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 -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carmina 2017. 4. 1. 21:30



2017. 4. 1


서해 황금들녘길의 만리장성같은 긴 둑길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보기 좋은 모습으로 보이게 하려면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 자연의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둑길의 억새들과 둑 언덕의 모든 잡초들을 모두 태워버려

억새가득한 길을 걷는 즐거움은 없어져 버렸지만

다시 태어나는 억새들에겐 절대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며칠동안 황사로 가득해 뿌였던 하늘이

어제 잠시 내린 비로 깨끗해지고 바람에 날라가버려

오늘의 시야는 망망대야(茫茫大野) 였기에 걷는 기분은 최고였다.


나들길 16코스의 출발점인 창후리에 도착해 잠시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강화 53개 돈대 중 하나인 무태돈대에 올랐더니

검푸른 바다 건너 석모도의 상주산이 또렷하게 보였고

멀리 교동대교도 오늘은 선명하게 카메라의 화면에 잡혔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 그물작업을 하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우리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들에겐 우리 모습이 사치로 보일 것이다.

70년대 80년대는 우리들 모습이 저렇게 중동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지 30년.

앞으로 30년 후에 저들도 우리처럼 고국에 돌아가 후진국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편하게 살수 있을까? 평생 직장생활동안 해외를 다니며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내 눈에는 그런 것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몇 년 전 16코스가 처음 개장되고 둑길 바닥에 새로 깔아 놓은 그물형 깔판도

이젠 많이 닳아 너덜거리고 있다. 그래도 이 것이 없었으면 궂은 날씨에

걷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이 길은 농사하는 사람들이나 어부들이 다니는 글이 아니니

그만큼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군청에서 그간 없었던 각종 이정표들과 편의 시설을 새로 해 놓았다.

스탬프 찍는 것도 자동기계로 바뀌고 둑길에 거리표시와 각종

안내판들을 세워 놓았다.


특별히 눈에 뜨이는 것은 그간 이 둑 밑 갯벌을 지나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석축을 쌓아 놓았기에 낚싯군들을 위한 것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로인(Groyne)이라고 간척지의 흙이 바닷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둑의 왼편에는 넓은 벌판사이로 난 논길에 싸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열을 지어 달려 가고 있다. 오늘은 트레킹도 싸이클링도 최적의 날씨다.



또한 이 곳에 그간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강화의 간척지 개발역사에 대해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옮겨 본다.

강화 간척지 개발역사

강화의 섬들은 대부분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다. 이 평야들은 고려말부터

오늘날까지 약 800년간 이어진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공평야다.

강화는 우리나라의 간척사업이 가장 일찍 체계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시행된 지역이며 간척지의 총면적은 130 km2 (약 4천만평)이고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년 약 2만톤에 달한다. (간척역사는 사진 참조)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800년전이라면 당시 제대로된 중장비도 없을텐데

오로지 사람의 인력과 단순노동기계로 이렇게 대규모 간척사업을 했다니

이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둑 아래에는 벌판의 논길에는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줄지어 

달리고 있다. 오늘은 트레킹에도 사이클링에도 최적의 날씨다. 

​망양벌판에는 겨우내 잠들어 있던 대지를 트랙터로 깨워 봄농사를 준비하느라

모든 땅이 일궈져 있었다. 이제 곧 이 곳에 대규모 모심기가 이루어 질 것이다.

그 위로 따스한 아침 햇빛과 커다란 뭉게구름들이 멀리 퍼져 있었다.


이 멋진 풍경들을 제대로 보고파 일행들의 사이를 뚫고 제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드디어 시야가 탁 트이니 가슴이 시원하다. 이래서 난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자연의 풍경이 다 내 것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길이 전보다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들어 옆을 보니 억새풀들을 모두 베어버린것을 알았다.

덕분에 일행들은 3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도 넉넉하다.

오늘은 이상하게 낚시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 그래서 갯벌의 작은 칠게들이 살판났다.

가만히 갯벌을 보니 여기 저기 갯벌 작은 구멍에서 게들이 들락 날락하며 집을 짓는다.

오른편은 비록 누런 바닷물이지만 왼편 둑을 따라가는 넓은 개울엔 파란 하늘이 투영되어

하늘의 빛깔을 담아 버렸다.



군데 군데 새로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아 기념촬영도 하고 길벗들은 신이 났다. 가끔

직사광선을 피할 작은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을 걸으면 멀리 마을 가운데서 늘 보였던 종이학모양의 먕양교회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다가 돈대가까운 곳에 와서야 제대로 보였다. 

