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carmina 2017. 2. 14. 23:12

 

 

 

 

2017. 2. 14

 

다을새길 뜻이 뭐예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

오래 전 어디선가 들어 알고 있었는데 잊었다.

‘다을새’란 길 이름은 교동도의 옛 이름인 ‘달을신(達乙新)’의 소리음인 ‘다을새’에서 따온 것이다.

 

겨울 하늘이 구름한 점 없는 가을하늘 빛이다.

며칠간 추위가 지속되더니 오늘은 많이 누그러졌기에 내복을 입지는 않고

혹시나 바닷바람이라 추우면 나중에 입을려고 배낭에 챙겨넣었다.

 

터미널에서 교동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배낭을 멘 처음보는 남자분이 내게 인사를 건넨다.

서울 불광동에서 오셨다는 나이 지긋한 이 분은 나들길이 너무 좋아 요즘 계속 오고 있다며

오늘 같이 교동길을 걷는단다.

 

교동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승용차로 들어가면 일일이 연락처를 적는데

버스로 들어가니 그런 절차가 없이 무사통과한다.

초소 군인들의 거수경례에 버스기사도 깍듯이 거수경례로 답을 한다.

도로 옆 큰 저수지에 물이 꽝꽝 언 수면위에 눈이 덮이고 바람이 눈물결을 만들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었다. 

 

 

 

 

이미 승용차로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다을새길을 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람한 점 없는 바다에 아침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동요가 흥얼거려진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오늘 풍경에 참 어울리는 노래다.

배로 이 곳에 올 때는 월선포구는 늘 붐볐는데

교동대교가 생긴 뒤로 거의 모든 가게들은 문을 닫고

가끔 좌판을 벌려 농산물을 팔던 할머님마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해병대원들이 총을 들고 무표정하게 검문을 하던 초소자리에

총대신 나무데크가 세워져 휘 돌아가던 바닷가길이 이제는 바로 갈 수 있다.

겨우내 성장을 멈춘 잡초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길을 푹신하게 만든다.

아마 곧 봄기운에 자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이 길을 차지할 것이다.

남녘에는 벌써 매화가 핀다 하니 봄기운이 밀물에 바닷물들어오는 것처럼 밀려 올 것이다.

 

 

 

긴긴 둑길. 이 길이 다을새길의 최고 걷기 좋은 길이다.

푹신한 숲길, 가끔 운이 좋은 날이면 옆의 숲에서 고라니가 깜짝 놀라 뛰어 달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 쪽으로 만들어져 있는 저수지는 꽝 꽝 얼어 낚싯군들만 신이 났다.

일인당 거의 10개 정도의 낚싯대를 얼음 구멍에 넣고 뚫어지게 움직임을 지켜 보고 있다.

이 것도 한 철이다.

 

 

바닷가의 갯벌 끝에 눈의 흔적이 길게 띠로 이어져 있다.

바닷물이 밀려 와도 그곳까지는 침범하지 못하고 서로 확실한 경계선을 그은 셈이다.

가끔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갈매기들만이 크게 한 바퀴 선회를 하고 있다.

 

 

 

둑 사이에 있는 군감시초소에 못보던 모습이 하나 생겼다.

검은색으로 칠한 앉은뱅이 의자.

아! 저렇게 단순한 지원을 왜 이제껏 하지 못했을까?

바닷가 초소 군인들은 굳이 서 있을 필요가 없으니 이제껏 그 곳에는

모래부대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덜 차가운 나무의자로 바뀐 것을 보고

어느 지휘관의 결정인지 박수쳐 줄만하다.

 

긴 둑길을 걸어 마을을 지나는데 집집마다 추녀끝에 주렁 주렁 매달린 메주가 시선을 끈다.

겨우내 곰팡이가 피었을테고 그로 인해 맛있는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동읍성으로 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웅장한 느티나무.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오늘 처럼 멀리서 뚜렷이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간 늘 수풀 속에 가리워져 있기에

자세히 안 보였었다.

 

약 350년 수령의 이 느티나무는 땅에 거대한 뿌리를 박고 오랜동안 발레를 해서

발에 옹이 박힌 발레리나 김수진씨처럼 뿌리에 여기 저기 굳은 옹이가 박혀 있다.

제대로 인정받는 전문가라면 이런 옹이 많이 박혀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끔 TV에서 달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손이나 발에 커다란 굳은 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이 느티나무는 아마 350년이 아닌 3500년동안이라고

이 곳에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에 옹이는 무엇일까?

평생 즐거운 노래하며 얼굴에 박힌 내 미소를 옹이로 갖고 싶다.

 

인근에 오래전 일본인들의 관저가 거의 폐가로 남아 있고

관저 앞에 세워둔 커다란 석조기둥도 쓰러져 있는 것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

잘못 박았는지 기둥거치대의 홈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

 

 

 

 

읍성안에 황룡우물은 이제 보수를 마치고 제대로 안내판도 세우고

그 안에 있던 쓰레기들은 모두 제거하고 유리판으로 덮어 놓았다.

그 위에 얹어 놓는 나무 두레박이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우물가에서 보던

두레박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내 고향은 인천 화수동의 쌍우물터다.

