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부천시립합창단 - 위대한 작곡가 에릭 휘태커의 곡 연주 후기 (예술의 전당 IBK홀)

carmina 2016. 8. 31. 09:24


<<정말 어려운 곡들을 아름답게 연주해 준 부천시립합창단과 지휘자님께 대한 깊은 감사를

아마추어 합창음악 애호가의 후기로 꽃다발을 대신합니다.>>  


2016. 8. 30


지난 해 여름 부천시립합창단에서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로 현재 미국의 천재 작곡가인

에릭 휘태커의 곡을 연주계획이 있다가 메르스로 인해 공연이 연말로 연기되고

연말에 사람들의 들뜬 기분에 맞지 않는 곡이라 관객이 적어 안타까왔었다.

이 곡이 음악애호가들에게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올려지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오늘 드디어 콘서트홀은 아니지만 IBK홀에서 연주되었다.


지휘자님이 먼저 작곡가와 곡에 대한 설명으로 관객의 이해를 쉽게 한다.

에릭 휘태커.

다양한 분야에서 엘리트들이 강연하는 TED에서도 연사로 나와 발표되었지만

그는 Virtual Choir라는 합창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연 작곡가다.

줄리어드 음대를 들어가기 전에는 락 음악을 좋아했던 

그가 일반 클래식 합창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려 버렸다.

무어라고 명확하게 정의되지 못할 음악들.

어찌들으면 뉴에이지의 음악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르네상스 이전의 합창음악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가

때로는 현대음악의 색깔도 보여준다.


합창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곡이 먼저일까, 가사가 먼저일까?

대부분 가사가 먼저일테고 곡은 가사에 맞게 만들어지는 것이 보편적일텐데

에릭휘태커의 음악을 들으며 가사 이전의 행위가 먼저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아름다운 시어로 만들어진 곡은 대부분 시어만큼이나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나 그 시어가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시어에 맞게 작곡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에릭 휘태커의 음악들은 음악이 들리기 이전에 먼저 음악이 "보인다".

마치 캘리그라피로 단어의 뜻을 연상하는 것처럼...


이번 공연의 레퍼터리는 여러 개의 시에 따라 테마를 만들었다.


제일 먼저 잉글리쉬 호른과 함께 연주한 '그녀가 라훈에서 흐느껴 운다.'

이미 제목에서 알수 있는 것처럼 이 노래는 흐느낀다.


이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미국드라마 시리즈 '로마'의 인트로 부분이 떠 올랐다.

오늘도 그랬다. 호른이 연주하는 선률을 들으며 나는 미드 '로마'에서

이 선률이 연주될 때 뱀이 꿈틀대는 모습을 상상한다.

공연 홀이 달라서 그런지 호른의 소리가 합창소리보다 큰 것 같아 아쉬웠다. 


노래는 흐느끼고 점점 감정이 격해진다.

마치 초상집에서 영정 앞에 가지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슬픔을 억누르며

숨죽여 우는 긴 머리를 가진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피카소가 평면그림을 당연한 시절에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이지 않던 모습을 그림에 보여 준 것처럼

이 노래는 단지 소리만으로도 입체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아니, 이 노래 뿐만이 아니다.

오늘 들은 모든 노래가 입체적인 그림이었다.

동서남북 4방향으로 표현되는 모습이 마치 둥근 공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모습이다.


에릭 휘태커의 부인은 유태인이다.

음악을 전공한 부인이 히브리어로 쓴 사랑의 시 5편에 에릭이 곡을 썼다.

피아노 없이 제 1바이올린, 제 2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 의 콰르텟으로 연주된

다섯개의 히브리 노래


첫 곡 그림은 아주 단순한 멜로디로 열린다.

길거리의 그림을 지나치며 보듯이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사랑이 마치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되는 Serendipity같이...


이어지는 곡 Kala Kalla (빛나는 신부), 결혼식파티는 참으로 흥겹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영화 중 유태인의 결혼식을 본 적이 있다.

여자들은 머리에 머플러로 두건을 쓰고 폭이 넓은 퀼트 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탬버린의 음악에 맞추어 둥글게 원을 그려가며 춤을 춘다.

