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마을버스와 함께 한 남도여행 - 강진편

carmina 2017. 3. 21. 15:26

 

 

 

 

 

2017. 2. 26

 

보성차밭에서 장흥을 거쳐 강진으로 들어왔다.

강진에서 일행 중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강진 터미널에 그 분을 내려 드리고 강진군청에서 제공한 숙소인 한옥민박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해 먹을 셈으로 커다란 마트에서 고기와 각종 요리할 재료들을 사가지고 숙소인 사의재 한옥체험관으로 찾아가 짐을 풀었다가 난관에 부딪혔다. 애초에 한옥으로 된 숙박시설에서는 취사나 요리가 금지되어 있는 것을 몰랐으니 편의를 봐 달라고 정을 해서 할 수는 있었어도 아무래도 장소를 제공한 측에 누가 될까봐 저녁은 한옥체험관 바로 옆에 있는 한옥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선생님이 18년간 긴 귀양살이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다산 선생은 음식 중 아욱국을 무척 좋아하여 그 식당에서도 아욱국을 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어떤 이가 혼자 파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 자리에 합세했다. 결혼사진을 찍는 분으로 이 곳에 일이 있어 혼자 왔다한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는 이야기를 주로 같이 나누다가 여행이야기로 들어서니 우리와 격이 달라 혼자 머쓱해 하다가 자기랑 안 맞는 자리같다며 일어섰다.

아욱국정식으로 냉이등 봄나물이 곁들인 토속적인 반찬에 모두 혹 빠져 버렸다. 급기야는 반찬을 모두 큰 그릇에 담아 비벼 먹으며 8명이 12그릇의 밥을 해치우는 여행가 본능의 저력(?)을 발휘하고 막걸리와 함께 곁들였기에 모두 포만감을 느끼며 뜨끈한 한옥에서 아로마 맛사지를 받으며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밥을 해 먹을 수 없기에 혼자 슬며시 거리로 나와 아침거리를 다니며 혹시 김밥같은 먹을 것이 있나 하고 다녀보았다. 숙소가 조금 시내와 떨어진 곳에 있기에 한참을 거리를 뒤진 끝에 마침 문을 연 떡집이 있기에 떡을 사고 음료수 한 병을 사가지고 들어오니 모두 좋아했다.       

강진은 전적으로 여행 일정을 강진군청에서 도와주었다.  지난 해 10월 도보여행팀과 함께 버스로 강진에 내려와 강진의 특별음식인 병영숯불갈비를 먹고 갈대밭길 그리고 주작산 휴양림에서 하루 숙박 후 산길을 걷고 석문공원 그리고 가우도를 걸었었다.

국가에서 매년 3개도시를 관광도시로 인정하고 지원하는데 2019년에 강진을 포함하여 울산광역시 중구와 경기도 안산시가 선정되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들어섰기에 우리 마을버스도 그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이른 아침에 군청의 직원이 관광해설사와 함께 우리를 방문하여 일정을 알려 주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모란이 피기까지' 그리고 '오메 단풍들것네' 시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의 생가였다. 조근 조근 낮은 소리로 설명하시는 나이 드신 여성 해설가의 설명을 바로 옆에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라 일부러 바짝 옆에 따라 붙었다.

 

그의 생가는 잘 복원되어 있었다. 문인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생활을 거치기도 하고 활발한 문학활동으로 시문학동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썼다 한다. 생가에는 유난히 동백꽃과 모란꽃이 많이 심어져 있지만 모란꽃은 아무래도 시때문에 별도로 심어 놓은 듯 했다.  ​잘 정리된 생가에 사람은 살지 않고 전시용으로 보인다. 만약 사람이 살았다면 아마 이렇게 보존되지 못할 것이다.

 

 

생가 곳곳에 시인이 시상을 얻을만한 우물과 동백나무, 은행나무와 뒷산에 대나무​숲이 보였다. 시인의 사전 속에 단어들은 별도의 정의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낙엽은 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는 것인데 시인의 사전에 낙엽은 눈물로 표현되고 동백은 마음으로 읽혀진다.   

 

  ​

생가 옆에 ​시문학파기념관이라는 현대식 건물로 들어가니 우선 하얀 자작나무 기둥이 인상적이다. 그 사이 사이에 강진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작품들과 남긴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넉넉한 공간에 조용히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조명도 적당히 어두워 좋았다. 시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누구와도 교감을 나누지 않고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어휘들로 이루어진 예술. 그래서 시들이 아름답다.