 

 

오래된 건물들을 그대로 두는 것도 보기 좋긴 하지만

어느 정도 관리를 해야 하는데 여기 저기 보이는 폐가 건물들이

밤에 보면 무서울 정도로 변해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남산포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깨끗한 간이 화장실이 들어섰고 

작은 배 하나 잔물결하나 없는 수면에 정박해 고요히 잠자고

일을 마친 듯 포구에 올라와 쉬고 있는 커다란 닻이 잔잔힌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겨울이라 상가들이 철시한 남산포 근처 어느 집의 마당에 

오래전 부터 놓여 있던 커다란 부유에

유정천리(有情天理)라는 예명을 가진 분이 쓴 시 한수가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다.

 

강물같은 바다 뚝방길을 품은 갯벌 해안선이 움직인다.

노을진 석양 저 멀리 수평선에 빠진 붉은 태양의 여운이 사라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분단의 아픔 진한 그리움에 오늘도

포구에 스며든 바람은 갈대밭에 숨어 운다.

 


 

잠시 쉬고 휘 돌아가는 먼길을 질러 가기 위해 밧줄을 타고 산길을 올랐다.

그 꼭대기에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당집이 새로 지은 듯 깨끗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으나 집 주위에 흩어져 있는 마시다 남은 술병들이 보기 안좋았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을 듯한 숲길에 길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해안가를 지키는 초병들이 지나가며 만들어진 길 같다.

 

산 건너편으로 가니 펼쳐지는 넓은 논.

사람다니는 길로 가지 않고 일부러 말라 버린 논 사이로 들어가

우리는 오리처럼 떼를 지어 걸었다. '훠이~~' 하고 소리치면 모두 날아갈까?

마른 벼밑둥이 발에 밟혀 와삭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늘 가던 대룡마을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유명한 대룡마을 시장터를 지나가는데 이젠 그 오랜 세월의 마을 흔적이 사라지고

거의 모두 새로운 상가로 변해 버림이 무척이나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현상을 영어 표현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한다.

홍대 앞이 그렇고 가로수길이 그렇고 경리단길이 그렇고

지금 이 곳 대룡마을이 그렇다.

 

원주민들이 선조때부터 물려받은 터에서 조그맣게 장사하며 근근히 살았는데

어느 날 유명 연예인이 한 번 와서 촬영을 하고 방송을 탄 뒤로 사람들이 몰리고

또한 교동대교가 완성됨에 따라 승용차로 이동이 편해지니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장사가 되니 도시사람들이 와서 집을 사버려 찾아 오는 손님들이 보기 좋게

사업장을 바꾸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은 삶의 터전에서 돈 몇 푼 받고

쫒겨나고 그 들이 대물려 받은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로 변해 버리니

이젠 다른 도시의 이름난 곳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되어 버렸다.

아마 해마다 이 곳 마을 추녀 밑에 제비집을 지어 새끼를 낳고 크면 강남으로 날아가던

제비들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길가의 호박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인지

완전히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이 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대룡마을의 벽에 그려진 어린 시절 그림들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큰 대야 속에 허리를 숙이고 등목을 하고 아이를 그 안에 넣고 목욕을 시키던

나 어린 시절의 모습들. 짧게 깎은 머리와 여자들의 단발머리들.

그런 것이 어울리던 대륭마을인데 이젠 카페가 어울리는 마을로 바뀌고 있다.

 

화개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다을새길이지만 오늘 같이 눈이 쌓인 뒤 녹을 때 쯤엔

언덕을 올라가기 힘드니 산을 빙 둘러 가는 길을 택했다. 이 길이 훨씬 걷기에 좋다.

끝없이 이어지는 숲길. 그 끝에 화개사가 있다.

 

목탁소리도 들리지 않는 화개사를 지나 공자를 모시어 놓은 교동향교에 찾아가도 인적이 없다.

향교 앞에서 멀리 오전에 지나쳐 온 커다란 느티나무가 뚜렷이 보인다.

 

 

 

 

이제 다시 월선포로 가는 긴 길을 떠났다.

물이 흐르던 계곡에는 물이 말랐고, 두더지들이 땅을 파 헤치던 흔적이 사라졌다.

물도 동물도 곤충도 모두 잠든 겨울.

이제 입춘이 지났으니 그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필 것이고

지난 해 처럼 여기 저기서 아우성을 지를 것이다.

 

 

다을새길을 역방향으로 걷다보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반가운 이정표가 보였다.

송암 박두성선생님 생가로 가는 길.

송암선생님은 평생을 맹인의 점자개발을 위해 헌신하셨고

그 뒤를 이어 받은 송암선생님의 딸 박정희화가 겸 동화작가 겸

내가 자란 인천의 화도교회 장로님도 평생 맹인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지난 해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박정희장로님의 내가 다니던 교회의 주일학교 교장선생님이셨고

나는 어린 시절 그분을 보면서 이 다음에 선생님의 헌신적을 모습을 보며

내 꿈을 키워왔다.

한적한 강화도 나들길이 좋다. 그 길에 가꾸지 않은 자연미가 있어 좋고

바다가 있어 좋고 산이 있어 좋고 바람이 있어 좋고 나풀거리는 이정표가 있어 좋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있어 좋고 걸으면 늘 깔깔 거리며 웃는 길벗들이 있어 좋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