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6코스 - 뒤돌아 걸으면 보이는 것들

carmina 2017. 3. 25. 21:53



2017. 3. 25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꽃 소식은 대개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으로 얘기하지만

시골사람들은 그런 흔한 꽃보다 노란 꽃송이가 아름다운 생강나무를 꼽는다.

생강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고  ​꽃도 그다지 크지 않게 자라지만

소담하게 피는 편이다. 산수유랑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름을 알 수 있다.

토요도보 공지가 올라오면서 생강나무 꽃이 피었을 것이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생강나무는 대개 숲 속에서 볼 수 있다. 오늘은 숲속을 걸어보자.

나들길 6코스가 거리가 조금 축소된 뒤에 순방향으로 걸으면

걷고 난 후 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편이 자주 없어

터미널에서 정확한 시간에 떠나는 버스를 이용하여

도착지점까지 이동해 역방향으로 걸으면 나중에 귀가할 때도 편하다.

 ​

 

버스를 타고 오두리경로당 앞에서 내리니 바로 숲길로 이어진다.

이 길을 내가 분명히 몇 번이고 걸었던 길일텐데 역방향으로 걸으니

​주변의 풍경이 무척 낯설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주택이 생겼고​ 지형도 변한 것 같다.

어느 정원이 넓은 집은 이전에 있던 집인지 새로 지은 것인지 긴가 민가하고

이 길이 이렇게 시야가 탁 트인 길이었나 할 정도로

역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숲으로 들어가자 마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노란 생강나무 꽃들.

하긴 지금 숲은 멀리 보이는 소나무외에는 거의 무채색이라

돋보일 수 밖에 없다. 강화에 흔한 진달래는 앞으로 10일은 더 지나야

활짝 필 것이다. 강화의 도로 여기 저기에 진달래 축제 안내가 자주 보였다.

아무도 걷지 않았음직한 오솔길을 지나 숲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멀리 숲 속에 남자 수도사들만 기거한다는 수도원이 보였다.

지 곳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갑자기 증폭했다.

몇 년 전 어느 수도원의 모습을 담은 영화가 있었는데

대사 한 마디 없이 수도원의 모습을 거의 2시간 동안 침묵으로 보여 준 영화였는데

나는 그 적막속에서 화면이 뚫어져라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그 고풍어린 수도원을 감상한 적이 있다.

조금 올라가니 그제서야 내 기억이 하나둘 씩 돌아왔다.

이전에 한참 작업중이던 산소가 깨끗히 정리되어 있었고

숲속에 있었던 공공시설을 보니 낯이 익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편했다.

넓은 오솔길에 낙엽은 푹신했고

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러다 하늘을 다 가려버릴라.

​6코스 명칭이 '화남생가가는 길'인 것은 조선시대 화남 고재형선비가

강화도 (당시는 강도라 불리웠음)에 살면서 강화도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며 강도의 아름다움을 한시로 남겼다.

지금도 그 분이 남긴 시가 나들길 여기 저기에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집 앞에 적힌 문패에 이름이 아닌 핸드폰번호가 적혀 있어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하고 실소했다.​

화남생가가는 길로 들어가는 길에 커다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목각인형이 일행을 반긴다. 이 곳에 연꽃밭이 아름다운데

지금은 모두 말라 버리고 또 다시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된 벽화는 색이 바래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

그간 없었던 커다란 돌탑이 세개나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이 곳은 두룩이마을이라 불리우는데 꽃마니에 뜨락(010-4386-9300)이라는

천연염색과 압화를 하고 식당이 있어 미리 연락하면 점심이 가능하다.

실제 화남생가는 사라지고 커다란 건물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근처에 오래된 초가집은 지금 허물어져있고 새로 주택을 짓기 위해 작업중이다.

다시 숲길을 이어지는 작은 숲의 끝에 오래된 낯익은 건물이 있다.

