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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2구간 (경북 봉화)

carmina 2016. 11. 5. 10:48

 

 

2016. 11. 5

 

사우디 아라비아나 쿠웨이트 등 중동지방에 출장시 공공건물이나 개인의 거실에 가면

고급 양탄자를 밟고 걷는 푹신한 느낌이 무척 좋다.

오늘 낙동정맥 트레일 2구간을 걸으며 그 당시 느꼈던 기분이었을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길은 노랑, 빨강, 파랑, 갈색 등 온갖 무늬의 낙엽들이 수를 놓은 오솔길이있다.

 

하늘도 3평 땅도 3평

영동의 심장, 수송의 동맥

 

바로 태백선의 승부역을 대표하는 말이다.

물론 이전에도 아내와 함께 태백산 눈꽃열차 관광을 위해 온 적이 있다.

겨울이면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들과 동행한다. 여행작가들.

나 또한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지가

거의 30년 정도 되었지만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표현을 쓰기가 미안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내가 이전에 여행에 관한 책을 낸 적도 있고

곧 산티아고 트레킹를 쓴 여행기로 2번째 책이 나온다고 하니

모두 나를 당연히 작가로 호칭해도 된다고 용기를 복돋아 주었기에 

그들과 같이 걸을 때도 조금 어깨가 펴졌다.

 

백두대간의 자랑인 태백산 눈꽃 환상열차는 주로 특별 전용 열차를 이용해

청량리에서 추전역, 분천역 그리고 승부역까지 운행하지만 각 역에서 그다지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겨울의 자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주로

지극히 소극적인 방법으로 그냥 잠시 역의 주위를 돌아 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번 낙동정맥 트레일은 그런 심플한 여행이 아닌 체험여행으로

그 길을 직접 걸어 보는 것이라 이미 이 여행을 시작할 때 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에 석포역에서 승부역으로 가는 열차를 이용했다.

석포역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이미 서리로 하얀 서리로 코팅되어 있어

겨울을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조용한 석포역.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은 할머니 두 분뿐이다.

우리가 등산 배낭을 메고 있으니 태백산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등산이 아니고 걷는 것이라 하니 그래도 조심하라며 걱정하셨다.

그러나 아직 젊은데 작은 위험을 걱정하며 살기는 싫다.

열심히 돌아다니는 여행도 습관이 되어야 관성이 붙는다.

 

승부역으로 가는 열차는 텅비었다.

석포역 바로 옆에 흰 연기를 뿜어내는 영풍제련소가 있다.

물론 청정자연만을 생각한다면 이런 곳에 제련소가 있을 수 없지만

태백산에 묻혀있는 엄청난 광물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단지 바라는 것은 대기 및 수질 관리를 철저하게 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평생 직장에서 그런 화학공장을 짓는 일을 해 왔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승부역까지는 한 정거장 구간으로 카메라로 주변의 가을 풍경을 몇 개 담다보니 도착했다.

이전에 왔을 때보다 승부역에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승강장 대기실과 이전에 낙동강을 건너는 보행자용 다리가

건설되고 있었는데 이제 완공되었다.

 

하늘도 땅도 세평. 세평인지 아닌지 누워서 확인해 보라는 듯 승강장에

사람이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누워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이 산으로 막힌 작은 하늘 뿐이다.

이제 세평의 땅을 확인해 보자.

눈을 들어 건너편을 보니 이제 세평이 아닌 것 같다.

이전에 열차에서 내려 건너가는 작은 마을로 가는 진입로가 확장공사를 하고 있으니

아마 네평정도는 될 것 같다. 굳이 이렇게 확장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화전민들의 그 척박했던 시절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오는데

그 곳을 도시처럼 만들어 놓으면 굳이 이 곳에 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안전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는데 바닥이 하얗게 서리가 내려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그 밑으로 흐르는 물은 상류에 공장이 있어도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낙동정맥 트레일 2구간이 시작되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배바위고개까지 2.4km 분천역까지 9.6km.