그곳에 일제시대 우리의 시를 이끌어 가던 시인들의 이름이 보였다. 영랑을 비롯하여 정지용, 정인보, 박용철, 이하윤, 허복,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등 등.  정지용의 향수시로 만든 노래가 조용히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어쩌면 그리 섬세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멋진 시​인지... 시를 외우진 못해도 노래로 만들면 외우기 싶다. 그래서 가끔 여행할 때 길에 써 붙여진 시를 보면 노래로 흥얼거려 본다.

​군청에서 생가와 기념관으로 오는 길의 보도에도 시들이 새겨져 있다. 산책하러 올라가는 사잇 길의 시들을 한 편 한 편 읽으며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랑생가를 나와 찾아간 하멜 기념관.

 

 

아직 공사중이지만 손을 앞으로 뻗은 하멜의 동상에 천지창조 상징처럼 아니 영화 ​ET의 포스터처럼 내 손가락을 마주대어 보며 그의 시대로 돌아 가 본다. 그는  17세기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직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 중 일본의 나가사끼로 가기 위해 승선한 배가 좌초하여 제주도에서 표류하다가 선원들 모두 체포되고 당시 조선의 왕인 효종을 만나 이전에 귀화하여 조선여자와 결혼한 네델란드인 박연의 통역으로 처형은 면했지만 강진과 여수 등으로 불려 다니면서 선진 병영기술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결국 조선에서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썼으며 이는 유럽에 조선을 소개한 최초의 자료라고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들은 바 있다.



2019년 강진방문의 해를 준비하기 위해 하멜 기념관은 새로 준비하는지 하멜기념관은 문을 닫았고 네델란드를 상징하는 커다란 풍차가 있는 건물도 문이 닫혀 있다. 그 앞에 8백년생 커다란 은행나무만이 아마 하멜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하게도 그가 쓴 저서를 통해 조선에서의 생활을 알 수 있고 놀란 것은 그 주위 모든 가옥의 담들이 다른 곳과 아주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벽에 돌을 쌓아 흙벽을 만들었는데 그 돌이 모두 빗살형태로 되어 있다. 언젠가 네델란드 정부 인사와 유명한 축국 감독 히딩크가 이 곳에 와서 이런 건축 양식이 바로 네델란드식이라고 말을 했다 한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돌로 쌓은 벽들은 특별한 규칙이 없는 것 같다. 한번도 그런 점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승용차와 사람들이 동시에 이용하는 도로는 거의 모두 돌들을 일정하게 배열해 놓았고 지난 번 산티아고 까미노 트레킹 할 때 산토도밍고라는 마을에 갔을 때 넓은 광장의 돌들이 모두 빗살무늬로 되어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었다. 아마 하멜은 이런 식으로 당시 군시설들에 대한 축성을 자문해 준 것 같다.   

도로 건너 바닷가쪽으로 강진의 전라병영성을 개축하고 있고 성곽에 올라가지 병영을 모두 새로 만들려는지 벌판 위에 유물이 있었던 흔적을 표시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다시 짓더라도 전시용이 아닌 제대로 된 건축물을 지어 오랜 세월 두고 두고 후손들이 볼 수 있는 역사물들이 되길 바랄 뿐이다.  ​

 

배가 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강진만한정식 (061-433-0234)이라는 곳에 들어서자 마자 우리 모두 입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한 상 정갈하게 차려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비롯하여 육회, 홍어삼합, 대하찜 등 군침돌게하는 여러가지 반찬들이 우리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 곳에서 우린 어제 저녁같이 8명이 또 12그릇의 밥을 해치워야 했다. 배고팠다기보다 맛때문에 욕심을 부렸다해야 옳은 표현이다. 우리가 어제 저녁 먹을려다 산 고기 덩어리는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여기 한정식집에 맡겨 두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조용한 사찰 무위사(無爲寺).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뜻인가? 설명에 의하면 죽은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원효대사가 세웠다. 국내의 다른 절처럼 끊임없이 색칠하고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인지 더 관심과 애정이 갔다. 극락보전의 지붕기와는 어쩔 수 없이 보수를 해서 깨끗한 편인데 그 밑의 기둥이나 문들은 모두 세월을 그대로 겪은 듯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고색을 가지고 있다. 사찰의 나무기둥은 오래 되어 갈라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몇 백년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이 튼튼하다. 이렇게 절을 무미건조하게 두는 것이 혹시 망자가 삼베옷 수의를 입은 느낌이랄까?

 

 

 

 

 

무위사를 나와 찾아간 백운동서원.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에 다산이 머물렀다는 세연정 그리고 이 곳 백운동서운을 꼽는다. 오늘 이 곳을 방문함으로서 3대 정원을 모두 본 셈이다. 소쇄원은 정원을 공부하는 사람이 꼭 참고해야 할 만큼 유명하다. 이 곳은 어떤 곳일까?

