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고음악의 디바 임선혜씨와 함께 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송년음악회

carmina 2016. 12. 23. 16:39

2016. 1. 20


앵콜곡으로 임선혜씨가 부른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White Christmas'의 따뜻한 노래는

공연 시작 전에 2층에서 내려다 본 롯데 콘서트 홀의 연주 무대의 은은한 조명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어울려 오늘 이 음악회를 기획한 재단의 의도를 전해 주는 것 같았다.

한국이 자랑하는 고음악계의 두 소프라노 임선혜씨와 서예리씨.

지난 해 LG아트센터에서 감상한 서예리씨의 콘서트에서

고음악과 현대음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쇼킹한 음악을 듣고

늘 씨디로만 듣던 외국의 최고 소프라노들이 부럽지 않은

한국의 딸이 자랑스러웠기에 잘 아는 음악인에게 말했더니
내게 임선혜씨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알려 주어 그간 유튜브를 통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내심 연주를 직접 볼 기회가 오길 바랬었다.


우연히 찾아 온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송년음악회에

초대권을 인터넷으로 통해 배포한다기에 행사 사이트가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 앞에서 기다렸다가 즉시 신청한 결과 드디어 행운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참고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이 보유한 유익한 지식과 문화 자산을

세계에 공유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 앞장서는

한국의 대표 공공외교기관이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도 많은 외국인이 로비에 보였다.

특히 제한속도 60km로  10년동안 46만Km를 달려 수명을 다한 마을버스하나로

677일 동안 전세계를 일주한 위대한 여행가 임택씨를 지인의 소개로 어제 만나

내 산티아고 여행기 책을 전달하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는데

오늘 이 곳에서 그도 초대되었는지 우연히 다시 만나 무척 반가왔다.

오늘 연주는 지난 번 이 연주홀을 방문하여 처음 본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궁금했는데 직접 들어 볼 기회가 있으며

고음악 앙상블의 연주와 디바 임선혜씨의 그 아름다운 노래를

우리 나라 최고의 연주홀에서는 어떻게 들리나 하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무대 뒤의 객석을 빼 놓고는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찬 연주홀.

넓은 무대의 중앙에 커다란 파이프올갠으로 올개니스트인

김희성씨의 연주부터 시작되었다.


익히 듣는 바흐의 대표적인 칸타타 중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BWV 147).

어두운 무대 전면에 연주자와 약 5000개의 파이프가 밝게 빛나며

기쁨을 손으로 발로 연주하고 있다.

파이프 올갠의 소리는 내가 지난 봄에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여 들었던 파이프 올갠의 소리의 감흥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무척 기대를 했다.

이 곳에서는 연주홀이 너무 커서 그 때처럼 작렬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모든 악기 중 가장 으뜸인 파이프 올갠에서 나오는 소리는

때로는 가냘프게 때로는 거친 파도처럼 밀려 오는 것 같아

마치 부산 태종대의 높은 바위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첫 곡을 연주 후 연주자가 파이프 올갠의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번 곡보다 더 친근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BWV 565).

빌딩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로 시작되는 음악.

평소 자주 듣는 이 음악을 오래 전에 최고의 음향기기와

거대한 스피커 사이에서 들어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그냥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몇 단으로 구성된 많은 건반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소리와

발로 연주하는 건반까지 이용해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악들이 폭풍같이 빠른 템포로 이어지며 넓은 콘서트홀에 있는

음악 매니아들을 압도하게 만든다.

고음악 앙상블의 비발디 곡 L'estro armonico (화성의 영감).

연주자들이 무대로 올라오는데 쳄발로 이외에는 악기들이

고음악 악기들이 아닌 것 같아 기대했던 따뜻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그들의 연주는 고음악 악기로 연주하는 것 만큼이나

은은하고 연주홀의 분위기가 있어서인지 충분한 바로크 음악의 느낌을 전해 주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임선혜씨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연주 곡은 바흐의 칸타타 BWV 51번 '만민이여 환호하며 주님을 맞이하라'

(Jauchzet Gott in allen Landen)


현악기와 쳄발로 외에 트럼펫이 합세해 혹시

마이크 없이 노래하기에 그 소리가 묻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게는 Voice Oriented 되어서인지 노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바로크 음악을 들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

음악도 공룡처럼 점점 퇴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크 시대에는 저렇게 많은 기교가 필요한 곡들을 주로 연주했는데

요즘의 작곡가들은 이런 곡을 거의 작곡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전의 바로크 시대에 음악은 소수의 귀족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따라서 많은 대중앞에서 연주하지 않았기에 음악은

그다지 우렁찬 소리가 필요없었을 것이고 작곡가들은

어려운 노래들을 마음껏 표현하여 자신의 진가를 나타내었고

지금 내가 듣는 것처럼 연주자들이 고난도의 기교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가 악기의 일부분처럼 들린다.