이전에 마리대안학교였고 지금은 어느 기타를 만드는 공방이

그 곳에서 기타를 만들고 있지만

오늘은 작업이 없는지 문이 닫혀 있고 조용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건물의 외부는 무척 지저분해 눈쌀이 찌푸러진다.

기타를 사랑하고 클래식음악을 사랑하는 내 생각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니 만드는 장소도 보기 좋고

깨끗하게 정돈해야 맞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있다.

이전에 학생들이 오손도손 모여 공부하던 모습이 그리웠다.​

큰 길로 나와 아침가리 마을을 지나니 동네 어른들이

경로당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시기에 인사드리며 지났다.​

어느 집 앞 마당에 솜털이 가득한 할미꽃이 핀 것을 보니 무척 반가왔다.

보통 무덤가나 돌틈에서 피는 법인데 이 곳은 집 화단에

심은 것이 신기했다. ​

 

긴 긴 숲길을 지나 불은리를 나와서 문득 젊은 대학 시절

이 곳에 내가 주말마다 ​기타하나 들고 와 어느 곳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신현감리교회에 중학생들을 가르치러 왔던 기억이 떠 올랐다.

이전에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삼동암천에 오리들이 가끔 보이고

뚝을 쌓는 공사도 한참 진행중이다.

불은리 마을에는 소를 많이 키우는지 소똥냄새가 가득했다.

소들이 이 곳은 구제역이 피해가는 듯하니 다행이다.

한 때 구제역이 돌아 소를 매몰한 곳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런 일은 언제든지 또 일어 날 수 있기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선원사로 가는 길 옆에도 새로 지은 주택들이 많다.

아마 서울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길이 편해지니 외지인들이 들어와

여기 저기 새 집을 ​짓는 것 같다.

오래 전 부터 꿈꾸던 나는 생각만했지 힘든 일이 다른 사람들에겐

쉽게 이루어 진다.

6코스에서 길벗들을 기쁘게 해 주는 곳이 바로 작사가인 월하 선생님이

길벗들에게 제공하는 쉼터다.

그 곳에는 춥고 바람이 불어도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비닐 하우스가 있고

그 안에 커피와 작은 간식들이 있으며 따뜻한 난로가 있다.

피아노도 있어 연주도 가능하고 길벗들이 고마움의 낙서도 할 수 있도록

커다란 ​판을 준비해 두었다. 또한 야영이 가능하도록 야영장 시설도 있다.

마침 ​월하선생님이 집에서 나오시기에 얼른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올해 78살이신 그 분의 어질고 베푸는 마음씨가 좋다.

팔만대장경을 직접 만들었다는 선원사로 가는 길의 연밭에 커다란 오리 3마리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마구 달려와 꽉 꽉대고 있다. 무언가를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땅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인지 모르겠다.

선원사에서 처음 점심으로 연밥을 먹었다.

큰 연잎에 싼 밤과 연근이 들어간 잡곡밥에 이 무척 맛있다.

이런 것도 필요하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

선원사의 뒷편 넓은 공간의 돌계단에서 길벗들을 위해

가곡 사월의 노래를 불러 주니 모두 행복해 하는 모습들이다.

휴식 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숲길을 걷는데

이제껏 걸으며 보지 않았던 내 뒤의 풍경을 오늘은 앞에서 보니

전혀 새로운 모습의 숲 모습이 보였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고개를 숙이지 보이지 않았던 나무들이

아래로 내려가며 보니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이 마치 대나무같이 빼곡했다.

진즉 왜 이런 멋있는 풍경을 보지 못했을까?

 

내가 국내의 모든 길 중 강화도 나들길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숲길이다. 일부러 길벗들이 편하게 걷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고

숲 그 자체에 있던 오솔길을 걷는 기쁨.

마치 조미료 안 넣고 만든 토속음식 맛이라고나 할까?

​이런 모습들을 길 걷기를 좋아하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길가에 문득 보이는 낯익은 색깔.

다른 녀석들보다 먼저 핀 진달래 꽃 한 송이가 온 산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강화나들길.

언제나 변함이 없기 그대로 있길...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