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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한 정선 5일장 (2006. 8)

carmina 2016. 12. 8. 10:00




그래..그곳에 가자.
내친김에 결행하자. 장날 알아보니 마침 2, 7
이번 토요일이네
근간에 2번에 혼자 여행다녀왔기에 이번에는 무조건 가족을 끼워 넣었다. 그것도 좀처럼 같이 가기 싫어하는 머리 큰 대학생 아들, 그리고 지 친구들 모임이 더 중요한 딸.
 
반협박수준으로 약속이 있다는 딸도 끼워넣고..
인터넷검색으로 시간확인 티켓 예매, 주말이 조금 비싸긴하지만 주말밖에 가지 못하니까..
 
토요일 아침.
온가족이 이른 시간에 서울행 전철을 탔다.
모두가 자기만의 세계가 가득찬 가방하나씩 들고..
평소에도 집안에서 그리 대화가 많지않은 가족. 조용한 전철에 타도 역시 아무말이 없다. 아침시간이라 아직 말문이 안 트인건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고자 찾은 덩킨도너츠.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각자 하나씩 지 맛에 맞는것 챙기고 좁은 구석에 앉아 빵과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식사해결. 커피와 핫초코가 너무 맛있다.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을 때부터  말문이 트인다. 그러기에 한솥밥 식구라는 말이 나오는건가?  이번 여행은 솔직히 먹는 즐거움을 찾는 여행이기도 하다. 별미 여행.
 
그러나 아차..덩킨도너츠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롯데리아, 맥도날드의 현란한 간판들이 즐비하다. 모두들 아쉬워하네. 여기서 먹을껄..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배는 부른걸.전화로 예약한 티켓을 받고 정시에 무궁화를 탔다. 손에 손을 잡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 주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나 혹은 부부 그리고 소그룹들이다.
 
시원한 기차안에 들어가 의자를 돌려놓았다. 넷이 둘씩 서로 마주보고 앉으니 무릎이 닿을 정도다. 이렇게 온 가족이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 본지가 하마 언제인지..
차라리 다리를 뻗고 앉은 것이 편하여 지각각 편한대로 앉는다.
 
아침에 아내한테 슬쩍 귀뜸한번 건넸다. 오늘은 애들한테 절대 싫은소리 하지 말라고..  집을 나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늘은 먹고싶은 것 허락받고 먹지 말고 직접 사먹으라고 용돈도 건넸다.
 
거의 한달간 뜨거운 무더위로 기찻길 옆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고추밭에 빨간 고추가 영글어 간다. 긴 장마를 이겨낸 벼들이 파랗게 허리를 곤두세우고 있고, 논둑을 큰 호박잎이 가득 덮고 있는 한 여름. 이미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는데 더위는 거의 매일 30도를 넘는다. 아마 이게 막바지 더위일 것이다.
어쩜 그리도 많은 비가 오더니 비 그치고 난 후 강렬한 여름 햇빛이 전국을 뜨겁게 하는지..사람들이야 어떻든 신은 농사를 좋아하는가 보다.
 
자리에 넷 앉아 모두의 어쩔 수 없는 관심사인 음악에 대하여 한참을 이야기한다. 나만이 아마츄어이고 모두 프로가 아니던가. 난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다. 속으로 혼자하는 말.. 니들이 아빠보다 음악을 더 좋아해?
 




그렇게 재잘대던 대화가 조금씩 피곤으로 인한 낮잠으로 이어질 때쯤 나는 슬쩍 만화가 신동헌씨가 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책 하나 들고 오징어 땅콩챙겨서 기차내의 카페칸으로 옮겨 멍하니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에 빠져든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삼삼하다.
이쁜 집들이 모여있던 어느 곳,
넓은 평원에 푸르른 벼이삭들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들..
한가롭게 소 몇 마리 뛰노는 벌판도 보이고
어느 언덕 기슭에서 아줌마들의 무리가 거친 땅을
개간하기도 하고..
  
그냥 눈 앞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정을 느끼는 것이 도심생활에서 가능한 일일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목걸이를 훔쳐가는 이들이 존재하는 빌딩의 콘크리듯 같은 마음이 있는 그 곳에서 얼마나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기차가 양평과 원주를 지나 다시 충북 제천으로 향하다가 정선 조금 못 미쳐서 증산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열차 각 칸마다 정선관광을 안내할 가이드들이 한 사람씩 오르더니 안내 멘트와 함께 정선여행을 하루에 즐기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자유코스인 정선 5일장만 관광하는 것도 있고 장터를 잠깐 구경하고 화암동굴이나 화암약수를 돌아보는 코스도 있지만 아무래도 동굴이나 약수터를 가기위해서는 장터에 머무르는 시간이 불과 20분밖에 허용이 안되기에 우린 장터만 구경하는 자유여행을 선택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동굴이나 약수터를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고 돌아가는 열차의 시간을 생각하니 그 정도의 여행팩키지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티켓과 함께 제공된 열차시간표대로 기차가 도착했건만 안내멘트는 자꾸 기차가 연착되어 죄송하다고 한다. 무슨 의도일까. 얼핏 드는 느낌에 자꾸 버스 관광을 유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증산에서 올라탄 가이드들은 모두 버스관광 가이드였다.
 
