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대마도 트레킹 첫번째 날

carmina 2017. 10. 27. 21:43

대마도 여행 첫번째 날 (2017. 10. 24)

며칠 사이에 갑자기 내 키가 10센티 정도 늘어났고 폐의 공기가 신선해 진 것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3일동안의 일본 대마도 트레킹에서 하늘높이 솟아 오른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을 오랫동안 걷다보면
누구나 자기 몸에 무언가 달라 진 것 같은 현상을 느낄 것 같다.


내 생전 전국에 수없이 많은 길을 트레킹해 보았지만 배로 1시간 반 거리, 약 5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렇게 전혀 다른 세상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본이라는 나라.
직장생활동안 여러 번 출장을 왔었고 개인 여행으로도 몇 번을 다녀 오면서 늘 공통된 생각은 '작고 깨끗하다' 였다.  그 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늘 조심했고, 허세가 없었다. 그러나 경쟁에는 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늘 알 수 있었다.

노후에 짧은 해외여행을 즐기는 중년들이 주로 가던 중국에 사드 여파로 목적지를 인근의 다른 나라로 돌린 곳이 바로 대마도다.

지난 주말에 태풍으로 며칠 배편이 끊겨 하루 늦게 출발한 늦은 10월의 화요일 오전.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의 선착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국내 트레킹 여행 전문업체인 아웃도어파트너스사에서 올해부터 대마도에 진출해 터전을 잡았다. 마침 내가 이번 달에 목표했던 일을 달성했기에 편한 마음으로 신청하고 월요일 야간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새벽에 부산에 내린 뒤 내 버스에 같이 탄 낯모르는 단체 걷기 카페사람들과의 서먹함으로 혼자 떨어져 나와 그 새벽에 택시로 자갈치시장을 찾았다.


인천 짠돌이인 내가 부산에 내려 오면 비린내가 좋아서 꼭 찾아오는 이 곳. 자갈치시장. 새벽이라 사람들이 한산하지만 장삿군들은 오늘 판매할 생선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커다란 아구들이 수없이 많은 나무상자에 담겨있고 많은 종류의 생선들이 냉동된 채로 혹은 산 채로 이 구석 저 구석에 쌓여 있다. 건물내에서도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한치를 정성스럽게 다듬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꼼장어구이라는말만 들어도 입에서 군침이 도는 꼼장어골목은  흉물스러운 가판대만 어지럽게 놓여 있을 뿐이다.  


마침 불 켜진 심야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은 뒤 광복동 거리를 지나 40년만에 용두산 공원에 올랐다. 이전에는 미화당 백화점 길로 해서 올라갔었는데 이젠 홍콩의 소호거리처럼 도로에서 공원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돼지국밥 식당 아줌마가 5분이면 공원까지 갈 수 있다는 말에 '뻥도 세네' 하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이런 시설이 있을 줄이야.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하기에 도로바닥에는 톱 탤런트들의 발도장을 청동으로 찍어 바닥에 군데 군데 심어 놓은 것도 홍콩과 미국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


용두산공원에는 단 한사람만 어둠속에 조깅을 하고 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커다란 종각건물에 보신각 종크기의 종이 걸려 있다. 아마 서울을 벤치마킹한 것이리라. 그 외에 잔디밭 시계돌아가고 하늘높이 치솟은 부산타워의 위용은 옛날 그대로였다.


주말에 일본을 거쳐간 태풍 '란'의 여파인지 파도는 아직 수그러들지 않아 배가 출렁거려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멀미를 하느라 바닥에 누워있기도 했다. 나도 멀미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창가로 출렁거리는 파도에 눈길을 두지 않았다.

대마도.
오래 전 우리나라 경상도 영토였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일본의 침략을 받느라 우리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결국 임진왜란이후 대마도는 쓰시마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고 제주도보다 훨씬 가까운 섬이면서 여권이 있어야 가는 나라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천년넘게 이어져 온 한국의 색깔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옥을 비롯한 모든 것들은 일본 고유의 모습으로 변했다.

일본의 모습.
한국과 너무 다른 모습임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이번 일본여행에는 민간인들이 사는 집 주위를
많이 돌아다녔기에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주위에 보는 집들과 주위의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제일 먼저 인상깊었던 것은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도로를 만들었으며, 혹시나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들의 통행이 불편해질까봐 도로 옆의 낮은 산 언덕에는 모두 콘크리트로 방호벽을 세멘트로 굴곡진 언덕과 지형에 맞게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흙이 흘러내지 않아 도로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제까지 대도시로만 다녔던 일본의 대도시 도로는 당연히 2차선 이상의 도로였는데 이곳은 1차선 도로가 더 많다. 처음에는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1차선도로로 양방향 운행할 수 있을까?

