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경기도 양주 천보산 숲길 트레킹

carmina 2017. 1. 12. 22:30

2017. 1. 12


마음길따라 도보여행 카페의 버스여행방에 숲길이라는 말에 군침이 돌았다.

어느 정도만 산을 올라가면 그냥 평지라 해서 그것 또한 구미가 당겼다.


눈이 오길 바랬는데 예보상으로는 눈이 온다긴 했는데

아침에 기온을 보니 영하 1도 정도 밖에 되지 않고

하늘은 맑았다. 그래도 혹시나해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챙겼다.


가는 곳이 경기도 지역이라 조금 느지막히 버스가 출발했다.

중간에 점심먹을 곳이 없으니 양주에 도착해서 이른 점심을 먹고

걸을려는 진행팀의 계획이다.


차가 별내와 의정부를 거쳐 양주로 들어서고 넓은 벌판에 아직 짓고 있는

아파트들이 많이 보인다. 완전히 신도시를 꾸미는 것 같다.


점심은 양주의 신쭈꾸라는 곳에 쭈꾸미 요리를 즐겼다.

지난 번 여행 때와 메뉴가 비슷하다. 하긴 해물요리는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가장 보편적인 메뉴다.


식당의 점원들이 서비스교육이 확실히 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늘 손님에게 묻고 추가로 주문하는 반찬을 복창하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수시로 묻고 다닌다. 근래에 보기 드문 식당이다.


점심 때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보아

그런 친절과 맛까지 겸비한 것 같다. 서비스로 식후 아메리카노 커피도

카페에서 무료로 제공하니 근처 직장인들이나 외식하고픈 가족들이

오고 싶을 만 하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모닥불이 마당에 있어

더욱 좋았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버스로 얼마 가지 않아 우리를 내려 준 곳이 어하고개입구.

따뜻한 버스 안에 있다가 갑자기 황량한 언덕에 나와서인지

모두 밖에 나오자마자 두툼한 점퍼와 모자 그리고 장갑을 손에 낀다.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니 눈이 살짝 덮인 나무계단들이 보였다.

아마 공사 하느라 입구를 정비중인가보다. 올라가는 입구의 길가에

여기서부터 포천이라는 경계구역 팻말이 보인다.

아마 이곳이 영주의 끝 부분인것 같다.


점심을 가득 먹고 두툼한 파커에 내복까지 껴 입으니 완전히 오리걸음을 걸으며

올라가야만 했다. 며칠 안걸으면 벌써 이렇게 몸이 거부하고 불만을 표시한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니 양 옆으로 탁 트인 벌판에 보이는 것이라는고는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정리해 놓은 토지와 여기 저기 드문 드문 보이는 아파트다.

원래 산에 올라와 아파트를 보는 것이 보기 안좋아 서울 둘레길이나

집 가까운 부천 둘레길도 가지 않는 편인데 여기 코스는 그래도

자연 숲 그대로의 능선 숲길이라 그냥 위안삼기로 했다.

그 언덕위에 보이는 이정표에는 축석령과 천보산 자연휴양림의 갈림길이다.


낙엽이 마를대로 말라 밟을 때마다 와삭거린다.

그래도 사람들이 별로 안다니는 길인지

등산화에 완전히 부스러지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다.

어디에도 푸른 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제대로 색깔을 보이는 것은

산 아래 보이는 도미노같이 보이는 흰 아파트들 뿐이다. 흰색도 색인가?


어디에도 살아 숨쉬는 것들의 흔적이 없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작은 나무가지도 겨울을 나기 위해 수분을 모두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또한 나무는 여름내 키웠던 지 새끼들도 모두 바닥에 버리고는 지 살기에 급급할 뿐이다.

풀들은 모두 바닥에 바짝 엎드러져 버리고 등산화에 쉽게 부스러져 버렸다.

곤충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땅 속 깊이 스며 들어가

수없이 많은 알을 품고 깊이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는 거대한 미래가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이렇게 차근 차근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동물이나 곤충 그리고 식물은 변하지 않는 미래가 있다면

사람에겐 변해야만 하는 미래가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숲 속에  노란 표지석이 보인다. 그런데 이름이 낯이 익다.

혜화동 성당.  분명 양주의 혜화동은 아니고 서울 혜화동일 것이다.

종교단체가 이런 넓은 땅을 가질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이 곳을 공동묘지로 사용할려는 것이 아닐까?

외국처럼 성당 옆의 마당 공간이나 성당 지하에 묘지를 사용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면 자손들도 역시 그 성당을 계속 다닐 것이고

납골당식으로 하면 그다지 면적도 차지하지 않을텐데 우린 죽어서까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늘 내겐 안타까운 마음이다.


길이 비스듬하게 지속적으로 오르막길이다. 북쪽에서 불어 오는 세찬 바람으로

등산모의 내피를 내려 귀를 덮어야만 했다.


이 곳이 군사시실임을 표시하는 표지석과 가끔 동굴같은 초소가 보인다.

땅 속에 묻어 있는 초소들은 모두 북을 향하고 있다.

40년전 군 시절 나도 이같이 추운 날 밤에 총대 하나 메고

북쪽을 향해 주 야간 경계 근무를 했던 내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산 위의 터가 넓으면 활공하기 좋은 장소일 것 같은데 산은 뾰족한 모습뿐이라

산 정상에 사람 한 두명 정도 어깨를 같이 하고 걸을 만한 좁은 면적이다.

그나마 시야가 좋아 다행이다.


