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20코스 갯벌보러 가는 길

carmina 2017. 5. 20. 20:57

 

 

2017. 5. 20

 

변함없이 토요일 이른 아침이면 배낭을 멘다.

그리고 버스를 두번 타고 강화로 달려간다.

늘 가는 길이지만 늘 새로운 것은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늘 같은 길로만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나들길 20코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들길 중에서도 제일 긴 23km코스였는데

얼마 전 부터 나들길을 세분화한다고 코스를 나누어

7코스가 지나치는 부분에서부터 분오리돈대까지 구간을 나누니

거리가 10키로 정도밖에 안되어

오늘은 일부러 7코스 장화리의 일몰전망대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강화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가 무려 1시간 20분을 달려

장화리에 도착했다. 이렇게 멀었었나?

버스는 우리 일행 뿐만이 아니라 타 지역에서 온

걷기 동호회 사람들도 20코스와 8코스를 걷는다며 동승했다.

내 옆에 앉은 그 분들에게 오늘 같이 조금 더운 날

바닷가만으로도 구성된 2개 코스를 걷는다는 것은 조금

힘들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특히 이 코스들은 모두 햇빛을 그대로 받아야 하고

바닷가만을 따라가는 조금 지루한 코스라 여름에는 쉽게

가지 않는 코스다.

 

일몰 전망대로 가는 길에 두루미들이 막 갈아엎은 논에 모여 있다.

아마 흙 속에 숨어 있던 먹거리들이 주워 먹는 것 같다.

 

바다에 물이 들어 오고 있지만 전망대 앞까지 도달할려면 조금 시간이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산길이 아닌 바닷가 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에 해당화들이 곱게 피어 있어 벌판이 더 아름다웠다.

 

오늘은 처음 오는 길벗들이 몇 분 보였다.

그 중 한 부부가 손을 꼭잡고 갯벌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좋았다.

나이들어도 그렇게 손잡고 걸을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두 사람의 사랑전선은 이상이 없을 것이다.

 

갯벌변의 돌들을 걸으며 걷는 것이 때론 숲길보다 더 좋다.

일정한 보폭이 아닌 돌을 밟기 위해 보폭을 줄이고 늘이고 하는

재미를 느낀다고나 할까?

 

자연의 오묘한 작품들이 숲길보다 바닷길에 더 많다.

떡반죽을 친 커다란 바위들, 프랑스의 빵같이 만들어진 바위들

인절미는 물론, 대형 케이크 바위 위에도 성큼 올라가며 걷는다.

커다란 이무기인지 혹은 도롱뇽같이 생긴 바위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 금방이라도 공중을 향해 뛰어 오를 기세다.

 

바닷가 길에서 숲으로 올라왔다.

여기 저기 찔레꽃이 가득하다.

그러고보니 강화길은 사철 내내 흰색옷을 입는다.

작은 찔레꽃이 지나면 조금 큰 산딸나무가 무성하고

길을 지나며 먹어보는 아카시아는 당연히 으뜸이고

조금 더 지나면 긴 밤꽃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

온 계절 내내 안개꽃과 마아가렛과 작은 흰 들꽃들이 

걷는 길에 하얗게 꽃잎을 뿌리고 있다.

 

북일곶돈대에서 서해의 넓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멀리 장봉도와 저 멀리 송도지역의 빌딩들도

그리고 희미하게 영종도의 그림자들이 하늘에 붕 떠 있다.

 

파도가 밀려 온다.

시원한 바람이 파도를 타고 오고 있다.

조금씩 여름의 열기가 바람속에 숨어 있다.

머리 카락속의 땀과 스며 들어오는 바람이 서로 영역싸움 중이다.

 

돈대를 내려와 다시 바닷가로 걸었다.

이제는 바닷물이 바로 앞에까지 밀려와 내 앞에서 출렁거린다.

그래도 배가 다니지 않는 바다라 파도가 갑자기 밀려 오지는 않았다.

 

철새 조망대 근처에서 어떤 이들이 바다를 조사하는 듯

종이와 망원경을 들고 유심히 갯벌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머리 바다 갯벌 끝에 무수히 많은 바다 철새들이 모여 있다.

그 중 물에 들어가 있는 두 마리의 새가 저어새라고 리더가 알려 준다.

 

이 쪽 길은 펜션이 지속적으로 들어 서고 있어 나들길 이정표가 자꾸 바뀐다.

산 기슭에도 그간 보이지 않던 펜션단지가 더 커졌다.

 

바닷가 둑 위로 길은 지속된다.

원래 둑길 옆에 작은 흙길이 있었는데 겨우내 자란 풀들이

그 길을 덮어 버려 발 딛을 틈도 없어졌다.

 

이제까지 강화에서는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를 듣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음력 보름도 아닌데 유난히 소리가 크다.

 

둑 왼쪽의 작은 하천에는 녹조가 끼어 점점 수면이 녹색으로

퍼져가고 있다. 그 밑에 있는 고기들은 아마 점점 숨쉬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새우 양식장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양식을 시작하는 듯 물수레가 돌아가며 포말을 내 뿜고 있다.

저 멀리 마니산의 정상이 깨끗하게 보인다.

나들길을 걷기 시작한 뒤로 저 위에 올라가보지 않았다.

 

문득 둑 왼쪽의 저수지같은 곳을 기웃거리니

작은 물총새같은 작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 오르더니

청둥오리들 같이 휘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둑길에 아카시아꽃이 만개하여 한 송이 따서

어린 시절처럼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그 맛은 세월이 지나도 아직 고소하다.

도로에 피어 있는 것이라면 손을 대지 않았을텐데

바닷가에 있는 아카시아라 맛을 보았다.

 

낚싯터에 예쁜 색깔의 소형 낚시 좌대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나는 일행들에게 낚싯꾼들이 멀리있는 화장실까지 가기싫어

뿌려 놓은 지뢰가 있을지 모르니

숲길을 조심해서 걸으라며 주의를 주었다.

그런 모습을 이전에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쪽 길의 둑 위에는 사람이 아닌 고라니들이 뿌려놓은

검은 구슬들이 가득하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이 곳이 고라니의 집단 서식지인가 할 정도로 많았다.

혹시 고라니들이 밤에 이 둑에서 바다를 보며 

축제를 하는 것은 아닐까?

 

 둑길 끝에 나들길 이정표는 주택사이로 가라하지만

우린 바닷가로 내려왔다.

그 곳에 거대한 바위가 평평하게 누워 있었다.

하나의 바위가 이렇게 큰 것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모두 그 바위 위에 누워 초여름의 햇빛을 온 몸으로 받았다.

 

동막해변으로 가는 길의 어느 펜션 뒷켠에 빨간 양귀비들이

가득한 것을 보니 1년전에 스페인을 여행하며 보았던

거대한 양귀비밭들이 생각났다.

1년전 오늘 나는 산티아고 까미노를 마치고 대서양의

푸른 바다가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에 있었다.

그 바위 위에 누워 있으니 다시 그 곳으로 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동막해변 갯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갯벌을 즐기고 있고

텐트 촌에는 삼겹살을 굽는 냄새와 치킨 백숙의 닭고기 냄새가 가득했다.

어린 아이들은 즐거웠고 엄마 아빠들은 의무감으로 이 곳에 왔을 것이다.

 

조금 힘들었던 길을 마친 후 길벗들에게 늘 친절하게 잘해 주시는 

분오리 돈대의 대련호 횟집에서 

농어와 돔의 회를 무한리필하며 그간 목말랐던 생선회를

마음껏 즐겼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