거는지

바다물이 들어오는 곳까지 길게 이어진 경사면에 사람들이 파도와 발로 대화를

즐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연인과 진한 키스를 나누고 어떤 이는 바닥에 누워

하늘의 구름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여행자의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 여기 보인다.

그 곳에 앉아 한참 멍하니 바다를 보고 사람 관광을 즐겼다.

어떤 흑인이 봉투에서 쿠키를 꺼내 갈매기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는데

주는 양이 자기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고 마치 동물 사육하듯이

무더기로 던지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갈매기를 사육하나?


바닷가에 우뚝 선 두개의 기둥은 갈매기들의 휴식처다. 지구를 올려 놓은 듯한

기둥 꼭대기에 갈매기들이 그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바다를 향해 막아 놓은 낮은 담에는 서로 마주 앉을 수 있는 돌의자를 만들어 놓아

바다를 즐기는 방법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보는 것 같았다.


바닷가 카페를 거니는데 모히또 7유로가 눈에 들어 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모히또 가서 몰도바나 한 잔할까 라는 개그를 생각하며 웃음이 나왔다.

난 혼자 있으니 2유로짜리 싼 맥주 한 잔으로 대신한다.


몰려다니는 관광객들을 보니 거의 서양인이고 동양인은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들이다.


광장의 오른 편 언덕을 천천히 오르다가 문이 열려 있는 작은 성당안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이 곳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죽음과

무덤안에서의 모습을 레이저를 이용하여 흔적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놓았다.

십자가 상에서 창에 찔렸을 때 어느 부위를 어느 각도로 찔렸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신체내에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보여 주고 손과 발에 박혔던

못의 종류와 가시면류관을 직접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또한 병사들이 쓰던 채찍과 그 채찍으로 인해 상처받은 부위까지 자세하게

묘사해 놓아 믿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성 도밍고 대성당에 들어가 천천히 둘러 보고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 올라가니 바닷가에 엽서 그림같은 진한 오렌지색의 지붕을 가진

집들이 눈 아래 펼쳐지고 바닷가에는 커다란 크류즈선박들이 정박되어 있는

풍경을 보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 전망대 앞에 작은 선물을 놓고 파는 아가씨 옆에 손에 우클렐레를 들고 있는

거리 악사가 있어 혹시나 연주할까 해서 한 참을 기다렸는데 두 여자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결국 포기했다.


멀리 보이는 백색 돔형태의 건물과 수도원의 건물의 배치가 

이태리의 어느 유명한 도시에 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전망대 난간에 기대어 사진을 찍느라 도무지 틈이 없다. 그 사이에서

클래식 기타를 치는 거리의 악사가 여행의 흥을 돋군다.


전망대를 내려 와 길을 가는데 리스보아의 명물인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도 줄을 섰다가 워낙 긴 길이라 포기하고

산 호르게 성을 둘러 볼까 하다가 그냥 골목여행을 시작했다.


골목 골목에 그려진 거대한 그라피티를 보는 것도 즐겁고 누군가의 조형물 전시회와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우두커니 서서 듣는 것도 좋다. 골목에 파두음악을 주제로 한

커다란 그라피티를 보면서 문득 우리 집 벽에 이런 그림을 그리며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파두를 듣기 위해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물어 보았으나 파두공연은 주로 저녁에 하기에

지금은 없다하여 어쩔 수 없이 길거리 악사가 부르는 파두로 대신했다.


골목을 빠져 나와 페궤이라 광장에 도착하여 주앙1세의 기마상 앞에 앉아 이국의 풍경을

즐기고 이 곳에서도 흑인들이 길거리에서 조잡한 물건들을 파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어느 작은 카페 앞에 거리의 그룹밴드와 사람들이 몰려 있어 가보니 사람들이

이상한 술을 한 잔씩 사서 들고 있다. '아 진지냐'라는 브랜드인데 작은 일회용컵으로 한잔에

2유로에 팔고 있다. 안에 체리 두알이 들어 있고 진하고 달콤한 꼬냑 냄새가 났다. 맛이 너무 강해

물을 한 잔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릴 정도로 이 술은 인기가 있었다.


여기 저기 산책하다가 호시우 메트로 앞에 분수가 있는 페드로4세 광장에 들어가니

광장 바닥의 자갈 포장이 아름다운 물결 무늬로 되어 있다.  


