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carmina 2016. 7. 15. 17:59



2016. 6. 1


바르셀로나에서 절대 빼먹지 말아야할 관광이 바로 가우디 투어다.

가우디 투어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어 인터넷으로 통해

자전거 나라에 예약금을 지불하고 투어를 신청했다.


안토니오 가우디에 대해서 약간의 기본 상식은

1852년 태어나 1926년에 사망하였고

주로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건축 설계를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영국을 시발점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로

전 유럽이 기존 건물들을 대체할 새로운 건축물들 새로 짓는 붐이 있었다.

가우디는 구리세공사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무언가 섬세하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성장했으며 자연의 형상을 건축설계에 응용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가우디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약 16개 정도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바르셀로나에 있고 그 외에 산티아고 까미노를 지나는 도시인

레온과 아스토르가에도 작품이 남아 있다. 물론 이 숫자는

가우디가 전체적으로 설계를 맡은 건물수만 얘기하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설계한 작품도 많지만 대중에게 그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른 작품은 몰라도 전세계인이 알고 있는 성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가 필생의 역작으로 인정받고 있고 1883년에 시작하여 130년이 지난 지금도

건설중인 성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즉 예수님의 가족이야기 즉

예수님과 요셉 그리고 마리아를 모티브로 설계한 거대한 건축물이다.

현재 2026년을 목표로 건설중이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적어도 그 보다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내가 미리 파밀리아 성당 투어 티켓을 사놓은 것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가우디 투어 예약은 꼭 티켓에 지정된 시간만 가능한 것을 모르고

나중에 환불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아침 8시 반 숙소에서 가까운 전철역에서 투어팀을 만났다.

한국인들 주로 청년들이 약 15명정도 모였다. 그 중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연극영화가 전공이었다는 훤칠한 키와 얼굴이 조그마하고 잘생긴 얼굴의 남자 가이드가

모두에게 설명을 개인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어폰셋트를 나누어 주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가우디가 최초로 설계한 비센스 저택이다.


폰타나 메트로 역에서 가까운 곳의 골목에 있는 이 건물은 마침 전체 주택을 보수중이라

도로로 향하는 면은 막아 놓았고 대신 원래 저택의 그림을 크게 걸어 놓았다.

비센스라는 이름은 건물 설계를 의뢰한 주인의 이름이고

건물의 설계는 그 집의 터에 있던 꽃들과 나무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공사중이라 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이 타일공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가우디는 타일공장의 재료들을

이용하여 건물 외벽의 장식을 꾸몄다. 아울러 꽃의 모습을 형상화해

외부 장식은 꽃 무늬 형태로 되어 있는 3층의 건물이다.

담장의 철 구조물은 야자수나무의 형태를 빌렸으며 기성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인근 철공소에서 모두 하나 하나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현재 이 곳 주위의 땅값과 주택가격이 올라가 세들어 살던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고 한다.

보수공사가 완공되면 주택이 모두 카페나 다른 상업용도로 건물로 바뀔 것이라 한다.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람블라 거리 리세우 역 근처의 구엘궁전이다.

가우디는 평생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당시에 최대의 갑부인 구엘을 만났다.

구엘은 1888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그 때까지 완공해 줄것을 요청했으나

공사는 1890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구엘궁전의 꼭대기에는 1888년을 새겨놓아

그 목적을 부각시켰다.


당시 이 건물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너무 화려하고 극도로 사치스러워

세간의 비판을 받았으나 완공되었을 때는 모두 감탄하였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가우디는 건물을 짓다가 마음에 안맞으며 짓던 것을 부수어 버리고

새로 짓는 돌출적인 행동을 많이 하였다. 이 구엘궁전 공사 중에도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 구엘의 재정관리인이 구엘에게 이런

상황을 알려 제발 말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구엘은 가우디를 불러

더 화려하고 확실하게 지으라며 철저하게 가우디를 믿어 

언제 어디서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런데 건물은 가우디의 건물 답지 않게 외부가 철구조물이고

빌딩의 형태도 곡선이 아닌 직선형으로 되어 있다.

