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단원 퉁퉁소골 오지임도 트레킹

carmina 2017. 2. 3. 20:05

2017. 2. 1


 


눈밭에 누워 하늘을 보니 뾰족한 핀으로 콕 찌르면


하늘에서 파란 물이 툭 터져 나올 것 같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송창식의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이제껏 산행이나 트레킹을 하면서


오늘같이 오랜 시간 눈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지난 달 토요일 강화에 눈이 펑펑 쏟이지던 날


고려궁 성곽길을 몇시간 트레킹했지만


눈이 이렇게까지 많이 쌓이지는 않았었다.


 


마음길따라 도보여행 카페에서 평일 트레킹공지가 떴는데


이름조차 생소한 양평의 퉁퉁소골 오지트레킹이라 한다.


단월이 어디인지 검색을 해봐도 어디인지 불확실했으나


임도길이라는 말이 끌려 신청했다.


 


임도는 트레킹을 위해 만들어진 길을 아니지만


임도를 걸으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임도는 매력이 있다.


산속의 임산자원을 가꾸기 위해 혹은 임산자원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흙길이라 걷기에 아주 적합한 조건이다.


그렇다고 차가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다.


이제까지 임도길을 걸으면서 차가 다니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그리고 길이 평평하고 비가 와도 배수가 잘되어


아주 장대비만 쏟아지지 않는 한


걷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 이번 여정에는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점심을 싸 오라 한다.


어쩌나.. 아내도 해외여행중인데..


어쩔 수 없이 출발하는 날 아침에 준비하기 힘드니


미리 반찬들을 준비했다.


먹기 쉬운 햄부침, , 총각김치


그리고 중국음식 시켰을 때 먹지 않았던 단무지까지..


이 정도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고민을 많이 했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 미역국을 준비해가지고 가야 하나.


미역국 끓일 자신은 없으니 편의점에서


휴대용 미역국 봉지라도 살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버스에 올랐다. .. 인생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지..


 


따뜻한 버스 안에서 금방 잠에 빠져 들고 2시간도 안되어 버스에서 내리니


지명 팻말도 없는 곳이다. 길 옆으로 올라가는 언덕이 완전히 눈비탈이다.


스패츠와 아이젠 그리고 스틱까지 꺼내 들었다.


길게 줄을 지어 올라가는 언덕의 눈을 밟는 느낌이 좋다.


눈의 두께는 약 10cm 혹은 더 두터울 수 있다.


혹시라도 바람이라도 불면 막 버스에서 내렸기 때문에 한기를 느낄텐데


다행하게도 공기도 덜 차가웠고 산이 막아 주어서인지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끔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는 거센 바람이 모자를 날려 버릴 듯 했다.


 


임도는 모두 산그늘에 가려 눈이 전혀 녹지 않았다.


가끔 비치는 햇빛에 길이 보석같이 반짝거린다.


그 위에 발자국이라고는 아이들 주먹 크기정도의 고라니로 보이는 발자국이


산아래 혹은 산 위로 이어져 있다.


그 발자국도 선명한 것을 보니 인기척이 느껴져 모두 사라진 듯 했다.


 


평소 흙길을 걷는 것보다 발에 힘이 더 들어간다.


모두 한 줄로 걷다 보니 쌓인 눈이 마치 진흙탕처럼 파여져


발로 밟으면 푹 빠지기 일쑤다.


그렇다고 남이 안 밟은 눈 위를 밟으면 푹 빠져 더 힘들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이 느낌을 즐겨야겠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언덕이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길은 구비 구비 이어져 있다.


이 길이 눈길이 아니고 낮은 잡풀들이 자랐더라면 걷기에 상당히 쾌적할 것 같다.


신록이 우거지고 이름모를 꽃들이 가득할 것 같다.


지리산 둘레길에 임도가 많지만 그 곳은 세멘트 길이 많은 편이다.


차라리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인 태백의 하늘길이 그런 면에서는 걷기 좋다.


 


어느 정도 언덕에 오르자 평지가 보였다.


문득 어릴 때 골목에서 사용하던 대나무 스키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 대나무를 쪼개 뜨겁게 달구어진 연탄집게를 이용해


앞부분을 조금 구부리면 아주 멋진 작은 스키가 되어 이런 눈이 온 날에는


골목길은 그야말로 아이들 차지였다.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길이 맨들 맨들해 위험하다며 그 꼴을 보기 싫다고


연탄재를 가져다 뿌리면 우리는 다시 눈을 퍼다가 그 위를 덮고 놀았었다.


눈 오는 날은 그야말로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전쟁터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른 누군가 넘어져 다치면 우리는 모두 도망가기 바빴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개구쟁이 동심이 문제다.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문득 문득 보이는 건너편 하얀 산이 참 아름답다.


제대로 눈이 덮인 산은 눈과 나무들의 배열이 마치 벽지의 무늬같이 일정하다.


