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바흐솔리스텐 서울 피오리 무지칼리 시리즈 IV

carmina 2016. 9. 9. 13:15



2016. 9. 8  예술의 전당 IBK 홀


바흐 솔리스텐 서울의 17세기 북독일 바로크의 거장들

Heinrich Schutz, Franz Tunder, Johann Rosenmuller


그 많은 음악의 장르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고음악합창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 음악을 들으면

나는 그 어떤 지독한 환각제를 맞은 것만큼 하늘을 날 것 같다.


고음악합창이란 일종의 원전연주로

바로크시대의 노래들을 바로크 시대의 발성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그거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 번 같은 곡을 고음악과 현대음악 발성으로 하는 합창을 들으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 고음악 합창에 빠진 것이 1984년 말.

우연히 아는 이가 권해서 찾아간 시온성합창단에서

당시 대전 목원대 교수님이셨던 이동일 지휘자님에게

모텟음악을 합창으로 배우면서 고음악합창의 발성기법과 

만들어지는 무반주 합창의 화음에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주로 모텟음악을 배웠으나 가끔 쉬츠의 8부 합창악보를 펼쳐서

초견으로 연주할 때는 정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그 뒤로 CD가 보편화되어 틈날때마다 관련 음반을 구해 듣고

남들에게는 생소한 작곡가의 음반들이 내 씨디랙에 차곡 차곡 쌓여갔다.


요즘은 더 좋아진 것이 케이블 TV로 독일 클래식 음악채널에서 종일 방송되는

레퍼터리 중 자주 고음악의 흑백영상이 방송되고 오늘도

몬테베르디의 '성모의 저녁기도' 합창을 들으면서 무척 행복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한달간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길 800km를 한달간 걸으면서

매일 수없이 많은 중세시대의 작은 마을을 지났고, 그 마을마다 중앙대로에 있는

몇 백년전 혹은 천년 전에 세워진 오래된 성당을 찾아 들어갔다.

때로는 그 곳에 아무도 없으면 혼자 찬양 '생명의 양식'을 작은 목소리로 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울림 좋은 성당에서의 내 노래는 나 자신도 만족하게 들렸다.


오늘 연주가 그랬다.

비록 성당처럼 자연 울림이 좋지는 못하지만

고음악 악기로 연주하고 고음악 발성을 전문으로 하는 합창단이 부르는

바로크 음악들을 들으며 나는 몇 백년 전의 시대를 여행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원들의 프로필 중 눈을 끄는 단원이 카운터 테너다.

몇 년전만 해도 전문합창단의 공연에 카운터 테너의 솔로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한국의 음악 취향도 바뀌어 요즘 오늘의 카운터 테너인 정민호씨가

전국 시립합창단의 연주에 많이 출연하는 편이다.


바이올린도 바로크 바이올린, 첼로도, 비올라,

지금의 콘트라 베이스의 전신인 비올로네 그리고 희귀한 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 같은

현악기를 비롯하여, 리코더, 트럼펫의 전신인 코르넷토, 바순의 전신인 둘치안

그리고 트롬본의 전신인 색벗같은 관악기와 포지티브 올갠 그리고 쳄발로같은

건반악기들이 고음악 합창들의 음악을 더 따뜻하게 해 주었다.   


지휘자는 독일인으로서 바로크 전문 테너이고 전세계 유명 고음악 단체와

협연한 경험이 있는 게르트 튀르크라는 초청 지휘자다.


첫곡 하인리히 쉬츠의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시편 103편)

8명의 합창단원이 두개의 파트로 나누어 섰다.

소프라노, 카운터 테너, 베이스와 베이스 테너 앨토, 소프라노의

더블콰이어를 구성해 합창을 시작했다.

아마 이곡은 8부합창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오래 전 나도 하인리히 쉬츠의 8부합창을 불러 본적이 있다.


올갠과 베이스 솔로로 시작한 묵직한 음으로 터를 닦고

그 위에 맑지만 부드러운 소리들이 차곡 차곡 음악의 담을 쌓고 있다.