이 것은 구엘이 남들의 이목을 걱정하여 그렇게 부탁한 것이라 한다. 

가우디도 그 부탁을 들어주긴 했지만

옥상에 가우디 특유의 옥수수같은 타일 장식품을 만들어 올려 놓았기에

역시 가우디라는 이름이 돋보였다.


건물 내부도 파밀리아 성당같이 자연 채광을 최대한 이용하여 밝게 했으며

이 건물에는 아치형의 큰 문이 두개가 있다. 당시에는 모두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

마차는 뒷걸음치기를 못하니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을 따로 만들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구엘 궁전 근처에 레알 광장에도 가우디의 작품이 있다.

어제 혼자 산책하며 보긴 했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 작품은 건물이 아닌 가로등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가로등에 대한 설계를 공모하여

가우디의 작품이 뽑혔지만 제작할 돈이 부족하여

실제로 그 작품이 전 시내에 설치되지 않고  작품을 기부하였다 한다.

만약 가우디의 가로등을 대량 생산했다면 아마 지금쯤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온통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 가로등 두 개가 광장의 양 편에 세워져 있고 바닥에 가우디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나

눈여겨 보지 않는 관광객들은 그것이 가우디 작품인줄 모르고 있다.


다음에 찾아 간 곳은 카사 바트요.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디아고날 역에 내렸을 때 주위에 보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그야말로 누가 보아도 가우디 것이라고 할 만큼 독특하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갑부들은 자신의 부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의 저택을 가지고 싶어 했다. 카사 바트요의 옆 건물도

당시로서는 최고 유명한 건축사가 설계한 것으로 바트요씨는

그 보다 더 멋진 자신의 건물을 기존 건물을 보수하여 지어 주기를 요청했다.


가우디는 그 건물의 설계에 전설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놓았다.

얼핏 외관을 보면 마치 물속에서의 풍경을 연상하여 물고기의 모습도 보인다.

타일로 물고기의 비늘을 형상화하여 건물이 빛을 받으면 여러가지 색상으로

보인다. 이 것은 바르셀로나가 지중해 해안에 있는 도시이기에

바다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창문을 통해서 내부가 자연채광되도록 설계했으며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옥상에는 용의 모양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있어

사람들마다 저마다 알고 있는 전설의 이야기를 이 건물의 모습에 비유하곤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바트요 저택의 독특한 외부와 내부 모양으로

적어도 4개 정도의 설계 모티브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한다.


우리 일행은 바트요 저택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실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입장 티켓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카사 바트요의 대각선에 가우디의 민간 저택으로 설계한 마지막 작품인

카사 밀라가 있다. 라 페드레라 (채석장)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는 이 건물은

건물의 외부모습과 안으로 들어가면 채석장을 연상하는 듯한 기둥과 내부구조로 되어 있다.

아파트를 목적으로 만든 이 작품은 주인인 밀라의 부탁으로 십자가를

세우지 말아달라고 하여 옥상에 십자가를 세우는 대신 석상을 몇개

만들어 놓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석상들이 카사 밀라 옆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 아파트의 이층은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한다.


모두 버스를 타고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메트로표를 버스에도 이용가능하다.

파밀리아 성당만큼이나 유명한 구엘공원을 가우디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구엘공원.

원래 구엘은 바르셀로나 도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 정원도시를 만들고 싶어 가우디에게

이 곳을 그리스의 올림푸스산의 신전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설계를 하고 가우디는 기존의 자연 조건을 최대한 살려 주택들을 지을려

생각했지만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이 곳이 돌산이고 급수가 안된다는

단점만 생각해 분양신청을 거의 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우디는 이러한 단점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만의

독특한 설계를 했다.


즉, 바위를 이용하여 터널을 만들고 바위를 깎아 멋진 조형물을 만들었다.