평지라면 그다지 먼거리가 아니지만 산을 넘어야 하니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한참 공사중이라 질퍽한 진입로를 지나고 작은 목조다리를 건너니

본격적인 계곡의 숲길이 시작되며 그 곳에 커다란 귀를 가진

낙동정맥대장군과 청정봉화여장군이 입을 크게 벌리고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오솔길을 덮고 있는 낙엽들을 보며 내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어릴 때 자주 보던 온갖 색깔의 예쁜 구슬처럼 그 바닥이 찬란했다.

와삭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기분과 작은 돌들이 등산화에 닿는 감촉이 좋다.

길가 바위에 덕지 덕지 낀 이끼가 청정지역임을 표시하니 더 친근해 보이고

그 바위의 이끼를 영양분으로 삼아 뿌리를 박고 있는 고사리들이 대견할 뿐이다.

 

산에 단풍이 짙게 들었다.

꼭대기부터 벌개지던 잎들이 이제 바닥까지 내려오고 위에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지만 눈 앞에 보이는 낮은 곳에서는 이제 막 단풍이 들었는지

빨간 빛이 빛나고 있다.

통나무를 무심하게 두쪽으로 잘라 만든 길가 벤치에도 깊어가는 가을들이

빼곡하게 걸터 앉았다. 일반 다른 트레일코스에서는 볼 수 없는 인상깊은 풍경이다.

 

가끔 습기가 가득한 길에서는 낙엽들이 마치 야채 삶은 것처럼 문드러져 썩어가고 있지만

다른 산들처럼 산성비같은 공해로 낙엽이 썩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곳은 청정지역이라 낙엽들이 그대로 대지의 영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원래 화전민들이 다니던 길이다.

가난했던 시절. 땅이 없이 농사도 못짓던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왔다.

산의 바위를 캐고 작은 텃밭을 만들어 작물을 키우고, 약초를 뜯거나

산의 나무를 잘라내어 미군 GMC 트럭으로 마을에 끌고 내려가 팔아서 영위하던

삶의 흔적이 이 곳에 모두 땀으로 스며들었다.

 

가끔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아마 여름이면 이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할 것이다.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내 입에서는 계곡물처럼 요들송이 흘러 나온다.

계곡에서도 큰 바위가 있는 곳에서는 물소리도 크게 들렸다.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이런 자연의 소리가 트레킹에 절대 필요한 것이다.

등산은 이런 자연의 소리가 온 몸에 땀을 식히게 하지만

트레킹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작은 정자에 모여 잠시 간식을 나누어 먹은 후 오르는 오솔길이 조금씩 가파라지고 있다.

아침에 추울까봐 껴 입고 왔던 점퍼의 외피를 벗었다.

그러나 스틱을 잡야 하는 손등은 차가와 장갑을 껴야만 했다.

 

배바위고개 1km 쯤 남겼을 때부터는 가파른 언덕이 이어졌다.

숲이 우거져 나무들이 온통 우리를 향해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화전민들이 사용하던 샘터는 거의 말라버렸지만 아직 그 흔적은 남아 있다.

화전민들은 이 곳에서 나무를 베어 팔고 다시 산으로 들어올 때는

심신을 달래줄 약주인 백화수복을 많이 사들고 왔기에

그 들이 떠난 곳에는 수없이 많은 백화수복 병들이 남아 있었다 한다.

 

가파른 260여개의 나무계단.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지만 숨이 가쁘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설문조사에 그런 항목이 있다.

평소 숨이 가쁘게 운동하는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가끔은 이렇게 힘든 운동을 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신체의 리듬이 밸런스가 맞는 것 같다.

 

이 곳 배바위고개는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68년 울진과 삼척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우리 군경에게 쫒겨 북으로 도망칠 때 이용했던 루트라 한다.  