그런 축제의 장면이 이 곡에서 연상된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어찌

굳은 표정으로 부를 수 있는가. 그렇게 부른다면 그건 거짓이다.


세번째 곡 Larov (보통은)

부부의 삶은 그런 것이다.

늘상 반복되는 생활들. 인종이 달라도 민족이 달라도

부부가 사는 생활의 평범함은 영원한 진리일 것이다.

음악이 평범해졌다. 그냥 곱게 흘러가고 때론 수다가 많아진다.


네번째 곡 Eyzo Sheleg! (눈이 오네)

부부가 살다보면 어린이같은 혹은 연인같은 기분을 내기 힘든가 보다.

팜프렛에 쓰인 가사도 무척 단순하다. 합창도 평범한 날씨 변화일 뿐이다.

합창의 분위기는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눈이 온다고 말하는 근엄한 낭독이 들리지만

맹목적으로 대답하는 목소리도 보였다.

그냥 눈이 올 뿐이다.


와, 눈이 온다/작은 꿈처럼/하늘에서 떨어지네


5번째 곡 Rakut (부드러움)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앞에 나는 그냥 부드러운 존재로 있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다.

노래도 그렇게 흘러간다. 커다란 동요없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이어진다.

작곡가가 흔히 쓰던 불협화음도 이 합창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긴 프레이즈로 이어지고 피아노음같이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세번째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시에 의한 노래

옥타비오 빠스는 멕시코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원래 시가 영어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사는 에스파뇰이 아닌 영어로 부른다.

에릭 휘태커가 만든 몇 개의 Vitual Choir에 들어있는 곡중 한 개인 Water Night이 먼저 연주된다.


시가 이렇게 좋을진대 노래는 어떠하랴.


어둠속에서 흐느끼는 백마의 눈 속에 비치는 밤

초원에 호수에 비치는 밤

피곤함이 당신의 눈을 감기게 하고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흐느낌 속에 흐느끼는 말도 함께 있네

그림자를 드리운 호수의 눈

침묵과 고독 속에 그 말과 당신이 있네

달이 당신을 위로하듯 흐르는 눈물은 마시어 버리네

눈을 뜨면 밤은 향기의 문을 열고

깊은 밤으로부터 흐르는 호수의 비밀스런 황국이 펼쳐지네

눈을 감으면 침묵의 아름다운 물결의 강이 당신으로부터 당신과 함께

당신 안에서 앞으로 앞으로 흐르네

밤이 당신의 영혼속에 인생의 깊어감을 알려 주네


노래는 환상적인 화음으로 이어진다.

어느 누구도 그 균형이 맞는 음악의 정적을 깨뜨리기 힘들다.

감히 어느 음하나라도 다르게 내면 그 정적이 깨어질까?

어느 불협화음하나가 마치 청자연적의 작은 비틀림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차라리 다른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미인처럼...


Little Bird.(작은 새)

단원들이 모두 새가 되었다.

문득 3개월전에 걸었던 산티아고 까미노의 아침이 떠 올랐다.

나는 30일동안 800km의 거리를 10kg의 빨간 배낭을 메고 혼자 걸으며

늘 새벽에 제일 먼저 숙소의 문을 열고 나섰다.

막 여명이 트는 새벽길에 숲길을 걸어 본 사람들은 이 소리가 무척 귀에 익을 것이다.

새 울음소리가 숲속에서 들린다. 태양이 동쪽에서 검은 구름을 밀고 올라올 때

새들이 모두 합창을 한다. 그 음악을 매일 들었다. 나는 늘 Early Bird였다.

오늘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가 그랬다.

피아노가 여명을 밝혀주며 합창단원들이 모두 새소리로 우짖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들의 소리는 멈추고

합창단원들이 악보에서 꺼내든 종이 한장으로 새의 날라감을 표현하듯

새들은 휘익 날라가 버렸다.


Cloudburst (폭우)

오늘 공연을 보고 집에 늦게 돌아오는 길에 차창에 비가 한 두방울 떨어진다.

비가 쏟아질려나..

올 여름 몇 십년만에 폭염이 여름내내 지속되었다.

