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강원도 양구 두타연트레킹

carmina 2016. 10. 13. 23:11

 

 

2016. 10. 13

 

두타연 트레킹을 위해 군부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기억은 40년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1987년 여름. 논산훈련소 후 광주 상무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군용열차로 용산 101보충대에서 자대로 올라가기 전

어머니 얼굴을 철창넘어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잠시 뵙고

트럭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그 때 다녔던 길들이

지금 내 앞에 펼쳐졌다.

 

자대 배치를 받고 본부중대 병기계를 담당하면서 매일

사단사령부로 가기 위해 걷던 길이 오늘 같은 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길, 늘 아침마다 빗자루를 들고 쓸던 길,

양 옆으로 지뢰밭이 있으니 넘어가지 말라는 삼각형 팻말과 철조망,

그리고 유사시 탱크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길 양옆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나치던 나날들.  

 

지인의 초대로 어느 걷기카페에 가입하여 첫 걸음을 나섰다.

버스가 춘천을 오기전까지는 모든 산에 안개가 가득해 태양이 빛을 잃었는데

어느 터널을 지나니 갑자기 파란 하늘로 변해 버렸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두타연을 걷는데 민통선 내로 걸으니 주소를 미리 알려주고

신분증을 지참하란다.

 

버스가 강북과 강남 그리고 복정등 3군데에서 길벗들을 가득 채우고 동으로 동으로 달렸다.

양구까지 반포고속터미널에서 2시간 반. 한반도는 참 좁은 나라다.

 

몇 사단인지 모르지만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비득안내소에서

가이드맡은 분이 미리 확인한 신원과 몇 개의 GPS 를 목에 걸고 온다.

약 35명이 움직이는데 4개의 GPS 를 받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다.그 옆에 두타연산소(O2)길이라 써있는 안내판이 있다.

 

군부대내에서 한참 건축공사가 있는지 부지런히 레미콘 차량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부대 앞을 지나 낮은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평탄한 길이 펼쳐진다.

 

차량이 2대 정도 오갈 수 있는 길에 양 옆 수풀앞에는 가시철망이 있고

군시절 익히 보았던 '지뢰 MINE'이라는  삼각 표시가 걸려 있다.

얼마나 많은 지뢰가 묻혀 있을까? 

 

직장을 다닐 때 이라크에 공사를 입찰하게 되면 지뢰제거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전쟁이라는 것. 서로 어느 편이 이기고 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쌍방은 전쟁중에 상대방에 피해를 주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은밀한 것들을 

모두 밝히지 않고 무마해 버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이 받아야 한다.

지뢰도 그렇고, 고엽제도 그렇고, 고아와 과부가 그렇고... 그렇고...그렇고..

 

이쪽은 단풍이 가득 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다지 많이 들지는 않았다.

간혹 나무 하나가 모두 발갛게 물들어 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나무들이 아직 한 여름의 폭염을 즐기고 있다.

 

길 양옆으로 옴치고 뛸 수도 없는 길을 걷고 있다.

가끔 전망대가 있어 멀리 숲을 바라 볼 수 있지만

아직 그 숲에 눈길을 줄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 길은 도보뿐만이 아니라 자전거로도 갈 수 있다.

걷는 시간은 약 12km에 3~4시간 소요되고 자전거로는 1.5시간이 예상된다.

그런데 걷는 내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탄탄대로. 40년전 이런 길을 자주 걸었다. 때로는 사단사령부에서 일을 끝내고

이런 탄탄대로를 홀로 어슬렁거리며 부대로 찾아 들어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이는 뱀 한마리를 발견하여 몽둥이로 때려 잡아 부대 고참들에게

가져다 주었더니 그 날 내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다.

 

이런 길을 불과 몇 달 전에 걸었었다.

산티아고 까미노. 끝없이 이런 길이 지속되었다.

800km에 이런 길이 많았다. 특히 200km 가 끝없이 이어지는 메세타평원은

모두 이런 식의 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도무지 언제 끝나는지 모를 이런 길을 몇 날 며칠을 걸었었다.

이런 길에 무척 익숙한 내 발걸음. 여유를 가지고 팔을 벌리고 걷고 있다.

 

길이 이런 밋밋한 길이다 보니 내 카메라의 포커스는 자연스럽게

색깔의 변화에 맞추어져 있다. 양쪽 가파른 바위벽을 뚫고 나온 빨간 잎들.