지난 한 달간 거의 해물을 먹지 못해 바닷가에 왔으니 신선한 해물을 먹고 싶어

아우구스타 거리의 식당가에서 천천히 메뉴를 보며 걷다가 비교적 저렴한 메뉴를 보고

들어가 음료수로 와인 한 잔을 시키니 작은 병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와인이

상했다. 종업원을 불러 와인이 상했으니 다른 것으로 가지고 오라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지만 조금 마셔보고는 다른 와인을 가지고 왔다. 새우와 문어 그리고 조갯살로

만든 꼬치 요리는 맛이 있었다. 그럴듯한 식사를 하고 계산서를 달라하니 무려 30유로.

어이가 없어 물어 보니 음식값은 11유로인데 와인은 물론이고 곁들여 나오는 빵과 버터

그리고 봉사료와 세금까지 합치니 당연하다는 듯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완전 바가지 썼다. 대개 빵과 버터는 어디나 무료로 제공하는 법인데 내가 와인 바꾸어

달라 했다고 앙갚음하는 것인가? 


썩은 콩을 씹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내 방에 캐나다 여자와 브라질 여자가 있어 밤늦게까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나다 여자는 하쿠나 마타타 라며 세상을 즐겁게 여행하고 있다 하고

브라질 여자는 얼굴에서 약간 동양적인 모습이 보이기에 물었더니

할머니가 일본인이었다 한다. 그러나 일본어는 전혀 모른다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리스본의 서쪽 지역인 벨렝을 찾았다.

저녁 야간열차로 스페인의 마드리로 가야 하기에 배낭은 접수대에 맡겨 두고

메트로를 찾아 가는 길이 조금 어려워 불편해 아침 출근시간이 사람들이

메트로로 향할 것 같아서 사람들아 몰려다니는 길로 따라 다녔다.


메트로를 타고 내려 트램으로 갈아타야 벨렝을 갈 수 있다.

트램은 정거장 표시가 허술해 내가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승객들에게

물어 보고서야 제대로 내릴 수 있었다.


벨렝은 바스코 다 가마가 범선을 타고 대륙 발견을 위해 떠난 곳으로 유명고

그 곳에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다.


벨렝에 도착해 손가락 보호를 위해 일회용 밴드를 샀는데

접착력이 부족해 자꾸 떨어졌다. 포르투갈 같은 선진국에서 이런

허술한 밴드를 만들어 파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벨렝에 도착하니 어제 저녁 식당에서 얼굴을 본 한국 단체 아주머니들이

아는 척을 하기에 개인 사진을 부탁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방문객들은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섰다.

이 수도원은 중세시대 포르투갈이 신대륙 발견을 위해 나서는

모험가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었다.


백색의 판테온이 중앙에 있고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수도원의 가운데로

들어서자 시야가 탁 트이는 공간을 축구장을 둘러 막은

관중석같은 이층 건물이 이색적이었다. 그 공간 안에 들어가 평안함이 느껴졌다.

방 하나 하나를 다 개방하지는 않았고, 어느 방에는 근대의 유명한 작가의

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다.  


각 방으로 들어가는 곳의 아치형 장식이 참 아름다웠다.

이런 것을 조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갔을까?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의 모든 유적지는 이런 대리석 조각이 많아

그 작품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돌을 떡 주무르듯 하여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어 낸

우리 신라시대의 선조들과 더 재능이 많은 유럽 사람들을 

오래 전부터 비교하게 되었다.

가느다란 기둥하나조차도 조각을 해 놓아 감히 만지기가 두려울 정도다.


하얀 구름이 덮힌 하늘과 하얀 대리석 건물의 대비는 그야말로 이 곳이

세상의 천국임을 보여 준다.


긴 회장을 걸어가며 손뼉을 쳐 보았더니 울림이 좋다.

조그마하게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 수도원 내부를 보고 나와 옆의 성당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줄 선곳을 지나다가 문득 아는 얼굴이 보였다.

며칠 전 산티아고 까미노를 마치고 한인민박집에서 하루 묵을때

그 집에서 묵으며 저녁을 같이 했던 모녀를 이 곳 리스본에서 만날 줄이야. 


수도원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성당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성당의 내부 이층에

걸어 놓아 더 엄숙하게 만들었다.



수도원을 나와 해변쪽으로 걷다가 벨렝 문화회관에 들러 최근에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포르투갈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고 몇 개의 전시회가 열렸다.

나는 세계 어느 곳을 가던지 이런 공연장에 대해 관심이 많다.

혹시라도 여행 중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아

가능한 시간이 되면 들러 보고 싶다.


트램이 달리는 기차 선로 저편에 바닷가로 가기 위해서는

선로 밑 지하 터널로 건너야 하는데 그 안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거리의 악사가 귀에 익은 아니로리와 비틀즈의 노래들을 연주하고 있다.