제발 비나 쏟아져라 하고 수없이 하늘을 바라 보았다.

폭우는 그렇게 비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비가 쏟아지자 사람들이 비를 피해 뛰어간다. 그 소리가 음악에 들린다.

누군가 경고한다. 비가 많이 올것이라고..

비가 조금씩 굵어 지더니 물이 작은 실개천으로 흐르고

점점 커다란 물줄기를 만든다.

비는 독창이 되고 외침이 되고 거대한 합창이 된다.

뜨거웠던 대지를 적시고, 말랐던 논밭에 흠뻑 물기를 적셔준다.

비가 마구 쏟아진다. 타악기들이 큰 소리를 내고

합창단원들은 빗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폭풍소리를 만든다.

그렇게 몰아친 비가 서서히 잦아 들고 있다.

추녀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 골이 넓은 추녀에서는 굵은 물줄기와

작은 골에서는 방울 방울 떨어지다가 슬며시 땅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진다.


비교적 짧은 인터미션 후에 연주된 첫 곡. '다윗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곡의 가사에 대한 지휘자님의 짧은 설명과 함께 모든 단원들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다윗이 아들 압솔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슬픔의 정도가 도를 넘는다. 아들을 부르며 흐느낌으로 시작한

슬픔은 거의 실성할 정도의 외침으로 이어지고 주위의 모든 신하들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이 슬픔의 곡 하나가 거의 15분동안 연주된다.


다윗은 왜 이리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까?

성경은 '사무엘 하'에서 아주 간단히 묘사되어 있다.

다윗의 아들 압솔롬이 이복누이를 겁탈한 형을 죽이고 또한

아버지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여 한 때 왕으로 즉위했으나 그 뒤

왕권을 회복하려는 다윗이 장군 요압에게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건만

그만 요압에 의해 압솔롬은 전쟁에서 죽는다.


아들의 교육을 잘 못 시킨 죄, 그러므로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친족 살인과

아버지까지 몰아 낸 호로자식 압솔롬의 죽음을 보면서

아버지 다윗은 그렇게 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지 아들에 대한 죽음에 대한 슬픔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가

합창속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초상시 곡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합창에서 그런 풍습이 보인다. 단지 아버지 다윗의 슬픔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슬픔까지 노래로 울려퍼지고 있다.

어깨를 움추리며 숨죽여 흐느껴 우는 소리들이 들린다.

마치 거대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 같다.


찰스 엔서니 실베스트리의 5편의 시를 노래로 만든 합창이 이어진다.

작사가는 현존하는 미국 시인으로 전형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라기 보다

작곡을 위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첫곡 '레오나르도가 비행기를 꿈꾸네'

천재 다빈치의 끝없는 창작에 대한 욕구를 시로 쓰고

천재 작곡가 에릭 휘태커가 곡을 썼다.

15세기의 천재와 21세기의 천재가 만나는 음악을 통해 만났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다빈치와 그 과정을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표현한 이 곡은

지휘자님의 설명같이 노래 속에 프로펠러가 돌아간다.


바로 전에 연주한 곡이 슬픔의 곡이었다면 이 곡은 기쁨의 곡이다.

합창이 시작되자마자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힘차게 불려진다.

위대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다빈치의 모습이 보이며

수많은 실패에도 굴복하지 말라는 3인칭의 메시지가 합창속에 들린다.

하늘을 날고 싶어 겨드랑에 날개를 붙이고 날아 올랐던 신화 속의 이카루스처럼

그도 인류의 역사에 남을만한 도전을 꿈꾼다. 그래서 합창은 웅장하다.

비행기의 엔진처럼 빠른 템포의 부분도 들리고 비행기가 천천히 공중을 나는 것을

꿈꾸듯 부드럽고 여유있는 화음도 들린다. 모든 부속품이 제대로 맞아야

돌아가는 기계처럼 합창의 화음은 모두 듣기 좋은 화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대사없이 정말 비행기의 움직임소리로 합창이 이어진다.

드디어 날아 올랐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다빈치의

성공을 축하하는 듯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들린다.


이어지는 Lux Aurumque (금빛)

이 곡도 유튜브에서 Virtual Choir로 본 적이 있다.