언덕에 올라 서면 바로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간단한 산행을 생각해도 등산화도 신지않은 사람들이 힘들것 같아

내 등산스틱을 하나씩 빌려 주었다.

위험한 곳의 길은 모두 안전하게 말뚝을 박고 줄을 이어 놓아 걷는데 문제는 없었다.  

 

비스듬하게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계곡과 멀리 아스라하게 뻗어나간

산맥들의 풍경 등  거친 자연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터진다.

이런 곳을 걷는 즐거움을 남들이 알까?

 

숲이 우거져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된다.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길이 거친 면도 있지만 그 또한 매력이다.

나는 트레킹을 좋아한 이래 코스를 만든다고 너무 편하게 만들어 놓은 코스들은

자연미가 사라져 별로 호감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하늘로 곧게 뻗는 나무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로 앞서가는 사람들이 스며 들어가고 있다.  

 

산 밑에 내려왔을 때 쯤 모두 커다란 카메라들을 들고 하늘로 향했다.

단풍의 천국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빨간 나라의 향연에 모두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었다.

 

어느 곳에서는 숲 사이에 넓은 나무평상을 해 놓아 캠핑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문득 떠나고 싶은 날 이 곳에 와서 반딧불빛과 벗삼고 계곡소리와 함께 잠들고 싶다.

 

이 길은 소장시길(소장수길)이라 한다.

산중에서 소를 키워 춘양장에 내다 팔기 위해 다니던 길이 이제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버리기 위해 찾는 길이 되었다.

우리가 만든 이산화탄소를 이 곳에 버리면 산소가 되어 돌아오는

자연의 법칙을 순응할 뿐이다.

 

산을 내려오니 평평한 임도가 이어졌다.

집도 없는데 길가 나무에 우체통이 걸려 있다.

아마 우체부가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집까지 들어오는 불편을 덜기 위해

중간쯤에 우체통을 걸어 놓은 것 같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방법이다.

 

나무 장작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을 보며 비동마을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이 깊은 곳에 비동골쉼터라는 민박(010-5063-7783)이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반가운지 무료로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마와 내가 아주머니에게 막걸리 10잔을 주문했다.

급히 독에서 꺼내온 시원한 막걸리와 산골김치가 무척 맛있었다.

쉼터에서 풍경소리가 들리고 아저씨가 지게로 나무를 지고 가는 모습이

아득한 시절의 추억속의 나의 어린시절을 끄집어 내고 있다.

 

민박집 옆 계곡에 물웅덩이는 달걀하나 깨트려 만들어 놓은 것처럼

낙엽이 둥글게 물가로 밀려 있고 그 물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들이 몰려 있어

저절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놓았다.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마을의 어느 집 마당에서 노부부가

무언가를 채취해 다듬고 계시기에 물어보니 당귀라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 당귀를 사고 싶다하니 너도 나도 한보따리씩 샀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내내 구수한 당귀냄새가 풍겼다.

 

벌써 이 곳에 추위가 밀려 왔는지 꽃은 피어난 채 얼어 붙어 버렸다.

커다란 수수가 햇빛에 말라가고, 호박이 넝쿨째 뒹굴고 있는 저편에

검은 염소 한 마리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다시 낙동강변으로 나왔다.

낙동강 지류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맑은 공기를 가슴가득히 집어 넣는다.

눈에 보이는 푸르름과 맑은 강물과 호젓한 길이 참 좋다.

그 길이 한참 이어지고 다다른 곳이 분천역이다.

 

오랜만에 보는 분천역 앞의 하이디 카페가 반갑다.

분천역은 스위스의 알프스 마터호른봉이 보이는 체르마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곳이다. 지금 이 곳은 겨울왕국으로 변해 있다.

분천역을 산타마을로 컨셉을 만들어 산타와 관련된 많은 조형물둘을

세워 놓아 사람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곳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곤드레와 취나물을 한 묶음 사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올 겨울에는 아무래도 다시 이 곳에 와 봐야 할 것 같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