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15코스 고려성곽길

carmina 2017. 1. 21. 19:59

2017. 1. 21


지난 해 첫눈 쏟아지던 날, 나들길 성곽길을 걸은 이래

12월의 음악회와 이사 그리고 1월은 여기 저기 내 책과 관련된

북 콘서트 강의와 방송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간 나들길을 걷지 못했더니 그새 한바퀴 돌아 다시

성곽길 공지가 올라 전전긍긍하다가 마침 전날 뉴스에

토요일 눈이 많이 올것이라는 뉴스를 듣고 얼른 토요걷기에 신청하고

배낭을 챙겼다.


성곽길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보는 눈덮인 벌판이 모습이 상상되었다.

이미 어제 새벽에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와 있기에 흰 벌판이 있을 것이고 

만약 그 곳에 서 있을 때 눈이 쏟아지면 그것처럼 장관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기고 기온을 보니 아침에 거의 영하 10도라 해서

내의도 챙기도 두툼한 털모자도 챙겼다.


평소 늘 미러리스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는데 새로 구입한 갤스 7의

카메라기능이 더 품질이 좋아 카메라를 처음으로 준비 품목에서 제외시켰다.


오후부터 눈이 온다 했는데 강화로 향하는 버스의 창가에 눈이 무더기로 몰려와

온 몸을 내 던지며 자살을 하고 있다. 유리가 깨지나 내가 스러지나..


명절이 다음 주라 그런지 참여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아 조촐하게 3명.

완전군장을 하고 평소 남장대로 올라가는 길을 택해 걸으니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반대편 계단길로 걸으라며 알려준다.

네. 압니다. 그런데 이 길이 길은 없지만 조금 쉬워요.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길이 미끄러운지 길도 없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아 성곽의 돌을 잡으며 올라가야 했다. 심장의 박동이 거세지고

숨이 가빠진다. 그리고 두터운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이 시렵다.


얼마 되지 않은 비탈길을 올라가니 산위로 뻗은 하얀 성벽이 눈에 덮여 

긴 띠를 이루고 있다. 손이 시렵다 했더니 리딩하는 이가 핫팩을 하나 전해 주어

손안에 넣으니 금방 따뜻한 온기가 손가락에 전해지고 시려운 것이 사라져 버렸다.


성곽 양 옆으로 많은 돈을 들여 진달래를 심어 놓았다.

봄철에 강화의 진달래 축제는 워낙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몰리니

더 많은 곳에 진달래를 심어 놓는 것 같다.

또한 그 반대편에는 영산홍을 심어 놓은 것 같다.

 

약수터로 가는 숲길로 들어서면서 장관이 펼쳐진다.

우리보다 먼저 나선 두 명의 발자국과 강아지가 따라 나선 듯

눈 위에 작은 구멍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숲 길을 걷다가 뒤에 오는 이가 소리를 지르며 나뭇가지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생강나무에 싹이 나고 있다. 이 철부지 나무가 이 추위를 겨울 지나고 봄이 오는

추위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지난 번에는 철쭉이 몇 개 싹이 나고 도심에서는 개나리 몇 송이가 피다 말고

추위에 떨고 있더니만 이젠 생강나무 너마저...


부지런한 동네 아저씨가 약수터 방향에서 마주 걸어 오고 있다.

우리처럼 등산복장도 아니고 아이젠 같은 것도 없다.

호들갑떠는 것은 우리들이다.

그 아저씨는 분명 우리보고 굳이 이런 낮은 산은 그런 것 없어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며 속으로 혀를 찼을 것이다.


약수터에 동네 어른이 큰 수통에 물을 받고 있다.

작은 표주박으로 물을 한 모금 마셔 보니 땅 속에서 흘러 나온 물이라

그다지 차가운 느낌이 없다.


남장대로 올라가는 길 옆은 이 코스의 가장 환상적인 코스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질서 정연하게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져 있어

나 또한 나무같이 어깨를 핀 채 허리를 곧게펴고 걸어야 한다는

무언의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남장대로 뻗어 올라가는 성곽길을 보수해서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길 보다는 조금 돌아가지만 전나무들이 가득한 길을 걷는 것이 좋다.

문득 전나무의 색깔이 몇 년 동안의 겨울과 다른 것 같아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사시사철 푸르러야 하는 전나무 잎들이 올 겨울에는 많은 부분이

갈색으로 말라 죽어 있다. 혹시 소나무 재선충이 들어 온 것일까?

내 짐작이 많다면 커다란 손실을 가지고 올 것 같다.