또한 물에 대한 대책으로 산위에 넓은 평지를 만들고 그 평지에 빗물이 고이면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물을 담을 수 있는 저수조를 만들어 정화시켜서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평지는 부드러운 흙으로 물이 스며들기 쉽게 하고

그 공간 주위를 타일을 조각내어 장식함으로서 용의 꼬리모양을 연상하게 하여

누구나 그 곳에 앉아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바라 보고 싶은 멋진 돌의자를 만들었다.

바닥에 스며든 물은 광장 밑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커다란 콘크리트 저수조를 만들고

저수조 밑에 대형 콘크리트 기둥으로 받쳐서 그 기둥안에서 물이 정화되도록 설계했다.

또한 공원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저수조 밑 부분에 해와 달 별 그리고 꽃을 상징하는

조각을 붙여 놓았다. 수많은 기둥 또한 받침 부분은 원근법을 이용해 멀리 있어도

높이가 같이 보이도록하는 착시를 이용했고 물의 무게와 콘크리트 저수조를 하중을 견디기 위해

주변에 있는 기둥은 약간 경사를 주어 과학적인 설계를 했다.


또한 그리스의 전설을 생각할 수 있도록 커다란 용과 도마뱀의 형상을 멋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 청약이 없자 결국 집은 2채만 짓고 신주택단지 계획은

공원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역사는 그러한 실패 작업을 커다란 기회로 만들었다.

집 한채는 구엘의 집이고 또 한 채는 후에 가우디가 살다가 사망 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엘공원을 내려와 오늘 최종적으로 볼 가우디의 최대 역작인 성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우리가 미리 성당을 볼수 없게 인근에서 버스를 내려 상가 골목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성당을 보며 놀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파밀리아 성당 투어를 하기 전에 식사를 하고 오라기에

일행 중 혼자 온 젊은 아가씨들 몇 명과 같이 인근에 부페하는 곳에 갔는데

내옆에 아가씨가 스페인 여행을 온 동기를 얘기하는데 이유를 딱 들어 보니

내가 2년전 회사 경영의 어려움으로 그만 두어야 했던 회사인 것 같다.

슬며시 '엔지니어링?' 하고 물었더니 깜짝 놀랐다. 어찌 아느냐며..

직원이 8000명이나 되는 회사였고 그 아가씨는 아직 초급 대리급이라

서로 얼굴은 모르는 사이였고 그녀의 상관은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만약 미리 알았다면 내가 점심값을 냈을텐데 이미 들어오면서

지불했기에 아까운 공짜 점심기회를 놓쳤다' 하며 웃었다.   


성당에 미리 들어가기 전에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거대한 크레인으로 한참 작업중인

눈 앞의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배경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했다.

또한 성당을 배경으로 개인 사진을 일일이 다 찍어 주고 입장 티켓을 나누어 주고

본인의 역할을 끝냈다. 안에 들어가서는 마음껏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성당 외관의 4개의 옥수수같은 탑은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인근에 있는 몽세라트 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예수님의 탄생전부터 삶,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 후

승천까지 모든 기록이 건축물에 표현되어 있다.

아울러 열두제자의 상징하는 탑과

신약의 4대 복음서를 쓴 작가를 상징하는 탑도 있고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하는 커다른 문이 있다.

보통 이 문에서 관광을 시작한다.


성당의 동 서 남쪽은 각각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그리고 영광의 파사드로 구성되어 있다.

파사드라 함은 출입문이 있는 쪽을 말한다.


탄생파사드에는 커다란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하는 3개의 문이 있고

그 위에 성경 속의 이야기에 관한 인물들과 상황등을 묘사해 놓았다.

이러한 조각을 할 때 실제 비슷한 사람이나 동물을 찾아서 몸에 회반죽을 붓고

본을 떠서 만들었다. 가장 힘든 것이 어린 아기 예수상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살아있는 아기를 구할 수 없어 병원에서 막 사망한 아기를

빌려 회반죽을을 떴다는 말이 있다. 