그렇게 좁은 길을 가다가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조금 편했지만

그렇게 내려 간만큼 다시 올라가는 것이 산 능선의 전형적인 교과서다.

오늘 따라 리딩하는 이가 힘이 넘치는지 가파른 언덕을 올라왔으면

짧은 휴식이라도 가져야 좋은텐데 전혀 앞에가는 대열은 멈추어서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보니 이 곳은 천보산이라기 보다

의정부와 양주시 그리고 포천시를 걸쳐 있는 천보산맥으로 불리우는 것 같다.

그런데 천보산 2보루 3보루 6보루 라는 용어가 참 낯설기에

집에 와 사전을 찾아 보니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축성물을

보루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1시간 넘게 걸어서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택해 잠시 쉬는데

모두 힘들어하는 것 같다. 하긴 오늘 코스는 쉽지 않은 길이다.

계속 길이 오르막 내리막을 지속해야 하니..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산티아고 다녀온 것을 아는 분이

그런 힘든 곳도 다녀 온 분이 엄살을 부린다고 웃었다.


아주 가끔 마주 오는 등산객이 보였고 우리를 앞질러 가는 등산객도 보였다.

비록 길은 그다지 아기자기한 면은 없지만 양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파란 하늘을 보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길을 어떻게 찾았을까?

가끔 등산객을 위한 나무 의자들 몇 개가 보였다.  


힘들게 걸어서인지 점심을 먹고 더부룩하던 배가 금방 내려가 버렸다.

숲길은 가물어서 걸을 때마다 먼지가 퍽퍽일고 바지단이 회색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말없이 걷고 있다.

강화 나들길 친구같으면 수없이 깔깔거리는 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렸을텐데

이 모임에선 그런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긴 나도 이 일행 중에 아는 이들이 거의 없으니

혼자 조용히 노래나 흥얼거리며 걷고 있을 뿐이다.


잠시 쉬고 일어설려는데 앞에 있던 무리의 여자 한 분이

조금 전 쉬었던 곳의 나뭇가지위에 장갑을 벗어 놓고 왔다며

안절부절하고 있다. 이미 올라온 길이기에 그 곳에 다녀 오면

거리가 많이 벌어질 것 같아 쉽게 결정을 못하고 포기하는 것 같기에

그러려니 하다가 내가 문득 그 무리 뒤에 나무 가지위에 걸려 있는

검은 장갑을 보고 이거 잊지 말라고 하니 안절부절 하던 이가

갑자기 당황한 모습으로 자기 장갑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길벗들이 나이가 많아 그런지 모두 조금씩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해 준다. 나도 곧 그런 실수를 자주 할 것이다.

특히 길을 걸을 때 길벗들이 제일 자주 잊어 버리는 것이 등산스틱과 모자라

나는 늘 쉴 때마다 이 두가지를 배낭위에 얹어 놓는다.

영화 모멘토처럼 금방 잊어 버리는 것일 기억해 내기 위해

팔뚝에 글을 써 놓듯이 눈에 보이는 것에 평소 잃어 버리기 쉬운 물건을 두면

실수가 조금 덜한 편이다.


능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거의 모두 산 정상의 10부 능선이라

바람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코스는 늘 바람을 맞고 걸어야만 할 것이다.

산맥이 동서로 나 있으니 여름 겨울은 그야말로 바람의 언덕이라

칭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높은 곳에 전선 철탑이 세워져 있다. 철탑 보수용으로 세워져 있는

구조물 펜스에 지동차 딜러가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광고 프랭카드를

걸어 놓은 것이 뜻이 가상하기는 하나 무척 보기 안좋았다. 


천보산 높이가 337미터.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데 아마 산이 가파라서 조금 힘든 것 같다.

표식을 세워 놓은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전망대 데크도 무척 새것이다.


천보산에서 내려오면서 멀리 보니 뾰족한 높은 마전봉이 보였다.

설마 저곳까지 갈까?

그 산 입구에서 리더가 사람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이 산을 올라갈지 아니면 여기서 내려갈지 물었더니

많은 이가 힘든지 그냥 내려가자고 했지만 리더는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니 그대로 가자며 진행했다.

이미 올라가는 것에 익숙해 있고 그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서인지

힘이 저장되어 가파른 바위산을 올라가는데 낙오하는 이는 없었다.

나도 아무래도 산이 높아 보여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스틱을 꺼내

조금 편하게 올라갔다.


정상까지 올라가 바로 가파른 언덕을 내려왔다.

사람들이 많이 안다녀서인지 계곡길에 낙엽들이 바위를 가려서

위험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튼튼하지 않은 바위를 발로 디뎠다가

넘어지는 사례가 자주 있다.


무채색의 계곡에 가끔 색깔이 진한 종이쪽지가 떨어져 있기에 가만히 보니

북에서 날려 보낸 삐라들이다.

하버드대학의 교수와 재미동포가 북한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아직도 남한사람들이 이런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참 암담한 나라의 행동이다.


긴 계곡길을 내려 오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길가에 기다리고 있다.

오늘 몇 시간을 걸었나. 거의 4시간 걸은 것 같다.

거리상으로 12km 밖에 안되는데 더 먼거리를 걸은 것 같다.

오래간만에 힘든 길을 걸은 것 같다는 생각에 다리는 아프지만 뿌듯하다.


숲에서 가지고 온 먼지를 샤워로 씻어 내느라 오랜동안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내 몸에 열기를 심어 놓는다.

뜨겁게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걷지 못하면 죽음 밖에 남는 것이 없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