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스페인, 세비야

carmina 2016. 7. 12. 10:28



2016. 5. 28


톨레도에서 올라와 기차역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세비야로 가는 렌페를 탔다.

기차는 KTX처럼 시속 300km로 주행했고, 주위에 펼쳐지는 풍경은

거의 모두 올리브나무들과 빨간 양귀비 밭들 그리고 가끔 해바라기 밭이 보였다.

기차길 옆 문득 건설중인 도로에 내가 직장생활동안 내가 하는 업무의 스페인 경쟁업체였던

회사의 이름이 보여 반가왔다.  


올리브 밭의 나무들이 적당하고 정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잇는 것을 보니

모든 농사업무를 기계로 하는 듯 하다. 그 올리브 밭에는 과수원을 돌보는 사람이

몇 시간을 달려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건물 벽에는 멋진 그라피티가 보여 심심하지 않았다.


많은 벌판에 다 자란 올리브나무들이 가득하고 군데 군데 이제 막 심은 듯한

올리브들이 흔들지지 않게 보호막대와 흰천으로 고정되어 자라고 있었다.

올리브들이 없는 벌판에는 소들과 양떼들이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고...


세비야에 내려 시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방향감각이 없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정류장에서 사람들 오기를 기다렸다가 겨우 제대로

숙소 근처에 내리고 또 여기 저기 행인들에게 물어 숙소를 찾았다.

숙소는 젊은이들의 시끄러운 대화로 무척 혼란스러워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이 금요일이라 그러니 이해해 달란다. 여기도 불금이구나.


세비야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 도시로 유명하다.

세비야에 오면 플라맹고가 유명하니 저녁에 플라맹고 공연을 예약했다.

주방에서 톨레도에서 사온 한국라면과 숙소 옆에서 사온 계란 6개들이 한 팩으로

오랜만에 한국냄새 물씬 나는 메뉴로 포식햇다.


숙소로 어떤 이가 와서 나 말고도 다른 사람 한 명을 데리고 공연장으로 가는 도중

광장에서 또 다른 일행을 기다려 미국 교포인 한국인 가족 포함해서 몇 명이 합류했다.


가는 길에 플라맹고 드레스와 장식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몇 개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간 거리 뒷 골목에 조그만 공연장. 먼저 온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큰 무대에 기대했고 많은 무녀들과 남자 댄서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줄 알았다.

중간 쯤에 앉아 약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되니 문이 닫히고 4명의 연주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한 명 젊고 섹시한 모습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기타를 든 남자 한 명.


기타리스트가 튜닝을 하고 공연 준비가 되었는지 나이든 여자가 노래를 부른다.

아주 구성지고 애가 타는 목소리에 맞추어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요염한 눈짓으로

두 손을 위로 올려 리듬감있는 박수와 함께 치마를 살랑이며 탭댄스를 추듯이 구두로 박자를 맞춘다.

그리고 앞에 앞 가슴을 풀어헤친 남자도 구두탭으로 박자를 맞추고 팔을 비비꼬며 흐느적 거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 안되는 것 하나가 가수가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손바닥을 비스듬하게 해서 치는 박수를 얼마나 세게 치는지 보는 내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후 놀라운 플라맹고가 1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때론 솔로 댄스 솔로 기타 그리고 듀엣으로

연주하는 플라맹고의 열기에 폭 빠져 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손님들을 위해

짧게 플라맹고 춤을 배워 보는 시간을 가졌다. 손뼉의 리듬, 발과 팔의 동작.

그리고는 '올라' 하고 외쳤다.


숙소로 돌아오는 거리에는 금요일 밤을 늦게까지 거리에서 지내는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고 카페는 늦은 시간까지 붐볐고, 사람들은 거리를 헤매었다.


다음 날, 같은 방의 사람들은 모두 8시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라면을 먹었는데도 아침에 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야 배낭에 넣으면 되지만 계란은 먹고 나가야 했기에..


어제 톨레도에서 한국인 관광 가이드가 세비야에서는 대성당과 알카자르를 꼭 보라 했기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거리를 가는데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트램이 거리의

한 복판을 물흐르듯이 지나갔다. 트램의 외부는 완전하게 광고로 랩핑되어 있었다.


세비야는 로마의 바티칸 성당, 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함께

전 세계에서 규모면으로 3번째로 큰 성당이라 관광객이 무척 많다.

대성당 앞에 긴 줄이 있기에 나도 줄을 섰다.

그러나 아직 티켓 오픈 시작이 안되었는지 줄은 점점 늘어만 가고 줄어들 기색이 전혀 없었다.

줄에서 빠져 나와 반대편으로 가니 성당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어 따라가니

아침 미사를 드리고 있었으나 안내원이 줄을 쳐 놓고 미사드릴 사람만 들어가게 했다.

현지주민 뿐만이 아니라 관광객도 미사를 드린다 하면 들어가게 해 주었다.