정선에 도착.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기차역앞 조그만 광장에는 버스들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버스를 타는 것 같고 장터까지 택시로 기본요금 나오고 걸어서 15분 걸린다기에 우린 걷기로 했다. 역 주위라 그런지 도심 분위기가 나지만 북한생활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60년대의 이발소 모습이  무척 정겹다.
 


 


 우리와 같이 정선장으로 걸어가는 일행은 많지 않다. 역에서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시원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다. 제법 긴다리 아래로 시원스런 강이 펼쳐지고 양옆으로 낮은 산사이로 보이는 모래사장 그리고 제사상의 알록달록한 과자같은 코스모스가  작은 소나무 밭을 둘러싼  전형적이 시골의 냇가 모습이다.
 


 


 늘 온실속에서만 자란 딸은 입으로 수없이 덥다는 소리를 외친다. 그다지 덥지도 않건만 마음에 담긴 소리를 여과없이 소리내는 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나..그냥 두었다..
 
다리를 건너서자 마자 5일장 팻말이 보인다.
 
입구에서 양옆에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사이에 골목을 보니 천막이 열병하듯이 덮여져 있고 제일 첫 좌판에서 농구(農具)를 팔고 있다. 도심의 아파트내에서는 눈뜨고 찾아 볼 수 없는 물건들. 낫, 도끼, 괭이, 작두, 가마솥, 대패, 빠루, 투박한 식칼 등등.. 비록 농사는 지어보지 못했지만 그런 물건들이 좋아보이는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농군의 자식이라 그런가.
 
 

 
 우선은 점심을 먹어야 하니 먹거리 골목을 찾아 들어갔더니 모두 자그마한 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도무지 앉을 자리를 찾아 볼수가 없다. 모두 똑같은 간판에 똑같은 메뉴, 작은 내실과 식탁 한 두개가 있는 통로. 모두 연신 땀을 흘리며 주문을 받고 손님들이 자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급히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다 먹어가는 손님들 옆에 기다리고 있다가 앉곤 하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몇 군데 자리가 있어 들어가 보았으나 그곳에는 올챙이 국수를 팔지 않는 곳이라 그냥 나오곤 했따. 올챙이 국수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가.
 
겨우 식당하나를 잡고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싸기도 하지. 겨우 2천원 삼천원짜리 메뉴다. 올챙이 국수 2500, 메밀국수 3000원, 메밀 전병 3000원.  4명이 모두 다른 것을 시켰다. 이래야 여러가지 먹을 수 있을테니..  만약 혼자오는 사람을 위해 정선의 별미들을 조금씩 담아 파는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는 곳은 없었다.
 
올챙이 국수는 강원도의 주산물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국수로 만들어서 끈기가 없기에 올챙이처럼 만들어진다 해서 올챙이 국수 혹은 올갱이 국수라고 한다. 
 


 

 
또 콧등치기라는 메뉴가 있는데 메밀국수를 말한다. 메밀 국수를 먹다보면 메밀이 콧등을 친다 해서 콧등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올챙이 같이 생겼다 해서 올챙이 국수, 콧등을 친다 해서 콧등치기 등등..얼마나 재미있는 이름인지, 사람들은 맛 이전에 무언가 다른 것을 찾는 것 같다.
 


  
참고로 올챙이국수나 메밀국수는 찬 물에 말아 나온다. 겨울에는 뜨거운 물에 말아 나올까? 그걸 물어보지 않았다.  맛은 올챙이보다는 메일이 훨씬 맛있는 것 같다. 메밀로 만든 전병도 맛이 있었다. 메밀 전에 김치로 만든 양념을 넣고 말아서 먹는 건데 딸이 맛있다며 집에가서 이것좀 해달란다.  사전에 먹거리에 대한 정보로는 황기족발이 맛있다고 하여 인근 식당에 있으면 꼭 찾아먹고 싶었는데 쉽게 보이지 않았다.
 
입이 까다로운 가족들이라 별로 푸짐하게 먹지 못하고 그냥 나오니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지.
 
식사 후 장터를 4명이 같이 보러 다니는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 따로 따로 보기로 했다. 핸폰을 거부하는 아들에게 엄마핸폰을 빌려주고.. 날씨를 생각하지 못하고 옷을 입고 온 아내가 옷타령을 한다. 나도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금방 가족들을 잃어버렸다. 
 