설명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이담로 선비가 이 곳에 정원을 만들었다 한다. 큰 대문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간 곳에 백운동 12경이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 중 9경인 취미선방에 앉아 보았다. 산 허리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이라는 뜻의 선방에 시 한수가 써 있다. 정원의 전경이 모두 보이는 마루에 앉아 무심하게 시선을 허공에 두어 본다.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 올 것 같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 그리고 뒤로는 공룡의 등같은 월출산이 있다.  그 연못은 마치 경주의 포석정처럼 술잔을 띄우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정원을 나와 작은 숲길로 걸어가니 보성차밭같은 넓은 차밭이 있어 우린 차밭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다가 문득 대장이 버스를 몰고 차밭사이로 내려왔다. 그 곳에서 우린 이번 여행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진 한장을 찍었다.

 

마을버스 뒤에 장착된 사다리가 사라져 버려 지붕위에 올라가기 힘들었는데 우리는 모두 암벽타듯이 기어 기어 지붕위로 올라가고 월출산을 등 뒤에 두고 모두 손을 흔들었다. 마을버스를 타는 기분을 남들이 알까?  이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여행을 무척 부러워 했다.

버스는 지난 해 찾았던 ​석문공원의 사랑플러스 구름다리. 강진의 만덕산과 석문산을 잇는 국내 최장거리 산악현수교이다. 이전에는 힘들게 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간 후 다시 내려와 석문공원의 구름다리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도로에서 바로 비스듬하게 경사진 산길을 올라가 빨간 하트 조형물이 양쪽으로 만들어져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설명에 의하면 이 곳 다리를 세우고 개통식하는 날 탈북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다한다. 신랑 신부는 견우직녀처럼 양측 다리 끝에서 걸어와 둘이 합하는 결혼이벤트였다. 그 뒤로도 이 곳은 신청하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다리 끝까지 걸어가 내려가면 도로를 건너지 않아도 지하도를 통해 다시 공원쪽으로 올 수 있다.  

​강진의 자랑거리인 다산초당과 백련사. 지난 번 트레킹시 백련사에서부터 다산초당을 지나 다산기념관까지 걸었던 길이다. 이 길은 다산초당 유배길로 표시되어 있어 나무에 매달린 리본으로 찾아 갈 수 있다.


다산기념관에서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뿌리의 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나무 뿌리들이 길에 그대로 드러난 채로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 이 방치된 뿌리에 대해 흙으로 덮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건의했지만 식물학자들은 그대로 두는 것이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한다.

나무의 힘줄이 불끈 불끈하여 힘만 주면 꿈틀댈것 같이 그대로 솟아 오른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간 곳에 다산이 거주하며 많은 책을 저술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그 옆에 작은 연못이 있고 편백나무와 대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공부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 곳에서 숲길 계단을 올라가 백련사로 향했다. 어떤 이들은 백련사를 거쳐 다산초당쪽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백련사의 법당 앞에 많은 등산화와 운동화들이 있어 여행객이 설법을 듣고 있음을 알았다. 아직 덜핀 동백꽃들이 수줍은 듯 나무 속에 감추어져 있어 카메라를 들이 밀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몇 몇 설 익은 놈들만 바닥에 떨어져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미 해는 많이 기울었다. 오늘 저녁 숙소는 강진해협의 가운데 있는 가우도의 마을회관으로 섬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늦어도 갈 수 있지만 서둘러 길을 찾아 나서니 이미 해가 뉘엿 뉘엿 지고 있었다.

가우도는 양옆으로 두개의 다리가 있는데 서쪽에도 들어가는 다리는 438m 길이의 저두출렁다리라 하고 동쪽에서 들어가는 다리는 망호출렁다리로 길이가 조금 짧다. 지난 해 걷기 팀과 이 곳에 와서 섬을 약 1시간정도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의 시간을 가졌다.  