도로의 곡선과 운전자들의 습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우리가 탄 대형버스는 곡선도로가 나오면 크게 회전해야 한다. 따라서 곡선부분은 도로 폭이 조금 넓다. 그리고 그런 도로가 있으면 마주 오는 모든 차는 일단 정지한다. 어쩌다가 서로 교행하게 될 때 한 방향의 차는 길가에 바짝 기대어 있다.

그런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이 곳의 차들은 대개 소형차들이다. 적어도 일인당 GNP가 4만달러가 넘는 민족이 누리는 개인의 만족도는 우리 민족과 달리 타인에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승용차에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오전에 대마도에 도착.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하티카츠 항의 선착장 건너편에 보이는 언덕 위에 세운 집이다. 산 언덕에 평지를 만들어 집을 짓고 그 주위의 산 언덕를 세멘트로 막아 놓았다. 마치 어느 암벽등반 실내 체험장같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차량 통행 방법이 우리와 반대인 까닭에 버스를 탈 때 어느 방향으로 타야 하는지 매번 기웃거려야 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항구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와 일본의 우호의 기념탑이 있는 도노사키 언덕을 찾았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벼랑 끝에 작은 오솔길이 있다. 나무뿌리들이 밟히는 오솔길에 일어로 쓰시마 해전 러시아 병사 상륙지라는 날짜까지 상세하게 적힌 나무팻말이 마치 무얼 만들려고 미리 안내판을 세워놓은 듯 무심하게 세워져 있다.

40년전에는 일본어로 대화까지 가능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 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져 일본이 '갑'의 역할에서 떠나고 난 뒤 나도 일본어를 서서히 잊어먹어 이젠 겨우 단어들을 생각해 낼 정도로 되어 버렸다. 그러나 3일간 체류중 문득 문득 단어들이 생각났고 내 입에서 40년동안 쓰지 않았던 일본어 대화들이 불쑥 불쑥 튀어 나왔다. 언어는 그런 것 같다. 중국어 대화도 많이 배웠지만 안쓰니 사라지고 스페인어도 오랜동안 사용하다가 잊었다가 지난 해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시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스페인 말이 생각나곤 했었다. 그러나 영어는 오랜동안 사용하고 있기에 아직은 내 기억속에 가득하다.

 


하늘에 매들도 서두르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격을 닮은 듯 굳이 먹이감을 찾지 않는 듯 허공을 선회하며 낯선 우리들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오솔길 절벽 밑에 파도가 부서진다. 이쪽 편은 파도가 그다지 크지 않은 듯 작은 포말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그 길을 걷는 우리 조차도 발길이 여유롭다.

동백꽃이 많다는 이 길에 나무들이 이리 저리 뒤엉켜 자라고 있고 가끔 고라니 배설물과 이상한 열매가 보였다. 이 곳의 상징은 딱따구리인 듯 모든 방향표시는 딱따구리의 부리가 알려 준다.

바다 먼 곳에서 하늘의 하얀 점이 점점 커지더니 구름빛깔과 어울리는 하얀 헬리콥터로 변했다. 일본은 헬리콥터 조차도 색깔이 우리와 다르다.

한국의 길을 걷느라 산하의 모습을 잘아는 나이기에 얼핏 눈에 보이는 억새의 색깔이 한국의 그것과 사뭇 다름이 보였다. 우리 것은 이 때쯤 색깔이 거의 은빛인데 이곳의 억새는 약간 누르스름한 빛깔이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인원이 많은 우리가 이런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식당이 부족해 우리 일행은 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식사를 했고 숙소도 2~3군데로 나뉘어져야만 했다.

이번 트레킹을 주관한 아웃도어파트너스에서 운영중인 토끼세끼 라는 뜻도 없는 재미있는 일본식 이름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니 전통적인 일본 도시락 벤토의 모습이다. 몇 개의 반찬이 오밀 조밀하게 조금씩 들어 있다. 뜨겁지 않은 된장국이라 숟가락이 필요없는 것도 일본식이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라 밥은 더 제공되었다.


식사를 하고 선착장 주차장에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닷가로 나오니 부둣가에 둥둥 떠있는 작은 흰 색의 배들이 맑은 하늘과 깨끗한 바다같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네 모습과 다를까?
선착장이라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거의 주민들을 볼 수 없었다. 배가 도착할 때만 문을 여는 듯 길가의 상점들도 불이 꺼져 있다.

이번 여행은 매일 매일 숲과 산을 4시간정도 걷고 나머지는 오가는 길에 있는 명승지와 유적지를 보는 일정이다. 그 첫 번 째 트레킹 코스로 가는 길에 길가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길가의 드문 드문 있는 집들의 주변이 무척 깨끗하다. 하다못해 살림도구나 농기구하나까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없다. 마당도 그다지 넓지 않고 집도 작은 편이다. 이 들은 저 작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생활할까?  가끔 작은 논에서 일을 하는 여인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곳은 낮은 산들이 많아서인지 넓은 벌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곳은 쓰레기 처리할 시설이 없어 배출되는 쓰레기들은 모두 일본 본토로 가져가 처리된다고 한다.