여느 시골 장터가 그렇듯이 시골사람들이 주로 입는 싸구려 옷들이 즐비하고, 도심의 전철안에서 싸구려로 파는 물건들, 각종 반찬들이 가득 전시되고 있다. 그렇게 먹을 것들이 많은데 파리가 없어 신기하다 했는데 먹을 것을 놓고 파는 곳에서는 거의 모기향을 피우고 있어 파리의 접근을 막고 있는 듯 하다.
 
단체버스로 온 관광객들이 들어설 때 통로를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온 젊은 단체 관광객들은 물건을 볼 생각은 안하고 우~ 몰려 다니다가 다시 우~몰려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참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경박함을 느끼곤 한다. 사물을 자세히 보지 않는 그들의 행동은 아마 컴퓨터를 보는 습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장터 곳곳에 여기 저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이곳에 유명한 음식중 하나가 황기족발이라 하는데 시장 한 복판에서 족발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어 군침을 돌게 한다.
  


 
커다란 식관에 부글 부글 끓고 있는 족발들, 노릿노릿하게 갈색으로 익어 좌판에 펼쳐져 있는 족발들에 침을 꼴깍 삼키고, 저것을 사가지고 집에 갈 때 기차안에서 먹어야지 하고 호시탐탐 노리다가 나중에 시간이 없어 사지 못함이 너무 아쉬웠다.
 
시골장터니까 직접 채취한 나물들을 판매하는 곳이 유난히 많다. 그중 어느 할머니들은 목에 인식줄을 걸고 있는데 '신토불이'라고 써 있고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정선산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듯했다. 시골초가집 지붕과 잘 어울리는 늙은 오이.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특히 강원도 산중도시라 약초를 캐는 곳이 많고 어릴 때 아버님이 신경통으로 자주 복용하시던 우슬초, 가시오가피나무 등이 자꾸 눈을 끈다. 그 외에도 이름모르는 수없는 약초들. 씁쓸한 인상은 그 많은 약초가운데 왜 그리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한 품목들이 많은지...이젠 우리네 몸도 우리토양이 아닌 범세계적인 몸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는 가보다 하는 체념도 해 본다.
  
먹는 것이 점점 외국의 것들과 섞여지듯, 우리네 피도 점점 외국인들과 섞여지는 것을 보고 이런 것이 세계화인가 생각도 해본다.
 
시장을 천천히 걷다가 아무래도 뙤약볕을 걷기 위해선 챙이 넓은 모자가 하나 필요할 것 같아 밀짚모자를 하나 사는데 가격이 불과 3000원. 세상에... 아무리 중국제이겠지만 이 가격이 3000원이라면 단가가 얼마나 되는거야.  장터를 거닐다가 아들을 만나고 문득 눈에 들어오는 먹거리 하나. 수수팥떡. 할머니가 조그만 불판하나 놓고 떡을 굽는데 침이 꼴깍. 배가 부르긴 하지만 무조건 앉았다. 2000원에 3개. 할머니는 연신 떡을 굽기 바쁘다. 모든 것이 손으로 이루어지 할머니 손도 기름으로 번질 번질. 주걱으로 눌러도 되는데 굳이 손을 구부려 주걱을 대신하는 것이 어찌나 보기 좋은지..  
 
 


 팥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오신듯, 거친 것이 어릴 적 어머님이 명절날 만들어주신 모찌가 생각난다. 금방 익혀낸 밀가루에 단팥을 싸서 모찌를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아들하고 모찌 3개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난 2개 아들은 하나
나중에 시장통을 돌아다니가 딸이랑 같이 다니는 아내를 만나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사먹게 했다.
시장바닥에서 메를 치며 만드는 인절미는 얼마나 맛있던지..
 
여느 장터에나 장돌뱅이같은 풍각쟁이가 있고 품바타령을 하겠지만 이곳 정선에서는 정선아리랑 공연이 노천에서 벌어졌다. 노천이라기 보다 어른들 앉아서 쉴수있고, 공연무대로도 사용하는 곳에서 전통 소리꾼들이 와서 정선아리랑을 여러가지 형태로 불러댄다. 앞에서 노래하고 뒤에서는 북을 치거나 다듬이돌, 장구 그리고 항아리안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박자를 맞추는 리듬들이 무척이나 일사분란하게 잘 맞았다.  그 흥겨운 마당에 왜 춤이 없을소냐, 나이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있다. 버스안에서 추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막춤에 비하면 이건 예술이다.  
 
 정선5일장이 특별관광열차를 만들 정도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이벤트를 많이 계획한 것 같다.
 