그런데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의 낭랑한 소리가 성당 가득히 울려 퍼지기에

안내원 옆에서 오래 동안 서서 그 음악같은 낭송을 들었다.

그리고 가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들리는 성가대의 그레고리안찬트의 소리는

적어도 내 귀에는 황홀하게 들렸다.


그러다가 성당내의 반대편으로 가니 그 쪽은 안내원이 없고 빈자리를 찾아서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남들이 일어서면 같이 일어서고 앉으면 같이 앉았다.

내 관심은 음악이었다.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는 전방은 멀어 자세히 못 보았지만 내가 앉은

뒷편에는 파이프올갠 연주자가 있고 그 옆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수사복을 입은

남자들 몇 명이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마이크도 없이 부르는 것 같은데 어찌나 소리가 성당안에 잘 울려 퍼지는지

더 자세히 볼려고 최대한 가까이 붙었다. 그 어떤 오디오로 그레고리안 찬트를

듣는 것보다 더 감동 속에 파 묻혔다.

미사가 끝나니 모두 나가라 했다. 이제는 요금을 내고 들어와야 한단다.


밖에 나오니 줄은 더 길어졌다. 도무지 기약없을 것 같아 인근에 있는

알카자르를 우선 보기로 했다. 그 곳에서 줄은 길었지만 대성당만큼은 아니었다.

줄이 2개중 하나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들이고 하나는 현장매표였다.


알카자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시대에서부터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몇 백년 동안 여러 왕조에 걸쳐서 만들어진 여러개의 궁전이기에
일관성은 없지만 이슬람의 건축물을 많이 본 내 경험상으로는 중동지역에서
자주 본 건축형태와 그리 다를바 없었다. 그러나 돔같은 형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의 장식물이 모두 사라진 곳이라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썰렁하지만
방에 따라서 오래 전의 물건들이 조금 남아 있어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그 시대의 궁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알카자르의 정원뿐이다. 사람들은 주로 정원을 보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오스트리아의 쇤부른 궁에서 보던 거대한 나무벽이 있고
미라벨 정원에서 보던 미로 형태의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곳곳에 분수가 많아서 청량감을 느끼고 역사의 이끼가 가득한 정자에 앉으면
그 시대로 들어가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 시대의 분수는 현대처럼 공중으로 치솟는 물줄기가 있는 분수가 아니고
대개 바닥에서 파이프 한개로 물이 조금 흘러나와 넘쳐 흘러서 다른 곳으로 보내지는 형태다.
건물의 회랑에 기둥장식이 아름답고 빗살무늬의 바닥장식과 잘 연한 갈색의 외벽이
아직도 색이 바래지 않아 참 아름다웠다.


정원이 너무 커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다. 커다란 연못이 있고
숲 사이로 오리 가족들이 뒤뚱거리며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궁전의 2층 회랑을 돌아가며 보는 정원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나무들 사이로 정원의 아름다움과 함께 연인들이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들이 많아 그런 사랑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꽃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보라빛 꽃과 연분홍 꽃들이 나무에 가득하여
하늘을 덮고 떨어진 꽃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꽃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성당으로 찾아가니 오전처럼 매표앞 줄이 길지 않았으나 입장시간이 4시까지로 되어 있어

어쩌면 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다행하게도 줄이 빨리 줄어들어

마감시간 전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중국인인듯 한 아가씨가 얼마나

개인 사진을 이쁘게 찍을려 노력하는지 사람들이 그걸 보느라고 지루한 줄 몰랐다.


세비야 성당의 내부는 어두웠고, 내부에는 이전의 교황들이 사용하던

각종 미사용품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미사때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교황이 바뀔 때 마다 모두

다른 형태로 새로 만드는 것 같았다.


어느 방에 들어가니 판테온 같은 천정이 무척 높은 곳 까지 이어지고

내부 페인팅이 너무 아름다워 그 곳에 한참을 앉아서 천정을 바라보았다.

세비야의 명성은 성당의 규모보다 그 곳에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어 유명하다.

콜럼버스가 4번의 항해를 통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실제로 보물은 가지고 오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스페인 왕으로부터 홀대를 받았기에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다시는 스페인 땅에 묻지 말아달라고 유언하여

유해가 여러 나라로 떠돌다가 마지막에 쿠바에서 세비야로 이전했고

세비야 대성당 안에 안치하면서 그가 사후 신대륙을 통해서 얻어진

수 많은 보물들에 대한 가치를 인정 받아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유해는 땅에 묻지 않는 대신 스페인의 레온, 아라곤,

카스티야 및 나바라 왕국의 왕들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유해가 담긴 관을

어깨에 메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의 꼭대기까지 올라 갈수 있어 비스듬한 좁은 통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서 본 세비야 시내 모습은 이태리의 어느 큰 역사있는 도시를

보는 것 같이 고색이 창연했다.


목적했던 대성당과 알카자르를 관람 후 숙소로 돌아와 그라나다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세비야 전체 동영상 



알카자르가 너무 아름다워 별도 동영상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