늘 그렇듯이 망양돈대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걸으니 다 타서 재가 되어 버린

들판에 검은 재를 뚫고 파란 싹이 돋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풀들이 그랬을 것이다.

"니들이 불을 질러봐라, 난 땅 속에 꽁꽁 숨어 겨울을 날테니 기어코 다시 싹을 피울거야"

풀이 돌아오고 있다. 억새가 돌아오고 잡초들이 돌아오고 있다.


불은 차마 아카시아 나무까지는 태우지 못했는지 가끔 길 옆에 단단한 아카시아나무의

가시들이 옷을 스치는 것을 느낀다. 이래서 풀숲을 걸을 때는 꼭 장갑을 끼어야 한다.



계룡돈대에 그간 없던 안내판이 새로 세워져 있다.

1679년 이 돈대를 구축하기 위해 무려 12,262명이 투입되고 운반선 84척이 동원되었단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살던 강화였을텐데 임금이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니 모두 따라

육지로 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돈대는 오랜 세월동안 서서히 무너지고 지금 그런 곳들을

다시 쌓고 있다.  돈대 옆 커다란 돌사이에 큰 나무가 자랐었는데 아마도 나무가 더 크게 자라

큰 돌이 쪼개지면 돈대도 위험할것 같은지 나무를 거의 밑둥까지 잘라 버렸다.



계룡돈대에서 늘 어머니와 같이 오는 길벗이 내게 책을 내민다.

"작가 사인해 주세요."

내 책이다. 산티아고 다녀와 쓴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

우리 모두 공감되는 내용으로 한마디 썼다.

'길에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찾습니다.

언제나 길에서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Buen Camino 정 경석'





없던 이정표가 새로 생겼다. 그 이정표에는 전체 거리와 걸어온 거리 그리고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만들어 놓은 것은 좋은데 유지 보수가 잘 되길..



둑을 내려와 용두레마을로 가는 길에는 겨우내 장사를 안했는지 용두레와

그네들이 모두 제 역할을 못하고 편히 쉬고 있다. 이제 대지가 파래지면

저것들도 기름친 것같이 움직이리라. 그 덕에 길벗들이 요긴하게 사용하던

화장실도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다.



한 때 농촌에서 돈있는 자들이 초가지붕을개량하며 양철판으로 덮었는데

이젠 그 마저 녹이 슬어 모두 초라해져 버렸다. 그 위로 다 말라 버린 수세미들이

수확도 안된 채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대롱 대롱 매달려 있다.

어즈버 찬란했던 지난 날이여..



수녀원으로 가는 길 옆 저수지 둑의 경사면에 겨우내 말라버린 잡초들이 아직 꼿꼿하게 서 있다.

나이들어 고집이 세어가는 내 모습일까? 그래도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니 보기 좋다.

내 머리칼도 저렇게 빛나게 하고 싶어 이발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냥 두고 있는데

요즘 조금 귀찮은 느낌이 들어 망설이고 있다.


평소 수녀원근처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외부인들이 많이 와서 그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길벗 중 몇 분이 수녀원에서 나온 분을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이제 숲길로 들어간다. 이제까지 몰랐는데 거리표시가 붙어 있다. 2.11km

겨우내 발에 밣히던 수많은 밤송이 껍질들이 모두 바스라져 사라져 버린 그 곳에

진달래가 피고 있다.



숲길을 한 참 걸어가다가 우리 모두 노란 생강나무 군락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오솔길 양옆으로 노란 생강나무 꽃들이 가득 피고 조금 더 가니

이젠 완전히 진달래 나무들이 가득하여 성질 급한 놈은

벌써 꽃을 피웠지만 대개 작은 꽃봉우리들이 가득하다.



나무들이 꽃 피우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길 바닥에 작은 제비꽃도 진달래같은 색깔로 피고

이름 모를 작은 노란 꽃들도 드문 드문 고양이 같이 눈을 내 밀었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상판 작업은 끝난 것 같고 진입로 공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 곧 석모도를 오가는 페리호를 따라 다니는 갈매기들도

끼니를 걱정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외포리에서 늦은 점심으로 영양돌솥집(032-932-8879)이라는 곳에서

콩비지를 먹었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 홍보를 해 주고 싶었다.

흰 밥에 어리굴젓를 넣고 비벼 먹으며 한 수저 떠먹는 콩비지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마침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와서 급히 외포리를 떠나는데 비가 왔다.

버스 창문을 두드리는 굵은 빗방울은 금방 사라지고 다시 화창한 하늘이 봄하늘이 반긴다.


봄 날은 한철이다.

금방 여름이 올 것이다.

곧 걸으면 더워질 것이고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야 하는 서해황금들녘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질 것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