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노래를 사랑하는 종족들 - 사오모 팬카페 야외모임

carmina 2016. 8. 22. 10:44



2016. 8. 20 ~21


어제 밤새 내린천 옆에 텐트 안에서 사람들 둘러 앉아

기타치며 노래를 하느라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쉬어 버렸다.

1박 2일은 노래하고 돌아와 저녁에 9월달 예술의 전당에서 있을

자선 공연을 위한 단체연습중 오페라 합창을 노래하는데 목소리가 안나와

가성으로 노래해야만 했다.

이렇게 밤새 기타치며 노래는 것이 실로 얼마만이었던가.


70년대 가수 사월과 오월의 팬카페에서 1박 2일 모임을

원로 단원의 인맥으로 갈원도 인제 내린천에 있는

단독 독채를 하나 빌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참가 인원이 많이 몰려 40명 선에서 인원을 조절하고

진행팀에서 교통편과 식사 준비 등을 모두 마쳤다.


폭염이 한달 째 계속되는 고속도로는 이미 한 차례 휴가 시즌이 지났는지

경춘고속도로 초입에서 밀리고 인제까지 수월하게 갔으나

내가 타고 가던 차가 문제가 생겨 잠시 지체하기도 했으나

같이 탄 사람들은 오늘 저녁의 기대감으로 기분이 들떠서

차량 고장으로 인한 불편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보여지는 내린천은 오랜 가뭄으로 

계곡물은 말라 있었고, 이 시절이면 흥청대던 래프팅 사업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계곡에 놀러온 사람들도 보기 힘들었다.

깨끗하고 맑기로 유명한 내린천에 군데 군데 물에 파란 이끼색이 보일 정도였다.


햐얀 나도샤프란꽃이 한들 한들 바람에 움직이는 입구에 호젓한 모습의

산둔제로에너지 하우스. 오늘 우리가 하룻밤을 불태울 곳이다.

주택 뒤로 낮은 산이 가로 막아 바람을 막아 주고

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으로 여름에서 시원하고

남향으로 지어진 집이라 햇볓으로 겨울에도 따뜻할 것 같다.

이 주택은 지붕의 태양광패널을 이용하여 냉난방을 해결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밤새 이어지는 회원들의 뜨거운 노래의 열기로

주택내의 단열보다 외부의 단열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집 앞에 나무데크를 넓게 만들어 놓아 맨발을 벗고 다녀도 좋았다.


계곡물 가까이 만들어 놓은 야영장을 찾아갔다.

바람에 날려와 저절로 자랐다는 자작나무들과

노란 금계국꽃이 가득 핀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기 쉽게

나무데크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내려간 곳에

야영을 하기 쉽도록 테이블과 텐트를 칠 장소,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마련해 놓은 곳,

물과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식수를 보관하는 장소와

소형 텐트를 보관해 놓은 곳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지낼 하룻밤이 기대된다.  

 

주택 옆에 큰 공간에 일찍 모인 사람들끼리

커다란 야외용 천막을 치고 식탁과 무대로 만들어 놓으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람들이 몰려 온다.


모두가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라 금세 테이블에 먹거리들이 펼쳐지고

생선회는 무척 좋아하지만 민물고기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엷은 붉은 빛을 머금은 송어회에 맛을 들여 버렸다.  

커다란 벌크고기 몇 덩어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분해되고 있는 것을 보며

침을 삼키고 커다란 새우들이 불판에 익어가는 냄새가 고소하다.


참석하지 못한 회원이 보내준 캔 막걸리가 한 바퀴 돌고

이 더운 날 한 모금에 카~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시원한 맥주가 거품이 되어 퍼지고 

커다란 병에 담긴 더덕주가 군침을 돌게 하고 

와인 친구들과 마실려고 일부러 지난 유럽여행시 사가지고 온

포르투갈의 와인인 달달한 포투와인으로  저녁식사의 시동을 건 후

두꺼비들이 식탁에서 춤을 추고 메를로 와인이 입맛을 돋게 한다.


모닥불위의 커다란 철판에 길게 자른 돼지고기가 익고

테이블 위의 넓은 철판에는 쇠고기가 익는다.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각종 야채들이 펼쳐지니

홍천 계곡 다양한 야생화들의 풍성함만큼이나 많은 먹거리들이

여름을 살찌게 한다.


음향기기가 준비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노래라면 거칠 것 없는 우리들이기에

다른 모임처럼 노래를 시키면 '나 노래 못해' 하고 빼는 사람없이

즐거운 노래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다.


밝은 대낮부터 이어진 노래는 해가 빨리 저문 계곡의 밤이

이슥하도록 끊이지 않고 전문연주자의 기타반주가 별같이 계곡에 흩어진다.

인근에 살고 있는 회원의 가족이 딸 3명을 데리고 음식을 싸들고 찾아와

함께 하더니 그 중 6살 정도 되는 막내아가씨가

나와 같이 노래에 맞추어 춤을 한 번 추더니

매번 노래가 나올 때마다 춤을 추자고 내 손을 잡는다.