그 소리는 종이 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날라가듯이 유연했고

비브라토 없는 청아한 음성들이 수십명의 전문 합창단이 노래하는 것보다

더 깊이 있게 들려왔다. 


다음 곡은 오르가니스트인 프란츠 툰더가 작곡한

'오 주여, 당신의 천사들로'라는 독창곡이다.

올갠과 비올라 다 감바가 포함된 스트링 악기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반주가

바로크 소프라노의 편한 발성을 도와주고 있다.

노래 가사도 죽은 자가 편하게 안식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내용으로

노래도 커다란 기교없이 참 편하게 들린다.


요한 로젠뮐러가 작곡한 첫곡 소나타 10번은 현악기와 쳄발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그 어디에도 보통 현대의 오케스트라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여기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 한 편을 보듯이 음악이 흘러가고 있다.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Magnificat in H, 마리아의 노래에서

오늘 연주의 합창멤버들이 모두 합세한다. 모두 10명.

타 합창단의 규모와 비교해 보면 그저 중창수준인데

그 인원이 노래하는 합창은 여느 4~50명의 합창단이 내는 소리와

버금갈 정도로 힘이 있으나 그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불과

서너명이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카운터 테너로 시작한 마리아의 노래에서 전율을 느낀다.

멜리시마도 여유있고, 베이스의 솔로는 언젠가 볼쇼이합창단에서

들었던 저음이 생각날 정도로 한없이 깊게 내려간다.


인터미션 후 로젠뮐러의 곡이 이어진다.

오케스트라의 튜닝이 여느 일반 오케스트라와 사뭇다르다.

대개 오보에의 음에 맞추어 튜닝을 하는데 여기서는

포지티브 올갠의 음에 맞추고 서로의 악기를 하나 하나 비교해 가며

맞추고 있다. 약음기를 끼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참 부드럽다.

덕분에 악기 하나 하나의 음도 들어 볼 기회가 생겼다. 


Laudate pueri Dominum (시편 113편)

올갠만의 반주로 힘찬 베이스 솔로로 시작을 하고

소프라노와 앨토 각 1명이 3중창으로 이어지다가

합창으로 이어지고 때론 테너 솔로의 긴장감있는 멜로디와

풀 코러스로 연주되는 합창이 음향이 좋은 오디오로 볼륨을 크게 해 놓고

듣는 기분이다. 곡은 하나지만 마치 짧은 칸타타 같이

여러개의 구성이 조합되어 있다.


이어 연주곡으로 G 장조의 모음곡이 연주되는데

처음보는 단어들이 무대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Paduen, Alemanda, Courant, Ballo, Sarabanda

Sarabanda는 춤곡이라는 것을 보아 Ballo도 Ballet 인 것으로 모아

춤곡 모음곡임을 유추해 본다.

 

마지막 곡인 Gloria에서는 다시 8명의 합창이 무대로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도 각 파트 한명씩 부르는 4중창 후 다시 합창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테너와 베이스 등 각 파트의 솔리스트들의 노래로 음악의 다양성이

이 한 곡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합창단 이름이 Solisten인가?

하긴 이 멤버들이 국내의 많은 전문합창단의 주요 무대에서

솔리스트로 초대되어 연주하고 있으니 어느 누구하나의 소리도

나무랄데 없이 좋다. 특히 코르넷토의 연주와 리코더의 연주를 들으며

그 맑은 소리와 마치 동물의 뼈에서 나는 듯한 소리는

내가 중세 영화의 셋트장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휘자의 지휘도 여느 일반 합창지휘와 사뭇 다름을 느꼈다.


맨 끝의 아멘부분에 합창의 솔로파트와 오케스트라의 악기가 하나씩

주고받는 부분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이렇게 구성할 수도 있구나.


오늘 따뜻함이라는 감정을 소리로 느껴 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따뜻한 소리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바로크 합창음악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문연주단체를 만들어 리드하는 박승희선생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