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사려니 숲길

carmina 2016. 10. 1. 00:00



2016. 9. 29


이제까지 제주도를 내려오는 것은 초기에 아이들과 함께 오고

친구들하고 같이 내려온 것은 제외하면 주로 올레길을 걷기위해서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멘트길이 많은 올레길보다는 내륙의

각종 숲길이 더 좋다고 추천을 한다.


이번 여행에 나를 제주도에 부른 친구도 제주도의 숲길을 소개하기 위해서였고

오늘도 원래 장생의 숲길을 가기로 했었으나

비가 오면 그 숲길을 통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갔더라면 헛걸음할 뻔 앴다.

제주도에는 날씨에 따라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배웠다.


아무래도 오늘은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마트에서 우산을 샀는데

친구가 여유우산을 가지고 왔다하고 점심 도시락도 싸왔다기에

그 정성에 감동했다.


비가 와도 버스는 여행객으로 가득찼다.

이전에 제주도를 다닐 때 늘 지나치던 사려니 숲길.

제주도는 유명한 곳은 거의 버스가 다니니 굳이 렌터카를 하지 않더라도

숙소만 교통이 편한 곳에 있다면 버스여행도 권할만 하다.


사려니 숲길.

제주시 봉개동에서 서귀포시 한림동으로 이어지는 10키로 정도의 긴 숲이다.

숲에 들어서니 금세 진한 나무냄새가 몸을 휘감는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라

숲은 더 진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같은 색의 우비를 입은 중년의 여인 몇 분이 빨간우산 노란우선을 쓰고

앞서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비와도 이런 곳에 올 줄 아는

사람들이지만 충분히 그 감성이 짐작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빨간 열매. 무엇일까?

산딸나무 열매라 한다. 산딸나무는 강화도 트레킹하면서 자주 보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나무 하나를 온통 하얀 잎으로 만들어 보리는

찬란한 꽃. 이 숲에 그 계절이 오면 숲이 아니라 설국으로 될 것 같다.


편히 걸을 수 있도록 숲길은 화산석을 가루로 만들어 깔아 놓았다.

그러니 흙이 질척대지 않고, 물이 잘 빠져 비가 그렇게 많이 와도

걷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가끔 쉬다 갈 수 있도록 나무 벤치나 탁자가 보이지만 이미 흥건하게 젖어

쉬임없이 그냥 세상 이야기하며 걷는다. 이런 삶이 가장 여유로운 삶이 아닐까?

세상을 오래 살았으니 서로 할 이야기도 많겠다.

그리고 이제껏 서로 많은 이야기 나누어 보지 않았지만 서로

비슷한 업무를 평생 했으니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자연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친구에게 나는 많이 배운다.

제주도민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 육지와 고립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끝이 없다.


밀려오는 중국자본들과 그들에게 터전을 내 주어야 하는 고민들.

제주도 내에서도 지역갈등 (?)이 있다하는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들.

등나무가 옆의 큰 나무를 칭칭감고 올라가며 고사시키고 있으니

등나무의 줄기를 가운데 잘라 주어야만 했는데 그 곳에도 이끼가 가득찼다.

어차피 같이 늙어 가는 것. 누가 누굴 죽여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로 꼭 붙어서 살아가고 있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의 뜻을 배웠다.

칡나무 갈과 등나무의 등. 하나는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하나는 왼쪽으로

휘감아 올라간다. 그러니 서로 부딪힌다. 그게 사람과 사람의 삶이다.


가끔 약간 경사진 길에 세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 곳도 이미 낙엽이 켜켜히 쌓여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있다. 여기 저기 노루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길가에 노루똥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 다니는 길로는 나오지 않는 것 같고

뱀과 벌을 주의 하라고 하지만 그렇게 염려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오르막길이 있어도 아주 완만한 경사가 잠깐이라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려니숲 자체의 고도가 이미 많이 높기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중간에 물찻오름으로 가는 길은 늘 통행금지이지만 아주 가끔 개방한다고 한다.

그런 곳은 얼마나 멋있는 비경을 가지고 있을까?


갑자기 수종이 바뀌었다.

하늘 높이 뻗은 삼나무들. 두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없을 정도로 나무가 빼곡하다.

그리고 그 숲이 끝이 없다. 얼마나 오래 전에 심었을까?

삼나무는 주로 일본에서 볼 수 있다. 일장기의 단순함같이 나무도 그저 일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삼나무는 단단하지 못해 임진왜란때 참나무로 만든 거북선과 삼나무로 만든

왜군의 배가 충돌하면 결과는 불보듯이 뻔했다. 그래서 수전에서는 우리가 이겼다 한다.


혼자 걸었다면 어느 혼자 걷는 아가씨처럼 우산 하나 들고 더 여유있게 걸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그렇게 걸어보아야 할 것 같다.


중간에 개천이 가로 막은 곳에서는 나무다리로 육교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너무 길 따라만 가는 것은 밋밋했던지 가끔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두었다. 나무데크로 만든 그 곳에 낙엽이 쌓여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


비가 오니 이 숲에 안개가 덮히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다.

길이 끝날 때 쯤은 엷게나마 멀리 운무가 보였다.


중간쯤 걸었을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안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명란젖과 멸치 조림 그리고 군시절이 생각나는

양배추김치, 바삭한 김까지...이런 소풍을 여기서 즐길 줄이야..


그리고 이 곳에서 조리대가 숲을 점령하고 있다.

제주도 한라산에 그 많던 구상나무들이 조리대의 점령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어느 길에서는 조리대가 숲을 점령한 곳도 있었다.

아주 가끔 꽝꽝나무들이 보였고 삼나무와 비슷한 편백나무들이 많았다.


어느 나무인들 무슨 상관일까?

내게는 그 푸르름이 좋다. 사시사철 그 자리를 지키는 정절이 좋다.

잎을 무성하게 만들어 지금 내게 비를 대신 맞아 주는 것도 좋고

아낌없이 주는 피톤치드의 향이 나를 건강하게 해 준다.

숲에서 오래 지내면 목소리가 좋아짐을 경험했다.

제주도에 사는 것도 축복이리라.

그러나 제주도 사람들은 그다지 그런 자연을 즐기지 않는다 한다.

가끔 숲이 하늘을 가리지 않은 개활지에서는 우산에서 요란한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지금 세상은 비가 가득하지만 사려니숲길에는 그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만 들릴 뿐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니 내 눈높이에서 숲을 볼 수 있도록 조금 개방해 놓았다.

그 좁은 공간에서 보이는 세상이 3차원의 공간같이 보인다.

그 곳에 자유가 있을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벌거벗고 다디는 낙원이 있을 것 같다.


사려니 숲길 외에 다른 숲길은 어떨까?


제주도 여행의 새로운 목표를 잡아볼까?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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