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영화속 내생각

덕혜옹주

carmina 2016. 8. 16. 15:14



안타까운 비운의 왕 고종.

망해가는 대한제국을 눈뜨고 봐야만 했고

부인인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에 의해 죽는 모습을 봐야 했고

일본의 의해 한국의 주권이 상실되는 것도 봐야만 했으니

그 슬하의 부인들이나 자녀들은 어땠을까?


비교적 근대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들 중 덕혜옹주

고종이 말년에 끔찍이 애지 중지하던 덕혜공주마저

일본의 내선일체의 정책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 했고

그 곳에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돌아 오고자 했으나

그마저 새로운 한국의 정권이 조선시대 황족들의 입국을 거부하여

덕혜옹주는 그만 일본에서 정신병이 들어 버렸다.


일본에 나가 있던 조선의 왕족들은 망명정부를 만들기 위해

일본을 탈출할려다가 실패하고 더욱 심하게 감시를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역사가 늘 그렇듯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정복자에게 붙어 권력을 얻는 자들이 있어

시세의 흐름을 따라 살며 민족을 핍박한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얻어 배운 지식과 경험이

정권이 바뀌었을 때 필요한 경우가 있어 역사에 후대에

심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보인다.

세계의 어느 역사가 다 그랬을 것이다.


덕혜옹주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군같이 활동했는가는 확실치 않다.

어린이가 영화를 보면 덕혜옹주가 마치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첩보활동을 한 것처럼

오인할 수 도 있다. 이래서 역사는 후대에 사실과 다르게 전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책략으로 강제로 일본여자와 결혼한 영친왕이 망명을 할려고 노력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와 죽었고

내가 어린 시절 이방자여사의 사회활동을 TV로 본적이 있다.



덕혜옹주도 비록 해방초기에는 들어오지 못했지만

영화의 내용처럼 박대통령 시절에 고국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노년에 지병으로 죽고 만다.


아직 조선의 마지막 왕손인 '이석'씨가 생존해 있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초를 많이 겪었다.

아직은 생존해 있기에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겠지만

아마 노년인 그가 사후엔 어떤 식으로든 영화가 만들어 질 것이다.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이기도 한 그가

왕손이라는 것은 단지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그렇게 조선왕족의 후계들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역사가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역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