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서대문 안산 자락길

carmina 2016. 10. 22. 21:41

 

 

2016. 10. 22

 

아내한테 떠밀려서 토요일 서울 서대문의 안산 자락길을 찾았다.

많은 지인으로부터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모두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하기에 관심은 있었지만

사진으로 보여지는 모든 코스가 나무데크가 많아 주저하던 차에

핑계김에 같이 길을 나섰다.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니 바로 서대문형무소가 역사적인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일제때부터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이 고초를 받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한 수많은 인물들이 옥고를 치룬 곳이다.

 

내 생전 살면서 감옥에 들어가 본 적이 꼭 한 번 있었다.

국내가 아닌 외국 사우디에서 큰 교통사고 난 뒤

사고 해결을 위해 반나절을 유치장에서 지내다 밤에 나와

사고 당사자들끼리 합의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

 

잠시 있는 동안에도 공포감이 있었는데

많은 세월을 좁은 유치장과 지하감옥에서 살며 고문당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았는지

오늘 돌아 본 시설들을 통해서 대략 알 수 있었다.

 

뒷문으로 나와 바로 자락길로 올랐다.

안산 자락길은 서대문구에 있는 높이 약300m 정도의 산 7부 능선쯤에

나무데크로 산을 감싸 놓아 인위적으로 만든 약 8.6km의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7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각각 사랑, 시인 등등으로 명명해 놓았으나

특별한 구분은 없었다.

 

일단 나무데크에 오르니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애기를 업고 올라오는 아빠로부터

어린이들, 젊은 청년들 그리고 요즘 대세인 중년의 아줌마들.

모두 울긋 불긋한 등산복 색깔이 가을단퐁보다 더 강렬하다.

 

나무데크 길은 그다지 큰 경사가 없다.

이 작업을 위해 산에 얼마나 많은 드릴작업을 했을까?

데크길은 보기에 튼튼해 보였다.

 

북한산 둘레길에서처럼 사람들은 조그만 쉼터나 벤치가 있으면

빈틈이 없을 정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폭 2미터도 안되는 길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완전히 좁은 전통시장골목 같다.

 

길은 힘들지 않았다. 급한 경사는 모두 지그 재그로 올라가니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가끔 나무사이를 지나 탁 트이는 공간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모습은

기분을 좋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 높은 고틍아파트뿐이다.

멀리 인왕산과 북한산 줄기가 보여 그곳에 요즘 가보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대리 만족감을 얻었다.

 

인왕산과 멀리 북악산이 보였고 한참 걸어 길 반대편으로 가니

청와대가 보였다. 그리고 비록 시야가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서 희미하게나마 부천의 우리 집 초고층아파트가 보여

아내가 무척 즐거워 했다.

 

걷는 내내 화장실이 일정 거리마다 있어 좋았다.

비교적 길은 깨끗했으며 사람들이 많이 쉬다 간 곳에는

쓰레기 몇 개가 놓여 있었지만 아마 어린아이들이 버린 것 같다.

 

여기 저기 데크위에서는 등산스틱과 아이젠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경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등산스틱을 찍고 다녔다. 

 

데크 아래 위로 전나무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앞 세대가 참 많은 나무를 심고 후세대가 가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가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볼 때

이제는 한국 산은 어디를 보던 바위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빼곡하게 울창해 늘 만족감을 느낀다.

비록 수종을 잘못 택했느니, 관리를 잘못해 병충해가 많다느니 하는

질타도 있긴 하지만 나 어릴 때에 비하면 한국의 산하는

정말 전국민이 한 마음으로 치열한 나무심기를 했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고층빌딩도 치열하게 지어

멀리 산 아래로 보이는 곳에는 여지없이 아파트촌들이

대나무 숲처럼 몰려 있다.

 

조금 힘든 산행을 하고 싶다면 굳이 데크길로 걷지 않아도 된다.

산 주위로 가파른 등산코스가 있어 그 길을 오르는 이들도 있었다.

 

직장에서 단체로 나와 걷는 사람들,

장애인을 위한 봉사자들이 시각장애자를 데리고 천천히 걷고 있다.

개를 가지고 걷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한 구석에서는 데크 주위

공터에서 점심을 즐기고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그다지

지저분한 모습은 없었다.

 

아주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많아 아내는 나는 자주 그 들을 앞질러

빨리 걸어야만 했다. 길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가기 불편할 정도로 좁았다.

 

지나치는 많은 아이들의 얼굴에 고양이 페인팅을 해 놓았다.

어디선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더 오르다 보니 넓은 공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아내와 길 옆 의자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데

지나는 아이들이 발로 장난을 하며 걸어가니 먼지가 풀풀 일었다.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늘 호젓한 곳만 걸어다닌 내게는 거부감이 든다.

북한산둘레길에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한 번 간 뒤로 포기했는데

이 곳도 주말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약 2시간 반 걸으니 정확하게 한 바퀴 돌았다.

올라간 길로 내려와 독립문 근처 칼국수집을 들어가 맛있는

수제비로 식사를 하고 나와 마침 눈에 보이는 영천시장에 들어가니

입구에 꽈배기를 파는 집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1000원어치 꽈배기가 얼마나 맛있던지 수제비 먹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시장 안에 내 식성에 맞는 수없는 음식들을 보며

아무래도 안산 자락길은 다시 오지 않아도 이 곳은 다시 오고 싶다.

5000원짜리 도시락과 쿠폰을 사면 시장통에서 구미에 맞도록 음식을

가지 가지 조금씩 먹을 수 있으니 기대가 커진다.

 

그 곳을 나와 인사동을 걸었다.

그 곳은 완전 인산인해였다.

젊은이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이 곳을 걷는 붐이 불어서

중고등학교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젊은 남녀들이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걷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았다.

 

오랜만에 아내의 비위를 맞춘 날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