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7코스 - 길에서 길을 찾다

carmina 2017. 3. 18. 21:30

 

 

2017. 3. 18

 

김포가도에 줄지어 있는 간이시설의 꽃 집들이 이젠 긴 동면에서 깨어나

문을 활짝 열고 수없는 많은 색들을 마당에 전시해 놓았다.

봄이네.  어김없이 봄은 와도 그저 반가운 것은

지난 겨울이 추워서 따뜻한 계절을 바랐다기보다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남이 반가워서일 것이다.

나들길 7코스. 화도면 시외터미널에서 출발하여 한바퀴 도는 코스다.

진즉부터 토요도보 공지를 하면서 오늘은 다른 길로 갈것이라고 알렸다.

7코스의 시작부터 중간부분까지 거의 세멘트 길을 걸어야 하니

오늘은 작심하고 다른 길로 가겠다고 하기에 내심 궁금했다.

평소와 다르게 길벗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오늘은 많이 모였다.

그러나 아직 겨울 등산복은 모두 입은 채로 모였으나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모두 벗어버려야만 했다.

​하루다 다르게 봄이 가속도를 내는 것 같다.

7코스를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전방에 못 보던 모습이 펼쳐졌다.

​내리 성당 앞에 있던 허름한 집들과 낮은 언덕을

모두 밀어 버리고 커다란 주택단지를 건설하려는 듯

돌로 여기 저기 축대를 쌓아 놓았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강화도로 오는 길에 어느 건물에 붙은

강화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계획 홍보 프랭카드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강화의 풍경이 곧 사라지겠구나 하고 조금 마음이 상했는데

지금 눈 앞에 그 실체를 보고 있다. ​

절에서나 볼 수 있는 내리 성당의 종을 아주 작게 타종해 보았더니

종 밑에 항아리를 넣어두어서인지 소리가 맑다.

어린 시절 그런 소리가 좋아 항아리 안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내 보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펜션이 많이 있는 왼쪽언덕 길로 가야 하는데

오늘은 직진하여 마을길로 들어섰다.

이 마을의 집들 중 내가 꼭 살고 싶은 오랜 된 집들이 몇 채 있어 좋다. ​

​길거리 밤나무에도 이제 한 두 달 뒤면 하얀 꽃을 필 것이고

늦가을까지 한 두개 달랑거리던 말라붙은 감마저 모두 떨어진 감나무에도

이제 곧 파릇한 잎들이 나올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농부는 밭을 갈고 있고 퇴비를 뿌려

여기 저기 ​고약하지만 상큼한 냄새들이 후각을 자극한다.

난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이 냄새가 늘 좋다.

무언가 생명과 희망을 주는 냄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국장 냄새는 싫어하는 나의 이중성도 있다.

 

대문도 한쪽이 부서져 사라진 것 같고 집 앞에 쌓아놓은 잡풀들이 있어

폐가라고 생각되는  ​누추한 가옥에도 앞에 빨래가 널려있다.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기둥만 남아 있고 대부분의 커다란 가지들이 모두

잘라져 버린 채 겨우 한쪽만 가지만 자라는 비대칭 나무도 그 위에

잔가지들이 많은 것을 보니 인간이나 나무나 참 끈질긴 생명을 가지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오른다.

좁은 길이었는데 조금 넓어졌다.

누군가 이 곳 땅을 사고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 같다.

​이 길은 내가 늘 순방향으로 걷다가 역방향으로 처음 걸어서인지

모든 풍경이 참 낯설다.

참 여러번 이 곳을 왔었을텐데도 이곳이 내가 다니던 길인가 할 정도

길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한참을 숲길을 걸어서야 이 길로 다녔던 내 기억이 되살아 났다.

그 끝에 보이지 않던 게스트하우스가 있음을 팻말을 통해 알수 있었다.

산당화가 피는 집 게스트 하우스. (010-3241-7492)

강화에 게스트하우스가 별로 없어 지방에서 올라와

며칠씩 나들길을 트레킹할려는 사람들이 비싼 펜션을 가지 못하고

불편한 찜찜질방에서 묵어야 한다는 여행자들의 볼멘 소리를

자주 들었었는데 이제 한 두개씩 세워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어느 날 나도 기회를 봐서 이런 곳에서 묵어 봐야겠다.

코스를 변경하다 보니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9시 반에 떠난지 한시간 반 만에 점심을 먹어야 했다.

우렁쌈밥에서 나오는 우렁된장의 맛이 어떤 양념을 썼는지 모르지만

참 달콤하고 감칠 맛이 나 모두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1인 만원의 가격에 비해서는 강화의 다른 음식점들이 내 놓는

밑반찬들을 비교할 때 조금 비싼 감이 있다.