천천히 그리고 정박으로 리드하는 지휘자의 영상에 맞추어

전세계에서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자원봉사자들이 보내 온 영상을 모아

지휘자는 홀로그램의 인물처럼 TV영상으로 보여지고

작은 TV로 보여지는 수많은 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조각들을 만들어 

멀티 화성의 신비한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아주 단순하다.

새로운 아기의 탄생을 순수한 금처럼 따사롭게 천사들이 노래하는 모습.

노래는 수만가지 색을 가진 빛처럼 신비한 화음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천천히 사라진다.

오케스트라도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

지휘자는 무대에서 각 악기 연주자의 영상이 보여지는 모니터를 앞에 놓고

지휘를 한다. 아니 지휘자의 모습도 영상일 뿐이다.

가끔 헛된 꿈이 현실로 보여질 수 있다.


Sleep (잠)

합창전에 잠이 들어도 좋다는 지휘자님의 멘트에 사람들이 웃는다.

음악은 의식이 깨어 있을 때만 듣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속에서도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

합창은 몽환적이고 마치 꿈속에서 3차원의 세계를 다니는 것 같은

화음으로 들린다.

나는 아주 가끔 몸이 몹시 아플 때 늘 무언가 알수 없는

무수히 많은 색깔의 두텁고 긴 띠들이 내 주위를 휘감는 꿈을 꾼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내 꿈속에서 보던 그 화려함을 다시 보았다.

      

Her Sacred Spirit Soars (거룩한 영혼이 솟아오르네)

이제껏 제자리에서 노래하던 단원들이 자리를 바꾼다.

얼핏 눈에 익은 멤버들의 구성을 보니 더블 콰이어의 형태다.

때로는 오른 편 합창팀을 지휘하고 때로는 왼편을 지휘한다.

때로는 돌림노래가 되고 때로는 거대한 물결처럼 만나 큰 화음을 만든다.

서로 대결하기 위한 합창이 아니고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합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합하기 위함이다.

한 편이 포르테로 하면 한 편이 피아노로 하고

때론 같은 포르테로 서로의 힘을 모은다.

그러면서 길게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 곡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에릭 휘태커가 만든 위촉곡이다.

노래 제목도 올림픽의 정신은 'CITUS' 'ALTUS' 'FORTIS'라는 라틴어다.

즉 Higher, Faster, Stronger 를 말함이다.

천재다운 발상이랄까?

이 합창은 3부합창으로 이루어졌다.

47명의 단원이 3그룹으로 나뉘어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이

각종 종목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가사는 거의 없이

거의 의성어로만 이어진다. 달리는 소리, 힘찬 기합소리, 말말굽소리 등이

마구 혼합되어 들리는 듯 하다. 서로 박자도 다른 것 같고

서로 강약의 차이도 다른 것 같다.

그 중 대사도 잠깐 나오지만 합창은 거대한 힘과 속도의 움직임이 더 뚜렷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대립하던 합창이 어느 순간 하나로 모여진다.

모두 한 뜻으로 모인 올림픽의 정신을 표현하듯 합창은 그렇게 합하여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었다.


아무리 음악 애호가라도 지루하게 느끼고 낯선 작곡가의 곡만으로 레퍼터리를 구성한

부천시립합창단의 진취적인 프로그램 선택을 높이 사고 싶다.

역사는 그런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이 그리고 에릭 휘태커같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


합창단원들이 꼿꼿이 서서 노래하는 것처럼 힘든 것을 아는 사람만 안다.

그리고 그저 흥겨운 합창이라면 서서 노래하는 것도 힘들지 않지만

학구적이고 평소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면 그것처럼 고역이 없다.

여느 합창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몸을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단원들의 모습에서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나같은 합창 애호가들에게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여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늘을 날라가는 듯한 화음에 몰입하는 기분이 너무 좋다.

음표들이 공연 홀에 둥둥 떠 다닌다.


관객들은 계속 앵콜을 부탁했지만 곡의 성격상 다른 곡을 연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지속되는 박수를 받는 가운데 지휘자님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악장이 아닌 단원의 손을 잡고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