그 곳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수태고지, 동방박사들, 마굿간의 모습,

목동들의 모습, 요한의 세례장면, 등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 밑에 예수님의 족보가 적혀 있는 기둥이 있다


또한 수난파사드에는 유다의 이야기, 베드로와 병사들의 이야기,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채찍을 맞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고 병사들이 옷을 찢어 나누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얼굴이나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 안에 슬쩍 가우디의 모습을 포함시켜 놓았다.

그 맨 꼭대기에 예수님의 승천한 모습이 이색적이다.

또한 그 옆에 거룩하다는 뜻의 Santuss 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다.

수난 파사드에 사도신경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


이 수난파사드로 들어가는 문의 바닥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그림이 심플한 선으로 바닥에 그려져 있다.


이 수난부분의 설계는 가우디의 사후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라는

가우디의 제자 건축가가 설계를 담당했다. 그러나 앞의 탄생 부분과는

다른 컨셉을 가지고 설계를 하였기에 성직자들이나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으나 그대로 진행했다고 한다.


막상 최초 설계자인 가우디가 없으니 그 뒤 추가되는

설계부분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아직도 논쟁이 계속 된다고 한다.


성가족 성당 (La Sagrada Familia)은 신약의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여 설계한 작품이다.

초기 설계부터 가우디가 참여한 것은 아니다.

부지설계와 지하 공간 설계는 다른 사람이 수행했고

가우디는 그 이 후 지상의 건축부분에 대한 설계부터 참여했다.


초기에는 이 성당을 신도들의 기부금으로만 건립하는 것으로 했기에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많이 중단되었지만 가우디에게는 오히려 그게

설계를 더 정확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지금 공사비는

거의 모두 관람객의 수입으로 지어지고 있고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126년에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그 때까지도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지금 성당 주변에 있는 일부 주택단지를 완공단계에서

철거해 버리고 그 곳을 공원으로 두면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

성당의 모습과 합쳐져서 커다란 십지가로 보여진다고 한다.


성당의 실내로 들어가 보았다.

이제까지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본 성당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 모습이다.

사방에 벽의 높은 곳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자연적인 채광을 하게 했으며

각 방향의 유리 색깔이 달랐다.


또한 울창한 나무 숲을 연상하게 하는 높은 기둥 꼭대기 부분에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이 이름이 있고

추후 더 높은 곳에 예수의 상을 세운다 한다.

외관으로 보이는 웅장함같이 내부의 높이도 상당히 높다.

거대한 파이프 올갠의 모습도 있고 나무로 만든 고해성사실도 있다.

성당 뒷편에는 커다란 쇠판에 각 나라의 주기도문을 쓴 것이 있고

한글로 쓴 것도 있으니 찾아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는데 찾지 못했다.


영광의 파사드 쪽 아주 높은 곳에 수난파사드에 있는 형태로 조각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스페인의 신화에 나오는 산 조르디의 동상이다.

왜 신약에 근거를 둔 성당에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세웠을까?

산 조르디는 이 곳 까탈루냐 지방의 절대적인 성인으로 인정 받기 때문이다.


1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하 공간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지하에는 성당의 건축과정을 설명하는 자세한 모형들이 있고

로마 교황인 베네딕트 교황이 이 곳에서 미사를 드린 기념 영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곳 지하에 가우디의 무덤도 있다.


성당의 꼭대기에도 올라갈 수 있다하는데 기회가 없었다.


성당 옆에는 성 가족 교회 부속학교가 있어 성당이 건설되는 동안

인부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학교도 역시 가우디가 설계를 했다.


지금 로마 교황청에서는 가우디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성인은 반드시 미혼이어야 하고 사후에 지정을 한다.


성당을 나와 다시 한 번 성당을 밖에서 한 바퀴 돌며 세세한 모습을

눈으로 담아 두어야만 했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이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신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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