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마을버스로 677일동안 세계일주를 한 모험가와의 만남.

carmina 2016. 9. 3. 23:13



2016. 9. 3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고 싶어 팔에 깃털을 달고 태양을 향해 날랐기에

인간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행기를 설계했고 현대의 인류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누구나 감히 수평선 넘어로 떨어져 죽는 줄 알고 겁내던 일을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우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했기에

동서양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수학자 노이만은 기계에 수치를 기억시키는 장치를 만들어

현재의 컴퓨터의 시조가 되는 애니악을 만들었다.


반드시 누군가는 그 일을 시작해야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 있다.

물론 때론 전혀 다른 대륙에서 전혀 다른 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라 한다.

오늘 그 선구자중 한 명을 만났다.


국내에서 마을 버스의 평균 수명은 10년이고 이후는

폐차 시키거나 저개발국에 중고품으로 수출된다 한다.

보통 마을버스는 시속 60km이상을 낼 수 없도록 제어장치가 되어 있다.

그런 차를 가지고 전세계 47개국을 677일동안 운전하며 다녔다.

사람을 운송하기 위한 목적이나 물건을 나르는 생산적인 목적이 아닌

그냥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가능케 만들어 보자는 선구자적인 생각이

모험의 동기가 되었다.


물론 가다가 완전히 고장이 나서 폐차해 버리고 빈 몸으로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현대 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씨 말처럼 "해봤어?"라는 단순한 질문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임택씨가 그랬다. 본명 임성택인데 부르기 쉽게 임택이라는 페이스북 이름을 쓴다.

2012년 자신의 50대 조기 은퇴 인생만큼이나 비슷한 혜화역과 종로를 오가는 은수교통의

12번 마을버스를 보고 새로운 꿈을 꾸었다.

이미 48만km를 달렸던 차이기에 몇 개월 뒤면 폐차 수준의 초록색의 마을 버스를 보고

이름을 '은수'라 짓고 되는데까지 같이 가보자 하고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버스안을 개조하여 침대와 조리공간을 만들고 속도 제한 장치도 풀었다.

이런 무모한 여행에 동반한 또다른 모험가 1명과 차를 배에 싣고 첫 도착한 페루.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를 달리면서 은수는 힘들어 했다.


평생 60km의 속도제한 인생속에 익숙한 삶을 살다가 속도를 70km로 높이니

차가 무척 거친 기계음을 내며 힘들어 했다. 그렇게 숨가쁘게 조금씩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가며, 또한 열병을 앓아가며 올린 최고 속도가 시속 120km.


우리의 인생과 교육방법을 보는 듯하다.

자녀들이 지정된 길과 제한된 울타리안에서만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은

착한 은수만을 바란다. 그렇게 다녀도 적당히 수입이 생기고

제대로 사는 것같은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물이다.

스스로 혹은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 동기가 있다면 더 큰 목표를 삼을 수 있다.

최근에 끝난 올림픽이 Faster, Higher, Stronger 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처럼...


은수는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도전하지 않으면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확인하지 못하고 죽는다."


은수를 타고 다니며 수많은 고생을 한다.

차가 고장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재해를 만나고, 도적들을 만나고

운행하는 사람이 병이 들어 힘들 때도 많았다.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아무던 대책없이 다녀도 어디 가든지

은수를 도와 주는 전 세계 사람이 많았고 국내의 현대자동차에서도

현지의 자동차 대리점들에게 은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없는 부품을 새로 만들어 항공편으로 보내 주기도 하고

현지인 기술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은수에겐 매일 매일이 아슬아슬한 날이었지만 하루 하루가 감사의 날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만나는 이름 모를 외국 사람들과 한국교포들에게서

큰 사랑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나도 페이스북으로 매일 매일 은수를 추적하며 간혹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간혹 위험한 구간을 운행할 때 걱정하는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기도가 나왔고

다음 날 무사히 그 구간을 지나갔는지 제일 먼저 페북을 확인하기도 했다.

국경의 통과 절차로 어려워 할 때는

그저 하나님이 은수를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늘

무사 완주를 기원했다.

얼마나 순간 순간마다 포기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그의 사진은 늘 밝은 얼굴이다.

그리고 동행하는 이도 모두 한결같이 웃음짓는 얼굴만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말. 하쿠나 마타타.

똑똑하기 보다는 조금 못해도 만족하는 사람이 좋다.


남미와 북미를 운행하며 무사히 1차 여행 후

2차로 떠난 유럽과 러시아 횡단도 모두 마쳤다.

하나 아쉬운 것은 북한을 통과하지 못하고 세계일주 완주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 세계일주 성공 기념모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주인공 임택씨와 일면식도 없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축하를 해 주었다.

그러나 모두 임택씨를 잘 아는 사람들이고

주인공 임택씨도 모두 낯선 이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은수가 다닌 지도의 궤적을 보며 내가 은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은수가 더 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도

도전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록 나도 지난 36년동안 전세계 50개국을 넘게 다녀 보았지만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트레킹외에는 거의 주마간산식으로 다닌

개인여행이나 업무 출장에 불과하다.


내게도 이런 멋진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홀로 조용히 모임장소를 빠져 나오는 늦가을 밤하늘과 실바람이

무척 시원해 보인다. 바람아 내 품에 가득 들어와 다오.


나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