아직 시기가 이른지 단풍이 떨어져 계곡물에 흐르는 나뭇잎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계곡물은 거의 투명하다. 이끼하나 없는 물밑 바위들.

아마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바위들도 한바탕 춤을 추었을 것이다.

매끈한 자갈돌들이 보석같이 투명하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자연미가 살아 있어 계곡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북구유럽을 여행할 때 보던 계곡의 모습같다.

역시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 아름다운 법이다.

이 계곡이 아주 발갛게 물들어 버리고 계곡물에 빨간 단풍잎들이 떠내려간다면

그냥 발을 멈춘 채로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무 하나가 온전히 발갛게 물든 단풍보다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단풍잎들이 더 사랑스럽고, 이제 막 부분적으로 물들고 있는 나무들이 좋다.

계곡물에 혹시 쉬리라도 살고 있는지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도무지 아무 움직임이 없다.

 

길이 갈라졌다.

하나는 금강산 가는 길. 그 길은 커다란 철문으로 가려져 있고

사람들이 철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염원을 리본으로 주렁 주렁 달아놓았다.

이 곳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 반대편 방향인 이목정안내소에서 올라온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비득안내소에서 우릴 내려 주고 반대편에 가서 기다린다.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은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어 놓고 우리끼리

바닥에 앉아 먹고 있는데 그 길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며

길을 막고 밥을 먹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맛있겠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진행팀에서 찰밥을 준비했다. 우리는 반찬만 준비했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만 둘러 앉아 먹는다. 그냥 그렇게 전통이 되었단다.

여자들이 반찬을 잘 싸 올텐데 남자들 반찬은 보잘것 없다.

 

숲속길로 걸었다.

그 숲속길의 계곡에 정겨운 징검다리가 있었다.

이 길에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어느 예쁜 꽃보다도 아름다운 징검다리.

누군가 남들의 편안함을 위해 정성으로 만든것 같다는 느낌은

비록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가질 수 있다.징검다리는 그런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나무다리에는 잔뜩 치장을 해 놓았다.

다리 위에서 계곡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투명판을 설치해 놓았다.

그건 재미일 뿐이다. 나는 징검다리가 좋다.

 

계곡 반대편의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에도 사람들이 계곡을 보며 즐기고 있다.

사진찍고 싶은 충동을 누구나 가진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지나 이젠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위에서

사람들이 출렁거리고 있다. 출렁다리는 튼튼하게 보여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곳이 두타연이다. 물이 유리알같이 투명하다.

얇은 돌을 주워 물 위에 던져 수제비를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참았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오래 휴식을 취했다.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무념 무상인 듯 하염없이

멍한 눈으로 두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타연의 건너편에는 커다란 구멍하나 뚫려 있다.

이름하여 보덕굴. 이런 곳에는 늘 불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이 길에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

국보적인 화가 박수근의 초기 그림 수백편을 아내 김복순씨가

항아리에 담아 이곳 DMZ 어디엔가 묻어 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연이 여기 저기 박수근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계곡 반대편의 전시장에는 625때 투입되었던 탱크들과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고

이젠 모형이겠지만 미사일까지 전시되어 이 곳에 그런 곳임을 알려주는 넓은

잔디 광장의 한구석에는 어느 교회에서 야유회를 왔는지 많은 이들이 앉아

찬송가를 부른다. 한쪽은 유형의 평화, 한 쪽은 무형의 평화를 찾는다.

 

전쟁은 다시 터질까?

이 길에 죽기를 각오한 군인들이 지나갈 날이 있을까?

모든 것을 깔아 뭉개버릴 엄청난 무기들이 지나갈 날이 있을까?

 

설마 그럴리가..

 

그 팽팽한 긴장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마 평화가 이루어져도 수십년 동안 우린 이렇게 제한된 길만을 걸을 것이다.

전쟁은 이미 모든 것이 완전히 준비되어 있고

그 준비된 것들은 평화가 와도 터질 수 있으니..

 

서울로 오며 무수한 건물들과 불빛들을 보며

과연 이 일촉즉발의 대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참으로 궁금할 뿐이다.

 

평화누리길이 모두 이런 식으로 제한된 길을 걸어야 한다면

걷는 이에게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허리가 다 꼬부라진 할머니들이 천천히 걸어도 좋은 길.

그런 길은 가족 소풍으로 오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무척 좋았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