마사공원에서 슈시강을 따라 걷는 트레킹을 시작했다.
길의 초입부터 보이는 하늘로 향해 일자로 치솟은 나무들에 기가 죽었다. 마치 일장기의 단순한 원처럼 숲 속에 촘촘하게 심어진 모든 나무들이 한 획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 길 옆으로 흐르는 슈시강의 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강이라기보다는 작은 계곡이라 불리우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좌우로 열병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도 좋지만 내 등산화에 밟혀 꺾어지는 나무가지들의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거의 숲 관리를 하지 않는 듯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면 그대로 두는 것 같다.
문득 나무들의 수종을 보며 낙엽송이 많지 않고 침엽수가 대부분 인 것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거리가 깨끗하구나.  낙엽송이 많으면 거리와 들판은 지저분해 질 수 밖에 없다.

가끔 바위 틈에 나무상자를 만들어 세워진 것이 있는데 이 것이 벌통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나무상자가 자주 보였다. 벌통이라면 이 근처에 꽃을 피는 나무가 있어야 할텐데 그런 나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내 추측이 틀릴 수도 있다.

거의 평지로 된 숲 속이라 힘든 줄도 모르고 길을 걸었다. 대부분의 걷기 카페 회원들이 중년의 주부들이 많고 남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그 들은 걷기를 통해 새로운 야외문화의 즐거움을 알았기에 지금 전국이 등산보다 편한 걷기를 즐기는 중년의 여인들이 무척 많다.

어떤 이가 배낭도 없이 작은 기타만 하나 달랑 들고 우리의 일행이 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그는 하모니카와 함께 송창식의 노래와 귀에 익은 남미 민요를 불렀다. 그리고는 또 다른 이가 배낭에서 우클렐레를 꺼냈다. 아! 젊은 날의 내 모습들이다.


나 또한 40년 전의 젊은 시절에 기타를 메고 다니고 배낭속에 우클렐레를 넣고 다녔다. 그도 역시 하모니카와 우클렐레로 멋드러지게 연주를 했다.

걷기 카페 회원이 아닌 걸로 보아 나같이 사장님과 특별한 관계인 것 같다. 악기를 보면서 이번 여행에 즐거움의 싹이 보였다.


어느 계곡이 있는 곳에 잠시 쉴 때 기타를 든 이가 다시 한 번 송창식의 노래와 남미 노래를 한 후 내게 노래를 청한다. 아침부터 내게 노래를 시키면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폰에 가사가 저장된 노래 중 하나를 골라 늘 그러하듯이 이 계절에 맞는 노래를 무반주로 불렀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행복을 읽었다.

끝없이 어이지는 숲길. 주위에 특별한 변화없이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롸 왔던 것같기도 하고 처음 오는 길인 것 같기도 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모두 길가의 다리 난간에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중 일행 중 선생님과 함께 온 젊은 여학생에게 노래를 시키니 주저하지 않고 나와 한영애의 익히 아는 노래를 박수를 유도하며 불렀다. 그 용기가 가상해 내가 작은 선물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내가 잘아는 사람의 제자였다. 세상 참 좁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가는 도중 가이드가 대마도의 역사에 대해 얘기해 주겠다면 입을 여는데 내 기억 속에 설명의 첫 한 마디만 듣고 잠에 빠져 든 것 같다. 지난 밤에 버스안에서 거의 2시간 밖에 눈을 못 붙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저녁은 돈돈이라는 곳에서 한국식 삼겹살구이와 새우와 조개, 그리고 소시지 구이를 즐겼다.
호텔로 가기 위해 우리 일행들이 캐리어를 끌고 주택가를 걸어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주민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거슬렸으나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차마 무어라고 제지할 수가 없었다.

작은 호텔. 로비에서만 와이파이가 된다기에 얼른 밀렸던 알림글들을 읽고 주변에 커다란 마트에 가서 맥주 한 캔을 사 호텔로비에서 마시며 혼자 즐기다가 쏟아지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초저녁에 잠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도 역시 벤토. 메뉴도 비슷하다. 마치 우리네 기본 식단이 밥과 국 생선토막 하나 그리고 김과 김치이듯 이들도 그랬다. 단지 김치의 자리를 단무지가 대신한 것뿐으로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것은 모두 같다.

이 지역의 모든 상가의 안내는 반드시 한글이 병행되고 있다. 어제 저녁 마트에서도 모든 물건은 한글과 같이 써 있고 어디를 가던 한국인이 불편없게 해 놓았다. 이 곳이 일본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