남장대에 오르니 가슴이 트인다.

왼편으로 강화읍이 보이고 조산평 벌판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눈이 닿는 곳이 모두 백설의 융단이다.


겨울이면 산지기 근무시간도 조정되는지 오늘은 산지가 초소가 문이 잠겨있다.

성곽을 따라 우아한 곡선을 그린 눈무더기들이 어느 화가의 붓이 한 번 돌아간 것 같다.


원래 15코스 방향으로 내려 가다가 문득 리더가 다른 길로 가자며 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

반대편 서문으로 직접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로 내려갔다.


눈이 더 많이 쏟아진다.

정말 '펄펄 눈이 옵니다' 라는 노래는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긴 성곽길과

길을 걷다 올려다 보는 긴 성곽길의 모습이 장관이다.

조심 조심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지만 아이젠이 있어서 미끄러움은 없어 다행이다.

이 길은 지난 번에 반대편에서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길이다.

허공에 두텁고 긴 하얀 줄을 지형을 따라 완만한 곡선을 그어 놓은 것 같다.

이 곳에도 진달래를 믾이 심어 놓아 봄이면 이 길의 모습이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서문을 지나 성곽 옆의 낮은 언덕에 동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비탈을 이용해 눈썰매를 타고 있어 까르르 하며 웃는 소리가

급피치로 높아지다가 허공에서 부서진다.


북문으로 가는 길목에 어느 집 추녀 끝에 고드름들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이런 고드름들을 언제 보았던가.

어릴 때 고드름은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아주 맛있는 간식이었다. 

입안에서 조금씩 녹여 먹다가 적당한 순간에 와드득 깨물어 먹는 순간이 가장 맛이 있다.


남장대에서 내려 올 때 퍼붓던 눈이 이쪽 북문으로 가는 길에는 조금 잦아들었다.

숲길의 눈도 남장대의 쌓인 양에 비하면 상당히 적다.


북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눈을 깨끗이 치워 놓았다.

또한 북장대로 올라가는 성곽길에도 성곽지기들이 빗자루로 눈을 쓸어 치운 흔적이 있다.

몇 년에 걸친 성곽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것인가?

처음 나들길을 다니던 때에 비하면 많은 것이 정돈되어 있다.


북장대에 올라 눈발이 휘날리는 북녘을 바라본다.

그리운 금강산을 나즈막히 불러 본다.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서로 견원지간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과

국내의 모든 정치 이슈가 북과 관련되어 있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어느 나이드신 부부가 길을 마주 오고 있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길이

힘든데 얼굴에는 힘든 표정이 없다. 신발에도 아이젠이 없는 것 같다.

부지런한 부부들에게 걷는 것 만큼 좋은 취미는 없다고 본다.

그저 교통비와 점심비 정도만 있으면 하루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강은 그저 덤으로 따라오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잔디 밭과 흙과 눈이 범벅이 되어 아이젠 밑바닥에 달라 붙어 걷기가 불편하다.

마치 신발 바닥 가운데 공하나 집어 놓고 걷는 것 같다.

결국 발걸음을 빨리 해서 내려 오는 수 밖에 없었다.


거의 4시간을 꼬박 눈길과 산길을 걸었다.


점심을 위해 특별히 택시를 타고 찾아간 국화리 저수지 근처의 호산정이란 음식점.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해서

미리 예약을 해 놓고 찾아 갔더니 그 시간에 맞추어 자리가 하나 생겼다.


일인당 만원짜리 정식을 주문하니 반찬이 14개가 한 상에 나온다.

한 눈에 보아도 정갈하게 준비해 놓았다.

특이한 것은 마실 물은 기내용 음료수 같이 팩 하나 하나 밀봉해서 준다.

적당한 크기의 황태양념구이와 큼지막한 양념 갈비가 먹음직 스럽다.

맛 또한 추천할 만 하다.


주인이 나를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기에 이 곳에 처음 온다 했더니

그래도 낯이 익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에서 보았을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나의 평범한 얼굴이 기성상품같아서

그렇게 보았을 것 같다.


더 걷자는 길벗의 제안에 식사 후 강화터미널까지 걷다가

길이 도로를 걷게 되니 불편해서 택시를 불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

집에 들어와서도 창 밖으로 눈이 퍼붓기에 좋아하니

아내가 이제까지 그 속을 걷다가 왔으면서도 뭐 이런 것가지고 호들갑이냐며

슬며서 한마디 한다.


올 겨울이 기온은 내려가도 눈으로 포근했으면 좋겠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