거대한 발견기념비 탑이 보인다.

바다를 향해 달려갈듯한 범선의 돛대를 형상을 한 하얀 석조물의

기둥엔 돛을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십자가를 의미하는것인지 모호한

형태의 기둥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배에 탄 사람들이 먼 바다를 바라보고

무언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역동적인 모습들을 조각해 놓았다.

포르투갈의 영웅 바스코 다 가마의 대 항해와 마젤란등을 의미하는 것일것이다.

바닷가에는 LOVE라는 단어로 철 구조물을 만들어 사람들의 사랑의 징표인

열쇠를 걸어 놓았기에 혹시 한국어로 된 징표가 있을까 뒤적거려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옆에 있는 나이 든 외국인에게

내 폰을 주며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알려 주었는데도 이 남자는 두번이나

사진찍기에 실패하여 옆의 부인에게 한 소리듣고 결국 사진은 부인이 찍어주었다.

손만 갖다 대면 찍히는 스마트폰 사진인데 그것도 못했을까?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평화로웠지만 작은 분수대에서

엄마와 새끼 오리들의 산책은 사람들 모습보다 더 평화로웠다.


벨렝에는 이런 커다란 유적지말고 인기있는 장소가 에그타르트를 파는

역사가 있는 가게가 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긴 했지만 어디 있는지 몰라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 에그타르트를 먹었지만 그 장소가 불과

10미터 옆에 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중에 이층 투어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그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가게 앞에 바닥에

가게가 처음 문을 1837년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보였다.


리스본 시내로 돌아와 이층투어버스를 타고 전체 리스본지역을 관광했다.

버스는 리스본의 구석 구석을 거의 1시간 동안 돌아다녀 주마간산격으로

리스본을 구경했다.


호시오 역 근처 바닷가에서 이상한 젊은이를 보았다.

바닷가의 흩어진 돌들을 주워 탑을 쌓고 있다.

그런데 그 탑이 돌의 생김새를 고려해 일직선으로 쌓아 올리는

놀라운 손의 감각으로 하나 하나 만들고는 돈은 필요없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라고만 안내문에 써 있다.

 

이 곳은 광장이던 골목이던 어디든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고

자신들이 취입한 음반을 팔고 있다. 첼로 연주자는 오케스트라를

백뮤직으로 틀어 놓고 자신의 첼로 콘체르토를 연주하고 있어 한참을 서서 들었다.

혹시 유명 첼리스트는 아닐까?


이제 포르투갈 여행은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회수하고 밤 열차로 마드리로로 가서

다음 여행지인 톨레도를 가야 한다.

배낭을 회수하고 기차표를 확인하다가 문득 내가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역이 당연히 내가 리스본에 도착한 오리엔테 역인 줄 알았는데

출발은 다른 지역에 있는 산타 아폴로니아 역인 것을 알고는 내심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차표에는 산타 아폴로니아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약자로 표시되어 이런 실수가 생긴다.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 도착하니 어느 외국 아가씨가 오리엔테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며 내게 물었다.


렌페역으로 가는 메트로 안에서 중학생 정도의 여자들 4명이 재잘거리다가

전철문이 열리자 얼른 뛰어 나가는데 내가 얼핏 보니 앉았던 자리에

끈이 달린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기에 문을 나가려는 아이의 팔을 얼른 붙들고

알려 주었더니 놀라며 폰을 잡자마자 문밖으로 뛰어 나가자마자

전철이 떠나니 창문밖에서 내게 고맙다는 손인사를 보냈다.

문득 한 달 전 파리 전철안에서 스마트폰을 잃어 버린 딸이 생각났다.


기차역에 커다란 마트가 있는 것을 모르고 미리 밤에 먹을 빵과 음료수를 사서 

들고왔지만 기차내 식당칸에서 먹으면 안된다기에 옆에 앉은 손님에게

미안해 보였지만 조용히 소리 안내고 먹었다.


서로 마주 앉게 되어 있는 좌석이라 조금 불편했다.

내 자리 근처에 4명의 인형같이 이쁘게 생긴 아가씨들이 일행인데

아마 자리를 좌석을 잘 못 예약했는지 서로 두명씩 떨어져 앉았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산티아고 까미노 길과 사뭇 달랐다.

온통 올리브나무와 자주 노란 해바라기 밭과 빨간 양귀비 밭이 보였다.


창가에 어둠이 짙어 지기에 눈을 감으니 바로 5분안에 잠들어 버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안녕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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