첩첩산중이라는 단어는 이런 때 쓰는 것일까?


시야가 둘러 보아도 모두 산들로 포위되어 있다.


나무는 모두 빛을 잃었지만 가지들은 아직 무성하여 바이올린 활처럼 휘어져 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이 산은 거대한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릴 것 같다.


 


땀이 날 정도로 걷다가 잠시 쉬자고 했으나 앉을 자리가 없다.


요령이 있는 사람들은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와 편하게 쉬지만


그냥 깔판으로 된 방석은 눈에 파묻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어쩔 수 없지그냥 서서 쉬자.


 


안전을 생각해서 산의 경사면 옆을 걷지 않고 조금 떨어져 일렬로 걸었기에


우리 일행들이 지나온 길은 긴 골이 되어 버렸다.


모두 묵묵히 앞서 걷는 사람의 뒤꿈치만 보고 걷고 있다.


어디선가 이 눈속의 환희를 느낄만큼 멋진 탄성이 터질만도 한데


모두 나이들어 감성이 말라 버렸나?


아주 친한 사람들끼리 왔다면 걸으면서 눈장난도 할텐데


누구도 그런 경망(?)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다.


 


일행들은 길을 걷다가 땀이 나면 벗어두었던 옷들을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다시 껴입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햇살이 퍼지고 손시려움도 잊어 버려 맨손으로


스틱을 잡고 걸어도 문제가 없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긴 그림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하얀 은막 뒤에서 춤을 추는 배우처럼 진한 그림자가


눈 밭에서 덩실 덩실 춤을 추는 그 옆으로


모터사이클의 흔적인 듯한 긴 줄이 하나 그어있다.


아마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듯 이 언덕까지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내려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는 제법 굵은 차 바퀴의 흔적이


눈 밭에 깊게 파여 있다. 바퀴의 넓이로 볼 때


아무리 봐도 광폭의 바퀴를 가진 스포츠 유틸리티같다.


20cm 정도 눈의 깊이로 볼 때 이렇게 눈이 많은 곳을


일부러 올라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심이다.


바퀴 흔적에도 체인을 감은 것 같지는 않다.


덕분에 우린 그 흔적을 밟으며 그다지 눈에 빠지지 않고 쉽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만약 눈이 잔뜩 쌓인 그대로 걸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눈 많이 쌓인 곳을 시험삼아 걸어보니 한발 한발 움직일 때 마다


푹푹 빠졌고 발길을 옮기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길을 걷다가 보니 이정표에 이 곳이 경기도 단월군이며


강원도 홍천과 바로 경계선상의 지명인 것을 알았고


MTB 산악 자전거코스가 그려진 것을 보고서야


그 바퀴 자국들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걷기 코스로는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2시간을 넘게 걸어도 눈길이 지속되니


우린 어쩔 수 없이 눈 위에서 적당히 알아서 점심을 풀어 헤쳤다.


같이 앉은 일행들이 내가 만든 반찬을 보더니 많이 준비했다기에


사정을 얘기하고 오늘 내 생일인데 미역국을 싸가지고 오지 못해 아쉽다고 했더니


모두 내게 생일 축하를 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준비했고


내 보온밥통의 밥도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따뜻해


비록 눈 위지만 따뜻한 점심을 즐겼다.


 


점심 후 길을 걷다가 눈밭에 넓은 공간이 있어


리더가 배낭을 멘 채로 눈밭에 누워서 길벗들에게


누워보라고 권하기에 나도 누워 세 평짜리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이 흰 눈처럼 눈이 부시다.


오늘은 눈빛에 눈이 멀었고, 하늘 빛에 눈이 멀었다.


설맹이고 천맹인가?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니 내게 노래를 청한다.


길벗들이 내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고


나는 그 들에 눈 오는 밤이라는 노래를 선물했다.


 


길을 걸을 때 어울리는 좋은 메뉴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길에서 언제나 자연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노래하고 노랫말이 좋은 포크송들을 주로 불렀다.


강화나들길 길벗들은 늘 내게 노래를 청했고


나도 늘 그 들의 부름에 노래를 화답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걷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불렀고


그들은 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잘하는 것을 떠나서 노래가 있어 길이 풍성해진다고 좋아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


작은 마을이 보이기 전까지 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잠시 쉬고 식사한 시간까지 포함해 거의 5시간을 눈길 위에 있었다.


오늘 코스는 거의 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라 어느 한 곳도


마른 땅이 없었다.


 


마을에 차가 다니는 길은 모두 깨끗이 치워 놓았다.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 곳곳에 멋진 펜션들이 많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이 곳이 그 유명한 홍천 비발디파크 근처임을 알았다.


 


양평을 지날 때 하얗게 눈이 덮인 팔당호수면을 보며


오늘 하룻동안 걸었던 긴 눈밭의 영상이 겹쳐진다.


 

하마 꿈엔들 잊힐리야.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