바람이 많이 부는 다리 위를 건너가며 뒤로 보이는 산 넘어에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짐은 마을 이장님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작은 사륜차를 가지고 나와 쉽게 건넜다.  섬 안에 무엇인가 먹을 것이 있겠지 하고 육지에 차를 세우고 빈 몸으로 들어갔는데 섬에 들어가고 나서야 저녁거리를 놓고 온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일행 중 여자 분 한 명이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횟집에 가서 쌀과 최소한의 반찬만 사오기로 하고 나갔는데 마을 인심이 후하여 쌀 외에 싱싱한 굴과 여러가지 반찬을 그냥 주시고 요즘 제철인 피조개를 싼 가격으로 아주 많이 주셨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는데 일행중 강진에 사는 페이스북 친구가 그 늦은 시간에 우리가 낮에 한정식집에 맡겨 놓았던 고기와 큰 막걸리를 잔뜩 들고 그 긴 다리를 넘어와 그날 저녁은 고기에 조개에 각종 반찬에 밤이 늦도록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을회관이 좁을까봐 여자일행은 이장님댁에서 방을 빌려 주어 그곳에서 편히 쉬었다. 역시 시골인심은 도시보다 손이 커서 좋다.

이른 아침에 혼자 바닷가 산책하는데 물이 빠진 바닷가 갯벌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열심히 캐고 있다. 어촌이나 농촌이나 부지런하다면 밥을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아침에는 마을 주민이 주신 배추로 국을 끓이고, 밭에서 딴 싱싱한 시금치와 남은 피조개로 남은 반찬과 함께 비벼 먹었는데 큰 조개를 몇 개 먹다 보니 속이 거북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행사하고 나오면서 숲속에서 아침 먹을 것을 모두 토할 수 밖에 없었다.

​오전 행사는 짚라인을 타기로 했다. 섬의 한 가운데 낮은 산에 강진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려청자 탑을 크게 세우고 그 꼭대기에서 건너편 망호출렁다리위를 짚라인으로 날아갈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 해 보지 않은 짚라인. 혹시 내가 고혈압약을 오랜 세월 먹었는데 괜찮을까?  혈압은 높아 본 적 없지만 조금 걱정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타 보겠느냐는 생각으로 몸에 안전장비를 걸치고 안전모를 썼다. 타는 요령을 안전요원으로부터 전해 듣고 마치 유격훈련처럼 긴장되어 굵은 줄에 몸을 단단히 지탱하고 아찔해 보이는 높은 곳으로 몸을 날렸다. 뛰어 내리기 전에는 무서워서 눈을 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발 밑을 보고 싶어 눈을 크게 떴다. 내 몸이 새가 되어 날랐다. 줄이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았지만 내 몸이 저절로 반대편으로 돌려졌다. 발 밑에 파란 바다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상상이 다 떠올랐다. 이대로 바다로 추락하는건 아닌지, 혹시 커다란 상어가 물밑에서 뛰어 올라 나를 덥석 무는건 아닌지, 내가 몸이 뒤집혀져서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그 모든 것은 기우였다.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을 상황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하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냥 세상의 흐름대로 살면 된다.

 

가우도를 나갈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빠 모든 짐을 우리가 들고 나가야 했지만 그 또한 젊은 시절 놀러갈 때 같은 분위기라 모두 즐거워했다.   

​오후에는 강진아트홀에서 공식행사가 예정되어있다. 마을버스로 세계여행한 대장님이 강진군민을 상대로 강연회를 한다. 행사는 강진이 2019년 나라가 지정한 3개의 추천 관광도시로 선정되어 그 준비를 위한 결의대회였다.  밴드가 나와 흥을 돋구고 연극인들이 나와 관광도시 강진의 다짐을 연기하고 군수님이 참석하여 인사를 하는데 군수님의 감성이 보통이 아니다. 강연을 시로 시작해서 시로 끝내는 멋진 공무원이다.

 

 

우리 대장님의 '마을버스로 세계여행을 떠나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강연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니는 곳마다 그 곳의 관광지보다 마을 사람들의 미소가 가장 인상깊었다고 주장하여 관광도시가 가져야 할 조건을 얘기하며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자는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며 여행을 떠나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강진에서 멋진 바다의 일몰 풍경을 보기 위해 ​카페의 지붕을 전망대로 만든 고바우 전망대를 방문해 모두 기념사진을 찍고 근처의 강진 고려청자 박물관을 찾았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다.

강진의 첫 날 숙소였던 한옥은 취사가 안되어 마지막 숙소는 주작산의 휴양림을 얻어 들어갔으니 나뿐만이 아니라 일행 중 몇 명이 아침에 먹은 음식이 부담스러웠는지 간단히 먹고 내일 아침 일찍 제주도로 가는 페리호를 타기 위해 완도로 가야 하니 모두 일찍 잠이 들었다.

강진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갈대숲 트레킹은 요즘 조류독감때문에 일시적으로 통제되어 가지 못함이 조금 아쉬웠고 주작산을 등산하여 멋진 조망도 일행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으며 그 외에도 강진의 ​병영숯불갈비 등 먹거리를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쉬웠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내용 중 일부는 일행이 찍은 사진들을 인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