식사후 본격적으로 다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전혀 길이 없는 물빠진 바닷가 길로 저벅 저벅 걸어 들어갔다.

겨울이라 말라붙은 갯벌 위 함초가 발길에 바삭하고 부서진다.

그래도 바닷가 바위들이 있어 질퍽한 갯벌은 피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참 바닷가 바위를 걷다가 넓은 바위에

금방 먹은 점심의 포만감을 잠재우기 위해 쉬는 시간에

길벗들이 내 노래를 청했다.

아침에 강화에 오는 버스 안에서 내게 노래를 청하면 무슨 노래를 해야 하나 하고

스마트폰을 뒤적이다가 봄노래 몇 개를 챙겨 두었었다.

봄이면 늘 부르는 '남촌'을 같은 가사에 다른 곡을 붙은 유행가와 가곡을 연이어

불렀는데 듣는 사람들이 알았을까? ​

앵콜로 '봄이 오면'과 '봄의 교향악'을 불렀더니 어느 나이 많으신 분이

몇 년 만에 내 노래를 들었다고 고맙다 하셨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길 아니 우리가 걷는 곳은 바다가 있어서인지 좋은 펜션들이 많았다.

뒤로는 낮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비록 맑은 바다물은 아니지만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듯 했다.

넓은 바위위에 수억년동안 고동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이 그물처럼

얼기 설기 그려져 있다. 혹시 저게 무슨 문자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지점에서 바닷가 걷기를 멈추고 바로 산으로 기어 올라갔다.

길이 없을 것 처럼 보였는데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알고보니 군인들이 경계를 위해 지나가는 길이다.

해병대 막사가 바로 앞에 있는 둥근 장곶돈대에 올라 바닷물이 천천히

들어 오는 것을 본다. 장곶돈대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인듯

돈대에 오르는 돌계단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 곳은 강화의 토박이가 아니면 모르는 곳일 것이다.

 

 

돈대를 돌며 한바탕 춤을 추고 내려 와 길없는 길을 찾았다.

울창한 밀림이 아니니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길이 나온다.

​나들길 리본을 본지 한참 지났다.

그래도 우린 오랜 세월 같이 한 리더를 믿으니 길이 없어도 그냥 따라간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 부들이 무척 많은 늪 아래에

아주 고운 솜들이 깔려 있어 자세히 보니 부들이 자신의 열매를

모두 고운 털솜으로 바꾸어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다.

아마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 짐승같다.

길없는 길을 찾아 가는데 언덕 기슭에 마치 휴전선의 폐허된

인민군 노동당사같은 건물이 외벽까지만 공사하고 자재는 모두 그대로

쌓아 둔 채 공사를 중지했는지 보기에 흉물스러울 정도로 입을 벌린 채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 앞 바다에는 어부들이 쳐 놓은 그물의 말뚝에 갈매기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입에 굴어 들어오는 떡을 노리고 있다.​

이제까지 강화를 다녔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멋진 레조트가 보였다.

강화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레조트가 고급스러웠고

그 뒤로 돌아가니 횟집들이 많은 후포선착장이 보였다.

마니산을 등산하러 온 단체 산악회에서 등반 후 이 곳에서 식사를 하는듯

여러대의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후포항 선착장에 도시인들 몇 명이 망둥어 낚시를 위해 열심히 갯지렁이를

바늘에 꿰다가 찔렸는지 손가락에서 피가 난채 집중하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 강화에서 정말 많은 망둥어 낚시를 즐겼다.

낚싯대만 집어 넣으면 바늘 두개에 두 마리의 망둥어가 낚여 올려지는 일이

비일 비재할 정도로 고기가 많았었다. 낚은 망둥어를 이빨로

꼬리와 대가리를 잘라 버리고 가지고 온 초고추장에 그대로 찍어 먹는

야생의 맛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바닷가에 피곤한 고기잡이 배들이 옆으로 길게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고

어부는 새로운 출항을 위해 두터운 쇠철선을 만들고 거대한 원형 튜브를

만들어 쌓아 놓았다.

이제 오늘 걷기가 거의 끝나가는 듯 멀리 오늘 아침 걸었던 곳이 보인다.

누군가 소리쳐서 바라 본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청둥오리들이 떼를 지어

군무를 하며 점점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가는 장관을 연출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옷을 잘 못 입고 왔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따뜻한 날.

다음에는 완전 봄옷으로 와야 할 것 같다.

 

저녁에 아내가 내게 자기 친구들 부부가 평일에 나들길 가고 싶다하니

나보고 안내해 달란다. ​하모 하모..

안내 없어도 가는데 안내하면 더 즐겁지...

은퇴후 여행만 다니지만 백수가 좋긴 좋구나..

이러다 쪽박찰라.​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