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연타석 고비고개길

carmina 2017. 5. 1. 21:58

 

2017. 5. 1

 

지난 주말에 목회를 하는 처남이 문득 전화를 해서는

"매형 우리 애들 5월 1일 2일 학교 안간다는데

매형 혹시 계획 있으면 데려가 주세요"

 

계획은 없었는데 계획을 만들라는 얘기다.

그것도 강화도 나들길로...

얼른 머리속에 쉽게 가기 힘든 주문도와 볼음도를 생각했으나

아내가 화요일에 일이 있는 관계로 차를 쓴다 하니

결국 하루 코스를 정해야 했다.

 

아무래도 지난 토요일 나들길 5코스의 풍경들이 너무 좋아

아이들에게 그 코스를 보여주기로 했다.

 

처남 집앞에서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눈을 졸음이 가득한

초등 6학년과 중2학년의 두 청바지 남자애들이 내 차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지난 주와 똑 같은 코스를 택했다.

국화리 저수지에서 엄청 큰 (?) 물고기를 보여 줄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간 비스켓을 잘라 던져도 소식이 없다.

겨우 팔뚝 반만한 몇 마리만 보았을 뿐이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붕어 몇 마리가 있었고..

역시 자연의 이치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길가에 보이는 꽃 이름을 몇 개 알려주었더니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아느냐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본다.

걸으며 강화도의 역사와 강화도를 통한 선교의 역사 

그리고 간척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더니

무척 신기해 한다.

하긴 학교에서도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언덕이 몇 개 나오니 막내가 조금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곧 앞장서기 시작했다.

이미 나들길을 몇 번 데리고 다닌 적이 있어

이정표를 제대로 볼 줄 안다. 

이정표 보는 것은 길에 관심이 없으면 

거의 보이지 않는 법인데 막내는 사물에 관심이 많다.

 

넓은 들을 바라보며 간척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을 바라보며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길가의 가축을 보며 가축에 대해 이야기하고

숲을 걸으며 풀과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산을 오르며 산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숲을 지나 돌담에 예쁘게 영산홍 꽃을 피운 집의

그늘에 앉아서 쉴려 하니 마침 평소에 인적이 없던

그 집에서 마당에 물을 주던 내 나이 또래릐 아저씨 한 분이 

집앞 현관의 의자에 앉아서 쉬어도 된다기에 올라갔더니

손녀로 보이는 작은 꼬마 아이가 있어

얼른 배낭에서 초코파이를 하나 주었더니

무척 좋아라 한다.

덕분에 아저씨와 말꼬가 트였다. 

내가 물을 마시니 집에 시원한 지하수가 있다고 하니

우리 조카들이 지하수가 신기하다며 따라갔다.

커피를 주시겠다고 하기에 혼자라면 마시고 가겠지만

조카들이 있어 미안하다고 얼른 자리를 뜨니 

사이다 캔을 두개 들고 나와 우리들에게 건네 준다.

안 받으면 결례가 될 것 같아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 코스는 조금 긴 길이다.

원래 다 걷고 외포리에서 꽃게를 먹을 셈이었는데

도무지 외포리까지 가기엔 너무 허기 질 것 같아

내가저수지에서 지난 주 토요일 갔던 식당을 찾아갔더니

월요일은 문을 닫는단다.

 

내가 시장으로 와서 식당에 들어가 

아이들은 된장찌게를 시키고 나는 소머리국밥을 시켰는데

된장찌게가 무척 맛있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집에 도착할 때 쯤 오늘 무엇이 제일 좋았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된장찌게라 했다.

강화도는 맛있는 것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식사 후 덕산휴양림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이

조금 힘들었나 보다. 아이들 얼굴이 발그스름하다.

마구 파헤쳐지는 덕산 휴양림.

지난 토요일 보다 더 많이 파헤져져 있다.

 

외포리에 도착해 갈매기들을 보고

찻집에서 팥빙수 하나를 시켜 나누어 먹으니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차를 해 놓은 풍물시장이 오늘 휴일이라 주차는 공짜.

(매달 1일 15일 휴일)

 

얘들아, 오늘 정말 애썼다.

지루하고 힘든 것을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오늘 같이 쉬는 날엔 종일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할텐데

어른들도 힘든 긴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 것도 맛들이면 좋은 것인 줄 안다.

처남의 3형제 중 매번 데리고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막내가 유독 길 걷기를 좋아한다.

 

길 걷기가 힘들었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 차안에서 애들은 뒷좌석 양쪽에

콕 박혀 눈도 뜨지 않았다.

 

또 가자고 하면 또 가겠지?

 

오늘...

길을 걷는데 이전에 삼성합창단의 후배가 전화.

선배님 저도 선배님 페이스 북 보고 강화와서 걷고 있어요. 

반가왔다.

외포리에서 팥빙수를 먹고 나오는데 문득 낯익은 부부가 보였다.

2주전 친구들과 교동 다을새길을 걸을 때 

이정표가 잘 못되어 애를 먹었던 부부다.

반가왔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