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87) 들길 따라서

carmina 2017. 4. 26. 23:04

 

 

들길 따라서 (양희은 작사, 이주원 작곡)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물결 따라서 나 홀로 가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안으며
나는 한 조각 작은배되어
저 넓은 바다로 노저어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트레킹을 시작한 이래 참으로 많은 날을 들길로 걷는다.

물론 그 전에도 들길은 걸었다.

그러나 트레킹시 들길은 어쩌다 걷는 짧은 들길이 아니고

끝없는 들길이다.

 

들길을 걷는 것은 행복이다.

들길을 걷는 것은 특권이다.

들길을 걷는 것은 자유다.

 

누구에게나 그런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게으르지 않은 자라야 하고

적어도 어디론가 떠나기를 즐거워하는 자라야 한다.

들길은 모든 이에게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들길이 있는 곳에서 자랐건

도심에서 자랐건 상관하지 않는다.

도심에서 자란 사람들도 누구나 꿈꾸던 곳이 들길이니까..

 

누구나 아릿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들길로 나가기를 원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곳은 남자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그 무엇이 있다.

적어도 자연을 사랑하는 남자는 믿을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적어도 이렇게 들길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모두 바쳐도 되는 사람이 될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갈 때 가장 순수하다.

들길이라는 것은 대개 가꾸지 않은 길이다.

저절로 자란 야생초와 풀잎들, 푹신한 잡초들이 자라는 길이다.

그 곳에는 꽃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피어있는 곳이 없다.

도무지 수열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제멋대로 피어 있다.

그래서 즐겁다.

아마 늘 규칙적인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무언가 삐딱한 것을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들길을 걷는데 하늘이 파란 하늘이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바닷가 둑위의 들길을 걸어가는데 하늘에 구름이 거의 없었는데

어쩌다 생긴 구름이 저절로 하트모양을 만들었다.

 

바다에 물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 갯골을 따라 항구에 머물고 있던 배가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는 바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선

바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시골에서 자란 많은 친구들이

등하교에 들길따라서 몇리나 되는 길을 걸어다녔다 한다.

신발주머니를 휘휘 돌려 멀리 앞으로 내 던져 놓고

그 곳까지 뛰어가곤 했다.

내게 그런 추억이 있었다면 정말 글 쓸 주제가 많을 것 같다.

 

아버님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셨기에

아버님의 고향을 가시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어느 해인가 평소 앙복을 입지 않으시던 아버님이

연한 하늘색 양복을 입고 나와 같이 시골을 가셨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버님과 돌아오는 열차를 타기 위해 걸었던 들길이 생각난다.

아버님은 멋지게 양복을 벗어서 한쪽 팔에 걸치시고

들길을 걸으셨다.

그 때 내게 아버님은 어린시절의 장난을 가르쳐 주셨다.

들길을 걸으며 양쪽의 풀을 묶어 매 놓으면 다른 친구들이

골탕을 먹을 수 있다고....

커서도 나는 길을 걷다가 가끔 그 장난을 한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적이 없다.

"경석이는 자라서 무엇이 되고파?"

대신

"너는 형들같이 이 다음에 공장 다니며 돈 벌라"하는

지시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문학소년이었던 내 진로가 공장행으로 정해졌고

취업 후 난 그렇게 공장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평생 아주 복잡한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최첨병의 업무에 종사했다.

어쩌면 그게 내 미래의 암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을 사랑한다.

내게 날개를 달아 주신 부모님을 사랑한다.

내가 끝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들길을 걸으면

아버님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