장터 구석구석이 시골의 정취가 보인다. 상호도 없는 기름집, 이름없는 찐빵집.. 무슨 소용이랴. 그냥 아무개네 기름집, 아무개네 찐빵집 하면 될걸..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아라리 민속촌이 있다해서 택시를 타고 찾아 갔다. 택시 기본요금정도의 거리. 민속촌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단지 옛너와집들을 만들어 두고 가운데 넓은 공연장이 있는 것 뿐이다. 무슨 행사가 있었던지 마당 한 켠에 대형 텐트를 쳐 놓았기에 텐트 아래 의자에 길게 누워 낮잠을 잤다. 내가 자니 아내와 딸도 덩달아 길게 눕는다.  아빠를 따라 다니는것이 힘들긴 할거야.
 
나도 깜빡 잠들고 일어나니 아내와 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민속촌의 정자 있는 곳으로 가니 바로 아래 넓은 강이 보인다. 물이 말라 바닥이 거의 보이니 아마 걸어서 강 건너편으로 갈 정도로 수심이 얕아 보인다. 바람이 조금 불어 모자를 손으로 잡고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4시 40분에 예정된 정선 문예회관에서의 아리랑 공연을 위해 서둘러 나오다가 그만 딸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아들보고 같이 가서 찾아오라 했더니 '자기가 왜 가느냐'며 반문한다.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잘못들었다고..
두 아이는 모두 여행 내내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몹시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냥 두었다. 단지 이어폰 끼면 청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충고만 해주고..
 
아들이 핸폰을 찾아오고 급히 택시를 타고 장터 뒤에 있는 문예회관을 들어가니 이미 공연이 막 시작한 모양인지 캄캄하다. 우선 관중을 향해 인사말을 넉살붙여가며 하고, 한국의 과거사 및 근대사동안에 정선이 겪은 일들, 그리고 아리랑을 통해 전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사람들의 애환.   어느 민요나 다 그렇겠지만 정선아리랑도 시대의 환경에 따라 전해 내려오는 가사의 버전이 수없이 많다.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가사는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 / 모
두 모고 /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달라고 / 섣달 열흘 녹음에 / 정성을 말고 /
타관객리 외로히 난 사람 / 괄시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없어 /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
하여 / 지향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
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 눈앞에 왼갖 것이 모다 시름
뿐이라
 
이런 가사도 있다.
 
태워주게 태워주게 할마이 옷좀 태워주게
저승가서도 옷갈아입게 할마이 옷좀 태워주게
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 없는데
세월 가고서 임마저 간다면 누굴 믿고 사나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나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런데 민요는 부르는 사람들이 적당히 가사바꿔 부르면 그 또한 전해 내려 오는 것이니 서민들의 애환이나 애증을 노래하기도 한다.
가사가 공연 중 자막으로 보여주는데 미성년자가 보기에 낯뜨거운 남녀의 사랑행위를 은밀히 묘사한 대목도 있다.
 
이러한 공연이 무료로 진행되기에 당일 기차를 타고온 사람들과 버스로 여행하는 사람들로 문예회관은 가득 차 있다. 정선에서는 이런 문화적인 배려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시장통에서도 관광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공연은 주로 나이 많은 여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간혹 젊은 아가씨들 몇 명이 합세하고 있다. 합창단에서 정선아리랑을 합창으로 배웠어도 저들같이 민요답게 부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서양음악에만 익숙한 우리들이기에 어깨춤같은 추임새가 들어가는 우리 민요는 도무지 제 맛을 내지 못한다.
 
저들은 그토록 쉽게 부르는 것도 내가 따라하려니 왜 이리 정통 성악적인 발성만 나오는지..
 
이젠 열차시간 맞추어 얼른 나와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만만치 않네. 길거리로 나와도 지나가는 택시는 보이지 않고 걸어서 가면 딱 제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기에 부지런히 걸었다. 코스여행자들을 실은 버스가 줄지어 지나가고, 그 버스들이 마침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버스 안에 있는 가이드에게 역까지 태워 줄 수 있느냐고 손짓했더니 기사의 허락을 받고 문을 열어준다. 고맙습니다..
 
순식간에 기차역에  닿고 저녁 먹거리를 찾았으나 역 앞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시장에서 족발을 사지 못함이 심히 아쉬워라.
 
기차가 떠날 때 쯤 버스 가이드들이 일렬로 서서 손흔들어 인사한다. 우리를 버스 태워준 눈 작은 아가씨에게 더욱 감사의 손짓을 보냈다.
 
정선에 들어올 때 저녁 도시락을 신청받았으나 주문안해 놓았기에 양해를 구해 2개의 도시락을 사놓고..마주 앉아 오고가는 대화중 아내와 딸이 신경전. 종일 등을 마주 대하고 있기에 나도 책하나 들고 카페칸으로 가서 내내 책을 읽으며 4시간의 여행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