7남매의 우리 가족은 형제들이 많다 보니 조카들도 많아

명절이면 모이는 조카들을 모두 내가 데리고 놀던 추억이 떠 올랐다.

꼬마 아가씨와 빙글 빙글 돌며 춤을 추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기 전과 후에 정중하게 인사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별이 떴다.

비록 구름이 하늘의 반을 가려 아쉽지만

눈 앞의 어두운 산 위에 북두칠성이 걸쳐 있다.

멀리 남쪽에 밝은 별자리들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별자리의 이름을 모르겠다. 평소 늘 자주 별지도를 보지만

그래도 자주 못보니 모두 잊어 버렸다.


일찍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남은 사람들은 기타와 짐을 싸 들고 계곡 텐트자리로 내려왔다.

텐트에 들어가 취기도 있어 잠을 청하려 하니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밤새 노래하자고 해 놓고 먼저 들어가 자고 있다고 마구 불평하는 소리에

'맞아. 내가 본능을 잃어 버렸다" 하고 일어나 옆 텐트로 가니

이미 몇 몇 사람은 이 곳에 자리를 펴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불빛에 모여드는 벌레들 때문에 밖에서 노래를 할 수 없어

미리 쳐 놓은 텐트에 10명 정도 회원들이 둘러 앉아

태블렛으로 악보를 보며 기타를 치고 노래한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은 노래들이 이어진다.

나를 비롯해서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노래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3대의 기타소리가 어울림이 되고

맑은 목소리들이 합창이 되고 전주와 중간 간주로 이어지는

작은 멜로디카 하나가 노래의 품위를 더 한다.

시간을 잊은지 오래다. 몇 시간을 노래했던가.

이렇게 노래하다가 이 모습 이대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슬며시 혼자 나오니

맑은 하늘의 빈 공간에 보름이 조금 지난 기운 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스페인 산티아고와 유럽을 여행한 후

한국에 돌아와 낮에도 밤에도 희뿌연 하늘을 보며 유럽의

하늘의 그리웠는데 이 곳에 그 깨끗한 하늘이 있었다.

내 입에서 노래가 절로 흐른다.


유럽여행할 때 50일간 매일 다른 장소에서 잠을 잘 때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던 슬리핑 백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텐트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 빗소리가 너무 좋아 한참을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얼마만에 들어오는 빗소리인가. 참 좋구나...


지난 밤 몇 십년 전에 불렀던 노래의 추억같이

젊은 시절 배낭하나 싸 들고 혼자 여행하며 텐트에서 잘 때

들리던 빗소리가 추억속에 숨어 있다가 까꿍하고 고개를 내민다.

불현듯 이제 시간도 많은데 홀로 배낭과 텐트하나 싸들고

우리 나라 구석 구석 여행이나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침에 누군가 일찍 일어나 텐트안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기타 연주가 놀라운 솜씨다. 궁금해 텐트를 기웃거려 보니

평소 벤조를 연주하는 분이다.

저렇게 기타를 잘치면 얼마나 좋을까? 한없이 부럽다.


일행들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지난 밤에 놀다가 헤어진 후 치우지 못하고 남은 잔해물들이

주택 앞에 쓸쓸히 비를 맞고 있다.

대형 텐트는 빗물이 고여 아이들 똥 싼 바지처럼 축 처져 있다.

주섬 주섬 설거지할 것들 챙겨 이미 굳어버린 기름기 묻은 식기들을 닦고

버리기 아까운 맛있는 찌게를 처리했다.

텐트를 철거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비가 그치고

맛있는 쏘세지 버거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자리를 위해 기꺼이 친구의 주택과 공간을 제공해준 고마운 분과

주택 뒤로 낮은 산에 걸린 흰 구름들이 멋진 한 폭의 동양화 그리고

길가 수풀에 아직 빗방울이 방울 방울 맺혀 있는 골짜기를 뒤로 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트리오 로스 판초스가 노래하는 경쾌한 멕시코 노래와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를 들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내 기분은 아직 지난 밤의 내린천 계곡에 두고 온 것 같다.


살면서 이런 날들이 얼마나 있을려나..

노래에 빠져 살던 20대 시절의 추억을 앞으로 얼마나 되살릴려나.

지난 3월 말 은퇴 후 이제는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하며 살고 싶었다.

생전 해외출장중이거나 죽을 병에 걸려 누워 있지 않는 한 빠지지 않는 주일 예배도

노래모임을 위해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니 아내의 핀잔도 있었지만

남편의 노래에 대한 열정을 아는지라 이젠 극구 반대를 하지 않았다.


이젠 나도 평생 후회되지 않는 일들을 하며 살고 싶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이제까지 나만을 위해 살았으니 이젠 가능한 남을 위해 살고 싶다.


노래여 나의 노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