5개 혹은 10개의 손가락으로 화려하고 빠르게 악기로 연주되는 곡을

이 놀라운 연주자는 목소리 하나로 악기들의 음역과 템포의 범주를 넘나들고 있다.

음악에 빠져 있는데 곡의 악장사이에 연주자들이 잠시 멈추니

나오지 말아야 할 청중들의 박수가 드문 드문 터진다.

만약 제대로 고가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오는 음악애호가들 같았으면

이 부분에서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을 알았을텐데

오늘은 음악에 맞춘 청중들보다 형식에 따라

의례적으로 초대되어 온 사람들이 많아

이런 비매너 현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연주자가 그 박수소리를 듣고 인사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그 다음에 악장으로 넘어갈 때는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함을 금방 깨달았을텐데

그런 음악의 예절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며

연주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트럼펫의 화려하고 정확한 금속음에 버금갈 정도로 노래도 그에 못지 않을 정도의

날카롭지만 곱고 맑은 소리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인터미션 후 바로크 앙상블이 계절에 맞는 비발디의 4계중 '겨울'을 연주했다.

시골 안방에 문풍지로 바람이 조금씩 들어오듯

콘트라 베이스와 첼로가 가볍게 떨리며 시작된 서주부분이 이어지다가 

찬 바람이 휙하고 들어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눈싸움을 하는 듯한

친근하고 밝은 멜로디가 참 자주 듣는 음악이라 그냥 편하게 들리는대로 듣는다.

눈부실 정도로 흰 드레스에 바로크의 장식같이 화려한 레이스가 돋보이는

의상을 입고 나온 임선혜씨의 헨델 곡 중 익숙하지 않은 오페라 <아그리피나>에서

포페아의 아리아 중 '귀중한 진주여, 훌륭한 꽃이여'와 ​

'당신의 사랑의 무게'를 연주한다.


노래가 바이올린이 트릴을 하듯이 화려한 기교가 이어지고

맑은 소리는 홀의 천장을 뚫고 지나갈 정도로 높이 높이 나르고 있다.

소리와 음표들이 손으로 잡으면 잡힐 정도로 공중에 떠다니고 있다.

'아...좋다. 참 좋다'. 

오보에 콘체르토. 연주자가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서 내가 합창단원으로 연주한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에서 오보에를 연주하였던 산노미야 마사미츠씨.

그 오케스트라에 트럼펫을 비롯해서 일본인 연주자들이 몇 명 있었다.

일본은 클래식 음악 특히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 많은 연주단체가 있다.

우리가 일본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런 문화가 경제수준에서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추측이 있다.

내가 평생 직장생활하며 하던 업무도 일본의 뒤를 이었고

여행도 마찬가지로 우린 일본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클래식 음악의 대부분이 기독교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일본이 연주자가 많고 애호가가 많은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오보에 특유의 애잔하고 그윽한 음들로 시작되더니 

종국에는 경쾌한 춤곡으로 변했다. 어느 동화처럼 동네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따라가 혹시 모두 강물로 뛰어드는 것은 아닐까?

대미를 장식할 임선혜씨가 심플한 드레스를 입고 다시 등장하여

헨델의 오페라 <줄리우스 시저> 중 클레오파트라의 아리아 '폭풍에 부서진 배라도..'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클레오파트라의 매력만큼이나 화려한 스킬로

노래가 바이올린 같은 맑은 소리로 부르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얼굴을 마주보며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람 목소리로 저런 스킬을 낼 수 있는지...

어떻게 목소리로 악기같이 연주할 수 있는지...

참 기가 찰 노릇이다.

혹시 임선혜씨의 전생이 꾀꼬리는 아닐까?

흥분한 관중들이 우렁찬 박수소리로 화답하고 있다.

그러한 흥분을 잠재우려는 듯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로 끝을 맺는다.

관중들의 앵콜에 그녀는 말했다.

어려운 바로크 음악을 듣느라 고생했으니 편한 노래를 부르겠다 하며

크리스마스 캐롤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데

어디에서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감동도 잠시.  곧 악기들이 멜로디를 하고

소프라노 데스칸토로 반주를 하는 깜짝 연주가 이어졌다.

또 하나의 캐롤 'White Christmas'

행복하다. 이 곡을 이렇게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니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내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해 준 임선혜씨에게 진정

감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